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사회 -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 용오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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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my opinion, all men are island.

 

  휴 그랜트를 꽤나 좋아하거나, 크리스마스에 잔잔한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꽤나 친숙한 대사이리라. 본조비의 "No man is an island"라는 말을 비웃으면서 시작하는 독신남의 독백은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섬으로 존재하던 사람이 결국은 섬이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다 밑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섬"으로서 존재하던 사람이 "사회"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잔잔한 교훈이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흐름도 이런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사회에 편입하게 되고, 고독한 상태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 과정을 살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힘이 되고, 삶에 대한 큰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음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은 NHK의 기획 다큐멘터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어어서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로부터 축출되고, 혼자 죽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고향을 더나서 도시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고독하게 죽어간다. 이런 경우는 대개 죽고나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발견된다. 심한 경우는 시신이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뒤에 발견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정년 퇴직, 명예 퇴직이라는 온갖 합법적인 제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혹은 아직 제도가운데 머문다고 할지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섬들은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외로운 섬으로 인생을 마무리한다.

 

  마침 이 책을 읽을 때가 한참 바쁘던 시기였다. 매일 집에 들어가도 아내는 아이들과 자고 있고, 혹은 자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잠시 후에 잠자리에 들면 내 옆이 아닌 아이들 옆으로 간다.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은 정말로 "고독"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아내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했더니 이해해달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나도 이런 고독을 느끼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고독이라는 것이 얼마만한 무게로 이들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는 약간이나마 상상이 된다.

 

  이 책은 일본의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상태로 몇십년이 흐르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멸종해 버릴 것이라는 우스개소리는 공포를 조장하는 쓸데 없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집이 없고, 자동차가 없고, 결혼이 없는 세대라는 말이다. 혹은 초식남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연애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세대가 오늘의 젊은이들이며, 오늘도 구직자로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미 은퇴해버린, 혹은 은퇴가 몇년 앞으로 다가온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들이다. 출산율틀 높이기 위해 현상금을 건다면서 온갖 난리 법썩을 떨지만 젊은이들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가지 해왔던 대로 고독을 강요받으면서, 섬으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독사는 점점 늘어만 간다. 부모의 조의금을 받고 시신은 남겨둔채 떠나버린 자식들의 몰상식과 비도덕적인 행위를 지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누구에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장례식은 가족들이 치러줬으니 말이다. 무연고자라는 한 어 속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소리없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 시신은 안식을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돈다.

 

  스스로 가족을 떠나는 출가가 아니라 고독을 강요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그저 한 숨만이 나온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 주인공이 살아갔던 삶의 궤적이 작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표류하는 김씨들에게 어떻게 하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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