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
박기현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를 알고 있는가?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그가 러시아에서 자랐기 때문에 맑시즘에 친숙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이것을 가지고 그의 생각을 좌파적이다 빨갱이다 부르는 것이야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다보면 이것은 상식 이하의 내용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그의 출신 성분을 가지고 그를 깎아내리는 의견들이다. 한국 사람도 아닌데 지가 뭘 안다고 한국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느냐는 요지의 글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박노자가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면서 박노자를 언급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 깊이 뿌리박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가장 잘보여주는 케이스가 박노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어 보았는가? 그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있고,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책 제목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공부하였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한국에서 버티지 못하고 노르웨이로 가면서도 한국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박노자를 외부인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배웠던 것이 있다. 우리나라를 거의 천번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며, 흰 옷을 즐겨 입는 백의 민족으로 단일한 혈통을 가지고 있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라도 제기하는 순간 그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한 조작된 신화라는 의심이 든다. 조작이라는 말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실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부각시키는 것 또한 일종의 조작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침략을 받았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기보다는 침략할 힘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며, 흰 옷을 즐겨 입었다는 말은 하얀색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천을 염색해서 입을만큼 공업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예전에 삼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한 교관이 피를 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군인이 군인답지 못하고, 사람들이 군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니 군인이 본분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9백 수십번의 침략을 받았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이 평화를 사랑하기 보다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정확하게 이런 말을 했다. "뭐여? 몇년 내에 천번 채울 것이여?") 단군의 후예요 단일민족이라는 말 또한 조작된 신화일 뿐이다. 앞의 두 가지가 특정한 부분을 부각시킨 것이라면, 후자는 말도 안되는 내용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나라의 성씨 가운데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조작된 신화를 고집하는 것일까? 말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니던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머리 속에 주입하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많은 성씨들이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생각과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우리 생각의 깊은 곳에 공존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우리 머리 속에 스위치가 있어서 어느 순간에는 다양만 성씨의 유입을, 어느 순간에는 단일 민족을 고민없이 변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단일민족이라는 신화가 사실은 조작된 것임을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그것도 딱딱한 역사적인 사실만 파는 것이 아니라 각 문중의 족보와 역사적인 사실을 같이 살펴보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들의 유래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료를 직접적으로 인용하기도 하고, 혹은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이라는 추론을 하기도 한다. 또한 각 왕조 속에서 이루어진 외국인의 귀화에 대해서도 꽤나 흥미로운 시각에서 다루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삼국 시대의 귀화 인물에 대해서 다루면서 신라의 초기 귀족들의 탄생 설화가 귀화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꽤 신선한 해석이기 때문에 막판까지도 책을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논의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하게 이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내가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고,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지나면서가 아닐까 한다. 단일 민족, 즉 순혈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은 통치를 쉽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아니던가? 히틀러가 아리안 순혈주의를 주장하면서 유태인을 학살하고, 이를 통하여서 독일 내부의 반발을 무마했던 것은 너무 유명한 일이 아니던가? 아마도 3공화국을 지나면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순혈 주의를 국민들에게 주입했던 것은 아닐까? 이 여파가 오늘날까지 미쳐서 외국인에 대한 배척과 깔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이미 다문화 국가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결혼 이민을 왔던 사람들의 자녀들이, 즉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그 어떤 정책적인 배려도 없다. 그냥 무시해도 될만큼 적은 숫자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코시안이라고 불러가면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우리 민족이 아닌 것으로 따돌리는 오늘날의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물론 새누리당에서 이자스민을 의원으로 공천했지만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퍼포먼스라고 느껴진다.)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혈통이 같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같이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 혈통이 같다는 말도 웃기는 말이고, 설령 혈통이 같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고 해도, 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에 감사하면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재외교포들이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와 운명공동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 감사하면서 미군에 복무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한다면 그 사람이 한국의 장관일까 미국의 장관일까, 그 사람이 한국 사람과 운명 공동체로서 자신을 자각할까? 물어 무엇하겠는가?

 

  이제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에게,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은 혈통이 같은 단일민족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지 않겠는가? 지구촌 운운하는 이 시대에 이 만큼 시대 착오적인 말이 어디있겠는가? 이젠 단일민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붙잡기 보다는 어떻게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다문화 가정을 포용할 것인가,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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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4-2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집단은 오래 갈 수가 없어요. 유대인들이 그 예외로 보여지지만, 사실 그들의 케이스는 지정학적 특성이 낳은 부분이 많다고 보구요, 또 인종적으로도 '유대인'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강성했던 제국시대의 국가들을 보면 다문화/다인종을 널리 포용한 경우가 많죠. 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볼 때, 이민정책을 잘 쓰면, 적어도 동남아권에서는 고급기술자, 고학력자, 부자 등 소위 '고급'두뇌집단을 빨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 지금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민법 개혁의 취지에서도 보이지만,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는 인구전쟁의 시대니까요...

saint236 2013-04-25 08:38   좋아요 0 | URL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뭐 이런저런 논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유대인을 언급한 것은 히틀러의 아리안 주의의 일차적인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집시도 같은 경우겠지요. 저도 이민 정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책이 나와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