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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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근래 내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기독교계에는 한완상과 이어령이라는 두 지성이 있다. 한완상은 기독교가 키운 인물이고, 이어령은 재수 좋게 주은 인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설익은 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냥 창피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아비판을 해본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셨다.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상아색 표지의 책을 사주셨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지고 다녔던 책인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당시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이리저리 식모살이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빛이 나 보이던지. 지금은 깨끗한 표지로 새롭게 책이 나왔지만 역시 몽실 언니는 그 촌스러운 책 표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아는 사람은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접한 것은 몽실 언니보다는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통해서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목회를 하시면서도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꾸준히 구독하셨고 그 덕에 나는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한티재 이야기도 제목을 몰라서 그랬는데 읽어보니 그곳을 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촌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와 옛날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민들레 교회 이야기와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최완택,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최완택 목사님께서 계시는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등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웠다. 

  내가 자란 마을은 꽤 촌구석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촌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인지라 처가를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그곳을 지나노라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 기업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발전과 발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다행히(?) 촌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밥서리, 딱지치기, 호디기(버들피리를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등 게임기가 없어도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칡뿌리, 대추, 호두, 밤, 감, 삘기(삐리라고도 한다.), 머루, 다래, 으름, 아가배(아마도 야생 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지금도 그것들을 어떻게 잘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착각할지 몰라 밝히지만 나는 78년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그래. 그것도 있었어. 참 재미있었는데. 그건 참 맛있었는데.”몇 번씩이나 추억에 젖어서 맞장구쳐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기만을 챙기다 보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다보니까 더불어 살아야할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로 사는 천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은 모두 바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진정 이 땅 위의 위대한 인간은 바보로 돌아갔다. 머리로 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저 테레사도 그랬다.(P.116) 

  그렇다 세상에 참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편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는가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적인 면은 윤택하게 만들었을지언정 삶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어도 즐거웠고, 맛있는 쿠키나 음료수가 없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이 주는 것들을 채집해서 먹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낭만과 공존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똑똑하고 잘난 천재들이 세상을 꽉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조차도 천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오셨다면 십자가 대신 똥지게를 지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는다. 

ps.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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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선생님을 다시 봐야 하는데, 님의 리뷰 덕분에 바보 같은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고 갑니다. 주변을 살피면 정말 묵묵히 바보처럼 사는 분들도 있으니,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지요.

saint236 2010-04-03 23:18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몽실언니 다시 한번 읽을까 합니다.
 
알라딘 5기 신간 평가단을 모집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라는 딱딱하고 만만치 않은 분야를 시라는 만만치 않은 문학 장르를 통하여 설명하는데 너무나 간단명료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서 어느새 다 읽었는지 모르게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남는 그 묵직함이란. 오랜만에 재미있게 책을 읽은 것 같다.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내 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http://blog.aladin.co.kr/trackback/759552125/3349839)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http://blog.aladin.co.kr/trackback/759552125/3375882)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http://blog.aladin.co.kr/trackback/759552125/3440750)

역사의 공간 (http://blog.aladin.co.kr/trackback/759552125/3422529)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http://blog.aladin.co.kr/trackback/759552125/3510952)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렇다면 결국 기쁨의 윤리학은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을 지향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의 기쁨을 가로막는 타자와 힘써 싸우고, 또한 동시에 타자의 기쁨을 가로막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의 진정한 의미일 테니까요. 그래서 마침내 기쁨의 윤리학은 이제 자유의 정치학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P.418) 

