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3 - 욕망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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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선물을 줬다. 지금까지 사고 싶었던 책들을 거금 10만원이 넘게 구입을 한 것이다. 그래도 권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아마 펠레폰네소스 전쟁사가 3만이 넘는 거금을 들인 책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책을 받아보니 그 분량이 만만치 않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었던지라 최선까지는 아니지만 열심히 읽었다. 2주만에 4권이 넘는 책을 읽었디면 열심히 읽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열심히 읽는 중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이다. 권당 2~3일씩 8일만에 3권을 전부 읽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공을 들였건만 아무리 많이 쳐줘야 별 3개를 넘지 못한다. 별 3개가 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했다는 것또한 사실일 것이다. 1권과 2권은 사실 가격을 조금 더 올려서라도 2권이 아니라 1권으로 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겹치는 부분들이 꽤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분량 자체가 방대하다던가, 혹은 이윤기 선생처럼 주제에 맞추어 책 내용을 열거하여 주제를 가지고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여 이렇다할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정말 재미있게 글쓰는 솜씨가 탁월하여 이윤기 선생처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지도 못한다.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신선하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소득이 없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는 입장에서 이윤기 선생의 책은 몇번이나 읽어도 물리지 않겠지만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는 딱 한번이다. 몇번을 두고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솔직하게 들지 않는다. 나에게 이 책은 소장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봐도 그다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이 남는달까? 만약 저자가 북유럽 신화를 일반 대중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재미있게 읽히고 싶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이윤기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는 이제 막 저자의 쉼플리가데스를 떠났다고 할까? 앞으로 저자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관심을 가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책에 대한 호감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1~3권까지의 내용이 전부다 그렇겠지만 특히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3권이다. 북유럽 신화라는 세트로 책을 엮었고, 3권의 주제는 북유럽 영웅들의 이야기이지만 40%는 북유럽 신화의 영웅이야기이지만(그것도 바그너의 오페라와 비교하다 보니 쓸데 없이 분량이 늘어났고,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느김을 받는다.) 60%는 북유럽 신화의 영웅이 아니라 중세 시대의 영웅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아무리 변명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두 부류의 이야기를 북유럽 신화라는 타이틀로 묶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1~2권을 약간 두껍게 해서 한 권으로 묶더라도 3권은 둘로 나누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약 그렇게 구분을 짓는더라도 바그너의 오베라나 혹은 다른 오페라와 신화의 내용을 비교하고, 거기에 더하여 이 오페라들이 씌여진 시기와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후반 중세 시대 영웅과 기사들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더 첨가하여 다른 권으로 묶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북유럽 신화의 영웅들과 중세 시대 영웅들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원저자의 구성 의도가 너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참신한 이야기, 그리고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빈약한 구성으로 끼워 맞추는 것 같아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보면 쓴 소리겠지만(어지 보면 비방으로까지 받아들일 법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공과 구성력으로 보건대 책 값이 과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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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0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곧 구판 1권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저도 그리스 로마 신화을 많이 읽어서
북유럽 신화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전에 <반지의 제왕>을
즐겨 읽은 독자들은 몰라도 저 같은 처음 북유럽 신화를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생소한 신화 속 인물과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거 같네요.

saint236 2011-07-03 00:19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쉽습니다. 영화로, 만화로, 곳곳에서 북유럽 신화를 욹어 먹은 것들이 많거든요.

마녀고양이 2011-07-0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역시나 이런 평을 주시네요.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북유럽 신화 구매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리뷰 감사드려요~ 다시 쿨럭~~~

saint236 2011-07-10 14:18   좋아요 0 | URL
신화는 상당히 매니악한 부분인지라 보는 눈들이 꽤 높습니다. 저도 쿨럭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 10주년 기념판, 성숙한 인격의 8가지 자질
빌 하이벨스 지음, 박영민 옮김 / IVP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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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림심연(如臨深淵)하며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

  시경 소아편의 소민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감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없고(不取爆虎)
  감히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없나니(不取憑河)
  사람들은 모두 이를 알지만(人知其一)
  그 밖의 다른 것은 알지 못하는 구나(莫知其他)
  두려워하고 또 조심할지어다(戰戰兢兢)
  깊은 연못가에 이른 것처럼(如臨深淵)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如履薄氷) 

  과거 선비들과 위정자들이 자신을 다스리고 경계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여림심연이요 여리박빙이라"는 말만큼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정확하게 경고를 해주는 말도 없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여림심연이요 여리박빙"이라는 여덟 글자를 보았다. 묘하게도 성숙한 인격에 이르기 위한 자질을 저자는 8가지로 꼽고 있다.  

