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 e - 시즌 5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식e 시즌 8이 나온 시점에서, 그리고 리뷰까지 작성한 시점에서 지식e 시즌 5를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밀린 숙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엇인가 끄적거리고 싶은데 요즘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읽고는 있지만 바쁜 일이 많아서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할 책을 고르다가 딱 걸린 것이 이 책이다.
지식e는 나올 때마다 우리의 감성을 많이 자극한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게도 지식e는 우리에게 가슴을 열고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책이 우리에게 주문하는대로 나아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가 다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부조리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사실은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로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즌 5도 10가지의 꼭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인간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 인생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은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묻는다. "인권"이다.
2009년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올 때의 기사들을 하나씩 검색해 보면서 굵직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보면, 쌍용자동차 파업, 미네르바 사건,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미디어 관련 법과 장자연 자살, 유명 방송인들의 하차 내지는 방송활동 위축을 들 수 있다. 요즘들어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당시를 표현하자면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종북으로 혹은 좌빨로 몰아서 전직 대통령마저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고 해서, 혹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행ㅅ를 맡았다고 해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폴리테이너라는 죄명으로 강제 하차했다. 자신의 생각을 썼고, 그 생각이 사회적을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미네르바는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은 빚의 노예가 되거나 알바를 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국가 인권위 문제도 불거졌고, 오죽하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 추락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겠는가?
이런 시기에 지식e 시즌 5는 인권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인가? 이 질문은 회색의 책표지로 포장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하필이면 왜 회색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식e를 보면서 그 표지의 색에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하게 된다.
회색과 은색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회색과 은색의 차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차이를 말하는 사람도 회색은 조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두 포함하는 색이며, 은색은 밝은 회색 정도로 말한다. 둘의 차이는 광택의 유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은색이 하얀색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하얀색이 나오게 되었고, 은색은 하얀색이라는 범주에서 밀려나 회색에 포함되었다는 류의 설명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듯 싶다. 얼마전 아이들과 색칠 공부를 하던 중에 회색으로 칠해야 할 부분을 은색으로 칠했다. 내 생각에는 칠하면서도 이상할 것 같았지만 칠해 놓고 나니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회색을 칠해야할 자리에 아무런 고민없이 은색을 칠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바라본다. 그러자 인권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의 표지가 회색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가 회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은색으로 보이고, 다시 어느 순간에는 회색으로 보인다. 은색화 회색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면서 이 책의 표지 색은 무엇이냐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표지 색의 경계가 오락가락하면서 인권에 대한 질문과 생각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것은 인권인가 차별인가, 이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인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정당한 문제제기 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역차별일수도 있다.
인권의 문제가 그렇게 복잡하다. 경계가 미묘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인권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라는 의미 자체도 모호하고, 당연한 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호하다. 과거에 인간은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을, 동양 사회에서는 황인종(백인과 황인종이라는 말 자첻 지극히 차별적이고 주관적인 말이다.)을 인간으로 봤고 나머지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야만인이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이성애자에게 동성애는 당연히 비정상이고, 동성애자에는 자신들의 권리이며, 양성애자에게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장할 것이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은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회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인권이라고 말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세 번 네 번을 생각한 후에 말해야할 것이며, 말하고 난 후에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부분을 기꺼이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딱 편을 가르고 이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문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만 묻자.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 순간에도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지식e 시즌5에는 이런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하는 그 생각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주장하기 전에 정말 그런지,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계에서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치우칠 것이 아니라 오락가락해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재점검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좌시하지 않겠다. 용납하지 않겠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