냉전의 진영 너머로 - 남북한의 중립·비동맹·제3세계 외교 (1948~1976)
김도민 지음 / 역사비평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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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냉전이라는 역사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간의 대결로 해석되어 왔다.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이 45년간 대립한 것을 두고 우리는 냉전이라 부른다. 냉전은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이후 한반도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군이 주둔했고, 3년 뒤인 1948년 서로 다른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가 남과 북에 탄생했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전쟁(6.25 전쟁, 조선전쟁)이 발발하여, 한반도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남북의 대립은 지속되어 왔고, 그 대립은 지금도 전혀 멈추지 않고 있다.

 

일부 외부인들은 현재 한국과 북한(북조선)으로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를 “냉전의 마지막 경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반도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강대국들의 대립에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냉전은 역설적으로 분단된 두 정부가 분단과 전쟁 위협이라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외교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싸운 역사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냉전은 분명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그 어떠한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려던 세력과 국가들 또한 있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를 거쳐 1961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제1차 정상회의를 통해 탄생한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 북한에서는 ‘쁠럭불가담운동’이라고 함)은 소위 제3세계(The Third World)로 불리는 세력이 있음을 세계에 알렸다.

 

1970년대 나타난 미·중, 미·소 데탕트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줬고, 이것은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선언했다. 또한, 무력 도발 중지, 상대방에 대한 중상·비방 중지 등을 내세웠다. 안타깝게도 합의한 내용의 이행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한 채 1973년 8월에 중단되었다. 비록 중단되긴 했지만, 남과 북이 자주와 평화 그리고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원칙에 합의하여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갈등이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 1972년을 전후로 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앞서 언급한 비동맹 운동에 가입하고자 고군분투했다. 1975년 페루 리마회의에서 한국은 가입하지 못했지만, 북한은 당당하게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 되었다.

 

한국과 북한이 비동맹 운동에 가입하고자 했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냉전이라는 흐름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 중심으로 흘러가는 구도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미·중, 미·소 데탕트는 강대국인 미국, 중국, 소련에게는 일시적으로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확립되어 가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그 성과는 제3세계나 약소국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따라서 비동맹 운동이 1970년대 이른바 제3세계에서 주목받았으며, 남북한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했다. 양측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식은 분명히 달랐지만, 양국 모두 강대국에게만 휩쓸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사실과 역사를 생각해 보았을 때, 냉전의 역사에서 강대국이 아닌 그 외의 다른 국가들과 제3세계에 주목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일정 부분 반영한 역사학 논문이 있다. 바로 김도민 교수의 2020년 박사학위 논문인 「1948∼1968년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연구」가 그것이다. 학위논문을 완성한 지 5년이 되는 시점에 김도민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학술서로 출간했고, 바로 그것이 『냉전의 진영 너머로 - 남북한의 중립·비동맹·제3세계 외교 (1948~1976)』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확장본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1970년대 남북한의 외교 경쟁에 대한 내용을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겨울 우연히 서점에 들르면서였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후 서점에서 책을 확인한 다음 반드시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을 구매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수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제대로 읽지 못했었다. 우선 학위논문 작성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필자가 준비한 학위논문 주제 또한 해당 연구와 관련도가 매우 높았기에 책을 읽긴 했었다. 아쉽게도 순수히 독서를 한다는 마음으로 읽은 것은 아니었고,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찾겠다는 마인드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정독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인용하고 찾았던 자료가 나온 부분들은 알게 모르게 반가웠다. 무엇보다 책 내용이 전공과 겹치니 많은 각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정독하게 되었고, 또 비교적 술술 읽혔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책의 저자인 김도민 교수는 ‘중립’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필자는 책 저자가 내리는 결론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중립 평화라는 가치가 어떤 면에서는 최선이 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적 외교의 맥락에서는 그것만 추구하기에 무리가 있는 상황들도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신동엽이 꿈꾸던 중립국”, 그러니까 “자국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뿐 아니라 총 쏘는 야만에 가담치 않는,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운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중립의 꿈”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물론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고 해서 필자가 전쟁을 맹신하는 사람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평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얘기이다. 그러나 평화를 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필자는 신동엽이나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에서 제시되는 방법은 대안이 되기 매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다루는 연구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세계 역사를 보면, 총과 대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책에서도 민족해방으로 언급되는 알제리 독립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등이 그러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약소민족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은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과 자유 그리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신동엽이나 최인훈의 관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모르겠다. 물론 전쟁은 무조건 외교라는 수단과 방법으로 피해야 한다는 관점에는 얼마든지 동의한다. 그러나 ‘총을 쏘는 야만’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이상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약소민족이 처한 상황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단호하게 말하자면, 필자는 비폭력주의자가 절대 아니다.

