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랑 한달에 한권은 고전을 읽자고 시작한 모임이 어느덧 이틀 뒤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이제야 건드리기 시작하니 언제 다 읽는단 말인가? 오늘 내일 잠을 줄여야 하는 것인가? 집에서 책 한장 펴보지 못하게 하는 아이들만 애꿎게 원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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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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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은 약사에게 OO은 OO에게"

 

  요즘 들어 많이 보는 카피 문구다. 일에 대한 전문성을 나타내는 카피인데 과거에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다소 정치적인 표어를 사용했었고, 요즘은 모 구직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나름대로 그 책을 한단어로, 혹은 한마디의 문장으로 요약한다. 때론 책의 내용을 다루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인데, 그것이 책의 내용과 연관이 있다면 괜찮은 책으로, 연관이 없다면 뭔가 아쉬운 책으로 평가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소설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이 전문성이라는 말은 이 책이 꽤나 부실하다는 말이다. 경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소설책을 보고 내린 결론이 경제의 전문성이 아니라 글쓰기의 전문성이니 얼마나 이 책이 문학작품으로서 부실한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한다. 한국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해왔던 경제 관료들 중 카르텔을 형성한 이들(이들을 모피아라 칭한다.)이 배후 조종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국가의 운명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와 경제 전쟁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가진 소설이니 꽤나 기대가 될 법도 하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애정사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이는 매우 긍정적인 일이겠으나 문제는 이런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 식상한 소설을 만들어 버렸다는데 있다.

 

  우석훈이라는 이름값 때문이랄까, 아니면 모피아에 대해 줄기차게 공격해 왔던 나꼽살과 홍보 효과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MB 정권의 경제 정책에 학을 뗀 사람들의 관심 때문일까?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 책은 책의 완성도에 비하여 꽤 많이 팔린 축에 속하는 책이다. 나역시도 이 책을 보면서 "우석훈이 소설을?" 이런 호기심에 책을 살까 말까 고민했었고,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는 순간 충동적으로 구매를 했다. 영화 판권도 팔렸다는 책이라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중반부까지는 그래도 흥미 진진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내 정신세계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인지 환타지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경제 정책과 환율, 페이퍼 컴퍼니,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다툼이 꽤나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현실적인 묘사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러한 묘사는 얼음이 녹아버리듯이 사라져 버렸고, 그 사이를 만화와 같은 억지스러움과 끼워맞춰진 해피엔딩이 대체해 버렸다. 역시나 우석훈에겐 소설이 무리구나라는 생각을 해봄과 동시에 이 책을 영화로 각색하려면 각색하는 사람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지 않고서는 만들어봐야 흥행헤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석훈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위하여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택했다는데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혹 우석훈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그의 말과는 달리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닐까? 소설에 별점 하나를 주면서도 과한 것 같아서 못내 마음이 쓸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 한번은 새로운 경험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가고 이런 실력으로 두번다시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소설을 스고 싶다면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습작을 한다음에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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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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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상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공을 들였던 질문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털어서 날고 긴다는 모든 철학자들이 한번씩은 고민하면서 족적을 남겼을 질문인데 이 질문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방대한 저서로 남겨서 오늘까지 내려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은 아마도 플라톤일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를 잇는 신학의 입장에서의 국가론, 근대적인 국가론의 이론서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홉스의 리바이어던, 경찰국가, 법치국가 등등등...국가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소리친 철학자들을 꼽자면 아무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고 해도 모두 다 기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국가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우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연구하게 될 담론이란 말이다.

