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하다
이정훈 지음 / 사람과사상 / 2018년 8월
평점 :
이정훈,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한다』, 사람과사상, 2018 독후감
(이 글은 양심수후원회에서 진행했던 독후감 대회에 제출한 독후감입니다. https://yangsimsu.or.kr/notice/?idx=173120896&bmode=view )
‘주체사상!’ 절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 단어를 본다면, 단어 하나만으로도 북한, 김일성, 독재, 우상화, 세뇌, 정치범 수용소, 사이비 종교, 김씨 왕조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주체사상은 말 그대로 절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단어로 인식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고 있는 단어다. 즉, 북한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쇠사슬과 같은 단어인 셈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바와같이 부정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장 유튜브에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주체사상이 가진 철학적 함의나 이른바 북한(북조선)에서 주장하고 있는 철학적 맥락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본 결과, 북한을 매우 부정적으로 다루는 채널A의 방송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가 제작한 주체사상 관련 영상들이 주로 검색된다. 그중 한 영상의 제목은 「내 말이 곧 율법, 김일성의 신격화를 위한 이론, 주체사상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70회」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실제 내용과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인식과 북한의 독재를 비판한다는 맥락 속에서만 접근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영상이 설사 한국 사회에서 얘기하는 부분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접근이 과연 객관적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거기다 한국에는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일반 시민 누구라도 주체사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지 않게 얘기를 한다면,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처벌받기 십상이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북한의 역사를 공부했다. 북한의 역사를 공부하며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르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북한 외교사와 관련한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특히 1960~1970년대 북한 외교사를 다룬 필자로서는 북한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필자는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서 다수의 북한 자료를 열람하고 복사했으며 해당 자료들을 1차 사료로 논문에 적잖게 인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공식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북한 측 자료의 내용이 흥미로웠기에, 필자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 확보한 자료 일부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필자는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국가보안법 문제로 사찰을 받았다는 통보를 2025년 11월에 받았다. 필자의 경우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게시한 것으로 인정되어 압수수색이나 구속, 기소와 재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청이 전화를 건 이유는 표면적으로 수사 종료를 통보하면서도, “너 이런 것 올리면 정말 처벌받을 수 있다!”라는 경고와 위협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려는 데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심지어 연구자들도 북한에 관해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사회가 바로 AI가 발달하고 K-pop이 유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는 여전히 북한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북한을 알아야 하며, 다른 관점에서 북한을 이해하고 접근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이와 같은 구시대적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AI 시대라 불리는 2020년대에 이러한 검열과 감시, 위협을 경험한 필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6월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회장 김혜순, 이하 양심수후원회)가 국가보안법에 맞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형 독서운동을 추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자는 논문 최종 정리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이 독서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하여 필자는 지난 2021년 기소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정훈 씨의 책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한다』를 읽게 됐다.
『주체사상 에세이』는 이정훈 씨가 2000년대 중후반 수감 생활 중 정리한 주체사상 관련 글을 책으로 엮은 저작이다. 책은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 관계가 한참 좋아지던 2018년 8월에 출간됐다. 따라서 해당 저작은 저자가 감옥에 있던 시절 정리한 글을 다시 한번 정리한 것이기에, 개정증보판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관해 저자가 나름의 관점에서 요약·정리하고 분석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북한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고 보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자 맥락 무시다. 물론 해당 저작은 주체사상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이런 시각이 한국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저자도, 필자도,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필자의 주체사상 이해가 반공주의적 통념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이 국가·정치·사회 전반을 설명하려는 나름의 철학 체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측면은 자세히 몰랐다. 그래서 저자 이정훈 씨가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분석한 인생, 철학, 의식세계, 정치, 경제정책, 자본주의, 민족문제, 타국의 혁명, 문화, 사업 방법론 등은 매우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제1장 2절에 있는 「중용이라는 착각」이라는 대목이 대표적이었다. 이정훈 씨는 “사람들은 흔히 중립, 중도를 좋아하며 자기 사상은 중용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대체로 중도, 중용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착각이다.”(책 25쪽)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근로대중인 만큼 원래 중립에 서면 근로대중의 입장에 가까워야 마땅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중간지대는 근로대중의 편이 아닌 소수 지배층, 주류사상 편에 치우쳐 있다. 심지어 근로대중조차 수구보수 기득권층과 자본가의 지배논리에 쉽게 동조한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다소 이론적인 표현으로 ‘생활과 견해의 불일치’ 또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설명한다.(책 27쪽)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중용이 언제나 올바른 길이라는 믿음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필자는 이러한 철학적 접근이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해당 분석은 주체철학의 사유 방식을 일정 부분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생각해 볼 지점을 만들고 있다고 보며,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국제 정세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202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격화됐다. 