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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평점 :
요근래 내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기독교계에는 한완상과 이어령이라는 두 지성이 있다. 한완상은 기독교가 키운 인물이고, 이어령은 재수 좋게 주은 인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설익은 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냥 창피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아비판을 해본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셨다.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상아색 표지의 책을 사주셨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지고 다녔던 책인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당시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이리저리 식모살이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빛이 나 보이던지. 지금은 깨끗한 표지로 새롭게 책이 나왔지만 역시 몽실 언니는 그 촌스러운 책 표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아는 사람은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접한 것은 몽실 언니보다는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통해서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목회를 하시면서도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꾸준히 구독하셨고 그 덕에 나는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한티재 이야기도 제목을 몰라서 그랬는데 읽어보니 그곳을 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촌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와 옛날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민들레 교회 이야기와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최완택,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최완택 목사님께서 계시는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등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웠다.
내가 자란 마을은 꽤 촌구석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촌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인지라 처가를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그곳을 지나노라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 기업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발전과 발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다행히(?) 촌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밥서리, 딱지치기, 호디기(버들피리를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등 게임기가 없어도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칡뿌리, 대추, 호두, 밤, 감, 삘기(삐리라고도 한다.), 머루, 다래, 으름, 아가배(아마도 야생 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지금도 그것들을 어떻게 잘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착각할지 몰라 밝히지만 나는 78년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그래. 그것도 있었어. 참 재미있었는데. 그건 참 맛있었는데.”몇 번씩이나 추억에 젖어서 맞장구쳐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기만을 챙기다 보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다보니까 더불어 살아야할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로 사는 천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은 모두 바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진정 이 땅 위의 위대한 인간은 바보로 돌아갔다. 머리로 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저 테레사도 그랬다.(P.116)
그렇다 세상에 참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편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는가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적인 면은 윤택하게 만들었을지언정 삶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어도 즐거웠고, 맛있는 쿠키나 음료수가 없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이 주는 것들을 채집해서 먹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낭만과 공존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똑똑하고 잘난 천재들이 세상을 꽉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조차도 천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오셨다면 십자가 대신 똥지게를 지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는다.
ps.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