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헤드라인을 보고 기사를 클릭했다. "박진을 보면 한명숙이 보인다." 참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 "이러면 안돼, 아침에 할 일이 많잖아. 너 그거 보면 또 글쓰느라고 1시간은 족히 소비할 것 아니냐?"라는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기사를 클릭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기사를 보고 유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 이런 젠장. 이런 짓도 그만해야 하는데 말이다. 마음은 원이지만 글쎄다.... 

  한나라당의 박진과 민주당의 한명숙을 비교한다?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엇이길래 그럴까? 호기심이 자극되어 기사를 클릭했더니 기사의 내용인즉은 이렇다. 박진과 한명숙 모두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둘다 받은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박진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명숙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양복 주머니에 달러 뭉치를 넣고가서 직접 건넸다는 것도 똑같다는 것이다. 또한 박연차 전 회장이나 곽영욱 전 사장이 뇌물을 주었다고 주장한 시점도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라는 것도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박진과 한명숙을 변호하는 이들이 실제로 달러뭉치를 양복 주머니에 티가 나지 않도록 넣을 수가 있는가를 대역을 시켜서 실험해본 것 또한 같다. 그래서 CBS 정치부 안성용 기자는 박진의 재판 결과를 보면 한명숙이 받을 재판의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쓴 것이다.  

  일견 맞는 말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 기사의 말미에 기록된 부분이 내 눈에 거슬린다.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기록하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이 박지원 의원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관한 내용이다. 박지원 의원은 당시 여당의 실세였고,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야권의 실세였다. 둘다 비슷한 혐의를 받았지만 박의원은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무혐의 처리가 되었고, 권고문은 유죄가 인정되었다. 같은 사안이고 정치색이 상당히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는 박의원을 권고문의 장학생 수혜자라고까지 불렀다. 그렇지만 여와 야의 차이가 이 둘을 갈랐다. 아니라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박진과 한명숙의 경우는 어떨까? 둘은 정치색도 많이 다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기조가 다르다. 물론 한명숙은 노무현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이지만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간 마당이기에 민주당이 그 짐을 떠안게 되었다. 그렇다면 박지원과 권노갑의 상황이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데자뷰라고나 할까? 한 쪽은 여의 실세는 아니지만 MB의 수족이다. 다른 한 쪽도 야의 실세는 아니지만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상징이 있고, 충분히 구심점이 될만한 사람이다. 고로 MB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은 대통령의 수족이요 다른 한쪽은 대통령의 적이다. 그런데도 박진을 보면 한명숙이 보일까? 차라리 박지원과 권노갑을 보면 박진과 한명숙이 보인다가 맞지 않을까? 혐의가 사실인지 아니면 혐의에서 끝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처럼 한명숙은 누명을 쓴것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단지 지켜보면서도 검찰의 이야기를 70%이상은 깎아서 들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박진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무혐의 처리. 여야 의원들이 모두 공정한 재판이라고 환영함."이라는 요지의 기사 밑에 지나가는 말로 민주당 의원들은 박진 의원의 일처럼 한명숙 총리도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함. 한총리 건강도 좋지 않음. 이런 류의 기사가 또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한명숙 5만불 수뢰 혐의 재판결과 사실로 밝혀져" 이런 타이틀의 기사가 나올 확률이 거의 90%라고 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이미 박지원&권노갑 상황에서 이와 동일한 기사를 보았다. 다만 이름이 박지원, 권노갑이 아니라 박진 한명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나보다.  

  박진을 보면 한명숙이 보인다는 말. 안성용 기자가 참신한 발상으 했지만 둘의 처지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 실수하면 실수일까? 왠지 실수였기를 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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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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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은 책의 소재는, 표제에서도 드러나듯, 여자들이다. 피와 살을 지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여자들. 이런 소재를 고른 것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마초도 아니다. 그저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남자일 뿐이다. ---(중략)---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 행성에 살다 죽은 수백억(?) 인류 가운데 철반 안팎은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그만한 비율을 여자들에게 할당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기록된 역사는 압도적으로 남자들의 역사다. 그 불공평함의 책임을 역사 기록자의 편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모계사회(라는 것이 정년 있었을까?)가 막을 내린 뒤, 역사는 남자들의 역사였기 대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천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온 것은 주로 남자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역사의 실천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여성을 남성보다 '덜 중요한 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공정한 역사 기록자라면, 역사 속에서 남녀가 제가끔 감당해온 기능부담량의 불공정성을 공정하게, 다시 말해 불공평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6~7페이지 책 앞에서 중에서 인용) 

