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답답한 마음에 끄적거렸던 글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통찰력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뻔한 것인지...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조만간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겠다면서 예능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빠르면 5월 첫째 주말, 늦어도 둘째 주말에는 할 것이라 예언했는데...이렇게 정확하게 들어 맞을 줄이야...5월 3일 무한도전이 시작했다. 무한도전의 시작은 여타 예능 프로들이 재개될 것이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이렇게 계속하면 국가 경제가 어렵다. 그러니 국민들은 너무 슬픔에 잠기지 말고 돈을 쓰길 바란다. 이런 취지의 기사를 언론에서 떠들어 댈 것이라 말했었는데 어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오더라. 다만 뒷부분은 너무 뻔해서 그런지 하지 못하고, 앞부분의 이야기만 했는데. 말이라는 것이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다시한번 느끼지만 이 나라 지도층에게 국민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사람이 아닌 숫자. 한사람 한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174->172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그런 숫자 말이다. 그러니 교통 사고 사망자보다 적다는 말 운운할 수 있는 것이고, 국가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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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하다
   매일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세월호 사건은 참 피로하다. 불법과 불의가 판치는 현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속상하고, 무기력하다. 이 판에 정치권의 자기 이익 실현은 세월호와 함께 언론의 너머로 침몰해 버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KTX요금 인상도,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도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면서도 매일 신문은 구원파 사건으로 도배중이다. 구원파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더 중요할텐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책임지로 물러남을 당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요지부동이다.

  희망과 영생을 이야기하는 하늘색 드립은 급기야는 친절한 수정으로 손기정 옹의... 뒤를 따라가고 있고, 욕을 한 사람은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하고, 욕하게 만든 사람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정의 막내는 정신이 바로 박힌 젊은이로 일베충들의 영웅이 되었다. 지변은 지들 맘대로 똥싸고 있고, 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아는지 하늘은 며칠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방송은 이러다가 국민이 다 우울증에 걸린다면서 국민들에 힘을 주기 위하라는 얼토당토한 핑계로 새로운 드라마를 선전한다. 조만간 언론에서 국민에게 웃음을 찾아 주기 위하여 예능을 시작한다고 하겠지? 그리고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 그만 슬퍼하고 돈을 쓰라고 놀러가기 좋은 곳들을 주구장창 소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래 국민 경제를 살려야지!"라는 구국의 일념으로 열심히 돈을 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노란 리본은 주술적인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와, 노사모를 연상시킨다는 핑계로 공격을 일삼고 있으며, 이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기도를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난 기도란 삶이 수반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기도를 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전혀 없고, 매일 공염불을 외우듯이 기도만을 외친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기독교의 지도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세례 교육할 때 가르쳤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라는 우리의 신앙 고백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죽어라고 저 천국만 바라본다.

  자신들은 정직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애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까? 배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행동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번에 죽은 아이들은 정말 말 잘듣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어느새 잊고 있다. 구명 조끼를 입고 그대로 대기하라는 말을 따랐던 아이들이 대부분 죽었다. 아마도 살아남은 아이들 가운데에는 반항하며 나간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바다를 보려고 나갔던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갑판에 몰래 담배 피우러 나갔던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이런 말을 하면 불경하다고 할 사람은 있겠지만 분명이 내가 말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데,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책임 운운하면서 본인은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누구를 자기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할까?

  얼마전 팟캐스트를 듣다가 농담처럼 이런 말을 들었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에 혹 동승한 사람 가운데 미국인이 있는지 살펴보고 없으면 타지 말라고 했던 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단순한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이 그렇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바다 속에서 잠겨서 눈물조차 보이지 못한는 아이들과, 종북 선동꾼이라는 딱지 때문에 속상해 하면서 빗속에 눈물을 숨겨야 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손에 잡힐 것 같아서 답답하다. 이렇게 끄적거리지라도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두서없이 끄적거려 본다.

  문득 샤르뎅의 일화가 생각난다. 샤르뎅이 사막에서 빵도 포도주도 없어서 성찬을 행하지 못했을 그 때에 그는 이렇게 했다고 한다. "하나님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포도주로 삼습니다. 억울하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이들의 삶을 빵으로 삼습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샤르댕처럼 오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도 팽목항에서 가슴 저리면서 아파하는 이들의 눈물을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로 기억합니다. 바다 속에서 인양되기를 기다리며 물에 불은 아이들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찢기신 주님의 몸으로 삼습니다. 주님의 몸을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을 기억하듯이 그들의 눈물과 몸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책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아픔과 약속에 동참하게 하소서. 이 땅을 주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일에 작은 일이지만 동참하겠습니다."

