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년 만에 끝나가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은 거의 다 철군을 한 상태다. 사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력을 철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그러나 2015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갔다. 트럼프 행정부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 및 병력 감축을 추진했으나, 임기까지 대략 수천 명의 미군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남겨두고, 이 문제는 다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갔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위치)
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빈라덴의 알카에다 소탕을 외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미국은 20년 동안 이 전쟁을 치렀다. 2,400명의 미군이 전사했고, 1만 9,000명 이상의 미군이 부상당했으며, 미국이 세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또한 2~3만 명이 전사했다. 미군 다음으로 병력이 많던 영국군 또한 500명이 전사했다.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게릴라전으로 미군에 맞서 전투를 치렀던 탈레반 또한 최소 4만에서 5만 많게는 10만 가까이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민간인 또한 1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복장을 한 로버트 베일스 하사, 그는 2012년 3월 11일 16명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을 혼자서 학살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초기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을 토대로 탈레반의 주요 거점들을 점령하고 장악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도널드 럼스펠드(올해 고인이 됨)는 “아프간 동굴 속 테러리스트 수백 명을 찾아내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이 병력을 증강하던 2008년, 이 전쟁은 현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Iron Man)이 영웅으로 탄생하는 곳으로 영화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상에서 보면 아이언맨은 미국의 적인 탈레반을 최신식 무기를 장착한 로봇으로 괴멸시킨다. 심지어 이들이 가진 탱크까지 미사일 한방으로 격파한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언맨을 본 이라면 이 장면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헐리우드사는 이런 장면을 통해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합리화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로버트 베일스의 사진, 이 사진은 군감옥에 수감중 찍은 사진이다.)
그렇다면 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가려진 이면은 무엇일까? 베트남 전쟁 당시 손미 지역과 미케 지역에서 504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던 미라이 학살(My Lai Massacre)과 비슷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어났다. 미라이 학살에 비하면 학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미국의 폭격과 군사작전으로 죽은 민간인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가 바로 2012년 3월 1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칸다하르 학살(Kandahar massacre)이다.

(칸다하르 학살 증거인멸 시도 현장, 로버트 베일스 하사는 학살을 저지르고 나서 시신을 불태워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당시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소속의 로버트 베일스(Robert Bales) 하사는 2012년 3월 11일 새벽 3시 경에 M203유탄 발사기를 장착한 M4 소총과 M9권총으로 무장했다.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한 로버트 하사는 중무장 상태로 부대를 빠져나와 부대에서 약 1.6km 떨어진 발란디와 알코자이 마을의 농가 세 곳을 습격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새벽에 급습을 받은 마을 주민들은 로버트 하사에게 끌려나와 사살 당했으며, 총 16명의 민간인이 로버트 하사의 총탄에 살해됐다. 로버트 하사는 자신이 죽인 민간인들의 시체를 구석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한 마디로 학살을 저질러 놓고, 그 증거까지 없애려는 치밀함을 보여준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통화중인 버락 오바마, 이 사건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오바마가 직접 사과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었다.)
그러나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일부 주민들은 아프가니스탄 당국과 미군에게 알렸고, 로버트 하사 또한 복귀하여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자수했다. 이후 로버트는 쿠웨이트를 거쳐 본국으로 이송됐고, 영창에 수감당한 상태에서 군사재판을 받게 됐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 정부와 미군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으며, 대통령인 오바마 또한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는 시민들이 반미 시위를 벌이며 미군들에게 돌을 던질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탈레반 또한 미군에게 보복 혹은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2년 12월 재판에선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2013년 6월 로버트 하사 본인이 유죄를 인정하면서 사형은 불가능해졌다. 대신 그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남은 생애를 교도소에게 보내게 됐으며, 지금도 균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과거 남베트남의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군은 사실상 거의 다 철수한 상태고, 탈레반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영토 70%를 접수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NATO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대상으로 보복도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 세력의 잔혹함과는 별개로 현재 이들이 승기를 잡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아프가니스탄 내에 반미감정이 극심하다는 반증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반미감정이 심해진 이유에는 당연히 이런 민간인 학살 사건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