  조금은 여유있는 5기였던 것 같다. 4기 때가 제일 정신이 없었던 듯하다. 아직 읽지 않은 한권의 책은 하루만 더 묵혀뒀다가 읽기로 혼자 생각했다. 아직 서평 날짜가 남아 있고 내용도 부담이 없는 것 같아서 큰 걱정은 없다.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5기였다. 트위터에서 Peace_n_Pride로 활동하시는 간서치님을 만나 가끔 트윗을 날리면서 이번에는 A조가 좋다 B조가 좋다 궁시렁 대기도 했고, Arm님과 역사의 공간과 굿바이 사교육을 물물 교환했으면(물론 Arm님이 에코의 책을 하나 더 보내주셨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전호인님의 이벤트에서 가지고 싶었던 메두사의 시선(물론 이것도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꼭 읽기로 다짐하고 있다.)을 받았다. 게다가 문학쪽 책인 삼한지를 동행님의 간청(?)으로 읽게 되었다. 6기에 다시 선발되었으니 꼬박 1년을 알라딘 서평단에서 놀고 있달까? 그래도 아직 이곳이 재미있어서 떠나지 않고 있다. 퀄리티가 안되면 꾸준함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놀고 있으며 그 덕에 책을 읽고 있달까? 그동안 수고해 주신 서평단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신 "알라딘 신간 평가단"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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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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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그의 삶에 고개를 숙이는가? 처음 “우리는 그의 삶에 왜 열광하는가?”라고 쓰려다가 제목을 바꾸었다. 열광이라는 말보다는 고개를 숙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원래 이 책은 교회 청년들이 읽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위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책에 푹 빠져버렸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결혼하는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중 이 책을 읽고 울고 말았다.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체면(?)을 생각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모르게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느라 애를 먹었다.  

  이 책은 한 청년의 바보같은 사랑이야기이다. 그 사람이 한 여자를 향한 지고 지순한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눈물이 날 법한데, 그것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자기가 맡은 환자를 위한 것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왜 안수현이라는 청년이 그렇게도 사랑하면서 살았던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바보 청년 안수현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최고 표현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릭워렌 목사 말 인용(P.53) 

  참 바보같은 사람이다. 사랑을 베풀어 돌아오는 것이 하나 없을지라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내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고, 삶을 주는 것은 참 아까운 짓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바보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니... 참 아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그저 헛된 것이 아니기에 그도 천국에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큰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절름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아들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P.262) 

  이 책을 읽고 간절히 기도한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바보가 되고 싶다. 안수현이라는 한 청년의 짧은 삶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해서, 그의 말대로 예수의 흔적을 발견해서 기쁘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께 위로의 인사를 보낸다. 그를 알던 많은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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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 마키아벨리로 본 이명박, 오바마로 본 노무현
박성래 지음 / 베가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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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다운 대통령이라? 서글프게도 대한민국은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져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이승만(1~3대), 윤보선(4대), 박정희(5~9대), 최규하(10대), 전두환(11~12대), 노태우(13대), 김영삼(14대), 김대중(15대), 노무현(16대), 이명박(17대) 총 10명의 대통령을 찾아봐도 대통령다운 대통령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막은 대통령(이승만, 이명박), 국민들의 소리를 찍어 누른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기대를 저버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기만한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자리만 차지한 대통령(윤보선, 최규하). 물론 이런 분류에 동의를 하지 못하는 분이 있을 줄로 안다. 그 중 노태우, 이명박, 김대중, 노무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는 왜 전두환과 같은 반열에 올리지 않았는가? 그가 대통령에 올라가기까지 많은 피를 흘렸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어서는 “보통사람”을 외치면서 국민들을 속이는데 몰입했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김영삼 중간에 있는 것이 그저 위치만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의 성향도 그렇지 않을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강압적으로 내리 누르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다른 대통령들도 했을테니 귀를 막은 사람이라고 하자.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화라는 기대를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신자유주의를 고수했으니 기만이라고 표현했다. 지지층의 생각과 기대를 저버린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개중 누가 낫느냐는 판단은 보류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누가 낫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는가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 평가를 내리기 위해 내가 사용한 기준은 저자도 말한 국민과의 소통이다.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소통통로라든지 신문고가 아니라 정말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대통령의 말을 들으려고 고민했는가를 대통령다운 대통령이라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정말로 우리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참 서글픈 일이다. 사마천 선생께서 말하지 않았던가? “국민과 싸우려고 하지 마라. 항상 국민이 이기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서글프게도 집권층과 국민과의 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참 국민 노릇하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저자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말한다. 국민과의 소통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근거가 있든 없든, 보편적 정서를 무시해선 안 됩니다..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민심 없이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여론을 형성하려는 리더는 행정 업무를 집행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리더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P.24) 

  두 번째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반대파를 향한 인내와 아량이다. 어느 조직이든 답답한 사람들이 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다못해 동창회를 해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고스톱 룰을 정할 때도 동네마다 룰이 달라서 온갖 잡음이 있다. 그럴 때 우리가 선택하는 룰이 무엇인가? 맘에 안 맞는 이들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룰을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4대강이라든지, 세종시라든지 요즘 최대 현안도 결국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밀어붙이기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린다면 딱 한 발만 앞서서 기다려줄 수 있는 아량과 인내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사회가 아닌가? 노예 해방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풀어가면서 링컨이 했듯이 말이다. 

