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를 보았을 것이다. 1985년 6월 1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당시 서울 관객 92만 5천 명이 보았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이 영화는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학생 운동권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반공의식과 반북의식을 고취하려는 목적에서 상영된 것이었다. 즉 “캄보디아 폴포트 공산정권의 이런 만행을 보라.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전두환 정부의 의도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관점들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혀들어 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킬링필드는 1975년 캄보디아에서 정권을 잡은 폴포트(Pol Pot, Salot Sar)와 크메르 루주(Khmer Rouge)의 학살과 만행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미국의 반전기자 시드니 스켄버그(Sydney Schanberg)와 캄보디아의 디스 프란(Dith Pran)의 우정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감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본질은 분명했다. 캄보디아의 만행을 폭로함으로써, 반공주의적 의식을 고취시키려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킬링필드의 희생자 유골, 캄보디아는 폴포트 집권 시기 수많은 인명이 학살로 희생됐다.)
캄보디아의 대량 학살자 폴포트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그의 정권은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로 통치기간 4년 동안 학살을 자행했다. 이 학살로 최소 200만에서 300만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다. 즉 크메르 루주 정권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학살로 그만큼의 인명이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폴포트 집권 시기 학살당한 사람의 숫자는 80만에서 150만 사이이며, 사망자 대부분은 기아와 질병 및 수용소 생활 중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중 실제 즉결 처형으로 사망한 자의 수치는 7만 5,000명에서 15만 명으로 되며, 나머지 학살, 굶주림, 질병, 과로로 숨진 사람들이 100만 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폴포트 집권 시기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도시에 살던 캄보디아인들이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당했고, 학교가 폐쇄되었으며 서적의 80%가 혁명에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그리고 S-21로 알려진 비밀 심문 시설인 뚜옹슬랭에서 고문과 조작이 있었고, 그 시설에서만 1만 4,000명이 거쳐 갔으며 이 중 절반이 사형당했다. 뿐만 아니라 폴포트는 크메르 루주의 병력을 동원해 베트남의 국경지대을 의도적으로 침공했으며, 적잖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살던 베트남인들을 학살했다. 캄보디아 내의 베트남인들도 그저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숙청당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크메르 루주는 많은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크메르 루주의 학살은 알아도 그 이전의 학살은 모른다. 그 이전의 학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의 닉슨(Nixon) 행정부가 저지른 캄보디아의 제1차 킬링필드다.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형식적으로 독립을 얻은 캄보디아는 다시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 이후 미국과 남베트남군은 호치민 루트를 통해 증파되는 베트콩 물자를 차단할 목적으로 수시로 캄보디아 국경을 침범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더 증가했다. 실제로 1967년 2월 24일 미군, 남베트남군, 한국군으로 구성된 대규모 군대가 캄보디아 영토를 침입해 크락 크란의 크메르족 마을에 집중 포격을 가한 적이 있었으며, 미국의 항공기들은 수시로 캄보디아 국경을 침범했었다.

(B-52 폭격기, 미국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4년 6개월 동안 캄보디아를 무차별 폭격했다.)
1969년 3월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이른바 ‘비밀 폭격’을 시작했고, B-52를 포함한 미군의 폭격기가 거의 매일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 폭탄을 투하했다. 거기다 당시 시아누크는 제3세계 블록에 가담하였고, 캄보디아 국경지대 내에 베트콩 주둔을 허용했다. 따라서 닉슨 정부는 캄보디아를 폭격했다. 1970년 미국은 자신들의 꼭두각시인 론놀(Ron Nol)을 동원해서 캄보디아에서 친미 쿠데타를 일으켰고, 베트콩 소탕을 명분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대규모의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이에 따라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했는데,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미군의 폭격과 공군력에 의해 발생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폭격한 캄보디아 지역을 나타낸 지도, 말 그대로 캄보디아 전역을 폭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 1월 캄보디아 정부가 공식 백서를 통해 사진과 날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세부 사항들을 덧붙여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수천 건의 사건들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폭격과 지상공격에 관한 것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폭격이나 지상공격 이후에 발견된 시체 중 베트콩의 시체는 단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이들의 공격이나 폭격으로 죽은 이들은 다 민간인이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침공을 설명하고 있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은 결국 미군의 철수로 끝났다. 그러나 강도 높은 폭격은 지속됐다. 1971년 말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의 조사낟은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폭격이 “난민과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킨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고 결론 내리고 난민의 수를 인구 700만 명 중 약 1/3로 추정했다. 심지어 미국의 정보기관은 “마을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차별적인 포격과 공중폭격의 가능성”이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파괴행위는 역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1960년대 중후반부터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크메르 루주의 급부상이었다. 크메르 루주는 미군의 폭격이 격화됨에 따라, 캄보디아 내부의 농민들에게 지지를 받게 됐고, 이는 결국 론놀 정부군과 크메르 루주간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미군의 폭격을 목격한 미국의 통신원 리처드 더드먼(Richard Dudma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폭격과 사격은 캄보디아 농촌 사람들을 급진적으로 변하게 만들었으며, 농촌을 대규모의 헌신적이고 효율적인 혁명 기지로 변모시켰다.”
출처: 여론조작 p.439
1973년 초 미국의 무차별 폭격은 핀란드조사위원회가 사용한 ‘대량학살(Mass Genocide)’라는 말에 걸맞는 규모로 증가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북베트남의 레둑토(Le Duc Tho)가 파리평화협정에 서명한 이후 5개월 동안에도 캄보디아에 대한 폭격은 지속됐으며, 8월이 되어서야 폭격이 중단됐다. 즉 1969년 3월부터 1973년 8월까지 미국은 4년 6개월 동안 캄보디아를 무차별 폭격했다. 그 결과 캄보디아의 농촌은 폐허로 변했고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공포의 장소가 된 프놈펜으로 탈출했다. 많게는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도 추정하며, 6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핀란드 조사위원회는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으로 6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이 사망했다고 추정했으며, 최소 30만에서 많게는 8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과 피터 커즈닉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에서 이에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캄보디아 침공에 대한 노엄 촘스키의 주장)
“공산계 반정부 무장조직 크메르루주는 급속히 세를 불렸다. 젊은 크메르루주 조직원들의 광신적인 행태에 대한 무시무시한 보도가 꼬리를 이었다. 1975년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에서 정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곧바로 국민들을 상대로 다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15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미국의 폭격으로 이미 50만 명이 죽음을 당한 터였다. 미국은 캄보디아의 주요 우방인 중국과 화해 무드 상태에서 폴 포트가 이끄는 잔학한 크메르루즈 정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출처 :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p.103
이처럼 우리는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대해 편향적으로 알고 있다. 폴포트 정권이 저지른 잔혹한 만행은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폴포트의 킬링필드 못지 않게 캄보디아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미국 닉슨 정부의 대량 학살 프로그램은 완벽히 잊혀졌다. 또한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은 이유가 미국 때문이라는 사실도 가려졌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서방 사회가 편향되고 조작된 여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캄보디아 대량학살을 논할 때, 미국의 제1차 킬링필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주제며,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