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절망과 희망 정용섭의 설교비평 3
정용섭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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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는 그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다. 아니 그 사람 자체이다. 설교를 두려워하는 목사는 이미 목사가 아니다. 설교는 참 아름다운 종합 예술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설교는 무엇인가 묘하게 뒤틀려 있다. 저자의 말대로 설교가 어느 샌가 심리학에 물들어 버렸다. 설교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는 제약이 되어 버렸다. 설교 시간은 조는 시간 내지는 심리 가연 시간이 되어 버렸다. 시골 시장의 약장수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강압적인 설교를 한다.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다. 이 교회에 다니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카피 문구가 교회마다 넘쳐난다. 삶의 고민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설교가 텅 비게 되고, 텅 빈 설교에 은혜를 받는 성도들을 보면서 필자가 느꼈을 절망이 어느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다. 기라성 같은 목사들의 설교를 거침없이 난도질하면서 말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 같은 사람들아 외치며 독설을 퍼붓고 있다. 분명 저자는 세례 요한같은 사람이다. 이 시대의 설교자들에게, 그리고 설교 예비자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외치고 있다. 본질로 돌아가라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교수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분명 귀담아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본질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판넨베르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교수의 설교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판넨베르그의 설교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의 context가 우리의 context와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절대 기준이 설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각 사람이 처한 context가 다르기 때문에 text에 대한 해석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설교학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초지식이다. 그러나 정교수는 이것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분명 들을 것이 있는 그의 비평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독선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 교회 강단의 설교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몇 사람의 설교를 듣다보면 거기에서 거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아는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축구와, 신용카드와 설교의 공통점은 돌려막기라고. 같은 예화, 같은 포맷, 같은 설교문을 가지고 품앗이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신학 서적보다는 설교집이 많이 팔린다. 전병욱 목사의 설교집은 그 중에서도 베스트셀러이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교회에서 먹힌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서글프게 만든다.

  목회자는 삶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설교한대로 살아야 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그 사람의 설교와 삶이 일치가 되느냐가 내가 목사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김동호 목사를 나는 존경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 분은 자기가 설교한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제대로 하라는 정교수의 비판은 한국 교회 설교의 절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다. 왜 말한 대로 못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나 제대로 해라, 설교나 제대로 하라는 말은 바닥을 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국 교회 설교의 절망을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희망은 무엇일까? 설교에 대한 비평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한국 교회에서 갖게 되었다는 것이 한국 교회설교의 희망이다. 그리고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부여잡고 고민하는 젊은 목회자들의 삶이 설교의 희망이다. 그들이 있기에 아직 한국 교회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기득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보수적인 설교비평이 나왔다면 이젠 진보적인 설교 비평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설교비평이 독선으로 흐르지 않게 될 것이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이번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부록일 것이다. 특히 거침없이 변론하는 조헌정 목사님의 변론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벌써부터 4권이 기다려진다. 누가 대상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변론들이 올라올 것인가? 이것이 설교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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