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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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어린 시절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본다. 첫째 9시 땡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되는 대통령의 근환에 대한 뉴스가 항상 처음을 장식했다. 소위 말하는 땡전뉴스다. 둘째 참 매웠다. 어쩌다가 시내에 나갔다가 매캐한 연기가 날리는 것을 보았다. 곧이어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최루탄이구나" 생각했다. 며칠 뒤 학교에 갔는데 운동장에 까맣고 조그만 플라스틱 파편들이 떨어져 있었다. 친구들하고 이게 뭐야 신기해 하면서 가지고 놀다가 이마에 난 땀을 훔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지더니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수도가에 가서 물을 틀어 놓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 까맣고 조그만 플라스틱은 최루탄 파편이었다. 셋째, 교과서에 인가, 교실 전면에서인가 훤한 이마를 드러내놓은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내게 전두환의 시대는 기억의 저편에 있는 빛바랜 사진이다. 그런 빛 바랜 사진에 색을 칠하고 다시 복원을 해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복원해 낸 전두환의 시대를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다.

 

  야만의 시대!

 

  전두환의 시대를 평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 인간적인 상식이나, 수치심, 예의는 모두 실종되어 버리고 오로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모든 것을 덮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인 스캔들이 많았고, 무리수가 많았으며, 고문과 폭행이 난무했다. 박정희의 시대가 어떠한지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박정희의 길을 짧은 시간 안에 가자 충실하게 따라갔던 사람이 전두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지만 청출어람이라고 하겠다.

 

  광주 민주화 운동,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이한열 사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굵직한 사건들만 뽑아도 5공의 시절은 폭력과 고문으로 점철된 시대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하나 꼽자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8년 1월 13일 치안 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잡혀갔고 폭행과 고문을 받던 중 1월 14일 고통 속에 사망하게 되었다. 박종철의 죽음을 조용히 덮으려던 수사관들의 음모를 알게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를 통하여 사건이 기사화 되었으며, 다음날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발표를 하였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저 유명한 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공식발표랍시고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나 존엄성이 아니라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아니라, 권력 유지를 위해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었다.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이용했다. 전 국민적인 공포감을 조장하여 코묻은 아이들의 주머니돈까지도 빼앗아 갔던 평화의 댐 모금 운동, 프로 스포츠, 영화와 성의 상품화라는 3S 정책! 어디에도 인간에 대한 눈꼽만큼은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다.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골프를 치러 다니시는 그분의 대범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으며, "왜 나만갖고 그래!"라는 억울한 항변은 그분의 정신구조가 이미 일반인의 상식으로 진단이 불가능한 대인배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까?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필두로 한 전두환 각하 슈퍼맨 만들기 프로젝트는 감히 무엇이라 평할 수 없는 고차원의 코미디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에 이르러서 진정한 코미디가 완성된다.

 

  워낙 대인배이신 저들이야 종이 다르다고 치자! 대인배이신 그분들은 자신들에게 예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이미 선언하셨으니 말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다른 사건은 둘째 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만 집중해 보자.

 

  박종철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낄 사람이 하나 있다. 박종운이다. 박종철이 고문을 받고 죽어가면서까지 감쌌던 인물이다.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고문했던 이유는 박종운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 그가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었으며, 지금도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다. "시장경제를 지키고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 박종철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는 드립질을 해대고 있다. 최소한 박종철에 대한 책임감이나 예의가 있다면 그가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박종철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말이 많이 과격해졌다.)

 