 

  모든 철학자들이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상적인 국가의 정체를 꿈꾼다. 오늘날에는 이미 폐기된 왕정 국가도, 경찰 국가도, 귀족제도, 참주제도, 과두제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새로운 정체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국가의 정체는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으며, 이것은 정체의 완성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발전할 여지를 품고 있는 미완의 작품일 뿐이다. 끊임없이 이상 국가를 꿈꾸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한발 나아가면 한발 멀어지는 것이 이상국가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철학자들은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면서 그에 대해서 역설했으며, 이것들을 어느 하나로 딱 묶어서 말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학자들의 이상국가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고, 오늘날에 그것을 어덯게 이해할 것이냐 살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철인국가이다. 우리가 철학시간에 한두마디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이런거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는 것이 있고, 그 본성에 맞는 역할을 감당할 때 그 사회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된다. 철인은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군인이 되어서 나라를 보호해야 하며, 생산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계층에 종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거칠게 표현했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이것인데 왜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철학자는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형상과 질료, 이데아와 이데아의 모방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은 중세를 거치면서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루터를 통하여 인간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신국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른 것은 뒤로 젖혀두고 나는 철학자에 의한 국가 통치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가 과연 이상 국가일까? 태어나면서 정치 지도자에 맞추어 진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가 이상 국가라는 말을 조금 비틀어보면 절대 왕정, 혹은 동양의 천자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한 인물(그것이 철학적인 식견이 있는 인물이어도 좋고, 천명을 받은 천자여도 좋다.)이 정치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은 체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마치 아무런 능력이 없으면서도 혈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듯이 말이다. 멀리갈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보지 않았는가? 정작 본인이 무엇인가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이전에 벌써부터 위대하신 영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로 차기 대선후로로 이름으로 올린 박근혜 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그를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등장과 동시에 대통령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그게 합당한 것인가? 플라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합당할 수도 있다. 그가 철학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철학이라는 것을 어덯게 해석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정치에 합당한 철인이라는 판단은 누가 도 내린다는 말인가?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사실상 실패가 이미 예견된 국가론이 아니겠는가? 그의 대부분의 철학이 그렇듯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을 무시하니 현실적인 감각이 필요한 국가론이란 얼마나 형용모순의 말인가? 감히 되먹지도 않게 플라톤을 비판하고 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다만 그가 한 말 중에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철학이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국정 철학, 국정 철학하는데 그게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철학이라는 것은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인데 그 중심이 없이 당파적인 이해타산에 따랄 끌려다니던 것이 우리 나라 정치 지형의 모습이 아닌가? 한국에게 이상국가는 그저 이상으로만 존재할 것 같아서 씁쓸하다.

 

 마지막으로 고전의 힘이란 무섭다.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국가를 읽어본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이 서광사에서 나왔던 플라톤의 국가에 비하면 천병희의 국가는 읽기가 쉽다. 철학적인 용어라든지, 개념 설명, 편역 같은 것이 빠져버리고 가독성을 높인 결과물이기 대문이다. 이것 대문에 천병희를 욕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천병희는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노고 때문에 국가론을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나아가서 고전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할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고전들을 번역해주는 천병희와 출판해 주는 출판사 숲에게 무한 감사할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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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4-25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역본을 찾아서 주문했어요.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그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더라구요. 배송비까지 하면 꽤 높잖아요 여기서는...
어떤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죠.

saint236 2013-04-25 08:39   좋아요 0 | URL
가독성은 서광사판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특정 계층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은 한국에 팽배합니다. 일본을 따라 가려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몇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건축을 위한 철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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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사람들이 흔히 하는 대답은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도 철학이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집을 짓는데 무슨 철학이 있단 말인가? 건물만 잘 지으면 되지라는 말과 함께 괴짜 취급받기가 쉽상이다. 기껏해야 건축에서 필요한 철학이라봐야 건물을 지을 위치를 선택하는 풍수지리 정도라고나 할까? 건물은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쓰임에 맞도록 지으면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예쁘게 지으면 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가 건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이정도이다. 건물을 짓는 사람에 대해서도 당신의 건축철학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기껏해야 건축학과 교수에게나 물을 법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건축에도 분명하게 철학이 필요하다 선언한다. 건물을 짓는 행위 자체가, 건물의 위치를 선점하는 것에도, 그리고 건물의 모양을 결정하는 것도 모두다 철학적이라는 말이다. 건축가에게 철학이 부재하게 될 때 건물은 인간의 생활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까지 건축에 대해서 철학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 건축물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한강 주변에 늘어선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외국사람이 평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 한강 주변에 늘어선 아파트들을 보여 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었을 때에 외국인은 왜 저렇게 멋대가리없이 건물을 이렇게 지어 놓았는가, 한국이 분단국가라고 하는데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북한의 공격을 늦추기 위하여 차폐물로 사용하려고 저렇게 지었는가 물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비싸고 조망권도 좋고, 꿈의 집이라고 불리는 한강변의 아파트들도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멋대가리 없이 전시에 차폐물 정도로 지어진 그런 쓸모 없는 집일 뿐이라는 말이다. 

