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전집 6 : 쏘련기행 중국기행 외 이태준 전집 시리즈 (소명출판) 6
이태준 지음, 상허학회 엮음 / 소명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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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 이태준의 신중국 기행

 

(이 서평은 몇 달 전 읽었던 이태준의 쏘련기행과 같이 실린 중국기행을 개별적으로 다룬 서평입니다. 지난번에 소련관련 글을 우선으로 읽어서 중국기행을 안 읽었기에 이번에 중국기행을 읽어봤습니다. 중국기행 또한 쏘련기행 못지않게 좋은 작품이라 같은 책을 다시한번 리뷰 올립니다.)

 

1946년에 월북한 문학가 이태준은 월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여행하고 왔다. 1946년에 소련여행을 했던 이태준은 그로부터 3년 뒤에 다시 한 번 소련을 방문했었다. 두 번의 소련방문에서 이태준이 보게 된 소련의 모습은 마르크스-레닌을 계승한 지도자 스탈린의 지도아래 미제국주의에 맞서 세계평화와 인류애를 구현하고자 하는 나라였다. 1949년 소련을 방문했던 이태준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51년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 나라가 바로 마오쩌둥이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었다.

 

이태준이 중국을 방문하던 시기인 1951년은 한국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1950101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이에 따라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 또한 북진을 하게 되자, 만주침공과 대만의 참전을 걱정했던 중국은 이른바 항미원조보가위국(抗美援朝保家爲國)’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참전했다. 참전초기 최소 30만에서 45만 명 이상의 군대를 중국이 파병하자 한국군과 유엔군은 용인과 강원도 남쪽 그리고 충청북도까지 후퇴해야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군과 유엔군은 총사령관 리지웨이의 지휘에 따라 다시 38선 부근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그 상황에서 양측은 휴전협상을 하게 됐다. 양측의 휴전협상은 판문점에서 진행되었지만, 북한의 주요시설과 마을 그리고 도시를 대상으로 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은 지속되었다. 즉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문학가 이태준의 중국기행이다.

 

이태준이 보게 된 사회주의 중국은 마오쩌둥의 지도아래 사회적인 대변혁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이는 혁명 국가였다. 1842년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중국 혁명은 1949년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홍군이 국민당을 무찌르면서 끝이 났다. 공산당이 통일 하고 난 이후 중국 사회 전역에선 사회주의적인 개혁들이 이루어졌다. 과거 국민당 시절 민중을 착취하던 지주 자본가 계급은 심판을 받았고, 토지개혁이 단행되었으며 봉건적 잔재들을 청산하는 작업들이 진행되었다.

 

과거 서방세력들이 가지고 있던 공장들은 중국 노동자와 인민이 소유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변화가 혁명 중국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태준은 본 것이다. 물론 1950년대 중후반에 대약진 운동 과정에서 농촌 황폐화 및 최소 3000만이 아사하는 대기근이 일어났지만, 혁명 이후의 초기 중국은 확실하게 변화를 거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태준이 혁명 후 초기 중국의 역동성에 감탄하는 것은 시대사적인 맥락에서 당연한 이야기라 본다.

 

이태준의 중국기행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바로 항미원조. 위에 상술한 바와 같이 당시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국과 전쟁 중이었다. 월북 문학가인 이태준의 입장에선 이것은 당연하게도 침략자 미제국주의에 맞선 항쟁이었다. 이태준이 방문한 중국의 여러도시에선 침략자 미제국주의를 무찌르자’, ‘조선을 지원하자등의 구호가 곳곳에서 보이고, 심지어 항미원조를 기념하는 사과가 나올 정도다. 당시 중국인민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이들에게 있어 당연하게도 항일과 반서방 투쟁을 이어가는 반제국주의 항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점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이태준의 중국기행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인용해본다.

 

지원군 대표들이 행진한다. 북경의 산업과 건축 노동자 12만 명의 대열이 들어선다. 3만 명의 농민대열, 7만 명의 각 민주당파들과 사회 단체들의 대오, 8만 명의 중학 이상 학생대열, 8천 명의 문학예술인의 대오, 이들은 항미원조에 대한 격동적인 표어를 들었다. 이들은 일본 재무장에 반대하는 강경한 구호들을 들었다.

 

이들은 조국의 자유와 동양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투사들이다. 이들은 모 주석을 비롯한 자기정부 수장들의 초상을 들었다. 이들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초상을 들었으며 우리 김일성 장군과 호지명, 처이발상, 베루트, 라코시, 코드왈트, 모든 인민민주국가 인민 수령들의 초상을 들었다. 이들우 자기 사업에 '애국공약'을 체결하고 싸우는 애국투사들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인민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고상한 국제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주먹을 들어외칠 때 붉은 기는 파도쳐 광장이 붉은 바다로 되며 성벽은 진감하여 먼 문루들이 뇌성과 같은 메아리를 일으킨다. 이 소용돌이치는 광장의 정렬! 이는 저 붉은 크레믈린 붉은 광장들에 연결되는 무적한 인민민주주의 위대한 역량인 것이다.