 

또한, 본문에서 강조하는 중립 평화라는 것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본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스위스는 비록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NATO 및 유럽 안보 체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이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함으로써 과연 중립국인지 의심이 드는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즉, 중립 평화를 내세우는 국가들이 반드시 중립적이고 평화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러우전에서의 스위스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중립 평화가 항상 평화적 세계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지 의심이 되는 측면이 있다. 정리하자면 필자는 저자의 결론에 대해서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결론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필자는 전반적으로 김도민 교수의 해당 연구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사실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특히나 제3세계 외교사를 학위논문으로 다루거나 연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기다 북한의 외교사는 역사학 연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연구는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를 다루면서, 한국과 북한의 중립국 및 제3세계 외교를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후반까지 총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에서 외교사 연구는 한국과 미국 혹은 일본, 아니면 북한과 소련 혹은 중국의 관계가 중심인 경우가 많다. 즉, 김도민 교수의 연구는 그런 한계에서 벗어났으며, 지금까지 비교적 다뤄지지 않은 남북한의 외교사를 역사학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인 북한-유고슬라비아 관계에 있어서도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에게 있어 이 책은 선행연구다.

 

무엇보다 저자인 김도민 교수가 남북한의 외교사를 다루는 방식이 참으로 감명 깊게 다가왔다. 지난번에 읽은 벤자민 영의 저서 『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는 근거를 안 밝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북한에 대해 너무 지나칠 정도로 “3대 세습, 독재, 테러, 폭력성, 폭압, 인권 억압” 등과 같은 용어를 남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막말로 표현하자면, 벤자민 영의 그러한 서술은 너무 반공주의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김도민 교수의 저작은 북한의 김일성 유일 체제와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 그리고 박정희의 유신 정권의 외교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런 결론적인 용어들을 전혀 남발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즉, 외교사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남북한의 주장과 선언 중 어떤 부분이 축소되고 과장되었으며, 사실관계가 어떻게 각색되었는지에 차분하게 접근하고 또 필요한 만큼 잘 설명한다. 즉, 필자는 이런 식의 설명과 분석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무척 좋았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와 같은 식의 설명형 역사 서술을 좋아한다. 아무튼 이와 같은 책의 서술은 상당한 플러스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또한, 많은 내용을 차분히 맥락적으로 큰 누락 없이 설명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무척 감명 깊었다. 중립국 연구라 그런지, 서술도 나름의 중립성을 유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해 더 얘기하자면, 지난번 벤자민 영의 저서 서평을 쓰며 언급한 부분을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중립국이라는 개념은 기준을 어떻게 잡는가가 중요하며, 제3세계라는 개념은 그 범위가 너무 넓은 개념인 것 같다. 물론 저자만의 문제는 아니며, 이 부분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준을 잡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립국도 한두 국가가 아니고 제3세계도 한두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역사를 다루면서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연구도 이 선행연구를 통해 보다 역사학적으로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의외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북한의 중립국 외교와 제3세계 외교를 다루면서 엔베르 호자와 알바니아 문제가 등장하지 않은 점도 앞으로 연구를 확장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알바니아가 국토는 작은 나라여도, 사회주의권에서 내비친 이미지를 보면 작은 나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 저서는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대두된 현대수정주의 논쟁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다루고 있지만, 그 함의와 국제적 맥락에 대해서는 많이 설명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뭐, 그래도 이 부분을 진지하게 언급했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현대수정주의 논쟁은 단순히 남을 비난하는 용어만을 둘러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역사학 연구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인데,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다룬 점은 나쁘지 않다. 그 시기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의 이런 이론 논쟁도 냉전사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사상에 따라 한 국가가 정책을 결정하고 한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진영에 설지를 결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중국-인도 국경 분쟁에서 북한이 소련이 아닌 중국 편을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외교사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정말로 국내사 연구에 비해 많은 지식과 공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분야라는 얘기다. 필자는 김도민 교수의 논문을 이렇게 출판된 단행본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이 기쁘다. 김도민 교수의 저서는 분명 일반인 A, B, C가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으나, 역사 마니아가 읽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연구하는 방법 자체가 어려운 이론을 요구하지 않고, 사료에 충실하며 이를 교차 검증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어렵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솔직히, 비교적 쉽게 읽혔던 것 같다. 이 연구는 한국사에서 외교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고민할지를 담은 아주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외교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저서의 일독을 권한다. 김도민 교수의 저서를 시작으로 앞으로 남북한 현대사에 있어서 외교사 부분이 보다 더 많은 연구로 풍부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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