  안상수도 마찬가지다. 당시 검찰을 지휘했던 검사 가운데 한 사람이 안상수이다. 그런 이유로 1995년인가 안상수는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에 관한 책을 펴냈고 이를 통해서 권력과 단호하게 맞서서 경찰의 사건 은폐를 막은 장본인이 자기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건 은폐를 막은 사람은 안상수의 상관이었던 최환 부장 검사였고, 이때문에 그는 이후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오히려 안상수는 재판 과정 속에서 박종철 사건을 축소하는데 일조했다는 이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 책의 인세를 전부 박종철 기념 사업회에 기부하겠다."는 그의 제안을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거부하면서 안상수는 박종철의 죽음을 자기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또한 사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며,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5공화국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실세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박근혜의 주변에 모인이들이 3공과 5공의 실세라는 소문은 소문이 아니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박근혜 주변 5.5m안에 55세 이상은 발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 놓았지만, 그의 참모들이 3공과 5공 실세들이라는 것은 이 바닥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골프를 치러 다니고,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것, 광주에 대한 발포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 쿠데타 세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현충원에 묻히는 것, 이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예의가 뭐 어려운가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청산되지 않은 5공, 5공의 모태이며 동일하게 청산되지 않은 3공, 과거를 팔아 현실의 성공을 구하는 기회주의자들 염치를 모르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들이 이 시대를 다시 야만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야만의 시대는 세련되게 포장되어 은밀하게 우리의 삶 속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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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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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민이 보수를 판단다. 판다는 의미는 보수가 어떤 집단인지 연구를 해본다는 의미란다. 김용민에 의하면 보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모태보수, 권력 의지를 가지고 변절한 기회주의 보수,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 다니는 무지몽매 보수란다. 이 모든 보수 위에 자본주의 보수가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잘난 놈, 잘 나고 싶은 놈, 자기를 모르는 놈, 자기밖에 모르는 놈! 잘난 놈과 자기밖에 모르는 놈들은 매우 친하다. 왜?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노는 물이 거의 같으니까? 잘 나고 싶은 놈은 인생의 목적이 잘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이용한다. 과거 자기의 행적도 마케팅 용으로 기꺼이 내놓는다. 자기를 모르는 놈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닌단다. 자기를 모르는 놈 가운데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놈과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는 놈이 섞여 있다.

 

  판다는 두번째 의미는 세일즈라는 말이란다. 보수들이 어떻게 보수를 파는가? 이익을 가지고 상대방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그 이익이 비록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낙장불입, 환불불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떨이 상품을 싼 가격에 산 것이기 때문에 손해봐도 무방하다고 넘어갈 수 없다. 우리 인생의 5년이 하번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수의 실체를 까발린다. 그들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는지, 그들에게는 어떤 철학이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공부를 안하는지, 그들의 지배 구조가 어덯게 바뀌어 가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보수의 몰락이 멀지 않았으니 진보여 꼼꼼히 준비하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한가지! 정말 그럴까? 진보가 꼼꼼히 준비하기만 하면 되는가? 이 무슨 사흘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들어가는 소리란 말인가? 진보는 어떤가? 보수의 몰락이 과연 진보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보기엔 보수와 진보는 동시에 몰락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 진보라고 말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동 구조 또한 보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다. 보수보다 못하다. 보수는 이득을 위해서라면 자기 동료까지도 잘라내는 과감성이 있지만(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국민에게 이렇게 비쳤기 때문이다.) 진보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흠이 있어도 내편이라는 논리로 그들을 감싸기에 바쁘다. 나는 전자를 질나쁜 정치로 보고 후자를 질나쁜 패거리 주의로 본다.(요즘 통진당 사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김용민이 보수를 팔았듯이 나는 진보를 팔아보련다.

 

  진보가 무엇인가? 진보에는 세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 둘째 조금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 셋째 아주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 차이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없다. 전혀 없다. 다만 자뻑의 수준의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모두 자기가 잘난 줄 안다. 그래서 자기들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가 자기들이 잘나서 국민들에게 시혜와 은총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진보는 잘난 자기들이 무지몽매하 국민들을 계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김용민의 책을 통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용민도 자기가 잘난 줄 안다. 그래서 무지 몽매한 이들을 깨워서 그들을 바른 길로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혜와 계몽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하게 대중을 바보로 안다. 그러니 대중들의 소리가 귀에 들리리 없다. 민노총의 일시적인 지지 철회도 심각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왜? 그들은 무지 몽매한 대중은 갈대와도 같아서 조만간 자기를 지지할 것이라 착각한다. 잠시 소나기만 비하면 될 뿐이라는 점도 보수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진보를 어떻게 세일즈하는가? 패거리 정신과 꼰대 정신으로 세일즈한다. 일단 우리편만 되면 무슨 부정을 저지르든지 지켜주겠다고 한다. 부정선거도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행위일뿐 심각한 룰 위반이 될 수 없다. 마지막까지 지켜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도, 당규도 무시한다. 무엇보다 패거리 정신이 최우선 한다. 꼰대 정신은 무엇이냐? 위에서 말한대로 무지몽매한 대중에게 잔소리를 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못된 태도이다. 진보가 매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 혼자만 군자연한 태도로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다.

