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지막 해에 올리는 글로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195010월 중국이 이 전쟁에 참전한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남으로 후퇴했고, 195114일에는 수도 서울을 다시 내줬다. 중공군 참전 전후로 이승만 정부는 한국군 병력을 보충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국민총동원령을 내렸다. 동원령이 내려짐에 따라 전국적으로 남한에 있는 청년들은 영장을 받지 않았음에도 닥치는대로 소집 장소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소집명령은 당연히 강제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195012월 이승만 정부는 국민방위군 설치법을 공포하여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만 17세에서 40세 정도의 남성을 방위군에 편입시켰다. 그렇게 해서 모인 병력이 대략 5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많게는 68만 명이 소집되었다고 한다. 그중 42만 명 이상이 서울과 경기, 강원, 인천에서 소집됐고, 소집된 장정들은 국민방위군 장교들이 200~300명씩 중대 단위로 편성해 도보로 교육대가 있는 경상도로 인솔했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이 편성되었으나, 1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후송하는데, 쌀이나 군복 하나 안주고 소집 장소만 하달했을 정도로 방위군에 대한 정부의 대우는 최악이었다. 12월 특성상 겨울이었는데, 이런 혹한기에 장정들이 아사하거나 동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말이다.


예산횡령이 횡행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성모는 서북청년단 출신이자 대한청년단 간부 출신인 김윤근이라는 사람을 준장 계급에 임명했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전투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대한청년단 초대 단장인 신성모의 사위였고, 신성모의 비리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김윤군은 방위군을 유지하기 위해 받은 비용을 뒤에서 챙겼고, 기생집에 가서 원하는 만큼 돈을 쏟아부으며 사용했다. 김윤근을 포함한 4명이 착복한 돈과 물자는 당시 화폐로 무려 24억 원, 양곡 52천 섬에 달했다. 국회조사단이 진상조사를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책정된 예산 209억 원 중 실제 집행한 액수는 130억뿐이었고, 740만 명 정도의 유령병력을 조직하여 235천만 원의 현금과 52천여 섬의 식량을 부정유출했다고 한다.

 

국민방위군 1인당 1일 양곡 4, 취사연료비 40, 잡비로 10원을 책정해서, 3개월 예산으로 209830만 원이 배정됐는데, 그중 최소 1/10 이상을 김윤근을 포함한 4명이 착복한 셈이었다. 거기다 실제로 집행한 액수가 130억도 안되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이었지만, 이들이 잡은 군인에 대한 대우가 가장 처참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들이 책정한 1인당 1일 양곡 4홉은 하루 55작을 지급받는 전쟁포로만도 못한 대우였다. 그리고 모집된 국민방위군의 숫자를 생각해보자면, 어떤 부정이 없었다 해도 1인당 실제 집행액이 원래 계산만큼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심지어 난방비와 피복비는 아예 책정조차 하지 않았고, 엿공장은 생산 능력 대비 소비됐다면서 쌀 양이 계획안보다 6배가 넘었을 정도였다. 여기서 엄청난 뒷돈을 상층부가 챙긴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250대를 구입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20대밖에 구입하지 않았다. 명태는 386만짝을 구입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구입한 양은 4,000짝뿐이었다. , 국민방위군의 예산은 상층부가 뒷돈을 챙기기 위한 수법으로 진행됐다. 위에서 언급한 현금 횡령뿐만 있던 게 아니다. 현금 횡령이 235,000만 원이었다면, 양곡횡령이 202,710만 원이었고, 예하 공금 횡령이 288,328만 원이었다. 728,000만 원이나 횡령한 셈이다. 근데 이마저도 김윤근을 포함한 수뇌부만 해 먹은 것으로 공식적으로 드러난 액수일 뿐, 얼마나 횡령을 많이 했는지는 정확한 추산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최소 100일 동안 자국 군인이 대량으로 아사 및 동사 그리고 병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소문으로는 최소 5만 명에서 10만 명가량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는데, 중앙일보가 간행한 민족의 증언50만 명 중 20%가 병사 혹은 아사했다고 추산했다. 심지어 뉴라이트 출신으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찬양하는 정치학자 유영익마저도 이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선, “9만 명이 굶어죽고 얼어죽은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노무현 정권 당시 활동한 진실화해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른 추산은 대략 5만 명에서 8만 명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 한국전쟁 당시 국회조사에 따르면, 사망자 상당수가 행려병자로 처리되었고, 100일 동안 각종 질병, 동상, 아사, 도주 등 이유로 전체의 40%에 달하는 27만여 명이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추산은 불가능한 셈이다. 보통의 경우 7만 명에서 12만 명 사이로 보는데, 이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아무튼, 자국 정부의 방산비리로 최소 10만 명 이상의 군인이 아사하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생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사망자가 14만 명에서 20만 명 정도인데, 그것보다 조금 적은 숫자가 방산비리로 아사해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김윤근을 포함한 지도부 4명은 결국 사형해 처했고, 국민방위군은 해산됐다. 하지만 1심 재판에서 연루자 16명 중 실형 4, 파면 10, 무죄 2명으로 판결이 났다. 특히 사령관 김윤근에게 무죄가 선고됐는데, 국민은 판결 소식이 들리자 극도로 분노했다. 특히 부통령 이시영이 이 사건에 대해 분노를 표하면서 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대통령인 이승만마져도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국방장관 신성모를 경질했으며, 이기붕을 국방장관에 앉혔다.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으로는 정일권에서 이종찬으로 교체했으며, 여론을 의식하여 김윤근을 포함한 지도부 4명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왜 한국군의 대우가 역사적으로 안 좋았는지다. 그러나 열악한 군인 대우의 시작은 결과적으로 군인에 대해 아무런 배려의식이 존재하지 않던 이승만에서 시작한다. 이승만 정부가 군인에 대해 제대로 된 대우를 안해줬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이 자의적으로 대중을 죽이고 패가며 만든 이승만 정부에게 있는 셈이고, 또 그 점에서 이승만 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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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12-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천인공노할 사건입니다. 평화로운 때도 아니고 전쟁 중에 방산비리라니... 썩을 놈들 욕이 다 아깝네요. 올려주시는 글들 읽으면서 새삼 공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GiKim 2022-12-31 23:46   좋아요 1 | URL
제 PBS 베트남 전쟁 그 긴 리뷰를 열심히 읽고 계시니 참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꼬마요정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