  내 기도가 팽목항에 닿지는 못한다고 해도, 내 마음 속에는 닿았으면 좋겠다. 다시한번 피곤해서, 너무 아파서 눈을 돌리려고 했던 나의 비겁함을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손톱이 빠지도록 창문을 두드렸을 그들 앞에서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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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 용오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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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my opinion, all men are island.

 

  휴 그랜트를 꽤나 좋아하거나, 크리스마스에 잔잔한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꽤나 친숙한 대사이리라. 본조비의 "No man is an island"라는 말을 비웃으면서 시작하는 독신남의 독백은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섬으로 존재하던 사람이 결국은 섬이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다 밑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섬"으로서 존재하던 사람이 "사회"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잔잔한 교훈이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흐름도 이런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사회에 편입하게 되고, 고독한 상태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 과정을 살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힘이 되고, 삶에 대한 큰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음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은 NHK의 기획 다큐멘터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어어서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로부터 축출되고, 혼자 죽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고향을 더나서 도시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고독하게 죽어간다. 이런 경우는 대개 죽고나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발견된다. 심한 경우는 시신이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뒤에 발견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정년 퇴직, 명예 퇴직이라는 온갖 합법적인 제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혹은 아직 제도가운데 머문다고 할지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섬들은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외로운 섬으로 인생을 마무리한다.

 

  마침 이 책을 읽을 때가 한참 바쁘던 시기였다. 매일 집에 들어가도 아내는 아이들과 자고 있고, 혹은 자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잠시 후에 잠자리에 들면 내 옆이 아닌 아이들 옆으로 간다.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은 정말로 "고독"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아내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했더니 이해해달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나도 이런 고독을 느끼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고독이라는 것이 얼마만한 무게로 이들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는 약간이나마 상상이 된다.

 

  이 책은 일본의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상태로 몇십년이 흐르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멸종해 버릴 것이라는 우스개소리는 공포를 조장하는 쓸데 없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집이 없고, 자동차가 없고, 결혼이 없는 세대라는 말이다. 혹은 초식남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연애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세대가 오늘의 젊은이들이며, 오늘도 구직자로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미 은퇴해버린, 혹은 은퇴가 몇년 앞으로 다가온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들이다. 출산율틀 높이기 위해 현상금을 건다면서 온갖 난리 법썩을 떨지만 젊은이들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가지 해왔던 대로 고독을 강요받으면서, 섬으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독사는 점점 늘어만 간다. 부모의 조의금을 받고 시신은 남겨둔채 떠나버린 자식들의 몰상식과 비도덕적인 행위를 지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누구에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장례식은 가족들이 치러줬으니 말이다. 무연고자라는 한 어 속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소리없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 시신은 안식을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돈다.

 

  스스로 가족을 떠나는 출가가 아니라 고독을 강요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그저 한 숨만이 나온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 주인공이 살아갔던 삶의 궤적이 작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표류하는 김씨들에게 어떻게 하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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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 ‘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김재홍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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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최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정치적인 견해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업없다.

 

  "박! 정! 희!"

 

  멀리갈 것도 없다. 몇년 전 이정희 의원이 대선후보로 나왔던 시절 박근혜 당시 후보를 바라보면서 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라는 한 마디가 대선판을 얼마나 크게 흔들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이름 석자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

 

  혹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네이버에 "다카키 마사오의 뜻"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블로그 가운데 가장 위에 아주 재미있는 글이 뜬다. "박정희 다카키 마사오의 숨은 뜻"이라는 글이다. 혹 시간이 안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주 친절하게 링크를 건다. 링크가 안되면 주소를 복사해서 넣으면 쉽게 그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kilnomu?Redirect=Log&logNo=60203552260)

 

