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다 - 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
놈 촘스키.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유강은 옮김 / 시대의창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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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다. 나는 비자이 프라샤드(Vijay Prashad)SNS를 통해 그가 세계적인 진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프라샤드와 촘스키는 신간 한권을 들고 있었고, 그 책의 이름은 바로 The Withdrawal이었다. 책 제목을 직역하자면, ‘철수하다라는 뜻이다. 남한 사회에서 각종 반미집회에 간혹 참여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같이 책을 썼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쁘고 놀라웠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국내에 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했다. 나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고, 하워드 진(Howard Zinn)의 베스트 셀러 미국 민중사를 번역한 유강은씨가 이 책을 올해 번역했다. 이렇게 좋은 책이 국내에 나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뻤다.

 

나는 노엄 촘스키를 좋아한다. 촘스키는 미국의 좌파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지만, 여러 분야에서도 박학다식한 세계적인 천재이기도 하다. 특히나 촘스키가 가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근거와 출처도 탄탄하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avez)는 유엔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차베스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가리키며, 살아있는 악마라고 표현했다. 당시 차베스가 부시에게 악마 혹은 제국주의자라 강하게 표현한 이유는 분명했다. 2003년 부시 행정부가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전쟁범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연설 당시 차베스는 한 권의 책을 보여주며, 미국의 대통령에게 독서를 권장했다. 그 책이 바로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였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종말의 길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훌륭한 저작이었다. 그 외에도 내가 감명깊게 읽은 촘스키의 책 중 하나는 미국 대외정책론여론조작이다. 전자의 경우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국내에서 출간됐고, 후자는 2006년 에코리브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대외정책론의 경우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 담겨져 있었고, 여론조작은 미국 지도부가 어떻게 자국의 적국을 악마화하고 또 언론을 통해 가짜뉴스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지를 아주 낱낱이 고발했다. 에드워드 허만(Edward Herman)과 공저로 집필한 두 권의 책은 내 서재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책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자료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책을 다소 어렵게 집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촘스키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그러한 난해함에 고통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러나다에서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눈 비자이 프라샤드는 어떠할까? 여기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선 내가 만난 비자이 프라샤드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지난 202212월 나는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비자이 프라샤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국제전략센터(International Strategy Center)에서 개최한 북콘서트였는데, 비자이 프라샤드와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프라샤드의 저서 워싱턴 불렛을 번역한 심태은씨와 3세계의 붉은 별을 번역한 원영수씨도 함께 했으며, 북콘서트가 끝난 이후 뒤풀이도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자리에서 페이스북으로 우연히 알게 된 청일전쟁, 국민의 탄생을 번역한 이재우씨랑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프라샤드와 더불어 이 분들과도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비자이 프라샤드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3세계의 붉은 별을 통해서였다. 또한 2022년에 번역된 그의 저서 워싱턴 불렛은 미국 제국주의의 폭력을 너무나도 노골적이면서, 아주 쉽게 설명한 책이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것과 동시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역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내는 그의 서술방식에 나는 참으로 감탄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프라샤드를 꼭 만나보고 싶었었다. 실제로 그가 북콘서트에서 한 강연은 굉장히 알아듣기 쉬웠다. 심지어 프라샤드가 사용하는 영어 또한 결코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많이 등장하지 않았으며, 번역자를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끊어서 번역하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심까지 보여주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나 또한 앞으로 저렇게 대중성을 가진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깊이 다짐했었다.

 