이 시기 한국 언론에는 팔레스타인의 중심 세력인 하마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적잖게 올라왔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테러와 학살을 둘러싼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가짜뉴스까지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하는 제국주의 침략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해방 이후 미군정의 점령과 억압을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필자 주변에도 중립을 자처하며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상대적으로 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논리대로라면, 이러한 사례 또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는 점에서 잘못된 중용의 사례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정훈 씨의 책은 이와 같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필자에게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의 관계에 관한 저자의 분석도 일반적인 텍스트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체사상에 입각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분석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짧게 얘기하자면, 설득력이 있는 부분과 설득력이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주체사상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진영 안에서도 수많은 논쟁을 부른 사상 중 하나였다. 즉, 사회주의는 한국의 일반적인 반공 진영이 인식하는 것처럼 단일하고 획일적인 사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당 저작의 분석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폭넓게 토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정훈 씨의 저작에서 특히 공감하며 읽은 대목이 있다. 바로 한국 경제 구조의 모순을 지적한 부분이다. 많은 사람은 한국경제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박정희 시대 한국의 경제가 성장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 한국경제가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주장 또한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매우 힘들다. 박정희의 공로가 크다는 주장은 진보 진영에서 반박을 많이 하기도 하기에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주장이지만, 한국경제의 규모 자체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을 누가 누렸는지를 따져 보면 또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우선 이정훈 씨의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겠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속적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은 경제가 발전하고 GDP 규모가 커져도 국민경제의 자립성은 외려 더 떨어지고 근로대중의 복지는 개선되지 않는데 있습니다. 반면 외래자본과 재벌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직후와 비교하면 한국경제는 2018년 현재 1인당 GDP가 417배나 증가했다는데, 당시에 비해 자신이 400배 이상 부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2015년 통계를 보면 한국 자산의 상위 10%가 전체 부의 66%를 소유하고 나머지 하위 50%가 전체 부의 겨우 2%를 소유하고 있어요. 상위 1% 부자는 평균 주택 7채를 소유하고 전국 땅의 50% 이상을 차지했구요. 2017년 현재 노동자의 절반이 월 200만 원도 받지 못하고 하위 30%는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 원도 못 받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정도가 아닐까요? 경제성장의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한국 경제전략은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경제 시기를 제외하면 크게 국가주도 경제개발 시기와 신자유주의 개방경제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전략의 변화도 한국의 내적 필요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과 아시아 경제전략의 변동에 따라 추진됩니다.”(책 204~205쪽)
이 인용문은 한국 경제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혜택을 과연 누가 누렸는지를 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분명 모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분배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형평성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상위 1%의 부자는 평균적으로 주택 7채를 가지고 있고, 전국에 있는 땅 5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는 매우 크다. 책이 인용한 2017년 통계에 따르면, 하위 30%는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 원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도 함께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단지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다룬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종북주의자의 책’으로 낙인찍고 있다.
그 외에도 재밌게 읽은 부분은 많지만, 지면 관계상 해당 서평에서는 생략하겠다. 주체사상 자체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해당 사상은 북한의 초대 지도자 김일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북한의 공식 지도이념이다.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발휘하는 존재다. 북한은 이러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과 정치사상을 체계화했다. 물론 주체사상 자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도 적잖은 논쟁을 불러왔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맥락과는 별개로 우리는 주체사상 그 자체에 대해 단순히 독재나 세뇌 그리고 종교화라는 부정적인 맥락으로만 본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주체사상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다 북한을 찬양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책 7쪽)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다.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읽을 수 있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202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북한을 알 권리와 북한 관련 자료에 접근할 방법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의 사상 통제 논리를 계승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 직후 제정된 이래 여전히 사람들의 사상적 토론과 사고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이다. 필자는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생각해 볼 지점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분석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사회에서, 이정훈 씨가 쓴 책 역시 출간되고 읽힐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 분야에서 공안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완독했지만, 주체사상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필자 또한 북한에 대한 원자료를 SNS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감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가진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정훈 씨는 올해 4월 14일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법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사상의 자유를 옥죄며 해석과 적용을 국정원과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 현재 이정훈 씨의 저작 『주체사상 에세이』는 그러한 현실을 벗어던지는 데 있어 큰 의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직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책이 여전히 탄압받는 현실의 부당함이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국가보안법의 부당함과 폐해를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해당 저작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