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로스 D.파크 & 아민 A. 브롯 지음, 박형신.이진희 옮김 / 이학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록커를 꿈꾸던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져버리고 그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삶의 최전선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의 마지막이 행복이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명퇴 후 경제력을 잃어버리고 눈치밥을 먹는 백수 기영, 안정된 직장에서 잘리고 부담스럽게 공부잘하는 아들 만난 덕에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등골빠지는 성욱, 타국 땅에 마누라와 자식들을 유학 보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기러기 아빠 혁수.  

  그들의 삶은 꿈이나 열정이 아닌 가족을 위한 경제적인 부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경제적인 부양이 불가능해지자 눈치밥을 먹는 기영은 활화산의 리드보컬의 장례식을 계기로 기타를 메고 여기저기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맨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식들에게 올인하는 부인, 그 부인의 치맛바람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랑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달리는 성욱의 삶 또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혁수 또한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자식에게 영어 몇마디 더 가르쳐 보겠다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자식들을 유학보내 놨더니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처럼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그들의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주변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눈을 감고 10을 세는 것만큼 쉽다. 평생 직장에서 일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려던 아버지에게 어느날 자식이 어학 연수를 보내달란다. 돈이 없다는 아빠에게 퇴직금이 있지 않냐고 대꾸한다. 어이없어 아내에게 이 말을 하자 당신은 왜 자기 자신 밖에 생각하지 않냐고 꾸지람을 듣는다. 어떤 이는 택시 운전하고 하루 세끼를 빵과 우유로 때우면서 나머지 전부를 자식들을 위해 해외로 송금한다. 이게 이 시대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들의 현주소이다. 자식에 치이고, 아내에 치이고, 생활고에 치이고...아빠들이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을 위해 직장을 빠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아빠들의 관심을 그저 불편한 개입 정도로만 생각하는 자녀들, 가족들의 생계 부양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남자들에게 자상한 아빠로서 노력하기 보다는 정신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 가족을 위해 가족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나쁜 아빠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현실적인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바쁘게, 정신없이,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숨막힐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 직장을 맴도는 내 삶이 정말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에 가서 하염없이 앉아서 책이라도 읽다 오던지 무엇인가 끄적대다 오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 때문에 바로 집으로 직행한다. 일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 때문일줄 알면서도 불평하는 아내의 입장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야속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 보고 있으면, 정말 보고만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필요하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대기 중인데 그것이 아내에게는 노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올해 목표가 좋은 아빠가 되기인데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참 힘들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라 아내가 보기에 놓은 아빠, 사회가 보기에 좋은 아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참 나쁜 남자가 되게 하는 것도 많지만 나쁜 아빠가 되게 만드는 것들도 많다. 이래서 딸 딸을 낳으면 금메달, 딸 아들을 낳으면 은메달, 아들 딸을 낳으면 동메달, 아들 아들을 낳으면 목메달이라고 하나보다. 여자분들이 서운함을 느끼겠지만 남자들이 느끼는 서운함과 상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주변에 있는 젋은 아빠들(물론 나를 포함하여) 삶이 참 고달프다.  

  마지막으로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이 시대 아빠들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개같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돈을 벌어 가족을 행복하게 하지만 정작 그 안에는 아빠가 설자리는 없다. 쓰린 속에도 라면을 먹으며 가족들이 보낸 비디오 테잎을 보면 즐거워 한다.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삶은 더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게 화가 났는지 강인구는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진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집어 던졌던 라면 그릇을 치우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그 장면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저렇게 살 것이면 결혼을 안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한번 묻는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대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현재 아빠의 자리를 경제적인 부양자로 한정짓는 세태와 잘못된 교육열을 비꼬는 신조어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나는 무엇일까? 사는 곳이 잠실이나 경제력은 그에 걸맞지 않으니 참새나 갈매기 사이쯤 되려나? 

