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권리 : 폴 라파르그 글모음 - 필맥 휴대책
폴 라파르그 지음, 차영준 옮김 / 필맥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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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도 공부나 독서 혹은 해야할 일을 할때 게을러지고 싶을 때가 많다. 이건 만인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사회가치나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상시적으로 원하는 게으를 권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예전에 <빠빠라기>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남태평양에 사는 추장은 쉴틈없이 일을하며 사는 문명인들을 '빠빠라기'라고 하며, 여유없는 현대문명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다. <빠빠라기>에서 신랄하게 지적하듯이, 칼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층들에게 게으를 권리를 호소한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라파르그는 분명히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활성화된 천박한 자본주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타파해야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방법론에 있어서 마르크스하고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선 단결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노동해야할 권리를 주장해야한다 추구했다. 그러나 라파르그는 노동해야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노동 자체를 금지해야한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노동 시간 단축과 자본가로부터의 노동해방이 아닌, 노동이라는 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는 일할권리를 부정한다. 이런 점에선 확실히 마르크스하고 매우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라파르그가 게으를 권리에서 하는 주장들이 고찰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게으를 권리를 더 강조해서 주장하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다. 물론 착취를 막아야 하고 노동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인류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나 또한 게으름을 피울때가 있고, 거기에 대해 크게 여념하지 않는 편이지만, 노동 자체를 금지해야할 대상으로 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라파르그가 무조건적으로 노동을 사라지게 만드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해도 충분하고 나머지는 한가로움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는걸까?


라파르그가 보기에 노동은 강요된 것으로 길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윤리와 사회정치적 경제논리와 자유사상가들의 논리에 그런 '길들임'의 기이한 윤리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이런 편견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게으름은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강력한 반박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자유사상가들과 사회정치적 경제논리가 추구하는 길들임에 익숙해지는 순간 평생 동안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라파르그의 생각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자나'라는 자기 강박적 생각은 자칫 길들여지는 첫걸음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라파르그의 주장이 아주 설득력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라파르그는 <게으를 권리>에서 기계의 생산력과 가내수공업이나 인간의 생산력에 대해 지적한다. 그는 자본가들이 이윤축적을 위해 노동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에게 기계 못지 않은 생산력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라파르그는 기계가 생산하는 양이 인간이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빠르게 생산한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자본가들에겐 인간 노동자 보다 더 많은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기계를 더 중요시 여긴다고 비판한다. 이와같은 그의 주장은 상당히 소름끼친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 원리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라파르그는 자본가들이 기계가 더 효율적이면 노동자들이 죽든 살든 혹은 해고당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고 생각한다. 이런점에서 그는 현재 느리지 않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폐해를 예견한 측면도 없진 않다.


이 책은 단순히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권리만 다루는 책이 아니다. 그가 살아생전에 남긴 여러 글들을 게으를 권리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이 책에서 게으를 권리 외에 흥미롭게 읽은 파트는 '마르크스에 대한 회상'과 '사회주의와 지식인' 그리고 '여성문제'다. 마르크스를 회상하는 파트에선 마르크스에 대한 칭찬을 담은 그의 회상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마르크스가 단기간에 러시아어를 마스터하여 러시아 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그의 회상이다. 그외에도 마르크스의 천재성을 아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사회주의와 지식인 파트는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운동의 변화와 흐름 그리고 라파르그 나름의 대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여성문제는 그의 본업인 의사답게 그 시기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자본가와 지배계급 그리고 자칭 잘난 자유철학자들의 인종주의적 망언과 뇌피셜들을 일목요연하게 반박한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 그런 문제가 성별 즉 생물학의 문제가 아닌 지배계급과 자본가들의 강요한 사회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지적하기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게으를 권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본능적 혹은 이성적으로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히 많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본능적으로 게으르고 싶을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마치자면 그 당시 사회주의자 중에 마르크스와 가까우면서도 방법론에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인물의 주장을 알 수 있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게으름을 자주 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게으름을 잠시 접어두라 얘기한 뒤,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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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0-11-11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이네요. 몇번을 읽어도 그 예리한 통찰에 놀라게 됩니다 ˝모든 것에 게을러지자. 사랑하는 것과 게으름 피우는 것 빼고.˝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지만, 정말 좋은 말입니다 ㅋㅋ

NamGiKim 2020-11-11 00:35   좋아요 0 | URL
정말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특히나 여성문제는 통찰력이 예리하죠. 거기다 현재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자주하는 실수도 반복하지 않고요. 게으름이라는게 나쁜게 아니라 사람의 생물학적 본능일 수 있다는 걸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