 

  진보에 희망이 있는가? 없다. 자정 능력도 상실해 버린 진보에 무슨 희망이 있으며, 그게 무슨 진보인가? 언제부터 민주당이 진보였으며, 언제부터 진보 세력들이 민주당에서 쿠사리 먹어가면서 똑바로 못하냐고 비판을 듣게 되었는가? 그럼면서 무슨 진보란 말인가? 꼴통 보수가 넘치듯이 꼴통 진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 강하다. 보수에 이명박, 오세훈의 셀프 빅엿이 있다면 진보에는 이석기와 김재연의 셀프 빅엿이 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을 바라보는 나는 둘 다 팔아버리고 신선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안철수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안철수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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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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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인가? 공유사이트에서 "디스트릭트 9"이라는 영화를 다운받아서 봤다.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 생각없이 SF 영화를 보고 머리나 식히자는 생각에 영화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디스트릭트 9이라는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개봉한지 한참 지난 영화였고, 포스터도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이 아닌지라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스킵 신공으로 봐야겠다면서 다운을 받았다. 그런데 실수를 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의 내용이야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 적지 않겠지만 이 영화는 SF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SF가 아닌 인간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다. 외계인이라는 특별한 생명체를 디스트릭트 9에 몰아 넣고 접촉을 금하는 모습에서 가장 먼저 독일의 게토가 연상이 된다. 비단 독일의 게토뿐이겠는가? 인류 역사상 인종에 따라서, 국가에 따라서, 출신 지역에 따라서, 혹은 건강의 유무에 따라서 편가르고 상대방을 박멸해야할 해충 정도로 여기게 만들 것이 한두번인가?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을 자처하며 국민들을 기만하는 독재자들 또한 한둘이던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 또한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억압과 갈등, 분열을 통치 기술로 삼고 있지 않는가? 좌와 우를 나누고, 꼴통 보수와 종북 좌파를 나누고, 색깔 논쟁을 벌이며, 영호남을 나눈다. 영남은 절라디언을 외치고, 호남은 경상도 문딩이를 외친다. 어버이 연합은 어린 노무자식들이 싸가지 없다면서 까스통을 들고, 젊은이들은 "미친 노친네들"이라면서 까스통 할배를 비난한다. 언론은 이런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정부는 소통하겠노라 고개를 숙이면서도 명박산성을 쌓는다. 그리고 촛불을 든 사람들을 자기 똘마니들을 시켜서(영(등)포라인, 불법 사찰을 피하려면 이정도쯤의 자기 검열은 필요합니다. ㅎㅎ) 사찰하고 고소한다. *찰과 *원은 충실하게 고소하는대로 다 받아 준다. 갈등은 키우고 설득은 포기하면서 나누어 지배하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이덕일의 책은 재미있다. 왜 재미있는가? 첫째는 그의 글솜씨가 대중이 읽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학자들처럼 딱딱하게 써버리면 읽기도 전에 질려 버릴텐데 이덕일의 글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둘째 그의 사관은 참신하다. 모든 사람이 A라고 말할 때 과연 A일까 이렇게 보면 B일 수도 있지 않은가라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카더라는 의문이 아니라 사료에 근거해서 하나하나 논리를 쌓아가는 의문이기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셋째 그의 글은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말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카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말자.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진단하고 해답을 내리는 것이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이덕일은 여기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아마추어처럼, 혹은 시사 평론가처럼 오늘날의 상황을 잔득 늘어 놓고 과거가 어떻고 하지 않는다. 그냥 과거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서 논평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오늘의 현실이 숨겨있다.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유성룡(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는 제목대로 유성룡의 리더십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유성룡의 시대는 조선에게 매우 불운했던 시기이다. 오로지 자기 살길만 챙기는 선조(이덕일은 선조에게 매우 야박한 평가를 내린다.), 치열한 당쟁,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양반층, 변방을 떠도는 인재들, 급변하는 국제 정세! 결국 명과 조선,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삼국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임진년이 밝았다. 국난에 직면해서 국가는 사분오열 편가르기가 심해진다. 전쟁 발발의 책임을 상대당파에 떠넘기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라도 되는것처럼 말이다. 종북장사처럼 강화파, 친왜(일)파 장사가 성행한다. 그 와중에도 집권층은 자기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이순신이나 김덕령 같은 장수들도 팔아먹는다. 국제 정세는 정신없이 바뀌는데 눈감고 귀막고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설령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당파에 불리하다면 사뿐히 무시한다.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설득과 통합은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편가르기와 억압만이 존재한다. 상대방을 분열하여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을 분열하여 지배하니 그 폐해가 얼마나 대단할 것이며, 오래 갈 것인가? 이덕일의 이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성룡의 리더십은 설득과 통합이다. 이는 원칙과 유연함을 의미한다. 원칙이 없는 유연함은 야합이나 짬짜미가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기득권을 위해서 야합하고 헤쳐 모여를 반복하는가? 유연함이 없는 원칙은 상대방을 포용하기 보다는 박멸해야할 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종북, 빨갱이, 문딩이, 절라디언 등등 온갖 증오 섞인 말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포용성이라든가 유연함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상대방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하다.