  링컨은 백인 국민들의 여론을 살피고 여론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만 움직인 것이다. 여론의 판단이 항상 도덕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일을 진행시키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론이 움직일 때까지 참고 기다렸던 것이다.(P.204) 

  세 번째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일가? 엄격한 도덕성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비록 먹고 살기 힘들다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경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왜 그렇게도 쉽게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었는가?(물론 이 대통령은 지지도도 조작하여 아니라고 귀를 막아버리지만) 도덕성이 아닌가? 많은 내정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덕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그렇게 말년에 힘들었는가? 왜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도덕성이다. 국민들은 비록 자신들이 비도덕적이라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의 정치분야 대표선수인 대통령에게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국민보다 도덕성이 낮은 대통령이라니... 그저 습쓸할 따름이다.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도덕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평소에 도덕이 관심이 없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 같지만 리더에게는 엄격한 도덕을 요구한다.(P.244)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북한도 형식상으로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모든 나라들이 독재국가라는 말을 거부한다.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에도 형식상으로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주의 공화국이었다. 북한과 비교해서 우리가 우월하다 내세웠던 것이 무엇인가? 민주주의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민주적인 절차가 무엇인지 가르쳤다.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그렇게 맹렬하게 싸운 이유가 나는 학교에서 배운 민주적인 절차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 여기에서 연유하는 부조리와 실망이라 판단한다. 물론 나도 그랬었고. 저자는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명쾌한 결론을 내리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민주주의가 효율적인 체제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치라는 말에 코웃음을 칠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가치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가령,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국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좋은 대통령이라고 가르친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공복이라고 가르친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가르친다. 검찰은 민주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반장을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뽑도록 훈련시킨다. 반장은 반 친구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반장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면 나쁘다고 가르친다.
  학교에서 이렇게 배운 아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P.308 ~ 309) 

  학교에서 민주적 절차를 배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선이라고 배운 국민들에게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겠는가? 부끄러운 대통령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무시하고 제한하는 대통령을 향하여 무엇이라 하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민족의 태양이시오, 우리의 영도자시오, 위대하신 아바이 수령이 아니다. 그저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주는 소탈하고 인간적인 지도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많은 국민이 열광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자이툰 부대원들이 대통령의 전격 방문을 그렇게 기뻐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들의 말과 생각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아주 작은 만족이 아니었던가? 만약 그게 체질상 맞지 않는다면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덕목이고 의무이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명박 산성을 쌓아올리지 않고 국민을 만나 “미안하다, 생각이 짧았다.”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촛불을 밝혔겠는가? 반면교사로서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교훈을 얻는다.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의 말을 들어주자. 최소한 듣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듣는 척이라도 해주자.   

  저자와의 만남 시 저자가 물었다. "이 자리 왜 왔어요?" "답답해서요. 사회가 온통 깝깝하잖아요." 그렇다 소통이 막힌 사회는 그저 깝깝할 뿐이다.

  ps.가끔 후배에게 내 블로그에 방문자가 폭주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부분을 씹으셨나요? 그러다가 조사 들어가면 큰 일 납니다.” 물론 나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을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왠지 그 말을 들으면서 살짝 겁이 나기는 한다. 그러면서 씁쓸해 한다. 도대체 이런 말도 못하는 세상이 제정신인가? 오늘도 제정신이 아닌 세상 속에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서글픔을 애써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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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레인보우
김인희 지음 / 아이디어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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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지개라... 

  어떤 사람은 무지개에서 희망을 본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을 보고, 어떤 사람은 빛의 파장에 의한 산란을 본다. 다 맞다. 어느 것 하나 배제할 수 없이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이 무지개의 매력이 아닐가? 삼색으로 보이든, 오색으로 보이든, 아니면 일곱색으로 보이든 몇 가지 색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는 일곱 색 중에 어느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두 모여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아치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가 아닐까? 분노, 원망, 희망 기쁨 등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무지개라는 제목에, 종교서적이라는 말에, 에세이라는 말에 부답없이 책을 펴 든다. 그러나 한자 한자 읽어가면서 마음에 깊은 깨달음과 여운이 남는다. 때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중에 마음 속 깊이 여운을 남긴 두 부분을 인용해 보려고 한다. 


