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어린 시절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본다. 첫째 9시 땡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되는 대통령의 근환에 대한 뉴스가 항상 처음을 장식했다. 소위 말하는 땡전뉴스다. 둘째 참 매웠다. 어쩌다가 시내에 나갔다가 매캐한 연기가 날리는 것을 보았다. 곧이어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최루탄이구나" 생각했다. 며칠 뒤 학교에 갔는데 운동장에 까맣고 조그만 플라스틱 파편들이 떨어져 있었다. 친구들하고 이게 뭐야 신기해 하면서 가지고 놀다가 이마에 난 땀을 훔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지더니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수도가에 가서 물을 틀어 놓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 까맣고 조그만 플라스틱은 최루탄 파편이었다. 셋째, 교과서에 인가, 교실 전면에서인가 훤한 이마를 드러내놓은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내게 전두환의 시대는 기억의 저편에 있는 빛바랜 사진이다. 그런 빛 바랜 사진에 색을 칠하고 다시 복원을 해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복원해 낸 전두환의 시대를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다.

 

  야만의 시대!

 

  전두환의 시대를 평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 인간적인 상식이나, 수치심, 예의는 모두 실종되어 버리고 오로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모든 것을 덮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인 스캔들이 많았고, 무리수가 많았으며, 고문과 폭행이 난무했다. 박정희의 시대가 어떠한지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박정희의 길을 짧은 시간 안에 가자 충실하게 따라갔던 사람이 전두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지만 청출어람이라고 하겠다.

 

  광주 민주화 운동,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이한열 사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굵직한 사건들만 뽑아도 5공의 시절은 폭력과 고문으로 점철된 시대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하나 꼽자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8년 1월 13일 치안 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잡혀갔고 폭행과 고문을 받던 중 1월 14일 고통 속에 사망하게 되었다. 박종철의 죽음을 조용히 덮으려던 수사관들의 음모를 알게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를 통하여 사건이 기사화 되었으며, 다음날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발표를 하였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저 유명한 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공식발표랍시고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나 존엄성이 아니라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아니라, 권력 유지를 위해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었다.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이용했다. 전 국민적인 공포감을 조장하여 코묻은 아이들의 주머니돈까지도 빼앗아 갔던 평화의 댐 모금 운동, 프로 스포츠, 영화와 성의 상품화라는 3S 정책! 어디에도 인간에 대한 눈꼽만큼은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다.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골프를 치러 다니시는 그분의 대범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으며, "왜 나만갖고 그래!"라는 억울한 항변은 그분의 정신구조가 이미 일반인의 상식으로 진단이 불가능한 대인배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까?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필두로 한 전두환 각하 슈퍼맨 만들기 프로젝트는 감히 무엇이라 평할 수 없는 고차원의 코미디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에 이르러서 진정한 코미디가 완성된다.

 

  워낙 대인배이신 저들이야 종이 다르다고 치자! 대인배이신 그분들은 자신들에게 예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이미 선언하셨으니 말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다른 사건은 둘째 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만 집중해 보자.

 

  박종철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낄 사람이 하나 있다. 박종운이다. 박종철이 고문을 받고 죽어가면서까지 감쌌던 인물이다.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고문했던 이유는 박종운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 그가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었으며, 지금도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다. "시장경제를 지키고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 박종철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는 드립질을 해대고 있다. 최소한 박종철에 대한 책임감이나 예의가 있다면 그가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박종철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말이 많이 과격해졌다.)

 

  안상수도 마찬가지다. 당시 검찰을 지휘했던 검사 가운데 한 사람이 안상수이다. 그런 이유로 1995년인가 안상수는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에 관한 책을 펴냈고 이를 통해서 권력과 단호하게 맞서서 경찰의 사건 은폐를 막은 장본인이 자기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건 은폐를 막은 사람은 안상수의 상관이었던 최환 부장 검사였고, 이때문에 그는 이후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오히려 안상수는 재판 과정 속에서 박종철 사건을 축소하는데 일조했다는 이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 책의 인세를 전부 박종철 기념 사업회에 기부하겠다."는 그의 제안을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거부하면서 안상수는 박종철의 죽음을 자기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또한 사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며,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5공화국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실세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박근혜의 주변에 모인이들이 3공과 5공의 실세라는 소문은 소문이 아니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박근혜 주변 5.5m안에 55세 이상은 발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 놓았지만, 그의 참모들이 3공과 5공 실세들이라는 것은 이 바닥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골프를 치러 다니고,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것, 광주에 대한 발포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 쿠데타 세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현충원에 묻히는 것, 이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예의가 뭐 어려운가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청산되지 않은 5공, 5공의 모태이며 동일하게 청산되지 않은 3공, 과거를 팔아 현실의 성공을 구하는 기회주의자들 염치를 모르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들이 이 시대를 다시 야만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야만의 시대는 세련되게 포장되어 은밀하게 우리의 삶 속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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