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끄라이나의 나찌를 구제하는 두 명의 교수들
신 반공성전을 도와주고, 그들의 광기어린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미국의 우익들은 1983년에 ‘우끄라이나 기근―대학살 50주년 기념일’이라는 대대적인 추도식을 추진했다. (공산주의가 ― 역자) 서방에 대한 끔찍한 위협임을 확실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란 대량학살을 의미한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나찌와 그 협력자들이 이 증거를 제공했다. 두 명의 미국 교수가 그들의 학문적 신임을 이용해 그 증거를 마련했다: 그들은 ≪쏘비에뜨 우끄라이나 기근≫의 공동저자인 제임스 E. 메이스(James E. Mace)와, ≪50년 전: 우끄라이나 기근 대학살 ― 쏘비에뜨 러시아 제국주의 도구로서의 테러와 참화≫를 쓴 월터 더쉬닉(Walter Dushnyck)이었으며, 다나 댈림플이 그 책의 서문을 썼다. 하버드에서 낸 책에는 1932년에서 1933년 사이의 기근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마흔 네 장의 사진을 포함한다. 그 중 스물네 장은 라우벤하이머(Laubenheimer)가 쓴 두 권의 나찌 문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라우벤하이머는 대부분의 사진을 디트로프에게 의존했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하였다:
‘만약, 그의 맑스주의 신념의 도움으로, 유대인이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승리한다면, 그의 영광은 인간성의 장례식 화환이 될 것이고, 그리고 이 행성은 수 백 만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부재한 상태로 나아갈 것이다.’17)
디트로프-라우벤하이머의 사진들 대부분은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직후와 1921년부터 1922년 사이 기근의 시기에서 가져온 완전히 위조된 사진이거나, 아니면 기근―대학살이라는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허위이고 증명되지 않는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18)
두 번째 교수인 더쉬닉은 1930년대 말에 활성화된, 파시스트 단체인 ‘우끄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에 간부로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