  나는 서평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길게 인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 탓일것 같다. 독후감을 쓸 때 책의 내용을 요약하지 말라고 지겹게도 이야기하시던 국어 선생님들 덕택인지 내용을 길게 인용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서평을 쓰면서 잘 쓰겠다는 강박관념이라든지, 책의 내용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끄적거려 보는 것이고, 받은 느낌을 가감없이 적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의 서평은 꽤 조리있게 서지기도 하지만 어느 때의 서평은 내가 봐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지은이의 말을 길게 인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 이런 이례적인 일을 했을까? 써놓고 생각해본다. 왜 이런 짓을 했지? 왜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을까? 

  그렇다. 저자의 강박주의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왠지 책을 읽으면서도 껄쩍지근함을 느꼈던 것들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남성들의 공격성과 가부장적인 폭력성을 주장하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동의하자니 남자라는 정체성이 울고, 그렇다고 된장녀, 개똥녀, 백일 휴가녀라는 말로 마녀사냥식을 행하는 몰지각한 마초들의 편에 서자니 상식이 없는 사람이 되고...결국 선택하게 되는 것은 균형주의자의 입장이 아니던가?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는...음...워랄까? 젠틀맨이라고 할까? 남자들끼리 모여서는 시시껄렁한 성적인 농담을 하고 여성 편력을 자랑하지만(실제로 없는 것들을 만드렁 내기도 한다.),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예의바른 남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젠틀맨 콤플렉스랄까? 말로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남자라면 직감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비겁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모든 남자들의 모습이 대체로 이럴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와 젠틀맨이라는 관념으로 이렇게 교육받고 길들여져 가고 있다.(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난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페미니즘 수업을 들을 때가 있었다. 여성학이라는 기초 입문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 윤리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꼭 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윤리학자들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도 아니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굳이 여성학이라서가 아니라 나와는 학문의 방향이 달라서였다. 그들의 사상을 배우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페미니즘에 대한 수업을 들을가 말가 고민을 했냐면 말이다 여자 학우들 때문이었다. 요즘말로 "이뭐병"이라고 하나? 정말로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이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원래 그렇다고 반대로 어던 사람들은 전투적이다. 한국 남성들이 여자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억압한다고. 마치 "때려잡자 공산당" 이런 분위기다. 왠지 남자 학우들은 죄인이 된 기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남학생들이 학을 떼는 것이다. 여학생회를 마치 벌레 보듯이 보는 것이다. 대다수 남성들이 여성부를 바라보던 시각도 아마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자꾸 잡설이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남학생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오직 하나다. 죄인된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순전히 남성이라는 죄) 앞으로는 여성들에게 충성을 다 바칠 것을 맹세해야 한다.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면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꼰대가 되는 것이고, 필요할 때마다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는 것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기억해 보라. 벌칙에 흑기사는 있어도 흑장미는 없다.) 고종석이 자신을 자이노파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성이면서도 젠틀하고, 여성을 존중하면서도 페미니스트이기를 거부하는 균형잡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자이노파일이라는 말에서 읽었다. 여하튼 여자로서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남자로서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는 고종석이 인정하고 호의를 표하고, 때론 존경할 수 있는 34명의 여자들이 나와있다. 그들의 삶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다. 이 책의 분류가 역사인 것은 천만 뜻밖이다. 에세이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문학으로 분류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역사로 분류한 것은 남성의 역사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여하튼 그가 기록한 34명의 여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이다. 다만 여성이기 때문에(물론 이 이유만은 아니다. 대다수는 또한 좌파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좌파는 척결대상이지 관조의 대상은 아니다.) 잊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이 책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허구의 인물들인데 누가 클레임을 걸 것인가?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리고 이 책을 균형주의자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어찌 보면 평가절하하는 것은 사유리, 최진실 때문이다. 솔직히 사유리가 역사에 기록될만한 인물들인가? 내가 에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진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책에서 논의가 될 사람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젠틀맨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어절 수 없지 않을까?  

