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곤하다. 매일 지친 몸을 끌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여전히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다만 눈뜨기가 약간 힘들 뿐이다. 수도 없이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보면 잠을 자기는 했지만 몸은 충분히 피곤에 젖어 산다. 출근과 일과의 사이 속에서 결국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하나다.주유소에서 "아저씨 만땅이요"를 외치듯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안에 카페인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박카스에 사이다 섞은 맛이 나는 핫 식스(6시간 지속된다는 광고 카피와는 달리 채 3시간이 가지 않는다.), 체리 맛이 나는 번 인텐스, 블루베이 맛이 나는 볼트에너지, 망고 맛이 나는 솔 등등...카페인을 충전해 주는 음료들은 많기도 하다. 시간이 되면 우주벌레에서 벤티로 빨아주로, 시간이 부족하면 고카페인 음료로 쏟아 붓고, 이 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붕붕 드링크 제조로 넘어가겠지...

 

  남의 말이 아니다. 내 말이다. 아직 붕붕 드링크의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고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가급적이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주일에 1~2개는 꼭 마시게 된다. 그래도 많이 양호해진 것이다. 불과 3달 전에만 해도 하루에 1개씩 마셨으니 말이다. 나만의 이야기라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 주변에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 정말 많다. 오죽 많으면 고 카페인 음료가 커피를 제치고 판매고 1위를 달성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유통업체에서 커피 판매량은 축구계에서 브라질의 위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며 고 카페인 음료가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왜 고 카페인 음료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이 책에 그 정답이 나와 있다. 저자는 이 시대를 부정의 시대가 아니라 긍정의 시대이며, 자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말이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 규정의 단적인 예가 고 카페인 음료와 자기계발서 판매량의 급증이라고 보면된다. 자계서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신은 충분히 위대하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우리의 머릿 속에 주입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지 않은가?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최면을 통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 않은가? 자계서가 정신을 마비시킨다면, 고 카페인 음료는 우리의 육체를 마비시킨다. 몸은 쉬고 싶지만 끊임없이 우리 내부에 있는 에너지를 끌어 당겨서 달리게 만든다. 나중에 몸이 얼마나 피곤해 지는지는 상관이 없다. 오직 이 순간만 달리면 된다.

 

  왜 이 순간에 목숨을 걸까? 왜 개인의 피로를 무시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 아닌가? 그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달린다. 그 두려움이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한다. 잠자리에 누운 순간에도 말이다.

 

  땅을 얻으려 열심히 달리다가 쓰러진 파흠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흠이 되어서 달리고 있다. 그러다 쓰러진 사람들을 낙오자라 비웃으면서,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시대의 파흠들을 위하여 다시 한번 주문을을 외워본다.

 

"아저시 카페인 만땅이요!"

 

PS.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내 앞에는 진하게 내린 커피를 머그 잔으로 세잔째 마시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내 책 꽂이에서 핫식스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4-03-2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시절에 스트레스, 부족한 잠, 공부를 이겨내려고 하루 평균 벤티 사이즈 커피 2-3잔, 콜라 1-2병 정도를 마시던 때가 있었어요. 운동부족이 겹치니까 살이 마구 찌더라구요. 또 늘 피곤하고 무겁고, 부어있고. 그 상태가 일 시작하고 나서도 2년 정도가 더 가더라구요. 그 후에는 운동으로 이겨냈고 지금까지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어요. 시간을 조금 낼 수 있다면 근처의 헬스장에서 하루 5분만 운동을 해보세요. 5분이 20분, 20분이 40분...이렇게 될거에요. 저는 다시 운동을 시작할 때 엄두가 안나서 5분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때 읽은 책에 감명을 받아 추천된 방법론을 써본 거에요. 건강 꼭 챙기셨으면 합니다.

saint236 2014-03-20 13:59   좋아요 0 | URL
저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헬스장은 한 2년 다녔는데 정말 정말...재미가 없더군요. 요즘 라켓볼이나 스쿼시를 찾고 있는데 없어서...좀더 찾다가 안되면 헬스장이라도 가야하나 생각 중입니다.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쥐!

