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사회주의 지도자 중에 대표적인 인물을 떠올리면 아마도 호치민과 마오쩌둥이 인지도가 가장 높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무장투쟁을 통해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 그리고 게릴라전을 통해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 쇼트가 쓴 <마오쩌둥 평전> 개정판에 따르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 참일때, 베트콩의 게릴라전과 마오쩌둥 홍군의 게릴라전을 비교한 서방의 연구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런점에서 마오쩌둥과 호치민의 공통점이 부각되는건 당연할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호치민은 혁명과정에서 마오쩌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오쩌둥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이후 프랑스에 맞서 싸우고 있던 호치민과 공산당 군대에게 적잖은 물자를 지원했다. 심지어 군사고문단도 보내어 베트민을 훈련시켰으며, 트럭과 의약품, 대포, 소총화기 등은 중국에서 온 것이 많았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사회주의 형제 국가인 중국과 소련은 수정주의 논쟁에서 대립하였지만, 1960년대 미제국주의에 맞서 북베트남에 막대한 물자지원을 해주었다. 이때도 중국제 트럭과 무기 그리고 식량은 북베트남군에게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 특히 존슨 정부가 롤링썬더 작전을 감행하면서 북베트남은 식량 부족 현상에 시달렸는데, 이때 중국이 쌀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많은 베트남인들이 굶어죽었을 것이다.

 

아무튼 20세기 역사에서 사회주의 중국과 베트남은 적어도 미국과 맞서 싸우는 과정까지는 동맹관계였다. 이런점도 호치민과 마오쩌둥이 같이 비교되기도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거기다 둘다 총한번 안들고 동지들이 총을 들고 싸웠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호치민과 마오쩌둥은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점은 바로 그들의 젊은시절 경험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나서 스탈린을 만나러 소련을 방문할 때까지, 단 한번도 해외를 나간적이 없다. 무정부주의자였던 젊은 시절의 마오는 프랑스 유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본인은 다른 동지들의 초기 유학비용을 대느라 중국에 남았다. 거기다 그는 1930, 40년대 중국 연안의 홍군 기지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쉽게 말해 외국을 깊게 알지 못했고, 그러기에는 경험상 부족했다.

 

반면 호치민의 경우는 달랐다. 호치민은 21살이 되던 1911년에 프랑스 기선인 아미랄 라투셰 트레빌호를 타고 베트남을 떠나 거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는 5대양 6대륙을 다 다녔고, 특히나 세네갈이나 콩고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제국주의의 잔혹함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1969년 당시 베트남을 방문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를 스페인어로 환영할 정도로 스페인어도 나름 할줄 알았고, 이러한 내공은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에서 쌓은 경험에서 나왔다.

 

그외에도 호치민은 1941년 중월 국경지대 팍 보에 기지를 세우기 전까지 베트남 독립운동을 해외에서 전개했다. 1930년에 창당된 인도차이나 공산당도 홍콩에서 창당됐다. 거기다 최근에는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과 교류한 것이 문서로 밝혀졌다.


이처럼 호치민은 마오쩌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두 사회주의 지도자에 대해 평가할 때, 항상 이러한 차이점을 염두해두며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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