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세균전 의혹은 국내에서 제법 얘기가 된 주제다. 미국의 세균전은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한참이던 1952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북한과 중국에서 조사를 벌이던 ‘국제민주법률가협회’와 ‘국제과학조사단’은 “미국이 조선과 중국에서 세균전을 감행했다.”고 결론지었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북한의 대표적인 15개 지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그곳들에서 발견된 곤충이 1952년 1월 28일과 3월 12일 사이에 확증되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국의 세균전을 규탄한 시점은 1952년 초부터로 확인된다. 당시 북한의 부수상이었던 박헌영은 세균전에 대해 언급하며, 미국을 비판하는 공개 발언을 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니덤 보고서, 국제과학자협회 조사단이 북한에서 조사한 미국의 세균전 관련 공식 문서다.)
“1월 28일 적 군용기들은 조선에서 종전에 보지 못하던 세 종류의 벌레들을 이천·동남·농소동·용수동 등 지구에 대량적으로 산포했는바, 그 첫째 종류의 형태는 검은 파리와 같으며 둘째 종류의 형태는 벼룩과 같으며 셋째 종류의 형태는 빈대와 같다. 2월 11일 적군 비행기들은 철원 지구의 아군 진지에 대하여 벼룩·거미·모기·개미·파리 및 기타의 작은 벌레들이 가득 찬 종이통과 종이 봉지를 투하했다. 시번리 지구에서는 파리를 대량적으로 투하했으며 또한 평강 지구에서는 벼룩·파리·모기·귀뚜라미들을 대량적으로 뿌렸다.”(박헌영 평전 p.555~556)
현재 북한은 미국이 이미 1950년 겨울부터 세균전을 벌엿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의 인용문은 북한의 조국전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놈들은 쫓겨 가면서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던 공화국 북반부지역(평양시, 평안남북도, 함경남도, 강원도, 황해도)에 천연두 병균을 살포하였다. 그리하여 당시까지 천연두가 전혀 발생한 일이 없었던 이 지역들에서 천연두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1951년 4월에 이르러 천연두 환자는 3,5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그중 10%가 사망하였다.” 이를 토대로 북한은 미군 비행사 포로들에 대한 심문 등을 근거로 세균전이 실험단계와 작전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첫 단계(실험단계)에서는 주로 효과적인 세균탄 투하의 목표를 선정하며 투하방법 및 세균전 전술을 련마하는데 목적을 두었다면 둘째 단계(작전단계)에서는 오염지대를 설정하고 집중적인 투하를 일층 강화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I p.88)
미국의 역사학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세균전이라는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주장했다. 그가 쓴 <한국의 민중봉기>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은 1947년부터 생물학전 무기를 개발했고, 그 당시 메릴랜드 주 데트릭 기지가 미군 세균전의 중심지였으며, 1951년부터 1953년 회계연도에 미국은 생물학전 연구에 3억 4,500만 달러를 사용했고, 이는 한국전쟁 동안 미국이 배치한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이었다.(한국의 민중봉기 p.209)
(아랍계 언론 알자지라의 미국 기밀문서 해제)
미국의 이러한 세균전 자료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실제로 미국은 마루타 부대로 유명한 731 부대의 책임자 이시이 시로를 살려줬다. 그를 살려준 주체는 바로 더글라스 맥아더였다. 올리버 스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에는 “이에 못지않게 우리를 당혹케 하는 것은 도쿄 전범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미군 당국이 악명 높은 731부대에서 활동했던 일본군 장교와 연구자들에게 비밀리에 완전 면책권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그 대가로 미군은 만주에서 죄수 3,000명을 상대로 일본군이 실시한 인간 생체실험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나온다.(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p.365)
반면 현재까지의 미국 공식 입장은 세균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북한과 중국이 지어낸 것이라는게 현재 미국의 입장이다. 정말 그러한 것일까? 미국의 공식적 입장과는 달리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세균전은 북한과 중국 자료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식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선구적 역할을 한 인물은 공교롭게도 미국 언론인 존 윌리엄 파월(John W. Powell)이다.
(세균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폭탄)
그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영문 <월간 중국 리뷰(China Monthly Review)>를 발행했는데 자신이 직접 목격한 미국의 세균전 문제를 집중보도했다. 매카시즘이 한참이던 1953년 미국 정부는 잡지의 국내 반입을 금지하고, 1956년엔 그와 2명의 편집 실무자를 반역죄와 선동죄 등 13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파월은 미국 정부에게 비밀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등 완강히 대응해 기소는 철홰됐고, 미국 정부는 1961년 소송 자체를 취하했다. 이런 사실은 2000년 7월 2일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5회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편에서 소개됐다.
(북한에 투하된 것으로 추정되는 벼룩)
그 외에도 미국의 세균전 문제를 심층 분석한 대표적 연구물은 캐나다 역사학자인 스티븐 엔디콧(Stephen Endicott) 교수와 에드워드 해거먼(Edward Hagerman) 교수가 1998년에 쓴 <The United State and Biological Warfare(미국과 생물학전)>은 국내에선 2003년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도서출판 중심)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미국 생물학전의 기원에서부터 일본과의 커넥션, 세균전 프로그램 연구개발 및 작전계획 과정, 한국전쟁에서 세균전 문제 등을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자료 등을 근거로 치밀하게 추적 분석했다.
2010년에는 아랍계 언론인 ‘알자지라(Al Jazeera)’을 통해 미국이 세균전을 감행한 사실이 문서로 증명됐다. 알자지라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문서를 공개했고, 1951년 9월 21일 작성된 이 문서에는 "미 합참이 작전상황 중 (세균전에 사용되는) 특정 병원체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대규모 현장 실험을 개시할 것을 명령했다"고 기록돼 있음을 밝혔다. 1951년 9월 21일자 문서였으며, 당연히 미국 측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던 미국 문서였다.(“미, 한국전쟁 중 세균전 현장실험 명령”, 한겨레, 2010.03.19)
(세균전 관련 중국의 프로파간다)
2015년에는 “미국이 세균전 방법을 일본으로부터 배위 한국전쟁에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니덤 보고서’가 원본 전문이 최초 공개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니덤 보고서는 영국의 생화학자인 조지프 니덤을 단장으로 하는 국제과학자협회 공식조사단이 1952년 작성한 것으로 보고서에는 미 공군이 일제 강점기 생체실험을 자행해 악명이 높았던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등에게 기술을 건네 받아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세균전을 치른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 전문은 조사 내용만 670페이지나 된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는 참고자료로 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 일대에 뿌려진 벼룩 사진, 해당 지역의 주민 사진, 세균을 뿌리다 잡힌 미군 포로의 수기 진술서, 미군의 세균 배포 경로 비행지도 등 세균전을 뒷받침할 증거가 200장 가까이 수록됐다.([단독]"美, 6·25서 세균전" '니덤보고서' 전문 나와, 연합뉴스, 2015.06.09)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세균전은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균전이 없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국의 기밀문서나 영국의 조지프 니덤 등이 조사한 자료가 보여주는 증거가 명명백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세균전은 분명 존재했고, 규탄받아 마땅하다.
참고문헌
“미, 한국전쟁 중 세균전 현장실험 명령”, 한겨레, 2010.03.19.
[단독]"美, 6·25서 세균전" '니덤보고서' 전문 나와, 연합뉴스, 2015.06.09.
박태균, 한국전쟁, 책과함께, 2005
안재성, 박헌영 평전, 실천문학사, 2009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공저),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조지 카치아피카스(저), 원영수(역), 한국의 민중봉기, 오월의봄, 2015
김동원 안광획 이정훈(공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I, 4.27시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