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핀란드 전쟁은 1939년 11월 30일 부터 1940년 3월 13일까지 대략 4개월간 전개된 전쟁이다. 서방의 많은 사학자들이 소련 핀란드 전쟁에 대해 주로 소련의 팽창주의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판단하고 있고, 소련과 스탈린의 정복욕에 기반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소련과 스탈린 그리고 소련의 진보성을 믿는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소련 핀란드 전쟁에 대한 입장은 무엇일까? 아래에 있는 글은 2013년 그리스공산당(KKE)에서 출판한 책 중 역사왜곡에 대한 파트 중 하나다.

핀란드의 경우는 다르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체결 직후 소련은 핀란드 국경의 차단과 방어 강화 노력을 시작했다. 핀란드 국경은 레닌그라드에서 불과 32km 떨어져 있으므로 소련 방어를 위해 핀란드-나치 독일 간 기존의 원만한 외교관계와 소련에 맞서 핀란드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대한 군사적 준비를 고려할 때 핀란드와의 협정이 중요했다. 두 국가 사이의 협상은 1939년 10월 12일에 시작되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목표는 핀란드가 소련에 맞서는데 이용되는 것이었는데, 핀란드가 다방면으로 지원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소련은 처음에는 핀란드에게 상호원조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그에 대한 핀란드의 거부 이후 소련은 핀란드 국경선을 이동하여 두배 정도 규모의 영토를 교환하여 해군기지 설치를 위한 땅을 임대해달라는 역제안을 했다. 핀란드는 이 제안 역시 거절했다. 소련의 제안을 핀란드가 거절한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을 초래했다.

이 전쟁에서, 핀란드는 국제 제국주의 진영의 지원에 의존했다. 미국,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에 맞서는 총체적인 공세뿐만 아니라 원정군을 준비하면서 핀란드에게 아낌없이 자금과 무기를 제공했다. 전쟁을 계속시키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핀란드에 극심한 압력을 가했지만, 군대가 이미 2월에 헬싱키로 들어와 있었던 핀란드와 소련은 1940년 3월 12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양국은 전쟁을 중단하고 다른 나라를 겨냥한 어떠한 연합에도 참여하지 않을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핀란드는 일부 영토를 소련에 양도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중 일부는 역사를 조작하기 위해 은폐되거나 왜곡된다. 소련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약을 체결하여 방어선을 강화시킬 수 있었고 나치 독일의 막강한 공격에 맞설 수 있었다. 이 진실은 부인할 수 없으며 댈러스(F- Dallas)와 같은 부르주아 역사학자조차도 "소련에 대한 독일의 직접적인 공격을 막고 방위력을 강화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 당시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소련의 이러한 입장은 아주 현실적이었다."며 이 조약의 체결이 소련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반공주의자인 윌리엄 엘, 쉬러(William L, Shirer) 역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끄러운 비밀협정이 스탈린에게 숨 쉴 틈을 준 것은, 차르 알렉산더(Czar Alexander)가 1807년 나폴레옹으로부터, 레닌이 1917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에서 독일인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았던 것처럼 분명했다. 나중에 소비에트 공식 외교사가 강조했던 것처럼, 또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일 러시아가 나중에 독일에 의해 공격을 당했더라면 서구 열강들은 이미 독일 제3제국(Third Reich)에 맞서 돌이킬 수 없는 개입을 했을 것이고, 소련은 1939년 여름에 그랬던 것처럼 독일 열강에 맞서 혼자 싸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크렘린은 확신했다. 이 모든 것은 논란의 여지없이 사실이다."

21개월간의 귀중한 시간 덕분에 소련은 당시까지 "무적의" 독일군(Wehrmacht)을 물리칠 수 있었고 소련을 파괴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계획을 박살내, 베를린에 적기(Red Flag)를 게양하며 유럽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출처 : 소련 사회주의에 대한 진실과 거짓 p.1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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