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역사문화기행 - 참전 수병 유교수와 함께 가는
유일상 지음 / 하나로애드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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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해가 끝나간다. COVID-19가 멈추질 않아 많은 이들이 힘든 해였고, 나 또한 그러했다. 전염병 전파로 항로가 막히게 됨에 따라, 해외여행은 그저 추억이 됐다.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니, 해외로 나가고 싶어지는 마음만 굴뚝같이 쌓이는 중이다. COVID-19 초기인 20201월과 2월에 나는 베트남 여행을 갔었다. 군 복무 시절 소방서에서 공익으로 근무하며 베트남의 역사와 호치민에 깊은 관심과 존경을 갖게 된 나는 전역 후 베트남에 가고 싶었지만, 가족 사정 때문에 20201~2월이 돼서야 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라도 갔다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베트남에 못가 봤을 것이다.

 

나는 베트남의 역사를 높이 평가한다. 2천년에 걸쳐 중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프랑스 식민주의에 저항했고, 일제의 침략과 프랑스의 재침략 그리고 미국의 침략을 막아낸 그들의 역사는 민중사적 시각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유일상 교수님과는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에 심취해있던 나는 네이버에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유일상 교수의 블로그 글을 보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내 페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자료들을 얘기하는 것이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최근에 그 분이 책 한권을 내게 된 사실을 알게 됐고, 나는 이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책은 저자가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책은 베트남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부분부터 시작하여, 저자가 여행한 베트남 북부(하노이, 디엔비엔푸, 박닌, 까오방 등), 베트남 중부고원지대(달랏, 부온마투옷, 플레이쿠 등), 베트남 중부(다낭, 후에, 호이안, 케산 등) 그리고 베트남 남부(호치민, 비엔호아, 미토, 푸꾸옥 등)의 여행 이야기와 각 지역의 역사 및 문화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여행 가이드 서적이 아닌, 베트남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사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는 베트남 전쟁 관련 서적들이 현저하게 적다. 그러나 유일상 교수의 저서는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베트남 근현대사 역사를 많이 다뤘으며, 국내 서적에서 찾기 힘들거나 없는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베트남 저쟁에 대해 제법 공부해본 나 또한 많은 공부가 됐다.

 

예를 들면, 디엔비엔푸 전투(Battle of Dien Bien Phu) 관련 내용이나 1968년 구정 대공세와 더불어 전개된 케산 포위전(Seige of Khe Sanh) 관련 내용들이 그러했다. 서방측 자료와 베트남측 자료를 동시에 비교하면서, 전투의 전개 과정 및 성과를 정리한 것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책에 나온 관련 자료들은 나에게 있어서 좋은 참고자료가 됐다. 디엔비엔푸 전투 관련 자료는 최근에 국내에서 보 응우옌 잡(Vo Nguyen Giap) 장군의 자서전인 디엔비엔푸(디엔비엔푸로 가는 길과 디엔비엔푸 합본)를 열심히 필기해가며 읽었지만, 마찬가지로 유 교수님의 책에 쓴 내용들도 호치민(Ho Chi Minh) 주석과 베트남 민중의 독립을 향한 투쟁을 알 수 있어서 공부가 됐고 기뻤다. 무엇보다 디엔비엔푸의 전개 과정을 비교적 읽기 쉽고 간략하게 정리하여 제법 공부가 됐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8년간의 항전을 통해 호치민과 공산당 그리고 베트남 민중은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 지배를 종결시켰다. 독립을 향한 이들의 영웅적 투쟁은 정말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이며, 이후 알제리 독립 전쟁을 포함한 제3세계 반식민지 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베트민이 56일 간의 포위 끝에 승리한 전투다. 디엔비엔푸 전투에 투입되었던 프랑스군 16,200명 중에 11,721명을 포로로 붙잡고, 2,293명을 사살했으며, 6,650명의 부상당하면서, 베트민은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다. 베트남의 명장 보 응우옌 잡이 이끄는 5만 명의 병사와 애국심과 독립을 향한 열정 하에 모인 25만 명 이상의 민중이 쟁취한 위대한 승리다. 나는 이 디엔비엔푸 전투가 프랑스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 그리고 프랑스군에 빌붙어 친불 매국노 짓을 일삼던 남베트남 반동 세력에 맞서 승리한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지압 장군 지휘 하에 19545월 베트남군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오랜 저항 전쟁을 끝내는 분기점이 마련되었다. 이 승리로 1954721일 프랑스와 제네바 협정을 체결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식민지에서의 군대 철수에 합의했다. 므엉팡의 사령부에서의 귀로에 므엉팡 전승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화강암으로 웅장하게 조각된 승전기념 석조기념물이 해 질 녘에 그 위용을 더한다.”

