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치민(Ho Chi Minh)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만화 시리즈 중 하나인 보물찾기 시리즈를 읽게 되면서였다. 보물찾기 시리즈 중 하나인 베트남에서 보물찾기에는 아주 잠깐이나마 베트남 사람들이 국부로 여기는 호치민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는 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정도로만 알게 되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다시 관심이 생긴 것은 대학교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나서였다. 당시 나는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이 생겨 여운형, 김원봉 등과 같은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평전을 읽었는데, 그 중 읽었던 평전 중 하나가 박헌영 평전이었다. 안재성 작가의 박헌영 평전에는 그가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과 같이 대학교를 다녔다는 내용이 나왔었는데,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에는 충분했다.

 

군복무를 위해 한 학기룰 휴학했던 2016년 초 나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게바라(Che Guevara)에 빠졌었다. 체게바라를 좋아하게 된 나는 체게바라 관련 책들과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닥치는 대로 보았다. 체게바라 관련한 다큐멘터리에서 진보적인 대학생들이 두 개의 초상화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대학생들은 호치민과 체게바라의 초상화를 ! ! 호치민! ! ! 체게바라!(Ho! Ho! Ho Chi Minh! Che! Che! Che Guevara!)”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겼다.

 

201610월 말부터 소방서 공익으로서 복무하게 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가하게 됐다. 매주 토요일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퇴진집회에 참가했던 나는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으로 알고 싶어 만화 작가 백무현 선생이 쓰신 만화 박정희를 읽게 됐다. 만화 박정희에서는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다루었고, 호치민의 얼굴과 베트콩 전사들이 그려진 파트에선 베트남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사상 첫 해외 파병인 베트남 전쟁. 그 전쟁의 진실은 무엇이었나? 그 전쟁은 역사적으로 오랜 외세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그에 반항하고 민족해방과 독립을 추구하며 싸운 애국지사와 역대 외세에 빌붙어서 일산의 영달을 꾀해 온 민족반역자들과의 싸움이었다. 우리로 말하면 일제 하 독립운동을 한 애국세력과 친일세력간의 싸움이었다. 신생 독립 민족 내의 민족양심세력과 민족반역세력의 싸움이었던 것, 베트남 민중의 80%는 호치민과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해방 뒤 김구 등 민족세력을 지지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미국이 지지한 쪽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이공 반공정권이었다. 우리로 말하면 친일파 정권을 지지한 셈이다.”

 

이것은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베트남 전쟁의 또 다른 진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식은 워낙 짧아서 반공주의자들이 하는 얘기도 절반은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면서 바뀌었지만 말이다. 만화 박정희를 읽게 된 이후 나는 알라딘에서 찰스 펜이라는 미국인이 쓴 호치민 평전을 구매하여 읽게 됐다. 그 책을 통해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또한 젊은 시절부터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 나는 호치민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깊게 알지는 못했다. 호치민 평전을 읽게된 다음 캐나다 출신의 종군기자 마이클 매클리어(Michael Maclear)가 집필한 베트남 10000일의 전쟁(The Ten Thousand Day War Vietnam 1945~1975)’을 읽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CIA의 전신인 OSS가 호치민 휘하에 있는 베트민(Viet Minh)을 대일전에 참가시키기 위해 훈련시키고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뒤 미국이 전쟁을 치르게 된 세력이 한 때 자신들이 동맹이었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되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을 읽은 이후 필자는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선생이 집필한 리영희 평전을 읽게 됐다. 리영희 평전에서도 과거 민주화운동가 리영희가 분석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자, 비인간적인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의 추석은 참으로 길었다. 나 또한 10일 가까이 쉴 수 있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윌리엄 J.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Ho Chi Minh, A Life)’이었다. 사실 내가 호치민 평전을 처음 읽을 때, 듀이커의 평전 이전에 찰스 펜의 호치민 평전을 읽었던 것은 듀이커의 책이 너무나도 두꺼워 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치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나는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알라딘을 통해 그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따라서 2017년 나는 추석 연휴를 틈타 듀이커가 집필한 호치민 평전을 읽게 됐다.

