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전 -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김삼웅 지음 / 두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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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알면 알수록 참으로 역동적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에서는 여러모로 슬픈 일도 많았고, 황당한 일도 많았으며, 잔인한 역사도 많았다. 해방 이후 미소냉전에 의한 남북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자유당 독재와 박정희의 유신 독재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는 알면 알수록 비판적인 역사적 고찰을 요구하게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학살과 독재 그리고 국가폭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악순환의 어디서부터가 시작일까?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다보면 이와 같은 필연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다.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시점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으로부터 찾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는 일본이 강화도를 침략하던 조선후기에 태어나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 전쟁에 전투부대를 파병하던 1965년에 사망했다. 그는 904개월 동안의 삶을 살았다. 경력으로만 보자면 그는 남부럽지 않은 권위와 인생사를 가지고 있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조선 후기 그는 독립협회의 지도자인 서재필의 지원 및 도움을 받아 초기 개화운동에 나섰고, 이후 미국에 유학가서 지금 기준으로도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인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를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1919년 상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총령 즉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던 인물이었고, 대한인동지회와 구미위원부의 총 책임자였으며, 해방 이후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또한 대통령에 있으면서 한국전쟁이라는 전쟁을 겪었고, 이후 10년 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상당히 훌륭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 이면에 숨겨진 이승만의 실체는 엄청난 비리와 만행 그리고 악행의 대명사였다. 그가 저지른 악행과 만행은 1907년 장인환 전명운 열사의 친일친미제국주의자 스티븐슨 처단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를 거부한 것부터 시작해서 1960년 혁명 당시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수백 명을 죽이고 수천 명을 다치게 한 것으로 끝난다. 즉 이승만의 무수히 많은 악행은 무려 50년 동안 그가 저질러온 인생사이기도 하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선생은 이명박 정권이 끝나가던 2012년에 독부 이승만 평전을 집필했었다. 친일파 문제와 독립운동가 그리고 민주화운동가의 생애를 재조명하는데 한평생을 바친 민족주의자 김삼웅 선생이 평가한 이승만은 말 그대로 기회주의자이자 악의화신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에 대한 건설적이고 체계적인 비판은 역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왜곡하려는 친미 뉴라이트 세력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했다.

 

나는 김삼웅 선생이 쓴 독부 이승만 평전을 박근혜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던 2015년에 읽었었다. 당시 이 책을 완독했던 나는 왜곡된 독립운동가이자 독재자인 이승만이 저지른 악행들을 보면서 치를 떨었었다. 왜냐하면 책에 나온 내용들은 과거 내가 알고 있던 이승만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국가 미국과 그 관료집단들의 이해관계 및 정세판단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 3년 사이에 한국은 전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웅성대는 산업 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했다는 망언을 했던 그의 모습에서 그가 정말 나라의 독립을 위한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그 외에도 그가 독립운동을 한다는 과정에서 저지른 일들은 상식적인 판단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저자가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승만에 대해 광신적인 찬양을 일삼는 서적들은 이미 국내에 널려있다. 대게는 이승만을 참된 반일 독립운동가나 건국의 아버지 그리고 부국의 아버지로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책들이 대다수다. 이러한 이승만 찬양 흐름은 이른바 박근혜 정권을 끝낸 촛불혁명으로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COVID-19가 한참인 올해에도 엄마라는 단어를 빙자한 극우 반공 세력이 쓴 엄마가 들려주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같은 똘이장군식 논리를 보유한 책들이 적잖은 인기를 끌기까지 했었다. 나 또한 서점에 들렀다가 엄마의 이름을 모욕하고 빙자한 그 책을 보고 충격과 분노를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런류의 책들이 이승만을 미화하기 위해 주장하는 논리는 생각보다 심플하다. 즉 좌편향으로 물들어 있는 좌익 빨갱이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며, 북한을 옹호한다는 식의 수준 낮은 공격이다. 물론 이런 식의 주장들은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뉴라이트 비판이라는 책을 쓴 김기협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때문에 북한의 성취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생겨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역사의 대목 대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성공의 역사로만 해석해야 하는 편향성이며, 공산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실패할 운명의 나라로, 자본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한을 성공할 운명의 나라로 규정한다는 것은 역사학의 문법에 맞지 않는 쉽게 말해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래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원리주의 성향의 유사종교가 떠오르는 것이다.”