 

출처: 베트남 역사문화기행 p.207

 

최근에 밝혀진 내용들이나 몇몇 연구 성과들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앞에서 언급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CIA를 통해 비밀리에 참전한 미군 병사 2명이 전사한 사실이나,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할 때, 대만을 통해 미국으로 도망친 응우옌 반 티에우(Nguyen Van Thieu)의 실질적 금괴 액수,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의 이름이 “1943년 국민당군의 감옥에서 그를 석방하는데 힘써준 중국 국민혁명군 제4전구 정치부 부주임인 후지밍(Hou Zhiming) 장군의 이름이라는 사실 등이다. 우선 티에우가 금괴를 들고 도망친 사실은 예전에 마이클 매클리어가 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티에우가 가진 금괴가 2~3톤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캐나다 출신 미국 CBS 기자 세이퍼가 밝힌 사실에 따르면 티에우가 가지고 있던 금괴는 2~3톤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16톤이었다. 이걸 보니 남베트남이 왜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인지 다시 실감하게 된다.

 

책에 나온 호치민 이름의 기원이 중국 국민혁명군 제4전구 정치부 부주임인 후지밍이라는 사실은 이 책에서 정말 처음 알게 됐다. 윌리엄 J.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을 여러번 탐독했지만, 호치민 이름의 기원이 어딘지는 책에서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처음 안 것이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전에도 알고 있었다.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에서 이들이 항공 폭격과 전술핵 투하도 고려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 했다는 사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의 존재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특히 2004CIA가 비밀 해제한 정보에 따르면 전사한 이의 이름은 맥거번 2(James B. McGovern Jr), 태평양 전쟁 참전 용사였다.

 

책 제목이 베트남 역사문화기행이다 보니, 당연히 베트남의 소수민족 관련 이야기도 나온다. 베트남의 경우 54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87%가 킨족(베트족)이다. 이런 점은 56개의 소수민족을 이루면서 95%가 한족인 중국의 소수민족 구성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프랑스-베트민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미국-베트남 전쟁)은 사실 따지고 보면, 서구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베트남 인민과 소수민족들의 공동투쟁이었다. 앞서 언급한 디엔비엔푸 전투도 타이족과 같은 지역 소수민족들이 베트민을 도와서 승리에 기여했었다. 대다수의 소수민족이 베트민과 베트콩 그리고 공산당을 지지했지만, 프랑스와 미국 편에 섰던 이들도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소수민족 자치를 요구하며 독자적인 반군을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의 소수민족들이 그러했다. 1960년대 남베트남에 있던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선 참족이나 에데족 등등의 산악부족들이 모여 이른바 FULRO가 창설되었고, 이들은 베트남인들을 학살했으며, 캄보디아가 이를 은근슬쩍 방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92년 캄보디아의 유엔 평화유지군에게 무장해제 당하면서 항복했다고 한다. 이것과는 별개로 미국은 중부고원지대에서 소수민족의 자치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베트콩이 두려워 미군 특수부대는 이들을 반공 민병대로 조직하여 이용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이후 2000년대 들어 중부고원지대 소수민족들이 현 베트남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조용한 걸로 봐선 베트남 정부가 그쪽 소수민족들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중국의 티베트, 위구르 갈등이나 미얀마의 로힝야족 문제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문제 등을 생각해 봤을 때, 베트남은 소수민족 문제를 확실히 잘 풀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책 저자가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다 보니, 책도 주로 베트남 전쟁 관련 내용을 많이 할애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도 많이 공부가 됐다. 원래부터 이승만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비판을 많이 했던 인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남베트남의 초대 지도자 응오딘지엠은 정말로 변론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꼭두각시이자, 민중을 대량 학살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따르면 응오딘지엠은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반대파 약 12,000명을 살해했고 집권초기부터 1960년까지 9만 명을 학살했으며, 80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가두고 19만 명을 고문하여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친미주의에 빠져, 미국이 지원하는 국가는 민주적이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응오딘지엠 정권이 보여주듯이 이는 허구적인 상상일 뿐이다. 미국이 지원한 지엠 정권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없었으며, 빈곤과 부패 그리고 대량 학살과 강제수용소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마치 한국의 이승만 정부와 매우 유사하다.