  • 기러기 아빠-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하는 가장. 명절이나 휴가에 맞춰 1년에 한두 번 가족을 만나러 가는 아빠는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다. 그 모습이 겨울 철새 기러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 독수리 아빠- 재력이 든든해 가족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바로 날아갈 수 있는 아빠 
  • 펭귄 아빠-등이 휘도록 일해도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삯도 남지 않아 인천공항에 홀로 남아 떠나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펭귄의 처지에 빗댄 것이다. 
  • 참새 아빠- 가족을 외국에 보낼 형편이 안되서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나애와 아이만 강남으로 유학보낸 아빠 
  • 갈매기 아빠- 자녀를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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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1-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못 읽었고,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보고 좋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TV프로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남편이 맨날 퇴근 후 어떤 모텔로 출근을 해서 몇 시간씩 있다가 퇴근을 하는 거예요.
아내는 바람이 났는 줄 알고 뒤를 밟았는데 보니까,
남편은 책 읽고 DVD도 보고 라면 같은 것도 먹고 혼자 숨통 트일 곳이 필요했던 거예요.
극단적인 예이겠지만,그걸보고부터 전 달아날 쥐구멍의 여지는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saint236 2010-11-04 12: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내들에게도 남편들에게도 쥐구멍은 필요하죠. 제 아내도 누굴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미안한지 몇 시간 뒤에 전화화서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cyrus 2010-11-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만 있는것이 아니라 독수리, 참새, 펭귄도 있고,,,
갈매기와는 또 다른 뜻이 있었군요. 저도 결혼하면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해봅니다. 왠지 나쁜
아빠가 될 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0-11-06 18:58   좋아요 0 | URL
나쁜아빠라는 책은 아빠가 될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책입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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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작정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권의 내용은 묘하게도 아르고스 원정대의 모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아니다. 아르고스 원정대의 모험에 대하여 적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했던 과거의 결심을 다시 상기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스토리텔러 이윤기는 아르고스원정대의 일원으로 프릭소스의 금모양피를 찾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쉼플레가데스를 건너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프릭소스의 금모양피를 손에 넣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역시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잃어버렸던 왕위를 되찾는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금모양피를 손에 넣어 돌아오는 순간 이아손의 역할은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내려간다. 아니다. 조연도 과분하다. 엑스트라의 역할로 대폭 축소된다. 이제 스토리의 주인공은 메데이아로 넘어간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 이아손의 역할이 끝났달까? 이윤기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아손에게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버지 아이손이 있고, 되찾아야할 나라가 있다. 숙부 펠리아스에 대한 복수도 이아손이 마침내 해내야 할 숙제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야기는 메데이아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전개된다. 이아손의 역할은 금양모피를 찾는 데서 사실상 끝난다. '이아손이 찾아다닌 것이 실은 금양모피가 아니었다'고 한 오비디우스의 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양모피는, '노모살달로스'였던 이아손이, 모험과 탐색의 여행 끝에 마침내 되찾은 한짝의 가죽신인지도 모른다.(P.224~225) 

  이아손은 헤라클레스의 말마따나 어른이 되기 위하여 아르고스 원정대를 조직했고, 금양모피를 찾아 나선 것이다. 금양모피가 단순한 목표요, 물건이었다면 보레아스의 아들들을 보내거나 도둑질의 명수를 보내어 훔쳐오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헤라클레스가 원정대의 대장을 맡기를 고사하고 스무살의 이아손에게 원정대의 대장을 맡긴 이유가 무엇인가? 금양보피를 찾아 나선 원정은 이아손이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통과해야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여행의 기회를 갖게 된 젊은이들이 한결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고 목표하였던 금양모피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 이아손의 모습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젊음의 활기참도, 모험심도 사라져 버리고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지고가야할 무거운 책임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다. 이아손이 다른 여인에게 한눈을 팔아 복수심에 두 아들을 죽이고 외국으로 가버린 메데이아를 정말 분노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다른 여인에 대한 질투심일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질투심이 아닌 이아손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조국과 아버지를 버리고 그 빛나던 이아손을 따라 왔는데 이아손이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되었을 때 메데이아가 느꼈을 실망과 배신감, 사랑만큼 깊은 분노를 애써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음식을 먹다가 런닝셔츠에 음식을 흘릴 때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뭇 기혼 여성들의 마음처러 말이다.(물로 나도 애는 쓰지만 배불뚝이 아저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T.T) 모험심, 활달함, 호기심 등등 이아손을 빛나게 하는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한 곳에 정착하여 평범하게 변해버린(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아손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이아손은 더이상 메데이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 덩어리가 아니다. 물론 이아손에게 메데이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만약 이아손이 끊임없이 자신을 매력남으로 갈고 닦던지, 메데이아에게도 이아손처럼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던지, 혹은 그것을 참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약간은 넓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되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이 없었다 보다. 

