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국주의 침략과 학살의 역사

  

1492년 소위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알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er Columbus)는 미국인들에게 있어 영웅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통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고, 그 결과 미국이 탄생했다는 믿음을 미국인들은 가지고 있다. 이러한 콜럼버스의 이미지는 세계사 교육이 미약한 한국인들에게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경우가 다분하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이 쓴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보면 미국인들이 찬양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무수히 많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노에로 삼았던 침략자이자 제국주의자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다.

 

1451년 이탈리아 제노바 근처에서 양모 직공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행적은 1477년 리스본에 나타날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장인이 선장이었던 콜럼버스는 바다 지도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했고, 그 과정에서 항해술을 배웠다. 1484년부터 콜럼버스는 동생과 함께 항해에 들어갈 비용을 댈 후원자를 찾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에게 후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격던 중 스페인으로 건너가 이세발 여왕(Queen Isabel)을 만났고, 비록 몇 번의 거절을 당했지만, 1492년에 뜻을 이루게 됐다. 당시 스페인의 이세벨라 여왕은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았기에 콜럼버스를 후원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소위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는데, 이계약이 바로 산타페 계약(Santa Fe)’이다.

 

149283일 스페인 팔로스 항을 출발한 콜럼버스 일행은 120명의 선원과 3척의 배를 동원했다. 이들은 1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보급품도 실었고, 인도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쪽으로 향해 계속했다. 14921012일 항해를 시작한 지 약 70일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바하마 군도에 상륙했다. 바하마에 상륙한 콜럼버스는 그 섬의 이름을 서인도제도(West Indies)라고 붙였고, 거기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인도사람이라고 하여 인디언(Indian)’이란 의미에서 인디오(Indio)’라고 붙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들에게 보답해 준 것은 학살과 노예화 뿐이었다. 그는 원주민을 보았을 때부터 그들을 노예로 삼을 생각을 했다. 아라와크족(Arawaks)이 마을에서 나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들을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들은 앵무새와 솜뭉치, 창 외에도 많은 물건을 가져와서 유리구슬이나 매종(사냥용 매의 다리에 묶는 종)과 바꿨다. 그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기꺼이 교환했다. 그들은 탄탄한 체구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건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무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내가 칼 한 자루를 보여주자 아무 생각 없이 칼낳을 쥐다가 손을 베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철이 없다. 이들의 창은 막대기에 불과하다. 이들은 좋은 하인이 될 듯하다. 50명만 있으면 이들 모두를 정복해서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미국민중사 I p.15

 

당시 콜럼버스가 무엇보다도 원했던 정보는 황금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맨손으로 갈 수가 없어 원주민들을 납치하고 포로로 붙잡아 배에 태운 뒤,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스페인 마드리드 궁정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터무니 없는 과장된 내용을 보고했다.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여왕에게 아시아와 중국 연안의 한 섬에 도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허구였고 거짓말이었다. 그는 이런 과장 및 왜곡 보도를 하면서 자신들이 포로로 붙잡았던 원주민에 대해서도 보고를 올렸고, 그 대가로 다음 항해에서 필요한 만큼의 황금과 원하는 만큼의 노예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하여 다음항해에서 콜럼버스는 17척의 배와 200여 명의 선원을 투입하여 노예와 황금을 가져오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했다. 그들은 카리브 해의 섬들을 차례로 돌며 원주민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황금을 약탈하고 여자와 어린이들을 성적 노리개와 노예로 사로잡았다. 현재 아이티 섬 근처에 근거지를 마련한 콜럼버스는 1495년 대규모 노예사냥에 나섰다. 그들은 아라와크족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 1500명을 스페인인들과 개들이 지키고 있는 우리 안으로 몰아넣은 뒤,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500명을 골라 배에 실었다. 이들 가운데 200명이 항해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훗날 콜럼버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를 계속 잡아 보냅시다라고 하며 기록을 남겼다.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거대한 금광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아이티의 시카오 지방에서, 14세 이상의 원주민 모두에게 석달마다 일정한 양의 금을 모아오라고 명령했다. 금을 발견하면 구리표식을 달아줬지만, 그게 없는 원주민들은 발견되는 즉시 두 발이 잘린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곳에도 황금 덩어리는 없었고, 결국 원주민들은 도망쳤으며, 그 과정에서 사냥개를 대동한 선원들에게 붙잡혀 죽어갔다. 이에 분노한 아라와크족은 저항군을 모아 머스킷 총으로 무장한 스페인인들에 맞섰는데, 스페인인들은 사로잡은 포로의 목을 매달거나 불태워 죽였다. 이런 콜럼버스의 학살과 수족절단으로 인해 아이티의 원주민 25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498년과 1501년 콜럼버스는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제3, 4차의 항애세서 트리니다드섬과 베네수엘라 해안 그리고 파나마 일대를 탐색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의 북미대륙을 다녀온 이후로부터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많은 원주민들이 서양인들에 의해 탄압받고 학살당했고, 지배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으며, 스페인 왕실에 거짓 보고까지 해간 인물이었다.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신대륙 개척자로 인식되고 있는 인물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토착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원수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2009년 당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콜럼버스의 날로 지정된 1012일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꿈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았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무수히 많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노예로 일삼았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제는 그가 저질렀던 잔혹한 침략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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