  꽤 흥미로운 인물들도 많이 있고, 역사를 움직여간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내용의 깊이가 부족하다. 간단한 소개는 되겠지만 그들의 평가에 대해서, 사건의 개요에 대해서 깊이있게 다루지는 못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을 다루다 보니 부딪치게 되는 자연스러운 한계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바란 흥미를 끄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깊이에서는 실패한 책이 아닐까 한다. 

ps. 황인숙과 강금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최진실과 사유리만큼은 아니다. 165페이지 6번쩨 줄 스물 살은 스무 살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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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인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왜 인간인가? - 인류가 밝혀낸 인간에 대한 모든 착각과 진실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정재승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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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인간인가?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이다. 왠 철학서적이라는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런 젠장이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수두룩 빽빽한 것이다. 한장씩 책장을 넘기면서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학적으로 참 많이 무지하구나라는 절망감을 마보았달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과학자들도 자기 분야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던데 최신과학 중의 하나인 뇌과학인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서평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지만 그래도 참고 읽으니 알아들을만한 내용이다. 왜 인간인가? 절대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이지만 저자는 절대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는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감정과 신경체계, 뇌의 활동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은 별개의 종이 아니라 진화의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특별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마이클 가자니가는 과학자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하여 무엇인가 특별한 종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특별하다는 그의 주장도 종교적인 신념이나 철학적인 사유에서가 아니라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의 단계를 밟아가면서 다른 종과는 달리 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인 과학자들과 가자니가 사시에 존재하는 차이란 진화가 개체에게 적용된 진화냐, 집단에 적용된 진화냐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자니가는 인간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 예를 들어 혐오성이라는 감정이라든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 목적성을 아는 것들, 윤리적인 판단들은 태어날 때부터 DNA에 박혀서 존재하는 선천적인 능력임과 동시에 이것들을 발전시키는 것은 사회적인 진화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가자니가에 의하면 날카로운 발톱도, 강력한 힘이나 날랜 몸짓도 갖지 않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생존에 안전을 얻기 위해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하여(생존의 경제성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다른 동물들보다 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가지 뇌 연구의 결과들을 들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은 대체로 이렇다. 어떤 주제를 던지고 이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면서 주의를 끈다음 그것들을 실제 연구 결과를 들어 설명한다. 거기에 덧붙여 동물들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나타나는지 실제 연구 결과를 들어 설명하고 낮은 차원에서 인간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지만 더 고차원적인 능력으로 들어가면 인간만이 갖게 되는 복잡성과 특별성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맺는다. 그리고 이 복잡성과 특별성도 결국 사회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 용어와 내용이 친숙하지 않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지만 대략적인 내용만은 참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뇌과학의 흐름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으며 어느 부분에서는 왠만한 철학책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과학자이면서도 개체 진화가 아니라 사회집단 진화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뇌의 활동은 결국 관계성을 지향한다는 그의 결론은 인간 사회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지선을 제공해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이라면 너무 까발렸다는 것일까? 모든 신비와 종교와 신에 대한 생각들, 철학적인 관념들도 화학물질에 의한 뇌의 활동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너무 눈에 거슬릴 뿐이다. 어쩌면 이것도 화학물질에 의한 뇌활동의 한 현상일뿐일 수도 있겠지만. 

  ps. 어제까지 올려야 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초상집에 다녀오느라 하루 늦은 서평을 올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것일까를 이 책의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충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무의식 속에 알고 있다. 지금 내가 그 사람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을 하고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언젠가 나의 가족이나 내가 죽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대충 이런 정도?(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라고?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상식을 배배꼬아서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인텔리들의 고질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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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딸콤플렉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착한 딸 콤플렉스 -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
하인즈 피터 로어 지음, 장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착한 딸 콤플렉스... 