 

출처 : 뉴라이트 비판 p.186

 

쉽게 말해 이들은 역사를 종교의 영역 즉 이승만교로 접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로 유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 부통령을 지낸 인물인 딕 체니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가 바로 바이스(Vice)’. 영화 바이스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의 이라크인을 죽이고, 명분없는 전쟁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했던 딕 체니의 일생사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전개한 명작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쿠키 영상은 영화를 본 일부 미국인들의 토론 및 소감을 보여준다. 거기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성향의 한 백인 남성은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모든 게 다 좌편향이에요. 다 좌익 편향된 시각에서 만들어진거잖아요라고 대답한다. 이 답변을 들은 한 젊은 남성은 전부 다 팩트 잖아요.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쳤을 것이고요. 사실인데 진보 보수가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말하자,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남성의 답변은 이러했다. “빨갱이 새끼 지랄하네! 너는 힐러리나 지지하겠지!”

 

상당히 흥미로운 구절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팩트를 얘기해도 좌편향이고, 팩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인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적용해볼 수 있다. 이들은 이승만을 말 그대로 성스러운 건국의 아버지로 생각하면서, 팩트에 입각하여 이승만에 대해 비판을 하면 영화 바이스에 나온 트럼프 지지자 아저씨처럼 그런식의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이런 반응은 말 그대로 개인적 감정에 기반을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기도 하지만, 학술적인 영역에서도 반공무쌍을 찍어가며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승만에 대해 좌편향, 종북, 빨갱이, 남로당 사관과 같은 용어를 사용해가며 이상한 비난을 하는 뉴라이트들의 이승만 옹호 및 찬양 논리는 그러한 논리를 기반에 두고 있는 것이다.

 

2020년 들어 COVID-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우울하고 힘이 빠질 시기, 위에서 언급한 엄마를 빙자한 이승만 찬양물이 나온 것은 그 우울함과 분노를 자극시켜주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기파랑 출판사나 뉴라이트 세력들이 낸 이승만 전기가 시중에서 도는 것은 그러한 감정을 더더욱 부채질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선생이 독부 이승만 평전의 개정판을 8년 만에 출간했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에 개정판을 읽게 된 나는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뉴라이트 세력들이 주장하는 천박한 친미 제국주의 논리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에 나온 독부 이승만 평전개정판은 사실 내용면에선 8년 전에 나온 책하고 큰 차이는 없다. 또한 책의 성향도 저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파적 민족주의 성향과 백범 김구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아주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들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나 자신과는 분명히 안 맞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이승만 비판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내에 출판된 이승만 평전중에 이만큼이라도 이승만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게는 뉴라이트 성향의 미국사 교수 이주영이 쓴 건국 대통령 이승만 평전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따라서 내가 이 개정판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승만에 대해 좀 더 얘기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이승만 또한 책 저자가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혹은 그 이상으로) 매우 부정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승만은 미소냉전에서 반소 반공의 지도자로써 통일운동을 지향하지 않고, 오로지 분단정부만을 고집했던 그 사람의 행적은 사회주의나 적어도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사회를 원했던 70% 이상의 민중들의 염원과 바램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정부수립 과정에서 제주도와 여수순천에서 대대적인 민간인 학살극을 벌여 수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한국전쟁 초기 2~3개월 동안 이승만이 학살한 보도연맹원만 해도 30만 명을 넘긴다. 말 그대로 이승만은 코리안 킬링필드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에서 대대적으로 강조한 바와 같이 이승만이 저지른 악행들과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지만, 국민보도연맹 학살은 그중에서 가장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표현은 조금은 과격할지는 몰라도 도올 김용옥이 말한 바와 같이 몇 년 전 스페인 내전을 일으키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으며 독재 권력을 행사한 파시스트 프랑코처럼 파묘를 당하는 수준으로 우리 또한 그를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5년 반제국주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베트남인들은 남베트남의 권력자이자 독재자이기도 한 응오딘지엠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독재자 응오딘지엠이 지향했던 길은 반민족 반민중 친외세 그리고 반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응오딘지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과거 프랑스와 미국에게 빌붙었다가 미국으로 도망친 해외 망명자 일부만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유난히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작업이 힘을 얻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친일과 친미제국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반민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돌고 있는 와중에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에서는 좌파와 사회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즉 이승만이 추구하던 자유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이승만이 가장 사랑했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COVID-19 대처에서 가장 무능하다는 점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아옌데 정권 3년 동안 사회주의를 경험하다 17년간 피노체트 군사독재를 겪으며 신자유주의를 경험했던 칠레는 올해 10월 피노체트 헌법을 국민의 투쟁으로 폐지했다. 코로나 감염이 크게 번진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에서도 사회주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처럼 이승만이 추구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무튼 세계는 이승만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칠레에선 민중의 힘으로 피노체트의 잔재를 무너뜨렸다. 우리 또한 이승만의 잔재들을 4.19 혁명 이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무너뜨려야 한다. 김삼웅 선생이 쓴 독부 이승만 평전개정판은 읽는 이에게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타락하고 무능했으며,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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