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1절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기립니다.)
1940년 6월 서유럽으로 진군을 시작한 히틀러의 독일군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함락시켰다. 독일의 수상 히틀러는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구경했고, 프랑스 북부는 나치 독일이 남부는 친나치 협력자이자 제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의 영웅인 필리프 페텡이 통치하도록 했다. 같은 해 6월 중일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프랑스령 식민지가 무주공산이 되자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공했다. 본국이 나치독일에게 점령당해있던 인도차이나령 프랑스 식민지 당국은 당연히 일본에게 굴복했다.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 장군, 1940년에 만나게 된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함께 투쟁해왔다. 이들은 이후 프랑스와 미국 두 서구 제국주의 열강을 무찌른 투사로 발전했는데, 그 시작은 항일투쟁이었다.)
1940년 8월에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여 동남아시아에서의 정치·경제적 우위를 인정해주었고, 9월 22일에는 일본군 주둔과 관련한 협약이 맺어져 대략 2만 5,000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3개의 비행장이 일본군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로써 인도차이나에는 새로운 지배자인 일본이 등장한 것이다. 일본이 인도차이나에 입성하자, 베트남의 독립운동 세력 혹은 일부 민족주의 세력들은 침략자 일본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였다. 혼합 종교인 까오다이교(Cao Đài) 세력이나 호아하오교(Hoa Hao) 세력들은 친일 종교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후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응오딘지엠(Ngo Dinh Diem) 또한 일본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였었다.
물론 이것은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1942년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했을 때, 네덜란드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수카르노(Sukarno)는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했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도 일본군이 침공하자, 독립운동가 아웅산(Aung San)이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내의 독립운동 세력의 친일화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환상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그 나라에서 무자비한 통치와 잔혹함을 보이면서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2018년에 발굴된 프랑스 경찰 당국의 문서, 이 문서를 통해서 호치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 일본군이 침공해 들어오자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성과 기만성을 알고 반일투쟁을 준비했던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Ho Chi Minh)이다. 1890년에 태어나 1911년 식민지 베트남을 떠났던 호치민은 30년 동안 해외를 돌아다녔던 인물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유럽, 미국과, 남미 등을 떠돌아 다녔던 호치민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던 해 응우옌 아이 꾸옥(Nguyen Ai Quoc)이라는 가명으로 ‘안남 민족의 요구 8개 조항’을 즉 베트남의 독립을 청원했던 인물이었다. 1920년대 소련에서 코민테른 요원으로 훈련받았으며, 1930년에는 홍콩에서 이른바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설한 인물이었다. 1940년 일본이 침공해오자 오직 호치민만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호치민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것인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조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던가?”
이것은 호치민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환영하는 이들에게 했던 외침이다. 2018년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한반도가 평화무드에 접어들었을 때, 프랑스에서 새로운 문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이 프랑스 파리에 있을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교류를 했었던 것이 당시 프랑스 경찰 당국 문서에서 대거 발굴된 것이다. 1920년을 전후로 해서 호치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위원부 인사인 김규식, 황기환, 조소앙, 윤해 등의 인사들과 교류를 했다.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호치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감화되었고, 독립투쟁의 의지를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서구 열강에게 독립을 청원했다 거절당한 양측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호치민과 교류했던 우사 김규식의 경우 1918년 여운형이 창당한 신한청년당의 일원으로 1919년에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청원했었다. 이런 경험이 호치민과의 공감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2017년 미국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즈(Ken Burns)가 제작한 베트남 전쟁 10부작(PBS Vietnam War Series)을 보면 호치민이 시작부터 반일 투쟁을 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1940년 전 세계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 대부분을 점령했고, 일본 제국은 아시아의 유럽 식민지를 위협하면서 베트남을 점령했습니다. 또한 그들 동맹인 프랑스 협력자들이 식민지를 계속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일부 베트남 사람들은 일본이 오는 것을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서 망명 중이던 호치민은 일본 제국주의를 프랑스 제국주의와 똑같은 침략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조국 베트남의 자원 수탈에만 관심이 있고, 베트남 곡물로 자신의 밥그릇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죠. 호치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애국자, 농부, 노동자, 상인, 군인들이여! 단결하여 프랑스와 일본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그 협력자들을 물리칠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입니다.”

(1944년 12월 대프랑스 항전과 대일전을 위해 결성된 베트남 해방군, 맨 왠쪽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보 응우옌 잡 장군이다.)
PBS 베트남 전쟁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호지민은 분명 일본 제국이 침공해올 때부터 반일주의자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호치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뜻 깊은 교류를 프랑스 파리에서 했었다. 대략 30년 동안 인간 호치민을 연구했던 미국인 역사학자 윌리엄 J. 듀이커는 지금까지 나온 가장 두꺼운 호치민 전기를 집필했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03년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에도 호치민이 식민지 조선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안남애국자 연합은 표면적으로는 급진적 목표를 내걸지 않았다. 실제로 조직의 창립자들은 베트남인 공동체 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당국의 의심을 피하기위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조직의 명칭에 전통적인 ‘베트남’ 대신 ‘안남’이라는 말을 쓴 것도 정부에 이 조직이 식민지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호치민 예전 이름)은 처음부터 이 연합을 이용하여 베트남인 공동체를 인도차이나 식민지 체제에 대항하는 효율적인 세력으로 전환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이미 조선인이나 튀니지인 등, 식민지 통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그들 나름으로 비슷한 조직을 세운 다른 민족 단체와 접촉하고 있었다.”
출처: 호치민 평전 p.108
“응우옌 아이 쿠옥은 이 글에 이어 ‘인도차이나와 조선’이라는 글을 르 포퓔레르(Le Populaire)에 실었고, 이어 10월에 같은 잡지에 ‘우트레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이 두 글 역시 프랑스의 몇몇 정책을 호되게 비판하면서도, 제시하는 해결책은 기본적으로 온건했다.”
출처: 호치민 평전 p.120

(1945년 탄라오에서 찍은 호치민의 사진, 당시 미국 OSS요원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다.)
이 구절에서 호치민이 식민지 조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2018년에 발견된 프랑스 경찰 당국의 문서 내용과 상당히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다. 일본이 침략한 시점부터 반일투사였던 호치민은 1941년에 중국과 베트남 국경지대에 잠입하여 팍 보(Pac Bo) 동굴에서 독립운동 단체를 창설했다. 그 조직이 바로 베트남독립동맹 즉 베트민(Viet Minh)이다. 베트민의 군대는 20세기 최고의 명장 보 응우옌 잡(Vo Nguyen Giap)이 이끌었고, 호치민이 조직한 베트민은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는 시점까지 반일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점에서 호치민의 반일애국투쟁은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유인선, 이산, 2002
『호치민 평전』, 윌리엄J.듀이커, 정영목(역), 푸른숲, 2003
「호찌민 감시 佛 경찰문건 대거발굴…한국 임시정부 활약상 생생」, 뉴스홈 김용래 기자, 2018년 9월 30일자 기사
「PBS 베트남 전쟁 시리즈」, 켄 번즈 제작,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