 

맑게 갠 푸른 하늘이기에 붉은 기는 더 꽃보다 곱고 불보다 더 밝다. 이런 붉은 기의 장강은 성문들을 넘치듯 빠져나와 길마다 뿌듯이 흘러나간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북경은 참말 아름답다.”

 

출처 : 중국기행 p.275~276

 

저 유유히 나부끼는 오성기를 보라! 저 선명한 붉은 기폭에서 누가 그 고난 많았던 중국 애국열사들의 강을 이루어 흘린 피를 느끼지 않으랴!

항미원조를 더욱 강고히 하자!

일본 재무장을 강경히 반대하자!

영웅적 조선인민국대와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

모택동 주적 만세!

스탈린 대원수 만세!

굽이굽이 뻗어 나간 성벽들도 동서남북에 높이 솟은 내, 외성 문루들도 이날 천안문 광장에서 터지는 소리를 전 중국 방방곡곡에 그냥 전할 듯이 맞받아 울려나갔다.”

 

출처 : 중국기행 p.277~278

 

우리는 어서 나아 조선으로 가겠습니다. 어서 가서 마저 싸우겠습니다! 조선 형제들도 이 해방된 중국처럼 평화스러운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날까지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나는 이들에서 군인이란 일반적 관념을 잊었다. 이들은 하나하나 혁명투사의 기개들이다! 그렇다! 저 위대한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그렇듯 오늘 조선인민군대도 중국인민해방군대도 중국인민지원군대도 하나하나 혁명투사들인 것이다! 혁명투사들의 소대요 혁명투사들의 중대, 대대요 영광스러운 혁명투사들의 연대요 사단이요 군단인 것이다.”

 

출처 : 중국기행 p.338~339

 

여기서 언급되는 항미원조 전쟁은 당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나 반제국주의 투사들에게 있어서 반제국주의 전쟁으로 여겨졌다. 책에서 언급되는 헝가리나 체코 등의 동유럽 국가들은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원조했다. 그 외에 다른 나라들이 항미원조 정신을 되새기는 장면이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다. 냉전시대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견해와 행동들은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시대사적인 맥락에서 이해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태준이 중국에서 만난 인물들 중에는 이후 아옌데 몰락 이후 칠레의 군부독재자 피노체트에게 목숨을 잃게 되는 사회주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연하게도 이 책에선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대패한 부패한 독재자이자 친서방제국주의자인 장제스를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장제스는 반공주의적이고 영국과 미국에 친화적이며 반민중적인 지도자였다. 특히나 1925년 손문의 사망 이후 4.12 쿠데타를 홱책하여 중국의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을 죽였던 것에 대해, 또한 지주와 자본가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했다는 점에 대해 이태준은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다. 따라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국공내전은 당연히 그에게 있어 친서방 제국주의에 지원받는 장제스 반동정권에 맞선 중국인민의 전인민적 항쟁이었던 것이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도였던 난징을 방문한 이태준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개석은 이 손중산 선생이 돌아가시기 바쁘게 선생을 배반하고 동지들과 중국 전체 인민을 배반하고 미일 제국주의자들이 길러주는 동족상잔의 무력으로 진정한 애국열사들과 우수한 조국의 아들딸들을 도살하기 시작한 바 이 우화대에서만 20여 년에 걸쳐 목을 베고 총살하고 하기를 20만 명에 달하였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중국 노동운동의 창시자 등중하도 중국공산당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운대영도, 중공 남경당 비서 손진천도, 동북항일연군의 한 수장이었던 나등현도, 애국청년 학생들의 지도자였던 곽영조 모두 이 우화대에서 희생된 것이라 한다.”

 

출처 : 중국기행 p.355

 

이태준의 중국기행은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에 방문하여 1952년 북한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이태준은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인 스탈린의 소련과 장제스 반동정권을 무너뜨리고 탄생한 사회주의 신중국에 대한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반공주의자들은 그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 영혼없는 비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사적인 맥락과 그가 처한 상황을 무시하고서 보는 관점일 뿐이다. 당시 이태준이 중국기행에서 공유한 감정은 당대의 진보 지식인들이 가졌던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소련기행과 더불어 중국기행을 같이 읽어보기를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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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2020-12-04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리뷰를 잘 읽었습니다. 내용에 다 동의는 못하지만, 이태준의 생생한 글이 느껴져서 좋아요 누릅니다.

NamGiKim 2020-12-04 23: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태준 작가의 감성이 잘 담겨있고, 그 당시 좌파들의 보편적인 세계관을 생생히 알수 있어서 소련기행과 더불어 중국기행도 개별적인 리뷰를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