  얼마전 개봉되었던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보자. 그 영화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짊문은 당신은 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는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건물에 담겨진 추억과 그 추억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건축가들은 어떻게 대답할 껏인가라는  질문을 계속적으로 던진다. 건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라든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을 보존하는 것은 건축공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건축가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대답할 문제이다. 

  건축을 위한 철학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이 책은 건축가를 위한 철학 개론이다. 처음 이 책을 펴면서 건축물은 어떠한 철학을 담고 만들어기는가라는 부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다못해 판옵티콘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철학의 흐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제목을 가리고 본다면 대학생들이 철학개론 수업 시간에 교재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철학에 집중한다. 간혹 건축의 미학에 대해서, 건축물의 비례에 대해서 다루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가볍게 지나가는 정도이다. 건축에 대한 철학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같은 배신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이런 철학들이 건축가에게 소화가 되었을 때 그가 어떤 건물을 짓게 될 것인가? 기대가 되지 않는가?

  요즘 시사인을 읽으면서 꽤 흥미를 가지고 읽는 기사가 있다. 행복한 집짓기라는 타이틀로 건국 곳곳에 있는 건축물들을 살펴 보는 것이다. 그 기사에 등장하는 건축물들의 고려 조건은 단가, 재테크가 아니다. 부동산이 가지는 가치도 아니다. 오직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편안한 잠을 자는가, 이웃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그 어디에도 우리가 가파트를 바라보면서 고려하는 항목들은 발견할 수 없다. 건물을 지으면서 경제적인 요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건물을 지을 때 고려해야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건물을 통하여 자신드르이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동체의 이념을 구현하려고 해썼다. 궁궐, 신전, 박물관 뜽 그 어느 것을 둘러보아도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쓴 흔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건물을 짓고 국고가 텅비어서 국가가 멸망하기도 했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건물 자체를 놓고 보자면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어느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가치관이 경제와 효율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도 경제라는 틀 안에서의 효율이다. 이 만큼 투자하면 얼마만큼 수익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는 식의 효율 말이다. 그렇지만 건물은 결코 효율만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 효율을 따진 결과가 아파트고, 교도소 같은 건물이 아닌가? 이젠 진지하게 철학적인 접근, 인문학적인 접근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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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
박기현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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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를 알고 있는가?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그가 러시아에서 자랐기 때문에 맑시즘에 친숙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이것을 가지고 그의 생각을 좌파적이다 빨갱이다 부르는 것이야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다보면 이것은 상식 이하의 내용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그의 출신 성분을 가지고 그를 깎아내리는 의견들이다. 한국 사람도 아닌데 지가 뭘 안다고 한국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느냐는 요지의 글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박노자가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면서 박노자를 언급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 깊이 뿌리박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가장 잘보여주는 케이스가 박노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어 보았는가? 그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있고,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책 제목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공부하였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한국에서 버티지 못하고 노르웨이로 가면서도 한국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박노자를 외부인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배웠던 것이 있다. 우리나라를 거의 천번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며, 흰 옷을 즐겨 입는 백의 민족으로 단일한 혈통을 가지고 있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라도 제기하는 순간 그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한 조작된 신화라는 의심이 든다. 조작이라는 말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실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부각시키는 것 또한 일종의 조작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침략을 받았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기보다는 침략할 힘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며, 흰 옷을 즐겨 입었다는 말은 하얀색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천을 염색해서 입을만큼 공업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예전에 삼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한 교관이 피를 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군인이 군인답지 못하고, 사람들이 군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니 군인이 본분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9백 수십번의 침략을 받았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이 평화를 사랑하기 보다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정확하게 이런 말을 했다. "뭐여? 