  내용인즉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 다카키 마사오는 고목정옹(高木正雄)으로 고령박씨인 자신의 이름을 지킨다는 뜻, 즉 일본의 창씨개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서 김대중의 일본식 이름과 비교하면서 박정희는 역시 민족의 영웅이다, 뚝심이 있다, 당시 박정희만 창씨 개명했냐는 아주 복잡한 의미를 담긴 짧은 글을 남기고 있다. 박정희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친일청산의 문제를 단 몇줄로 해결해 버리냐는 말이다. 그 이름 앞에 서면 왜 그렇게 작아지는 사람들이 많은지? 박정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민족의 영웅, 혹은 먹고 살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소한 공부를 하고나서 그렇게 말한다면 이해는 가겠는데, 전혀 알지도 못하고, 주워 들은 풍월로 그렇게 확신한다는 것은 무지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일명 박정희 통으로 불리는 몇 사람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에 대해서 야부리를 풀 시간만 준다면 3박 4일 동안 쉬지않고 떠들어댈만한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알싫에서 김재홍과 정운현은 몇 회에 걸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댄 전력이 있는데(그 전력은 박정희소백과 사전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팟방들이 대본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오늘은 뭐할까?"라면서 이야기하다가 떠들어댄 것이라는 후문이 있다. 그런 실력자가 박정희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까발렸다. 그것도 감정을 싫어서 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말이다.

 

  박정희의 야망, 변신, 도덕적인 타락, 권력욕, 용인술 등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치인 박정희는 물론, 개인 박정희까지 점검해 본다. 그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박정희라는 신화와 우상을 깨뜨리고 역사적인 현실을 직시하라고 우리에게 주문한다. 반인반신으로 승격된 박정희를 다시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과정을 통하여 도대체 누가 이러한 일들을 획책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으로 박정희라는 인간이 신의 반열에 올라갔는지, 민족의 영웅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창조경제를 말하고, 비와 구름을 헤치고 햇빛을 볼고오신 박근혜 대통령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배후가 아닐까 의심만 가져본다. 절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그냥 추측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느낌 아니까...

 

  김재홍은 분명하게 묻는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 했는가?" 그리고 분명하게 대답한다. "나는 안했어!"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대답한다. "나도 아직 용서 안했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용서를 하든 안하든 일단 뒤로 미루어 두고 공부나 제대로 해보자면서 몇자 끄적여 본다.

 

PS.책을 읽다보니 화려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늘날 신문을 장식하는 여러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역시 "왕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법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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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4-06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용서하고 자시고 할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배고픔을 잊게 해 주었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잊게' 말입지요. 배고픔을 '없이' 하지 않고.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시골집을 죄다 슬레트지붕으로 바꾸었고
흙길을 시멘트길로 바꾼 영향이
오늘날 아이들을 병원신세 지게 만든 지름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요.
이 한 가지 때문은 아니지만 아주 크지요.
요새는 시골에서 '석면(슬레트) 철거'를 군청과 도청에서 예산을 들여서 하는데,
이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퍼졌고,
농약과 화학비료와 석면과 시멘트가 골고루 어우러져서
현대 질병이 생기고, 병원 지어서 약 팔고...
이런 경제성장이지요...

saint236 2014-04-06 23:37   좋아요 1 | URL
후대를 삥뜯었지요..

transient-guest 2014-04-10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진국 병이죠. 박정희-박근혜 계보와 그 당시 정치인들의 귀환은 부시-부시 계보와 레이건 시절부터 정부에 붙어먹던 놈들이 늙어서 다시 귀환한 것과 여러모로 비슷한데, 여기에 우리 국민 특유의 '정'과 '용서' 그리고 나쁜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 좀 다르지만요.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쁜건 다 박정희 때 만들어졌다고도 봐요.

saint236 2014-04-10 19:19   좋아요 1 | URL
매일 치이기만 해서일까요? 용서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덮어주는 것이 용서는 아닌데

transient-guest 2014-04-11 00:59   좋아요 1 | URL
용서했다고 자위하는 것 같아요. 일진한테 맞고 빵셔틀 하면서 달리 해결이 안되니까 속으로 '난 친구를 위해 빵을 사주는거야'라면서 정당화를 하는 심리와 같는게 아닐까요?

saint236 2014-04-11 11:52   좋아요 1 | URL
그렇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뭐 이런...서글픈 처세들이죠...
 
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수 김국환의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가 있다. "타타타" 이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당시 가사 업무 분담이라는 혁신적인 내용을 노래로 부른 아주 코믹한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자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 쉬든 잠자든 상관말고

  거울 볼 시간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하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 건

  필수 담당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2)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드리자 접시를 깨뜨리자

 

  당시 이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네 아줌마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 노래는 인기를 끌었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모임치고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를 안부른 곳이 없다. 내용을 보면 별거 아니다. 남자들도 부엌에 가서 앞치마 두르고 일을 하자는 것이다. 별거 아닌 이 노래가 그렇게 인기를 끈 이유는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이다. 당시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아주아주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했다.