 

  총선을 치렀다. 이젠 대선을 앞두고 있다. 통합과 설득을 말하고, 오직 자신만이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라 말하는 대선후보들이 한 트럭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이들이 원칙과 유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가? 유연함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가카식의 원칙을 제외하고 정치의 원칙,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후보들을 찾아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표를 위하여 편을 가르고, 갈등을 조장하고, 지역 감정을 부추긴다.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전투 의지를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각인시킨다. 누가 이러한 불행을 막을 것인가? 이 시대의 유성룡과 같은 이는 누가 될 것인가?

 

  문득 두렵다. 유성룡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몽학이라도 나타날텐데. 함께(together)가 아니라 분리와 분열(to getto)로 가는 오늘날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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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럼프다. 책도 읽기 싫고, 서평이라고 끄적거리는 것도 귀찮다. 그동안 유일한 취미였는데 이젠 그런 취지마저 귀찮아진걸 보니 엄청난 슬럼프다. 6월에 이사를 했고, 적응하느라 바쁜 척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간만에, 정말 간만에 2시간을 앉아서 책을 보았다. 그래도 꾸준하게 책은 산다. 점점 못읽고 책장에 꽂혀진 책들은 늘어만 가는데 그래도 계속 책을 산다. 그래서 7월에는 조금 쉬운 책들로 골라봤다.

 

 

 

 

 

 

 

 

 

 

 

 

 

 

 

 

 

 

 

 

 

 

 

 

 

 

 

 

 

 

  반값 세일로 나온 책들과 특가로 나온 책들을 주로 공략했다. 그런데 묘하게 요즘 한국 사회의 사회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책들인 듯 싶다. 이번 달에는 기필코 다 읽으리라. 일단 지난 달에 사 놓은 유성룡을 먼저 읽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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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7-19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엔 시간도 없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책읽기를 거의 못해요.ㅜㅜ
기필코 7월엔 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도록 응원할게요.^^
만화 전두환과 박정희는 갖고 있어요.
요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박정희를 다시 봐야겠어요~

saint236 2012-07-19 14: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제부터 박정희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카스피 2012-07-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에 이사가셨으면 이젠 좀 안정이 되셨을테니 슬슬 독서에 시동 거실때되었지요^^

saint236 2012-07-20 10:26   좋아요 0 | URL
어제 만화 전두환, 만화 박정희 다 봤습니다.
 
교회, 스타벅스에 가다 - 그란데 열정을 품은 에픽 라이프
레너드 스위트 지음, 이지혜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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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크리스천은 에픽(EPIC) 인생을 살아야 한다.

 

  Experience 어정쩡하게 중도에 머물러 있지 마라. 현대 사회의 특징은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중간

                   지대의 몰락이다. 복음은 이성이나 뜨뜨미지근한 경험이 아니라 확실한 체험이다. 

                   체험을 회복하라.

 

  Participation 예수님의 사명에 동참하라. 우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을 우리의 삶

                    과 공동체의 경험 속에서 구체화해야 한다. 좋은 교회(Good  Church) 즉 문밖으로

                    나가는 교회(Get out of door church)가 되어야 한다.

 

  Images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분명히 하라. 또한 셀러브러티를 조심하라. 이것은

             이 시대의 새로운 우상이다.

 

  Connection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라.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가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

                   하나님과 성도와 그리고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네 가지에 기반된 에픽 인생은 열정으로 가득한 인생이다. 이것이 이 책의 요점이다. 스타벅스의 기업 경영 전략과 문화 코드를 가지고 교회 사역의 방향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더 비비 꼬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중간까지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교회가 경영이나 문화적인 코드다 하면서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쳤기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는가? 시도는 참신하고 좋으나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설명에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저자가 들으면 자신의 의도를 오해했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지루함을 참고 마지막까지 다 읽어 본 느낌은! "so so" 교회가 스타벅스에 갔다가 예배 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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