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는 무엇일까? 아마도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로 대표되는 고엽제 살포일 것이다. 100~150만 명 이상의 군인과 200~3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이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주체는 바로 남베트남의 민간인일 것이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1965년 2월 중부고원지대에 있던 미군 특수부대 기지가 공격받자, 3월부터 롤링썬더 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이라 하여 이른바 북폭에 나섰다. 군사적 교리상 전략폭격이었지만, 현실은 무차별 융단 폭격이었다. 따라서 북베트남 전역이 미공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됐고, 그에 따른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최소 수십만 이상이 이 폭격으로 죽거나 부상자가 됐다.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하고 있는 미군 항공기)
남베트남은 북폭 이전부터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에 미군사고문단을 파병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허가한 군사작전 때문이었다. 그 작전이 바로 랜치 핸드 작전(Operation Ranch Hand)이다. 랜치 핸드 작전은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대략 10년간 베트남 주둔 미군이 진행한 군사작전이다. 이들의 목표는 베트콩이 숨어있는 정글을 없애는 동시에, 베트콩의 군량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남베트남 농촌 일대에 고엽제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제초제를 담은 55갈론 드럼통을 두른 띠 색깔에 따라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화이트 그리고 에이전트 오렌지로 불렸고, 특히 에이전트 오렌지가 남베트남 농촌과 마을 그리고 밀림에 투하됐다. 특히나 이 고엽제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에이전트 오렌지였으며, 이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는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하는 미군 UH-1 헬기)
다이옥신은 치사량이 0.15g인 청산가리의 1만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가진 맹독 물질로, 다이옥신 1g이면 2만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이 물질은 잘 분해되지도 않고, 용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극히 적은 양이 흡수됐다고 해도 점차 몸속에 축적돼 각종 후유증을 일으키게 되며, 그 영향은 후세대에게 까지 이어진다. 폐암, 후두암, 전립선암 등 각종 암은 물론, 말초신경병, 버거씨병, 당뇨병 등 각종 질환을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고통은 노출된 인간에게는 평생의 고통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인체에 매우 해로운 물질이 바로 고엽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베트콩을 소탕한다는 목적으로 고엽제를 뿌렸지만, 비극적이게도 고엽제에 노출된 남베트남의 민간인들은 미군의 고엽제 살포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은 1960년대 초부터 베트콩이 있는 곳으로 의심되는 마을에 파괴적인 네이팜 폭탄이 투하됐고, 이러한 폭격을 남베트남의 농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1965년 미군이 대규모 지상부대를 파병하면서, 폭격의 빈도도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일단 고엽제를 뿌리면 나무가 죽는 것은 물론이고, 적어도 이틀 동안은 미군이 폭격을 중지했다. 따라서 남베트남의 민간인이 고엽제 살포를 환영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고엽제가 살포된 남베트남 지역)
당연히 이러한 독성물질을 살포하는 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었다. 그러나 1954년부터 제네바 협정과 같은 국제적인 약속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던 미국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제정된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는 것 또한 손쉬운 일이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대략 10년 동안 총 7,200만 리터가 살포됐다. 이는 베트남 인민 1인당 2.7kg에 달하는 다이옥신을 투하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 고엽제는 남베트남 전역의 농촌과 밀림 그리고 베트콩의 보급 역할을 하던 호치민 루트(Ho Chi Minh Trail)와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에 집중적으로 투하됐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 고엽제 살포로 사망한 남베트남인은 최소 40만 명 이상을 넘는다. 기형아 사망자를 포함한 각종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를 일일이 따지면, 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1995년 기준으로 최소 200만 명 이상의 고엽제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피해자의 숫자가 350만 명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으며, 많게는 400만에서 480만 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고엽제의 피해자가 된 것으로 확인된다.

(고엽제로 인해 말라버린 남베트남의 밀림)
미군의 고엽제 살포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졌던,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의 경우 현지 소수민족들이 이러한 피해를 아주 극심하게 본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미군편에서 싸웠던 소수민족들 남성들과 그들의 부족과 마을 주민들은 고엽제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태어나는 아이들 중에 절반 이상이 기형으로 태어났으며, 어떤 아이는 등이 굽은 채 태어나서 걸음걸이를 하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남베트남에서 살던 베트남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고엽제 피해 1세대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 많은 사산을 경험하였고, 다이옥신 농도가 높을 때는 아예 아이가 생겨나지를 않았다. 시간이 지나 체내에서 농도가 조금 낮아졌을 때 아이를 낳지만 거의 기형아가 태어났으며, 2009년 기준으로 베트남 정부 통계에 의하면 1년에 5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

(고엽제 후유증을 둔 부모에게서 태어난 기형아)
이러한 피해는 단순히 남베트남의 민간인과 베트콩 그리고 북베트남군만 겪는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를 살포했던 미군들과 미국을 따라 참전한 한국의 군인들 또한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보았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한국의 경우 참전한 병사 31만 명 중에 최소 2만 명 이상이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을 겪게 됐다. 그 외에도 라오스에서 반공산주의 작전에 이용된 소수민족인 몽족 또한 이 고엽제 피해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 이러한 일을 생각해보았을 때, 과연 베트남 전쟁을 일으켜 맹독성 고엽제를 살포한 미국의 전쟁범죄보다 더 끔찍한 범죄가 있을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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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람, 「다이옥신에 노출된 350만 명... '그런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21.04.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742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송필경, 「고엽제 태아 이야기」, 『경향신문』, 2009.03.02. https://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14
주영재, 「생태학살도 국제 범죄가 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 2016.11.30.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1611301043001
김남기,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어깨걸고, 2021
황성환,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 (상)』, 민플러스, 2018
위키피디아, 「랜치 핸드 작전」, ko.wikipedia.org/wiki/랜치_핸드_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