 

  아버지는 꽤나 가정적인 분이셨다. 우리 남매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한글을 익히게 해준다고 보물섬, 소년 중앙 같은 잡지를 1년간 구독해 주셨던 분이다. 당시 아버지의 생활 형편으로 보건대 이것은 어마어마한 지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줄여서라도 해주셨다. 우리 남매는 모두 2년 터울인지라 한해는 만화책을 보고, 한 해를 건너뛰고, 그 다음해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직까지도 어머니하면 무서운 존재로 기억이 남지만, 동생이나 나에게 아버지는 자상한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부엌을 맴돌면 외할머니께서 "저리가라. 꼬추 떨어진다."라는 말을 하셨다. 지금이야 신혼 부부들은 왠만하면 다 하는 일들도 당시에는 절대 금기시 되어 있던 일이다. 그것이 하도 마음에 맺히셨는지, 어머니는 나에게 남자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부엌일을 시키곤 하셨다. 대학을 다니다가 오랫만에 집에 오면 "냉장고에 닭 사놨다. 양념은 어디있는지 알지?"라면서 닭볽음을 만들게 하셨다.

 

  이런 시대에 접시를 깬다는 것은 대단한 금기를 범하는 아주 불량한 말이다. 당시 많은 어머니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실제로 그런 시대가 올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남자의 가사 분담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되고, 여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육아도 공동으로 해야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가? 부질없는 일이라, 접시 깯나고 세상이 달라지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접시를 깼던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미련해 보여도, 무모해 보여도 판을 깨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골리앗 앞의 다윗이 되라는 것, 인상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큰 물에서의 작은 고기보다 작은 못에서의 큰 고기가 되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판을 깨버리고 세상을 뒤집어 엎자는 말이 아닌가? 쫄지말고 현재 질서에 순응하기 보다는 그 질서를 부정하고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말이 아닌가?

 

  사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한다. 부모의 자산 정도에 따라서 신분질서가 고착되는 오늘의 현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은 이미 캄브리아기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개천에서는 미꾸라지 한마리 나기 어렵다고 한다. 다들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를 깨기보다는 그 질서에 어떻게 해서든 편입해 보려고 용쓴다. SKY를 가면 세상이 온통 달라진다고 너희 때는 진정한 우정보다는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우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등급을 매긴다.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서 자기 성적에 매겨진 등급이 곧 자신의 미래라 믿는다.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그 중심에 서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쓴다. 청년들은 어떤가? 자신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말하면서도, 이대로 가면 삼포세대가 된다고 말하면서도, 나만은 대기업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세상에 약자가 넘쳐나지만, 그리고 자신도 그 약자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자신만은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언더독이지만 자신은 탑독이라고 착각하면서, 아니 착각하는 척하면서 살아간다. 왜? 무모한 도전이 가져올 쓰라린 상처가, 무지막지한 고통이,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만 기억하자. 어떻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는가? 그가 실력이 뛰어나서? 윌리엄 텔의 선조라서? 골리앗보다 무기가 좋아서? 골리앗이 생각보다 약해서? 아니다. 그가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쫄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앞에 서지 않았을 때 다윗만은 골리앗 앞에 서서 부딪혔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지 못했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다만 한 가지 변화는 있었을 것이다. 다윗처럼 골리앗 앞에 서는 또다른 누군가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사실말이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이기면 가장 좋고,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와 연대를 해도 좋다. 다만 접시를 깨지 않으면 부엌은 여전히 나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고, 거실은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바뀌지 않는다. 다같이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지만, 변화의 조짐을 불러올 수는 있다.

 

*그저 흔한 자계서라 부르기엔 매우 아깝다. 글래드 웰의 책 가운데에서 꽤나 접수를 줄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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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4-1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한 다윗은 자신이 다윗임을,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겠죠. 말씀처럼 우리 세상에는 골리앗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실 다윗들이 착각하고 있는거겠죠. 저도 이거 참 재밌게 읽었는데 번역은 좀 늦게 되었더라구요..

saint236 2014-04-10 19:20   좋아요 0 | URL
자계서가 이렇게 정치적일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