  처음에는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와 같은 류의 책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성질의 책이다.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제목과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심리학"이라는 부제는 이 책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일까? 이 책의 원제는 "Wege aus der abhängigkeit(의존에서 벗어나는 방법)"인데 이것과 착한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이라는 부제와 제목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물론 "심리학 책이다. 의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라고 제목을 잡으면 일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나 전공자들에게나 읽힐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왜 제목을 그렇게 잡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독자를 의식한 것이 아닐까?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이 참 묘하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점수가 발표되고 수시 합격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외국어 고등학교를 비롯한 특목고들의 입시 또한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그 중에 2가지만 사건만 추려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는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에 관한 문제이다. 같이 교회를 다니시는 분의 손자와 또 다른 분의 딸이 외국어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게 되었다. 시험보기 한달 전부터 마음이 불안하신지 열심히 기도하시더라. 기분좋게 시험을 보고 왔는데 막상 결과는 둘다 떨어졌다. 그런데 둘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가 정반대이다. 딸이 시험에 떨어진 것을 보신 이 분은 며칠간 딸과 같이 놀러다니고, 찜질방도 가고 대화도 하면서 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하여 노력했고, 그 결과 딸도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다른 한 쪽의 이야기는 정반대이다. 손자이기에 드러내놓고 아무 말도 못하시는 그 분의 말에 의하면 며느리가 손자를 쥐를 잡듯이 잡는다는 것이다.(조금 표현이 과한가? 내가 듣기엔 그렇다.) 사춘기가 늦게 찾아온 손자가 매일 어머니와 냉전 중이고 그 화를 며느리가 시부모인 자신들에게, 남편에게 풀고 있단다. 그래서 요즘들어 며느리가 많이 미워졌단다. 

  둘째는 대입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능 결과가 예상 보다 좋지 않은 녀석들이 주변에 몇 있다. 그 녀석들은 집에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수능이 끝나서 기분좋게 나가 놀고 싶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지만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 눈치만 보고 있단다. 그래서 밥 사주면서 "집에 있으면 뭐하냐, 죄인도 아닌데 왜 눈치 보냐?" 이러면서 다독여 주고 있다. 수시 결과도 일부러 묻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귀에 다 들어오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입시철만되면 난리도 아니다.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자기 혼자 속으로 실패를 삭히기도 힘든 판에 부모님의 눈치를 봐가면서 숨을 죽여 지내야 한다. 가뜩이나 힘든 여린 마음에 돌을 몇개나 얹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묻고 싶다. "정말 자식을 사랑하세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들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과도한 사랑이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시나보다. 아이들의 인생과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어린애들이 무엇을 아냐면서 진로와 직업까지 본인이 결정해 주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답답하다. 아이들에게 몰래 속삭인다. "네 맘대로 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잘 결정해. 부모님이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야." 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면 믿는 도끼에 발등찍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세상에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도 자기 주관이 있고 생각이 있다. 집에 21개월된 딸과 9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그녀석들도 자기들 생각이 있다. 아빠 엄마와 협상을 할줄도 알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도 안다. 나와 아내는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되고. 안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들의 생각과 인생을 존중해서이다. 지금부터 연습하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아이의 인생을 콘트롤하려 들까봐 겁이 나서이기도 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은 자식이라도 부모 입장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부모님들은 이상하리만큼 자기 자식들의 생각을 무시한다. 어리석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면서 "네가 뭘 알아. 아빠 말들어. 엄마 말 들어. 내가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그렇지만 자식된 입장에서 그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반발감만 생긴다. 자꾸 집을 떠나고 싶어한다. 내 어머니도 여느 어머니처럼 그랬고, 나도 여느 자식처럼 그랬다. 결국은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데 받아들이질 못하나 보다. 그러다 보니 자식을 약하게 기른다.어디로 떠나지 못하도록 자기 옆에 꽁꽁 매어두려 한다. 자식의 배우자도 본인이 고르고, 자식의 직업도 본인이 선택하는 등 자식을 인형처럼 조종한다. 그러면서도 본인들은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그림동화 거위치는 소녀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리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권한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키우라고 말하며, 자식들에게는 투쟁해서라도 독립을 쟁취하라고 말한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인용해 본다.

 에리히 프롬은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존적 상태를 벅어나자면 용기가 필요하다. 발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과거의 관계를 떠난다는 의미이고, 이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매일매일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며 진실을, 자신의 진실을 말해야 하며, 인간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지만 또 많은 점에서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전해야 한다.(198p)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말이지만 특히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 금과옥조가 되는 말일것이다. 자식이 언제까지 어린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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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사용설명서
옥성석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0년 9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6월 25일에 저장

성경의 탄생- 성경은 어떻게 인류 문명을 지배했는가?
존 드레인 지음, 서희연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2012년 10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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