 

  아주 짧은 이 한단어에서 어떤 말들이 연상되는가? "징그럽다, 지저분하다, 페스트, 왕성한 번식력, 해충박멸, 미키마우스, 월트디즈니, MB..." 쥐에 대해 연상되는 단어들이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미키마우스나 월트디즈니 같은 것들이야 비교적 근대에 생긴 이미지들이니 쥐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들은 죽여 마땅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아닐까? 이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처음에 쥐라는 만화의 제목을 접하고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다냐라는 의아함을 품었다. 아마도 내게 이달의 리뷰에 뽑혀서 알사탕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직도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생긴 알사탕을 가지고 무슨 책을 지를까 고심하다가 요즘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시간에 쫓기니 비교적 가벼운 것을 택해야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습지생태보고서와 쥐를 택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비교적 간단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채 10장을 읽기도 전에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넘기기 어려운 책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이후로 처음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만화라는 매체로 재구성을 했는데 흑야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보다 내겐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폴란드인을 돼지로,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을 개구리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책을 읽어가면서 "왜 하필이면 쥐야? 독일인에 의해 희생당한 유태인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려면 양이라는 캐릭터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자의 말장난 앞에 "아하...그렇구나."라며 감탄을 했다. 아우슈비츠를 저자는 마우슈비츠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 말장난에서부터 시작된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왜 쥐인가? 당시 미국의 아이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캐릭터가 월트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다. 아우슈비츠의 내용을 가지고 만화를 그리면 아무래도 내용이 꽤나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아이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야?"라는 식상함이 가득담긴 질문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외면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무리 만화로 그려진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월트디즈니의 쥐라는 캐릭터에 친숙한 사람들에게 쥐라는 캐릭터를 충분히 가볍게 이 책을 접하게 하는 미끼가 될 것이다. 게다가 마우슈비츠라는 말장난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머리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쥐라는 캐릭터를 택했다는 것은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이 책이 읽혀질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 독일인과 유태인의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캐릭터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번 묻겠다. 쥐와 고양이의 관계를 적절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냥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당연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니까 당연하다는 말외에는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한번도 쥐의 입장에서 쥐를 변호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쥐는 그저 죽여야 하는 해충일 뿐이니 말이다.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죽인 이유에 대해서도 적절한 설명이 가능한가? 왜 그렇게 많은 독일인들이 한마디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유태인을 죽이는데 가담했을까? 독일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악해서?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을 원수처럼 미워해서? 아니다.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유태인을 그렇게 원수처럼 생각하고 죽이려고 노력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궁색한 변명만을 할 뿐이다.

 

  아마도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의 지도자들은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일반 독일인에게는 그렇게 악랄하게 유대인을 죽일 마땅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왜 그렇게 엄청난 악행을 자행했던 것일까? 그들에게 있어서 유태인은 인간이 아니라 쥐와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쥐를 보면 불상히 여기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대신에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하는 해충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판단의 기준으로 우리에게도 던져준다.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묻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다른 책의 내용처럼 공감하면서 읽지 못하거나, 덤덤하게 읽고 있다면 어느새 우리도 독일 나치의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비극적이고, 더 무겁게 다가온다.

 

  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단순히 유태인과 독일인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말일까? 아니다. 상대방을 해충으로 보고 마당히 죽여야할 대상으로 격하시켜버리는 심리적인 매커니즘은 현재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종북이, 좌빨, 좌좀, 홍어, 일베충, 꼴보수 등등.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해충으로 보고 반드시 박멸시킬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가? 상대방에 대한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상대방은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요, 해충으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변호인이라는 영화에서, 남영동이라는 영화에서 우리가 그렇게 불편하게 느꼈던 모습들이 어느새 우리들의 모습 속에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지 않은가? 일베충이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일베를 벌레처럼 여기고 있지 않은가? 좌좀이라는 말을 통해서 상대방을 괴물이요, 제거해야할 쓰레기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 않은가? 선교나 성지 순례를 나간 사람들이 당한 비극을 바라보면서 "잘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안현수를 빅토르 안이라고 부르면서 변절자요 배신자라고 욕하는 것, 축구 선수를 보면서 기레기, 밥줘라고 부르면서 비하하고,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 보다는 찧고 까부는 모습을 보면서 쥐와 도대체가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면서 꼼짝도 하지 않는 노조를 보면서 이미 한국은 마우슈비츠로 가고 있지 않는가라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잠깐 멈추어서 진지하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쥐가 정말 죽어 마땅한 동물인가? 쥐에게 권리는 없는가? 뜬금없이 쥐의 鼠권에 대해서 묻는 나른한 오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립습지센터에서는 습지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습지(濕地 wetland)의 사전적인 의미는 “물기가 축축한 땅”을 지칭하는 말로 간단하게 말하면 물을 담고 있는 땅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습지는 물에 따라 동식물의 생활과 주변 환경이 결정되는 곳이며 1년의 일정기간 이상 물에 잠겨 있거나 젖어 있는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습지에 대한 상세한 정의는 나라마다 또는 전문가마다 조금씩 의미가 다르다.