<작년 이맘때>
2008년 6월 2일 밤에 쓴 글을 꺼내 읽는다.
<백성 노릇>
3. 15
4. 19
5. 16
12. 12
5. 18
6. 10
이 나라 백성 노릇 하기가 고비고비 힘겨웠음은 아무 말 없이 숫자만 보여줘도 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도 있는 분노와 슬픔이 이 세대 사람들 가슴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때라고 또다시 닭장차를 봐야 한단 말인가! 군홧발에 밟히는 어린 여학생의 머리를 보다니, 기막힌 마음에 벌떡 일어나 읹는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5년의 직임이다.(사마천의 충고는 “지도자는 절대 백성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누가 이기냐 하면 백성이 이기더라.” 2500년 역사를 기록한 사람의 말이다.)그러나 죽을 때까지 하는 이 나라 백성 노릇, 그리고 죽은 후 영원토록 해야 하는 ‘무슨 노릇’이 있음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현 대통령에게도, 전 대통령에게도 나는 ‘사마천’을 말하고 싶었었구나. 전 대통령에게는 사마천의 궁형과, 그가 가진 백성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떠올릴 수는 없었는가? 하고 묻고 싶었던 거야. 목숨을 주신 분 앞에 누구나 다 서야 하는 때가 올 터이기에 나는 한없이 두려움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지금도 말하고 싶다. “敬天愛民경천애민” 지도자의 덕목이다.(p.53)

  정말 이 나라 백성들은 백성 노릇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 백성 노릇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만들지 않았는가? 요즘들어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 우리나라가 챙피해질 때가 있다. "피씨방 알바는 내 재떨이를 갈아줬다. 국가는 나에게 무엇을 해줬는가?"라는 모 개그만의 말처럼 실망만 안겨주는 이 나라가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백성을 이겨보려는 대통령들이 답답하다. 더 답답한 것은 백성들의 백성 노릇을 노예나 부하 직원 정도로 국한시키는 위정자드의 좁은 소견이다. 이래저래 국민 노릇하기 힘들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 동생들 중에는 특별히 음식 솜씨가 좋은 동생이 있다. 무엇이든 그 애가 만들면 맛이 각별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음식 만들기를 즐거워한다. 맛있게 먹는 모습, 맛있다는 말 한 마디면 만사 오케이. 제 몸 힘든 것도 눈 녹듯 사라지는 특이체질이다. 드디어 동생이 꿈에도 소원이던 자그마하고 예쁜 밥집을 하나 차렸다.
오늘 오후에 잠깐 들렀다가 ‘볼’것을 보고 왔다. 마주앉아 있던 동샌이 벌떡 일너나 거의 달려나간다. 그야말로 맨발로, 현관에서 신 신을 새도 없이. 손님을 너무 적극적으로 맞이하나? 돌아보니 창 밖에 파지를 줍는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엉거주춤 서 계신다.
이제 막 문 연 식당에 모아놓은 신문도, 박스도 있을 리 없다. 할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이 집에 없다. 이 집에 있는 것은, 따뜻한 밥상과 ‘꿈에도 소원이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주인의 마음뿐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6)이다.
돈이 없다고 머뭇거리는 할머니를 강권해서 밥상 앞에 앉힌 동생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소원을 이루었나이다.” 볼 것을 봤으니, 할렐루야. 음식 솜씨 빵점인 목사 언니는 동생이 싸주는 나물 반찬들, 보물단지처럼 껴안고 퇴장이다. 아, 배부른 주말이다.(p.112) 

  온통 답답한 것뿐인 세상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내게 있는 것들을 나누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막 개시한 식당에 공자 손님이 오기라도 하면 재수없다고 하는데 이 분의 동생은 발벗고 뛰어나가서 모셔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마음, 신앙을 실천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볼 것을 보고 왔다는 저자의 말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나도 오랫만에 볼 것을 봤으니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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