 

대략 970페이지(각주 빼면 850페이지)가 넘는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은 한 학자가 30년 동안이나 호치민을 연구한 것을 책으로 집필한 완성작이었다.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으면서, 베트남 전쟁 당시 저자 듀이커가 그랬듯이 나 또한 점차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매료됐다. 젊은 시절부터 그가 걸어온 독립을 향한 투쟁과 30년간의 해외 생활 및 여러 활동은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가 해외를 떠돌아 다니면서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과 베트남 독립을 향한 열정이 과거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11년 베트남을 떠나서 1941년 중월 국경지대인 팍 보(Pac Bo)’에 베트민 혁명기지를 세우기까지의 호치민의 삶은 말 그대로 베트남 독립을 향한 투사의 생애였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책에는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한 혁명가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담겨있었다. 특히나 베트남과 인민에 대한 그의 사랑은 194592일 하노이 바딘 광장에서 독립을 선언할 때, 더더욱 드러난다.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더더욱 매력과 존경심을 느끼게 된 것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평전에서 자세히 읽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얄타와 포츠담 회담에서 베트남 문제를 합의본 강대국들은 베트남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자리에 오른 샤를 드골의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하려고 했다.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 군대는 19545월 라오스 국경지대에서 벌어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8년간의 독립전쟁을 끝내고 독립을 쟁취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호치민의 투쟁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비록 미국과의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 대해선 매우 짧게 다뤘지만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은 혁명가 호치민이 걸어온 자유와 독립을 향한 투쟁적인 삶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으면서 나는 혁명가 호치민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고 난 이후에도 다른 책들도 읽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호치민 주석에 관한 두 권의 책은 송필경 선생께서 집필하신 왜 호치민인가?’와 호치민의 글과 연설을 모아놓은 식민주의를 타도하라를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 두 권의 책은 혁명가 호치민에 대해 많은 걸 알게 해주었다. 두 권의 책 또한 나로 하여금 호치민을 더더욱 존경하게 만들었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80노인이 되기까지 인생을 투쟁으로 살아온 호치민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의 생애는 나에게 참으로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호치민을 공부하면서 과거 일제시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만큼 호치민도 위대한 생애와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호치민의 인간성에 대해 깊은 극찬을 보낸다. 특히나 그가 다른 지도자들과 다르게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에 많이 주목한다. 물론 이 또한 사실이고 호치민 주석의 인간애는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행적이지만, 나는 그의 인간성 보다 그가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걸어온 투사로써의 모습에 더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호치민 주석의 지도 아래(비록 그는 1969년에 사망했지만) 베트남인들은 1975년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 미국을 무찌르고 통일을 할 수 있었다. 즉 베트남인들은 호치민을 통해 자주와 독립 그리고 통일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민족반역자 편이었던 남베트남 정부에 부역했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1975년 베트남이 통일을 이룩하고 난 이후 보트피플이 되어 미국에 망명했다. 보트피플이 되어 베트남을 떠난 그들은 혁명가 호치민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역사 왜곡과 입에 담을 수 없는 망발을 일삼으며 증오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신분적으로 남베트남에 부역했던 인물들이기에, 주장 자체에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들은 그저 반공주의라는 편향된 사상을 가지고, 자기들 멋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정착한 보트피플들과 베트남 전쟁 파병을 찬양하는 한국의 극우 세력을 제외하면 호치민은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을 당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일본의 진보적인 대학생들은 호치민의 초상화를 들고 ! ! 호치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했다. 나는 이것이 혁명가 호치민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남아시아의 한 지도자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본보기는 없기 때문이다.

 

2020519일인 오늘은 호치민 주석이 탄생한지 130주년이 되는 날이다. 호치민은 오늘날 베트남에서도 세대를 아울러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비록 난 한국에서 태어났고, 호치민에 대해 공부하게 된 것도 근래에 들어서이긴 하지만, 그분을 매우 존경한다. 혁명가 호치민은 비단 베트남인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 훌륭한 선생이자, 격 없는 아저씨 혹은 삼촌이기도 하다. 그런 분의 130주년 생일을 맞아 내가 왜 민족해방투사이자 혁명가인 호치민을 존경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나는 그를 존경할 것이고,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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