  우리나라 습지보전법(1999년 8월 7일 시행)에서 정의하고 있는 습지는 "습지란 담수1)·기수2)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 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 및 연안습지를 말한다.“ 「내륙습지」는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또는 소와 하구 등의 지역, 「연안습지」는 만조3)시에 수위5)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6)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까지의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이어서 국립습지센터는 습지의 여러가지 순기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습지를 보호해야한다는 주장을 편다. 나는 지금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습지에 대해 이런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그 습지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더군다나 그 습지라는 것이 이 만화에서처럼 20대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때는 더욱 그렇다.

 

  처음 습지 생태 보고서라는 제목을 보고는 환경보호 단체에서 펴낸 글인가 싶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습지라는 말이 20대의 눅눅한 지하 자취생활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작가의 천재적인 작명 실력에 감탄을 했었다. 왠지 사서 읽어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때마침 할인 판매를 하기게 낼름 주문했다.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리얼 궁상 만화"라는 작가의 호언장담이 허언인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20대의 궁상이 눅눅하게 묻어 있는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스카이, 인서울, 지잡대로 구분되는 현재의 구도 속에서 지방사립대학에 다니는, 그것도 잘 안팔리는 만화를 그리는 학과에 다니는 지지리 궁상맞은 20대의 삶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만화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유쾌함 속에 슬픔이, 일상 속에 20대 청춘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나온 상명대학을 잘 안다. 내가 살던 동네 바로 옆에 있던 대학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3이던 시절에 주변에 꽤 많은 대학들이 있었다. 단국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상명대학교, 천안공전 등등. 흔히 그렇듯이 자기 집 주변에 있는 학교를 그다지 높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우리 안에도 있었고, 그래서 그 학교들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단포드, 순브릿지, 상르본, 천안 MIT공전, 호버드"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에 있는 학교, 그 중에서도 스카이를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소신있게 지원해서 서울에 갈 사람들은 서울로 가고, 근처의 대학에 갈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대학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갔다. 서울로 가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갔다고 해서 친구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결코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서울에 가 있는 친구들은 서울에서 만나고,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고향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후배들 사이에서 이렇게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패배자로 낙인찍는 풍토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가던 그런 풍토가 이제는 확고해져서 무조건 인서울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혹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학교를 간 이들은 마치 인생에서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한 것처럼 항상 주눅들어 있기 시작했다. 학교를 어디 갔느냐는 말에 절대로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가르쳐 주지 않던 입시생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패배감이라는 절망의 수렁이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안쓰럽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었다.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은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대로 패배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탈출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눅눅한 지하 자취방의 느낌이 아닐까? 한창 도전하고 열정을 불태워야할 나이에 인생의 곳곳에 패배감이 눅눅하게 뭍어 있는 그들을 보면서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걱정은 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나조차도 어느새 인서울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세대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카이에 가지 못한 것이, 인서울하지 못한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닐텐데, 인서울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닌데 어느새 나조차도 그들에게 눅눅함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 비해서 병아리 눈꼽만큼 나은 것은 공부를 조금 더 해서 인서울 했다는 것이고(그렇다고 내가 다닌 학교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워낙 인기 없는 학과를 지망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IMF의 타격이 덜 할 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나는 기득권이 되어서 그들을 정죄하고, 당연한듯이 그들에게 20대의 열정대신에 지지리 궁상과 눅눅함을 강요하고 있는 기득권이 되었다. 마치 그들을 생각해 주는 척 왜 짱돌을 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그 밑바닥에 그들에게 눅눅함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 것은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은 나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그 꼰대기질이 어느새 내 안에 깊이 스며 들어서 당연한 듯이 가르치려고 드는 나를 자각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들이 정말 안쓰럽다면 최소한 그들에게 눅눅함과 궁상을 강요하지는 말아야하지 않겠는가?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은 그들에게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2-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벗들이
굳이 서울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지 말고
즐겁게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울 보금자리'를 찾고
스스로 가장 즐거운 일과 놀이를 찾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어요.

