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인 올해는 민족사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초래했던 이 전쟁은 사실상 휴전으로 끝난 전쟁으로, 한반도의 분단정부가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대중적인 인식이나 국가적인 인식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반공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지원을 받아 무력남침을 개시한 전쟁”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경제원리가 가미된 논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2013년 한국전쟁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워싱턴 한국전쟁 메모리얼(Korean War Memorial)에서 연설을 했던 버락 오바마는 “한국전쟁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승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비단 버락 오바마와 미국의 반공주의자들과 자칭 민주당 계열 인사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수 진보 할 거 없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버락 오바마의 발언은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 남한은 세계 경제력 10위의 강대국에 올랐지만, 전체주의 국가 북한은 사회주의의 실패로 인하여 최빈국이자 최악의 독재국가로 전락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굉장히 반북반공적인 동시에 서구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즉 냉전 시기 공산주의 러시아를 바라보던 미국의 편협한 시각과 인식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이런 반공주의적 관점이 1990년대 미국을 향해 대화와 수교를 요구했던 김일성의 시도를 무시하여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초래했고, 1994년 전쟁 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네오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이런 인식과 관점을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른바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발언을 통해 자본주의적 우월주의에 심취한 사상과 생각이 점철된 폭력성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냈다. 비록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북한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 시기 미국이 침공했던 이라크를 생각해보면 이런 편협한 관점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관점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는 대체로 반공주의적인 시각에서 인식되어 왔다. 대중의 주류적 흐름 또한 ‘대한민국 피해자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우파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주제중 하나고, 다른 한편에선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에 차질이 생기는데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주제다. 사실 한국전쟁 자체를 “대한민국과 유엔의 승리 혹은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스탈린은 나쁜 놈”과 같은 그들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싶어 하는 인식과 관점은 역사적으로 그다지 정확한 관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전쟁의 민중적 구도를 본다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35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8선을 기점으로 남북 분단되었다. 일제 패망 이후 패망을 준비했던 여운형은 자신의 조직 건국동맹을 건국준비위원회로 발족시켜 좌우연합과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이것을 강제로 해산시켜 점령군을 자칭했던 집단은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 아니라 트루먼의 미국이었다. 여기서부터 남북분단의 구도가 명확해졌다. 미국은 친일경찰을 등용했고, 그 친일경찰과 친일인사들은 친미주의자인 이승만을 등에 엎고 분단정부 수립에 나섰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이라도 한 듯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하여 그리스 내전에 개입하여 방화와 학살을 저질렀다. 따라서 트루먼 독트린은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의 패권을 확대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운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제국주의 합리화 수단이었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한반도에선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과 김구의 남북협상 등이 실패로 끝났고, 대구와 제주 그리고 여순에서 미군정이 지휘하는 광란의 학살극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남북의 통일과 사회주의 그리고 항쟁들의 주체는 바로 남한 민중이었다. 그에 비해 반공을 내세우는 집단은 미제국주의와 이승만을 지원하는 지배계층이었다. 즉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주장하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전부터 이런 내전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민족해방전쟁적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고위직을 차지했던 인물들 대다수를 보면 그 뿌리가 독립운동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일에 있었다. 다부동 전투의 영웅인 백선엽부터 해서 채병덕, 정일권 등 이들 대다수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었다. 결국 한국군은 미제국주의에 지원을 받은 구일본군 장교들이 지휘하는 군대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한국군이 했던 일들을 보면 매우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전쟁 초기 이승만 정권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국민보도연맹 학살은 한국군과 경찰 그리고 우익 청년단이 저지른 것이었다. 이들의 학살로 최소 30만 이상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당했다. 많게는 100만 이상도 잡는다. 또한 9.28 서울 수복 이후 한국군이 저지른 일 또한 부역자 색출이라는 명분아래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살은 38선 돌파 이후 북한지역에 들어가서도 계속됐다. 대표적으로 신천양민학살사건은 한국군과 우익 청년단들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극이었다.
한국전쟁 초기 미국의 해리 트루먼이 즉각적으로 군사개입하며 끌어들인 유엔군은 말 그대로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끌어들인 제국주의 군대다. 이것은 마치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이 끌어들인 한국군, 호주군, 태국군 등이 제국주의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군대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유엔군의 핵심인 미군도 무수히 많은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융단폭격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이 일본을 폭격하기 위해 사용한 폭탄이 20만 톤 안팎이었는데, 한국전쟁 3년 동안 한반도에 투하한 폭탄의 량은 63만 톤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네이팜 폭탄을 추가하면 66만5000톤이 된다. 이런 무차별 폭격으로 최소 100만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보았을 때, 한국전쟁은 미제국주의와 이승만 세력들의 광적인 학살극이었고, 민중은 이에 맞서 싸우는 구도였다. 물론 한국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38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한 북한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판가름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차적인 사실관계일 뿐이다. 마치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썸터 요새를 누가먼저 포격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듯이 말이다. 한국전쟁은 그 자체만으로 미제국주의에 맞선 전민중적 항쟁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주장하듯이 이와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한국전쟁은 미제국주의와 이승만 친일파 결집세력에 맞선 민족해방전쟁이었던 것이다.
11월 12일은 서방에서 베테랑 데이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에선 이날에 자국의 전쟁영웅들과 군인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이러한 흐름에 입어 올해 한국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유엔군들을 기억하는 영상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영상을 본 필자는 정말이지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 자체가 한국전쟁에 대한 총체적 무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주4.3을 항쟁으로 추모했던 대통령 문재인 또한 한국전쟁날이나 이런 베테랑 날이 되면 이승만과 우익 그리고 미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학살당했던 이들은 금방 잊은 채, 반동적 군대를 추모하고 치켜세우기 바쁘다. 물론 대한민국 현실정치라는 맥락에선 이해가 가능한 일일지라도, 상당히 이율배반적 행위라고 본다. 왜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추모한 보도연맹 희생자들은 한국군에 의해 생긴 것이었고, 그런 학살을 저지른 한국군을 다른날에 동시에 추모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전쟁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볼 때 생기는 모순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만 나오면 진보와 보수 할 거 없이 그저 반공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행위는 베트남 전쟁 시기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던 남베트남을 추모하는 일부 베트남계 미국인들의 행위와 크게 다를것이 없다. 이걸 그대로 베트남 전쟁에 대입하자면 우리는 베트남을 분단시킨 미국을 자유의 용사로 내세우는 것이고, 미국이 내세운 괴뢰 앞잡이 고딘디엠(응오딘지엠)이 최고사령관으로 있는 괴뢰군대를 자유와 민주라는 수식어로 합리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전쟁에서 ‘우리국군’ 혹은 ‘자유를 위해 희생한 유엔 참전용사’ 따위의 소리는 이처럼 어이없고 몰역사적인 시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놓치거나 무시하는 불편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