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린 제주4.3평화공원.

오늘 저는 제작년 초에 가족과 들렸던 4.3 평화공원을 들렸습니다. 처음 들렸을 때도 매우 슬펐지만, 이번에 다시 들리니 억울하게 학살당한 피해자분들을 생각하게 되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72년전에 좌익소탕이라는 명분아래 저질러진 국가 폭력은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많은 이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곳을 두번째 들리게 된 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었죠. 독립된 한국에선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창설됩니다. 여운형이 창설한 이 조직들은 해방 이후 치안과 행정을 담당해나가며 새조국건설을 위해 전진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 미군이 상륙했고, 제주도에도 미군이 상륙했습니다. 제주에 상륙한 미군은 군정을 실시했고, 과거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 경찰들과 관리들을 재등용합니다. 여기서 부터 제주도민들은 점령군의 모습을 보인 미군과 그의 앞잡이 친일세력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이 탄 말에 인명피해가 생겼고, 이에 항의한 시민들이 경찰에게 저항하다가 경찰에 발포한 총에 몇명이 맞아 죽는 일이 생기죠. 거기다 그 시기에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하면서 미소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였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하죠.

이런 일이 있자 1948년 제주도에선 남로당 김달삼을 중심으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친일파 청산을 내걸며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 날이 바로 1948년 4월 3일이었습니다. 이 봉기에는 당연히 남로당 뿐만 아니라, 친일파와 미군정에 분노한 일반민중들도 참가합니다. 이런 상황이 있자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이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과 우익청년단들을 대거 투입하죠.

이렇게 해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시 미군정 최고사령관 하지가 임명한 브라운 대령은 좌익을 뿌리뽑는다는 명분으로 제주도 지역에 레드라인을 설정해놓고, 그 범위에 있는 생명체는 싹다 죽이도록 허용합니다. 이에따라 이승만이 파견한 서북청년단과 경찰은 광란의 학살극을 벌였고, 특히 1948년과 1949년 사이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일어난 학살은 추악하고도 잔혹했습니다. 서북청년단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이들은 최소 3만 명을 넘겼고,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노인 어린이 그리고 유아도 포함되었습니다. 임산부 배안에 있던 애와 1,2살 짜리 아이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죠. 이런 광란의 학살극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경찰총장 조병옥 그리고 미군정의 브라운 대령의 책임이 막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학살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과거 좌익 경력이 있던 인물들을 예비검거하며 학살했던 것입니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학살은 1954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종료가 됩니다.

제주도 학살은 엄청난 고통을 남겼습니다. 우선 이 학살로 제주도 인구 10%가 죽었습니다. 코리안 킬링필드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 반공주의 국가가 되며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런 침묵이 깨진건 87년 민주화가 되면서 부터였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와서야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됐죠. 이처럼 이승만으로부터 비롯된 반공주의는 산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자면 제주4.3사건에서의 학살은 과거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벌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와 베트남이 그랬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내전이 일어납니다. 이 내전에서 영국이 빠지자 미국이 개입했죠. 개입한 미군은 소수의 고문단과 최신식 무기 지원을 통해 좌익진영의 그리스 게릴라들을 학살했습니다. 미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지원하에 활동하는 우파와 미군고문단은 소위 자신들이 적대지역으로 설정한 곳에 네이팜폭탄을 투하하고, 이들의 씨를 말렸으며 그 지역마을들을 불태웠죠. 미국의 이런 전략은 그리스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제주4.3은 그리스 내전의 연장선상일수도 있을 겁니다.

그로부터 몇년 뒤 베트남 문제 개입한 미군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들은 소위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을 적대지역으로 선포해놓고, 온갖 최신식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서 그 지역을 폭격 및 수색과 섬멸 작전으로 초토화시켜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베트남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죠.

다시한번 제주4.3평화공원을 들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들릴때 항상 노는것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가 노는 곳에서 과거에 어떠한 국가폭력이 있었는지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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