saint236 2014-02-13 20:3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시골에 가서 살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네요.
 
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연산군의 말에 이어서 역사e 시즌 2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표지에 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언컨대 이 한문장을 뽑아내는 실력만큼은 대단하다고 하겠다. 이 한마디의 문장만큼 역사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광스러운 과거는 영광스러운대로, 수치스러운 과거는 수치스러운대로 기억하면서 피할 것은 비하고 부활시킬 것은 부활시키려고 애쓰는 것,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얻고 사례들을 점검할 수 있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특별히 수치스러운 과거, 상처가 되었던 과거는 더더욱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이러한 역사들을 보존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특별히 감성적이어서도 아니라 그것이 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의무이고, 그것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의 삶을 더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은 아우슈비츠 형무소를 보존하여 나치의 등장을 경계하고, 베를린 장벽을 보존하여 분단의 아픔을 기억한다.

 

  오랜 세월 나라를 잃고 유랑했던 유태인들은 이러한 면에서 더 철저하다. 혹시 맛사다 요새를 아는가? 헤롯 대왕 시절에 만들어진 천연의 요새로 유사시에 피신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소이지만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로마에 항거하던 유태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몇년간 농성을 벌였기 때문이다. 농성을 벌이던 그들을 로마 군단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사용하여 포위망을 구축하였고, 결국 함락시켰다. 성벽이 함락될 때 남아 있던 600여명의 사람들은 마지막가지 로마에 저항하기 위하여 투항하지 않고 집단으로 자결을 했다. 물론 자결은 율법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태로 자결이 이루어졌다. 신화와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묻혀 있다가 맛사다 요새 유적을 발견하고, 지금은 그곳을 잘 보존하고 있다. 보존 자체도 훌륭하지만, 유태인들은 맛사다 요새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관학교 생도들의 임관식을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다.

 

  통곡의 벽도 마찬가지이다. 구약 시대 성전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나중에 헤롯이 건축한 성전이 다시 파괴되었고, 남아 있는 서쪽 벽의 일부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어느 책에서 우연히 읽었는데 그 벽에 대한 역사적인 진위가 의심된다는 말로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통곡의 벽을 대하는 유태인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통곡의 벽을 성지로 여기고 그곳에서 율법을 읽으면서 기도를 한다. 그들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인 행위를 뛰어넘어, 아픔의 역사를 되새기고, 오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역사의 되새김질은 미국의 지원이라는 이유 외에도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존재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된다.

 

  역사e를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사실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불편해서이다. 진정한 역사 교육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부분들을 수정하고 보완해도 부족할 판에 교학사 교과서를 새롭게 편찬하면서 좌편향으로 치우친 역사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는 창조적인 사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고리타분한 일이고, 성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본다. 혹은 과거는 사랑을 쓰는 것처럼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본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거를 조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본다.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흐름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이 실패했음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유혹을 느끼고, 그런 시도들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은 과거 국사를 선택으로 배웠든지, 아니면 기억할 의무를 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아픈 역사라도 외면하지 말라.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번듯하게 짓는 것을 좋아하는 그러한 세태에 휘말리지 말라. 아무리 잘 복원을 해도 지금 남대문이 진정한 국보 1호일 수는 없다. 형태를 가지고 있는 남대문도 이럴진대 형태가 없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실들, 의미들은 더더욱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를 게을리했을 때 역사의 불행은 반복될 것이다. 아니다. 이미 반복되고 있다.