북콘서트 이후 프라샤드와 나눈 대화 또한 감명 깊었다. 나는 프라샤드에게 한국전쟁 관련한 이야기와 베트남 전쟁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중국 국민당의 부패한 지도자 장제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나나 프라샤드나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체이기에, ‘I Like Stalin’만으로도 서로 기쁘게 반길 수 있었다. 나는 프라샤드에게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및 SNS 상에서 만연하는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 흐름을 얘기해주고, 그가 장제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지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하고 핵심적이었다. 프라샤드는 나에게 그는 그저 부패한 독재자이고, 무능한 정치인입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의 이승만이나 박정희일 뿐입니다. 평가내릴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프라샤드는 항상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전달하는데 타고난 기질이 있는 인물이며, 실제로 그의 영상이나 강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 물러나다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프라샤드와 촘스키가 나눈 대화록이다. 책은 미국이 건국 이래 최초로 패전한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고,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를 거쳐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를 다룬다. 생각해보면 이 순서는 전쟁이 시작된 순서를 따른 것이다. 일반인들이 읽어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핵심적인 내용이 잘 들어가 있다. 거기다 이 책은 간단한 전개를 하고 있으면서도 촘스키의 장점과 프라샤드의 장점을 적절히 잘 살렸다. 쉽게 말해, 촘스키나 프라샤드가 하는 얘기들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서를 읽어봤지만, 이번에도 그들의 책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 관련한 얘기 중에선 내가 모르던 사실들 또한 있었다. 세간에 폭압적인 독재자로 알려진 사담 후세인을 보자. 물론 사담 후세인이 친미주의자에 폭압적인 통치를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다 후세인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냉정한 비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후세인의 폭압성만 강조했지 그가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실수를 깨닫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려고 했던 시도에 관해선 얘기가 잘 안 된다. 오직 사담 후세인의 이미지에는 독재자와 쿠웨이트 침공자라는 전쟁광적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리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우 아랍 사회주의 및 자마히리야라 하여 생각보다 괜찮은 국정운영을 했다. 1980년대 리비아는 1인당 GDP1만 달러를 찍었던 나라이기도 했으며, 완비된 복지와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선진적인 여성인권의 증진까지 이룩했던 나라였다. 심지어 전기와 수도까지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했고, 자동차 비용도 정부가 절반 가까이 부담하는 나라였으며, 집값도 상당 부분 국가가 부담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서구에 의해 악마 또는 히틀러에 버금가는 광인으로 묘사됐고, 이러한 묘사는 극우 반공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을 넘어 버락 오바마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리비아 반군에 관한 것이다. 프라샤드와 촘스키는 리비아 내전 초기 카다피 정부군이 반군의 거점을 장악하자, 미국·영국·프랑스가 NATO의 이름을 걸고 리비아를 무차별 폭격했는데, 카다피의 협상시도가 리비아 반군과 서방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사실이다. 카다피는 리비아가 서방에 의해 폭격당하는 가운데, 제이콥 주마와 5명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 대표단 방문단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이 제안한 평화 로드맵에 동의했다. 제이콥 주마는 언론에서 카다피는 반군 지도부와 벵가지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즉시 휴전을 시행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NATO와 리비아 반군 지도부는 이러한 제안을 철저히 거부했다. , 이들에게 있어 카다피는 무조건 죽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국토 리비아는 폭격으로 파괴돼야 할 나라였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치른 전쟁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200411월 제2차 팔루자 전투 당시 미군은 도시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2차 팔루자 전투 당시 미 해병대의 대규모 공격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의 행위는 전쟁범죄였다. 미군은 종합병원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병원 환자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의사를 자빠뜨리며 한데 묶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는 그 종합병원이 사진이 실렸는데, 여기서 발생한 파괴와 살상의 모든 책임을 테러리스트 탓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노엄 촘스키는 이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며, 이는 미국이 자신들이 벌이는 잔학 행위를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력히 역설했다. 생각해보면,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서 다량의 감손 우라늄, 대량의 방사능 등 위험한 무기를 사용했다. 또한 이라크에서 시아파와 수니파를 사용하여 종족분쟁을 부추겼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베트남부터 리비아에서 자행한 전쟁수행은 그 자체로 전쟁범죄였고, 대량학살이며 노골적인 테러리즘이었다. 심지어 이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비백인 국가라는 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과거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이 미국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보이는 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베트남과 더불어 미군의 무차별 폭격 학살 만행 피해가 아주 극심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책의 추천 글 중 하나에는 한신대 교수인 이해영 선생의 말이 있다. 이해영 교수는 북한이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 때문이고, 남한이 미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이해영 교수가 쓴 추천사가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글로벌 대원로 노엄 촘스키와 인도의 진보인사 비자이 프라샤드의 대담집이다. 9-11 즈음 부시가 물었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지?" 펜타곤 조사단이 답을 찾았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한 일 때문"입니다. 그리 보면 북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미워할까?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그들에게 한 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사랑할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류 중의 주류 새뮤얼 헌팅턴이 1999년 《포린어페어스》에 이렇게 썼다. "많은 나라가 볼 때 미국이야말로 깡패 초강대국이 되는 중이다." 그래서 촘스키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말한다. - P7

갤럽에서 한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오바마 시절인 2013년이었다. "세계 평화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였습니다. 한참 뒤처진 파키스탄이 2위였는데, 인도쪽 표 때문에 크게 부풀려진 게 분명했지요. 중국, 북한, 이스라엘, 이란이 미국에 한참 뒤처져서 3위군을 형성했습니다." - P7

과거 냉전 시기, "무엇을 하든 간에 ‘러시아인들이 쳐들어온다‘고 말하면 됐지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복잡한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현재? 마찬가지다. 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냉전기나 지금이나 "유럽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기보다는 일관되게 미국에 종속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 P7

전쟁은 하나님이 미국인에게 지리를 가르치는 방식이라고 한다. 전쟁은 미국인의 지리 수업 시간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전쟁 없이는 살 수 없다. - P8

베트남, 라오스,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이렇게 이 책의 순서를 그냥따라가면 된다. 아주 쉽다. 그러면 나온다. 우크라이나!"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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