  "용기, 자기 통제력, 비전, 인내, 온유한 사람, 엄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파격적인 사랑" 이렇게 여덟가지는 그리스도인이 인격적으로 성숙함에 이르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하는 필수적인 인격들이다. 이러한 인격을 구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믿음으로만을 강조하다보니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책임감을 소홀히하게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던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시니까라는 안이한 생각에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고리타분한 설교, 도덕주의로 매도해 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은, 성령과 동행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인도해 가시는데 내가 여전히 그대로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살펴본다면 지금 나의 신앙의 상태와 수준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인격의 변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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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2 - 죽음의 예언에서 라그나뢰크까지, 영원한 상징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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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마블사의 만화 "천둥의 신 토르"가 영화화 되어 개봉됐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재미있게 봤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영화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라그나로크(국내에서도 어쩐지 저녁의 이명진 작가의 동명의 만화가 있다. 나중에 인터넷 게임으로 만들어졌다.)의 플롯을 유지한다. 아스가르트의 반대 세력으로 로키를 전면에 내세운 것까지는 신화와 동일하나 세부 내용은 다르다. 신화에서 로키와 대항하는 신은 하임달(영화 중에 칼을 들고 중무장하고 서 있는 흑인 배우)이지만 영화에서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위해서 토르와 대항하는 존재로 로키가 전면에 등장한다. 안소니 홉킨스가 오딘으로 등장했으며 토르는 몰니르를 빼앗기고 인간이 되어서 인간계로 추방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적대 세력(아마도 신화의 거인족과 난쟁이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디스트로이어라는 황당한 힘에 대항하기 위하여 토르는 묠니르를 얻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한다. 그리고 묠니르를 얻고 원래의 힘을 회복한 토르는 무식한 본래의 모습대로 디스트로이어는 물론 로키까지도 무찌르고 천상과 지상에 평화를 가져 온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할리우드에서 토르와 라그나로크를 팔아먹은 전략이다. 할리우드는 신화의 커다란 모티브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볼거리로 바꾸어 버렸다. 거인족 대신에 왠 로봇이 등장할 때는 깜놀했다.  

  몇년전 유명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이다. 톨킨이 북유럽 신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들을 따와서 만든 신화. 과거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것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로 라그나로크라는 커다란 틀은 유지한다. 다만 선악의 대립이 신과 거인이 아니라 중간계와 요정의 연합군이라는 선과 트롤과 난쟁이 같은 지하 세계의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사루만과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우론이라는 악으로 바뀐 정도? "마이 프레셔스"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골룸은 아마도 "안드바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나중에 나오는 유령 군단은 "무스펠의 아들들"에게서 혹은 "아인헤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북유럽 신화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가지고 노는 장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 만화 중에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신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올드, 베르단디, 스쿨드"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 북유럽 신화에서 운명의 실을 잣는 운명의 여긴 노르네들의 이름이다. 오딘의 명을 따라 죽은 전사들을 발할로 인도하는 처녀신들의 이름은 발키리이다. 발키리는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이름 내지는 직업이다. 비프뢰스트는 아스가르트로 들어가는 무지개 다리의 이름인데 이것은 창세기전이라는 국산 게임에 등장하는 비공정(비행기의 일종)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로 철저하게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면 북유럽 신화의 그림자들이 수두룩하다. 거기에서 모티브를 따오기도 하고, 단순히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재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장 재미있게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 할리우드요, 문화 산업이다. 그들의 상업성이 신화를 이리꼬고 저리꼬는 것이 아쉽고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꼴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한없이 부럽다. 그렇게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팔아먹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신화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신화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 내공이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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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신들의 보물에서 반지전설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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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회를 참 좋아한다. 생굴은 물론 익힌 굴도 비린내가 나서 싫다고 입에도 대지 않는 나이지만 유독 생선회는 정말 좋아한다. 곁들여 나오는 여러가지 음식들(스키다시)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회에만 집중해서 지인의 지갑을 상당히 가볍게 만든 일도 있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내가 왜 그렇게 회에 집중하게 되었는가? 회가 가지는 매력이 무엇이기 때문인가? 조리법 때문이다. 신선한 회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말장난 같지만 회는 선이 살아있는 생선(生鮮)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이 살아 있는 생선을 가지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재료 원래의 맛을 아주 감각적으로 끌어 내는 것이 회의 조리법이다. 일견 아무렇지도 않게 썰어 놓은 것 같지만 생선의 종류에 따라 회를 뜨는 칼의 종류도, 칼을 넣는 부위와 기술도 모두 다르다. 일례로 복어는 최대한 얇게 뒷면의 접시가 비칠 정도가 되어야 하지만 우럭이나 광어의 회는 약간 두툼한 것이 좋다. 복어처럼 회를 뜨면 우럭과 광어가 가지고 있는 맛이 사라져 버린다.(갑자기 침이...) 

  뜬금없이 회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비슷한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가장 잘 끌어내는 것이 회를 조리하는 목표이듯이 나는 이 책이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잘 끌어냈기를 바랬다. 오딘, 토르, 로키 등등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투박함을 생생하게 전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감이 철저하게 무너졌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책은 온갖 조미료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매운탕이었다. 생선이 원래 가지고 있는 맛을 고춧가루와 미원 설탕 같은 양념들로 잔뜩 치장해 놓아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 그러한 매운탕 말이다. 매운탕이 나름대로 맛은 있지만 생선 고유의 맛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이 책은 북유럽 신화에 대하여 설명은 하고 있지만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투박함을 저자의 생각과 신화학이라는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놓았다. 그 결과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그 맛이 사라져 버렸달까? 