 

ps.차라리 역사e를 역사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이 교학사 교과서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1-0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고 알찬 모든 책을 다 교과서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saint236 2014-01-09 10:07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괜시리 이상한 책들 가져다가 교과서 한다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지요.

transient-guest 2014-01-23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국어와 국사교육을 등한시하는 나라는 아마도 현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또다시 지난 시절의 굴욕과 독재를 다시 경험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우리 시절,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사회/국사시간만큼의 교육도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네요. 저들이 하는 짓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게 아닌가 싶은데, 무엇인가 개인적인 이득을 노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답답한거죠

saint236 2014-01-28 12:0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누군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식e 시즌 8이 나온 시점에서, 그리고 리뷰까지 작성한 시점에서 지식e 시즌 5를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밀린 숙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엇인가 끄적거리고 싶은데 요즘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읽고는 있지만 바쁜 일이 많아서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할 책을 고르다가 딱 걸린 것이 이 책이다.

 

  지식e는 나올 때마다 우리의 감성을 많이 자극한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게도 지식e는 우리에게 가슴을 열고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책이 우리에게 주문하는대로 나아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가 다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부조리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사실은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로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즌 5도 10가지의 꼭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인간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 인생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은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묻는다. "인권"이다.

 

  2009년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올 때의 기사들을 하나씩 검색해 보면서 굵직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보면, 쌍용자동차 파업, 미네르바 사건,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미디어 관련 법과 장자연 자살, 유명 방송인들의 하차 내지는 방송활동 위축을 들 수 있다. 요즘들어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당시를 표현하자면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종북으로 혹은 좌빨로 몰아서 전직 대통령마저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고 해서, 혹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행ㅅ를 맡았다고 해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폴리테이너라는 죄명으로 강제 하차했다. 자신의 생각을 썼고, 그 생각이 사회적을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미네르바는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은 빚의 노예가 되거나 알바를 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국가 인권위 문제도 불거졌고, 오죽하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 추락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겠는가?

 

  이런 시기에 지식e 시즌 5는 인권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인가? 이 질문은 회색의 책표지로 포장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하필이면 왜 회색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식e를 보면서 그 표지의 색에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하게 된다.

 

  회색과 은색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회색과 은색의 차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차이를 말하는 사람도 회색은 조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두 포함하는 색이며, 은색은 밝은 회색 정도로 말한다. 둘의 차이는 광택의 유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은색이 하얀색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하얀색이 나오게 되었고, 은색은 하얀색이라는 범주에서 밀려나 회색에 포함되었다는 류의 설명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듯 싶다. 얼마전 아이들과 색칠 공부를 하던 중에 회색으로 칠해야 할 부분을 은색으로 칠했다. 내 생각에는 칠하면서도 이상할 것 같았지만 칠해 놓고 나니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회색을 칠해야할 자리에 아무런 고민없이 은색을 칠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바라본다. 그러자 인권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의 표지가 회색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가 회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은색으로 보이고, 다시 어느 순간에는 회색으로 보인다. 은색화 회색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면서 이 책의 표지 색은 무엇이냐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표지 색의 경계가 오락가락하면서 인권에 대한 질문과 생각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것은 인권인가 차별인가, 이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인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정당한 문제제기 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역차별일수도 있다.

 

  인권의 문제가 그렇게 복잡하다. 경계가 미묘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인권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라는 의미 자체도 모호하고, 당연한 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호하다. 과거에 인간은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을, 동양 사회에서는 황인종(백인과 황인종이라는 말 자첻 지극히 차별적이고 주관적인 말이다.)을 인간으로 봤고 나머지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야만인이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이성애자에게 동성애는 당연히 비정상이고, 동성애자에는 자신들의 권리이며, 양성애자에게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장할 것이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은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회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인권이라고 말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세 번 네 번을 생각한 후에 말해야할 것이며, 말하고 난 후에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부분을 기꺼이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딱 편을 가르고 이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문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만 묻자.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 순간에도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지식e 시즌5에는 이런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하는 그 생각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주장하기 전에 정말 그런지,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계에서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치우칠 것이 아니라 오락가락해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재점검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좌시하지 않겠다. 용납하지 않겠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