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가로 미 중앙정보국이 심어놓은 우익 정부가 반란에 직면해 있던 라오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가운데 한 곳인 단지평원이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정부나 언론은 이런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지만, 라오스에 살고 있던 미국인인 프레드 브랜프먼(Fred Branfman)은 저서 단지평원의 목소리(Voices from the Plain of Jars)에서 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19655월부터 19699월까지 단지평원에 대한 25,000회가 넘는 출격이 이루어져 75,000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됐다. 지상에서는 수천 명이 사망하고 부상당했으며 수만 명이 지하로 내몰렸고 결국 지상의 사회 전체가 철저하게 무너졌다.”

 

농촌 마을에서 라오스인 가족과 함께 살면서 라오스 말을 할 줄 알았던 브랜프먼은 폭격을 피해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으로 몰려들어온 피난민 수백 명을 인터뷰했다. 브랜프먼은 그들의 말을 기록하고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존해 뒀다. 시엥쿠앙(Xieng Khouang. 단지평원이 자리한 주) 출신인 26세의 간호사는 고향에서의 생활에 관해 말해줬다.

 

나는 우리 마을의 흙과 공기, 고지의 평야, 논과 못자리와 하나가 되어 살았지요. 달 밝은 밤이나 낮이나 나와 마을 친구들은 새들이 지저귀는 숲과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추수 때나 모내기철에는 땡볕이든 빗속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땀 흘려 일하면서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에 맞서 싸우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부의 삶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1964년과 1965년에 우리 마을 근처에서 터지는 폭탄으로 지축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선회하는 비행기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 중 한 대가 기수를 아래로 돌려 땅을 향해 곤두박질을 치면서 가슴을 찢는 듯한 굉음을 지르고 나면, 사방이 빛과 연기로 뒤덮여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웃 마을 사람들과 어제 있었던 폭격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곤 했어요. 집이 몇 채나 부서졌는지, 다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구덩이! 구덩이였어요! 그 때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는 데 가장 필요했던 건 구덩이였어요. 우리 젊은 사람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논과 숲에서 곡식을 키우는 데 쏟아야할 땀과 힘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구덩이를 파는 데 다 써버렸습니다.”

 

한 젊은 여성은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친구들이 왜 라오스의 혁명운동, 즉 라오스애국전선에 이끌리게 됐는지를 설명해 줬다.

 

어린 소녀였을 때 저는 과거의 역사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남자들이 약자인 여성을 학대하고 놀렸기 때문이죠. 그런데 라오스 애국전선이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한 뒤부터 아주 달라졌어요. 라오스애국전선 아래서는 심리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들은 여자도 남자만큼 용감하다고 가르쳤지요. 예를 들어볼게요. 전에도 학교에 다니긴 했는데, 오빠들은 다니지 말라고 했었어요. 졸업을 해도 고위직 관리가 된다는 건 꿈도 못 꾸니까, 그런 꿈은 엘리트 집안이나 부자 집안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거니까 학교를 다녀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말이었지요.

 

그런대 라오스애국전선은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면서 우리한테도 동등한 권리를 줬고, 누구도 우리를 놀림감으로 삼지 못하게 했지요.

 

그리고 낡은 관념도 새루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령 새로 교사와 의사로 양성된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어요. 또 그들은 극빈층의 생활을 바꾸어 놓았지요. 많은 논을 가진 사람들의 땅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거든요,”

 

17세의 소년은 혁명군대인 라오스의 땅(Pathet Lao(파테트 라오), 라오스애국전선의 군사조직) 병사들이 자기 마을에 온 일에 관해 말해 줬다.

 

몇몇 사람들은 두려워했는데, 대부분 돈 있는 사람들이 그랬죠. 이런 사람들이 라오스의 땅 병사들에게 먹으라고 소를 내줬는데, 병사들은 받지 않았어요. 받는 경우에는 적당한 값을 치렀죠. 실로 이 병사들은 사람들에게 아무 두려움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촌장과 군수 선거를 열어서 주민들이 직접 대표를 뽑게 했습니다.”

 

중앙정보국은 자포자기식으로 흐몽 족(Hmong, 라오스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을 군사작전에 편입시켜 흐몽 족 수천 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라오스에서 벌어진 일들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역시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된 작전이었다. 19739, 라오스 주재 정부 관리를 지낸 바 있는 제롬 둘리틀(Jerome Doolittle)뉴욕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캄보디아 폭격에 관해 국방부가 최근에 한 거짓말을 들으면서 나는 라오스 비엔티안 주재 미국대사관의 공보담당관으로 있을 때 종종 생기곤 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했던가?

 

처음 라오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작은 나라에 우리가 대규모적이고 무자비한 폭격을 하는데 대한 모든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미국은 라오스 왕국 정부의 요청으로 비무장 정찰 비행을 수행하고 있으며, 공격을 받을 경우 응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무장 호위 비행대가 정찰기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내 말을 들은 기자들도 모두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노이 역시 내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국제통제위원회 역시 알고 있었다. 관심 있는 모든 하원의원과 신문 독자들도 알고 있었다.

 

결국 이런 거짓말은 어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그 어떤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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