  저자의 표현대로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비하여 투박하다. 그리스 신화가 도시의 세련된 맛을 가지고 있다면 북유럽 신화는 촌의 순수함과 투박함이 아직 남아 있다. 아직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에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한다거나 혹은 줄거리를 자세하게 기록한다거나, 최소한 부록으로라도 중요한 내용들을 번역해서 붙여 놓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자의 생각이나 판단을 과도하게 집어 넣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신화를 같을 수가 없다. 문화나 신화의 속 뜻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지도라는 면에서 그렇다. 그리스 신화도 처음부터 그렇게 세련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접하고 원문이 무엇인지 여러 번역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평가나 해석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재료의 맛에 대해 어느 정도의 파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이기 때문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책들도 사색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낯선 북유럽 신화를 이런 식으로 읽는다는 것은 자칫 신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크다. 마치 단군신화를 사회 시간에 배운 그대로 한기지로만 해석하는 한국 사람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故 이윤기 선생에 비하여 말발이 딸린다. 좀체로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게다가 대약 270페이지 정도의 분량 가운데 40페이지는 거저 먹은 것 같아 아깝다. 저자의 말과 용어 해설은 1권이나 2권이나 동일하다. 편집도 그렇고 용지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15000원이라는 책값이 약간은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 쉽다는 점에서는 초반 입문서로 권할만 한데, 저자의 판단과 개입이 많다는 점에서는 자칫 신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 조심스럽다. 만약 북유럽 신화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위 말하는 중급자 이상이라면 굳이 잃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에 입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일단 신화가 가지는 재미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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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교양강의 -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세상살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5
푸페이룽 지음, 정광훈 옮김 / 돌베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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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가 진심편에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父母俱存 兄弟無故)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이중 셋째 즐거움 "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 而敎育之)"는 바로 맹자 자신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닐까? 만약 공자가 살아 있어서 맹자를 직접 가르쳤다면 바로 이러한 즐거움에 푹 빠져 살지 않았을까? 공자에게 두 가지 애석함이 있었다면 시대가 그를 알아보고 사용받지 못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맹자와 같은 영재를 얻어 직접 가르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맹자는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한 영재요, 공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나아가 발전시켰다. 오죽하면 유교를 일컬어 공맹의 도라고 하겠는가? 

  유교에서 맹자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그의 가르침은 굳이 내가 리뷰에서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책을 보면 알 것을 굳이 요약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왜 공자의 뒤를 잇는 사람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공자를 일컬어 창업자라고 한다면 맹자는 개량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자가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인간의 도리에 대한 사상을 주창했다면, 맹자는 그렇게 내려온 가르침을 충분히 터득하고 체계화하고 더 쉽게 풀어냈다고 하겠다. 누가 더 천재적인 사람이냐를 묻는 것은 참 미련한 질문이겠지만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꼽아보자면 개인적으로는 공자에게 한표를 주고 싶다. 창조형 천재와 개량형 천재의 기가 막힌 조합은 가끔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는데 동양의 유교와 서양의 기독교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바울을 만나 체계화되고 발전되어 널리 퍼져나갔듯이 공자의 가르침이 맹자를 통해 체계화되고 발전되고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춘추 전국 시대 백가 중에서 사라져 버린 많은 사상들은 사상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맹자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얻지 못한 불행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맹자를 만나 체계화 된 유교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심지어는 오늘까지 사회의 규범이 되었고, 근간이 되었다. 비록 저자가 주장하듯이 장구한 역사 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유교를 간판으로 걸었지만 실제로는 법가에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다른 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한가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저자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교가 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맹자와 같은 유형의 천재들이 계속 등장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였기 때문이 아닐까? 철저하게 삶과 관련된 유교의 가르침을 달달 외워서 과거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그래서 좋은 벼슬을 얻으려는 단기적인 이익을 목표로 일로매진했던 선비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유교가 딱딱하게 굳어져가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삼강오륜의 의미가 무엇인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문자적인 의미만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는 것이 과거 내가 경험한 유교 교육의 전부이다.) 오늘날 교육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공부 기계, 좋은 점수 획득을 위한 스킬을 습득하는데 올인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유교의 역사를 살펴 보는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참 묘한 것이 공자와 맹자의 관계가 "공자 교양 강의"와 "맹자 교양 강의"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예전에 "공자 교양 강의"를 보고 난 후에 생선 토막을 보고 생선을 알았다고 하지 않듯이 토막토막 내 놓은 이 책을 보고 공자를 알았다고 할 수 없다고 평했었다. 새롭고 뭔가 심오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지만 아무리 열심히 봐도 깔끔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유가의 가르침들을 10가지 주제에 맞추어서 유교에 대하여 깊이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깔끔하게 서술해 놓았다. 마음의 양식은 풍성하게 얻었는데도 군더더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냉모일을 한 그릇 먹고 난 후 배는 부르지만 입맛은 깔끔한 것처럼 말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하여 입문 지식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자 교양 강의"보다는 "맹자 교양 강의"를 읽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ps.푸페이룽의 "장자 교양 강의"가 먼저 나왔는데 몰랐다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저자의 글솜씨에 반해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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