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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피곤하다. 매일 지친 몸을 끌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여전히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다만 눈뜨기가 약간 힘들 뿐이다. 수도 없이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보면 잠을 자기는 했지만 몸은 충분히 피곤에 젖어 산다. 출근과 일과의 사이 속에서 결국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하나다.주유소에서 "아저씨 만땅이요"를 외치듯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안에 카페인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박카스에 사이다 섞은 맛이 나는 핫 식스(6시간 지속된다는 광고 카피와는 달리 채 3시간이 가지 않는다.), 체리 맛이 나는 번 인텐스, 블루베이 맛이 나는 볼트에너지, 망고 맛이 나는 솔 등등...카페인을 충전해 주는 음료들은 많기도 하다. 시간이 되면 우주벌레에서 벤티로 빨아주로, 시간이 부족하면 고카페인 음료로 쏟아 붓고, 이 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붕붕 드링크 제조로 넘어가겠지...
남의 말이 아니다. 내 말이다. 아직 붕붕 드링크의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고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가급적이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주일에 1~2개는 꼭 마시게 된다. 그래도 많이 양호해진 것이다. 불과 3달 전에만 해도 하루에 1개씩 마셨으니 말이다. 나만의 이야기라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 주변에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 정말 많다. 오죽 많으면 고 카페인 음료가 커피를 제치고 판매고 1위를 달성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유통업체에서 커피 판매량은 축구계에서 브라질의 위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며 고 카페인 음료가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왜 고 카페인 음료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이 책에 그 정답이 나와 있다. 저자는 이 시대를 부정의 시대가 아니라 긍정의 시대이며, 자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말이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 규정의 단적인 예가 고 카페인 음료와 자기계발서 판매량의 급증이라고 보면된다. 자계서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신은 충분히 위대하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우리의 머릿 속에 주입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지 않은가?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최면을 통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 않은가? 자계서가 정신을 마비시킨다면, 고 카페인 음료는 우리의 육체를 마비시킨다. 몸은 쉬고 싶지만 끊임없이 우리 내부에 있는 에너지를 끌어 당겨서 달리게 만든다. 나중에 몸이 얼마나 피곤해 지는지는 상관이 없다. 오직 이 순간만 달리면 된다.
왜 이 순간에 목숨을 걸까? 왜 개인의 피로를 무시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 아닌가? 그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달린다. 그 두려움이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한다. 잠자리에 누운 순간에도 말이다.
땅을 얻으려 열심히 달리다가 쓰러진 파흠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흠이 되어서 달리고 있다. 그러다 쓰러진 사람들을 낙오자라 비웃으면서,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시대의 파흠들을 위하여 다시 한번 주문을을 외워본다.
"아저시 카페인 만땅이요!"
PS.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내 앞에는 진하게 내린 커피를 머그 잔으로 세잔째 마시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내 책 꽂이에서 핫식스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