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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폰 비스마르크 - 역사 속의 인물 총서 7 ㅣ 역사 속의 인물 총서 7
엘렌 브라바르테브네 지음, 백선희 옮김 / 동아일보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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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혈재상이라고 불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오랜 기간 여러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을 통일한 정치인이다.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제2제국을 선포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9세기 독일 역사에 있어서 통일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848년 프랑스와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후 독일은 분열된 국가를 통일하고자 하는 논의가 쟁점으로 올랐다. 그러는 과정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프랑스 파리에서 프로이센 대사를 지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63년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그리고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분열된 독일을 한국가로 통합시키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1870년 이른바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최종적인 통일을 이룩했다.
독일의 부유한 귀족계층을 뜻하는 융커(Jungker)출신인 그는 출신성분 답게 권위주의와 보수주의를 추구했다. 독일의 정통적인 보수주의자답게 그는 좌익 세력들을 매우 싫어했다. 따라서 1878년 사회주의자법을 만들어 좌파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였고, 이런 좌익탄압은 이른바 사민당에게도 행해졌다. 이러는 과정에서 가난에 허덕이던 민중과 혁명을 추구하던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이른바 자신의 권의주의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 국가하고는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복지정책이었다.
1883년과 1884년에 그는 의료보험에 관한 법안과 산재보험에 관한 법안을 마련했고, 1889년에는 연금보험과 상해보험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연히 이러한 법안들은 당시 유럽국가들이 실행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또한 그는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으며, 경제와 민생이라는 부분에서 시장의 원리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국가의 개입을 추구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점에서 비스마르크가 통치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국가들하고는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철혈재상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독일을 통일시킨 이후 영토팽창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실제로 보불전쟁 당시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를 획득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유럽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었다. 물론 1884년에서 1885년 사이에 있던 식민지 개발 원칙을 발표한 베를린 회담에서 중요할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다. 독일이 팽창에 나서게 된 건 그가 물러나고 나서 정권을 잡은 빌헬름 2세 시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이 책은 독일의 지도자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생애를 아주 짧게 다룬 입문서다. 책의 대부분도 사진과 그림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거기에 부연설명이 붙었다. 비스마르크의 생애를 아주 간략히 알 수 있다. 어디까지나 입문서이기에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사실 이 책보다는 더 두꺼운 비스마르크 평전이 그를 공부하기에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