몇년 내에 천번 채울 것이여?") 단군의 후예요 단일민족이라는 말 또한 조작된 신화일 뿐이다. 앞의 두 가지가 특정한 부분을 부각시킨 것이라면, 후자는 말도 안되는 내용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나라의 성씨 가운데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조작된 신화를 고집하는 것일까? 말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니던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머리 속에 주입하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생각과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우리 생각의 깊은 곳에 공존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우리 머리 속에 스위치가 있어서 어느 순간에는 다양만 성씨의 유입을, 어느 순간에는 단일 민족을 고민없이 변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단일민족이라는 신화가 사실은 조작된 것임을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그것도 딱딱한 역사적인 사실만 파는 것이 아니라 각 문중의 족보와 역사적인 사실을 같이 살펴보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들의 유래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료를 직접적으로 인용하기도 하고, 혹은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이라는 추론을 하기도 한다. 또한 각 왕조 속에서 이루어진 외국인의 귀화에 대해서도 꽤나 흥미로운 시각에서 다루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삼국 시대의 귀화 인물에 대해서 다루면서 신라의 초기 귀족들의 탄생 설화가 귀화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꽤 신선한 해석이기 때문에 막판까지도 책을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논의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하게 이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내가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고,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지나면서가 아닐까 한다. 단일 민족, 즉 순혈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은 통치를 쉽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아니던가? 히틀러가 아리안 순혈주의를 주장하면서 유태인을 학살하고, 이를 통하여서 독일 내부의 반발을 무마했던 것은 너무 유명한 일이 아니던가? 아마도 3공화국을 지나면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순혈 주의를 국민들에게 주입했던 것은 아닐까? 이 여파가 오늘날까지 미쳐서 외국인에 대한 배척과 깔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이미 다문화 국가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결혼 이민을 왔던 사람들의 자녀들이, 즉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그 어떤 정책적인 배려도 없다. 그냥 무시해도 될만큼 적은 숫자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코시안이라고 불러가면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우리 민족이 아닌 것으로 따돌리는 오늘날의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물론 새누리당에서 이자스민을 의원으로 공천했지만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퍼포먼스라고 느껴진다.)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혈통이 같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같이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 혈통이 같다는 말도 웃기는 말이고, 설령 혈통이 같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고 해도, 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에 감사하면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재외교포들이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와 운명공동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 감사하면서 미군에 복무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한다면 그 사람이 한국의 장관일까 미국의 장관일까, 그 사람이 한국 사람과 운명 공동체로서 자신을 자각할까? 물어 무엇하겠는가?

 

  이제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에게,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은 혈통이 같은 단일민족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지 않겠는가? 지구촌 운운하는 이 시대에 이 만큼 시대 착오적인 말이 어디있겠는가? 이젠 단일민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붙잡기 보다는 어떻게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다문화 가정을 포용할 것인가,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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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4-2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집단은 오래 갈 수가 없어요. 유대인들이 그 예외로 보여지지만, 사실 그들의 케이스는 지정학적 특성이 낳은 부분이 많다고 보구요, 또 인종적으로도 '유대인'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강성했던 제국시대의 국가들을 보면 다문화/다인종을 널리 포용한 경우가 많죠. 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볼 때, 이민정책을 잘 쓰면, 적어도 동남아권에서는 고급기술자, 고학력자, 부자 등 소위 '고급'두뇌집단을 빨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 지금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민법 개혁의 취지에서도 보이지만,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는 인구전쟁의 시대니까요...

saint236 2013-04-25 08:38   좋아요 0 | URL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뭐 이런저런 논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유대인을 언급한 것은 히틀러의 아리안 주의의 일차적인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집시도 같은 경우겠지요. 저도 이민 정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책이 나와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