 

그 외에도 이번에 유일상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도이모이 이후 베트남의 발전상이라든지, 필수 관광 명소는 어떤 것이 있는 지 등이다. 베트남 여행 북부 파트에선 동당 기차역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2019년 나는 4.27 남북회담과 6.12 1차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평양공동선언을 보면서 한반도 종전과 평화의 꽃이 필 줄 알았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회담은 아쉽게도 결렬됐다. 비록 아쉽지만 역사적인 일이었고,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움직임은 반북 반공주의를 넘어 지속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당 기차역은 201922일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열차로 환승한 역으로 과거 김일성도 이를 거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책에는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일어날 일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동당 기차역은 2019226일 베트남 시간 오전 815분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에 참석하기위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특별열차로 이 역에 도착하여 내렸다가 베트남 열차로 환승한 역이다. 이 역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 역에 하차했을 때 베트남 정부가 최상급 의전을 베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베이징-난닝-하노이(북경-남녕-하내) 국제열차는 하노이 기차역을 출발하여 베트남에서는 마지막 역인 이 역을 경유해 중국의 베이징 서역까지 운행된다. 3일에 한 번씩 운행되는 베이징과 하노이 간의 철도 여행 총 시간은 36시간이다.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면 중국을 거쳐 하노이까지 쉬엄쉬엄 중간에서 쉬면서 철도편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호찌민시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베트남 역사문화기행 p.218

 

저자 유일상 교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겠다. 나랑 페친이자 베트남 역사문화기행의 저자인 유일상 교수는 젊은 시절 고려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에 파병됐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베트남에서 군복무했으며,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감행한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도 직접 경험했다. 이후 언론학을 전공했으며, 박정희 정부에 의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9개월간 감옥생활을 한 적도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여러 글들을 인터넷과 뉴스기사에 올리고 있으며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그의 참전 경험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20대인 나에겐 몇 십 년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유일상 교수가 들려주는 내용이 마음속 깊게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전했던 이야기와 더불어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어른 세대들의 무지함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용기에는 정말 감동했다. 이 책은 단순히 참전 수기만은 아니다. 책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자의 반성도 들어가 있다. 예를 들면, 전쟁 시기 미군과 한국군의 명령을 받고 고엽제를 뿌려, 저자 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이야기나, 이후 1990년대 들어 국내에서 공론화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그러하다. 나는 저자의 입장에 상당히 동의하고 공감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일상 교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꾸이년박물관에 전시된 집단학살 증오비의 기록들을 보면서 나는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병역의무자들을 그 전쟁터에 용병으로 보낸 당시 한국 정권실세의 비자금을 찾아내 배상을 해줘야 마땅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자금의 실태와 사용처를 밝히고 이를 횡령한 자의 재산이 개인명의든, 재단명의든 몰수하여 이제는 노구의 몸으로 고엽제 피해에 시달리는 특히 병역 의무 복무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제2대 주월한국군사령관 이세호 장군이 생전에 밝혀 보려던 일이기도 하다. 꾸이년을 방문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감안해서라도 이 증오비만은 딴 곳으로 옮겨 줄 것을 교섭하면 어떨까? 이제는 70대 이상 할아버지가 된 참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후손들에게 비록 국가의 요구에 따랐다 하더라도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이 경제 발전의 신화를 이룩했다는 것만으로 결코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할 수 없다. 참전 노인들도 베트남 파병이 한국 경제 부흥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만 되풀이 주장하지 말고 자신이 살기 위해 일어났을 수 있는 전쟁범죄에 대해 깊이 회개할 것을 소망한다.”

 

출처: 베트남 역사문화기행 p.391~393

 

유일상 교수의 베트남 역사문화기행은 나에게 있어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공부가 됐다. 앞으로 베트남을 공부할 나로썬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책을 읽고 나니 20201~2월에 갔던 베트남 여행 시절이 그립다. COVID-19가 완화되면 베트남에 놀러갈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거나 베트남의 자랑스러운 역사 무엇보다 독립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2021년을 마무리 하며,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2022년에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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