  여하튼 쉼플레가데스를 건너 금양모피를 얻은 후 정착한 이아손의 뒤끝이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인간)'는 나그네길에 머물 때 아름답다. 이올코스에 정착한 이아손의 뒤끝은 이렇듯이 누추하다.(P.239) 

  그의 책을 덮으며 나는 어디쯤에 있는가 생각한다. 나는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고 있는가? 아르고나우타이로서 아르고스호에 탑승해서 살고 있는가? 아르코스호(쾌속이라는 의미)에 탑승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떠밀려 내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젊은 날의 생명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금양모피를 얻은 양 한 곳에 정착하여 그저 그런 사람으로 떠내려 가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나의 뒤끝 또한 저자의 말대로 누추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모 가수가 노래 불렀는데, 그 나그네 인생길에서 혹 아르고스호에 탑승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흐린 주점에서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결심하고 아르고나우타이가 되어 길을 떠난 이윤기가 그립다. 진정한 호모 비아토르 이윤기가 떠난 길을 부러워하며 그를 그린다. 아울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새롭게 아르고나우타이가 된 그의 자녀들에게도 용기를 잃지말라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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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저자 이윤기 씨의 삶의 내력을 보면 자신이 글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신화처럼 된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이윤기 씨를 호모 비아토르로 비유한 표현이
참 공감이 갑니다.

saint236 2010-10-27 15:48   좋아요 0 | URL
평생을 신화를 말하다가 신화처럼 삶을 마무리한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의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쉽죠.

sslmo 2010-10-2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이 말년에 공부하신 걸 다 풀어내지 못하신 게 제일 아쉬워요~
이제 시작이었는데 말이죠~ㅠ.ㅠ

saint236 2010-10-27 18: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제 시작이었는데. 재인은 박명인가 봅니다. 다른 분들에 비하여 박명이시니.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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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불량 인권 국가이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인권이 무시되는 것은 북한같은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인권 침해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진국이자 그렇게도 닮고자 애쓰는 동격의 아름다운 나라(美國)에서도 인권 침해는 일어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인권 침해에 대하여,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종교소수자(양심적 병역거부자),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민족차별(제노싸이드)이라는 9가지 주제를 가지고 인권 침해에 대하여 설명한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도 전문적이지도 않고, 영화나 드라마, 책을 기반으로 실생활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가지고 인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굳이 어렵다고 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법률적인 설명 정도가 어렵다고나 할까? 

  人權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인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인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인권이 뭐냐는 질문에 대하여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어떤 것들이 인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막연히 전쟁이나, 강간이나, 강도와 같은 중범죄들이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 침해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도 인권에 대해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인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전히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제도적, 법률적 차별의 장벽은 앞으로 점점 무너져갈 것이 분명합니다. 차별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의 장벽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어린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아직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아기들이 '내가 싫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 아이를 비난하지 못합니다. 남과 관계를 맺는 데 서투른 아기들이 자기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유아적인 주장으로 남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은 우리 사화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는 전적으로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내가 우연히 이성애자로 태어낫다는 이유만으로 약간 높은 위치에 올라서 '너희들을 받아주겠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고 사는 권리들을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P.87 ~ 88)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내가 인권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무의식 중에 얼마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년전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헌병대 영창에 면회갈 일이 생겼다. 제대를 한달 정도 남겨둔 병장이 후임병을 성추행해서 영창에 갔다. 선후임 사이라는 강압적인 관계와 조금은 군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어했던 후임의 약삭빠름이 겹쳐져서 발생한 사건인데 몇 달에 걸쳐 성추행을 했고, 그것이 발각된 것이다. 군대에서 성추행은 무조건 영창을 간다. 성폭행같이 심한 경우(실제로 목격하기도 했지만)는 가해자가 군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기도 한다. 영창에 있는 녀석을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솔직하게 그녀석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디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 녀석을 정신병자로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니라는 자신감이 깨졌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기준지은 정상인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비정상인인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말도 그 녀석에게 공감이 되지 않고 훈계, 혹은 훈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권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방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특이함이 그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면 안된다. 특별하게 떠받들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존중해서도 안된다. 그냥 평범하게 친구대하듯이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 이루어 지느냐가 그 사회의 인권에 대한 건강함의 척도라는 저자의 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 시혜, 혹은 성은이 되기 마련이며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소설 속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딸에게 주는 가르침의 핵심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함께 함께 인권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명제입니다. 소설의 제목도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앵무새 같은 약자'들, 예컨대 톰 로빈슨이나 부 래들리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메씨지를 담고 있지요.(P.292)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 앵무새와 같은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인권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말과, 불편한 상태라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 그리고 불편함에도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직은 사회가 인권에 대해서 민감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 등 여러가지로 이해가 된다.  

  영화와의 만남이라는 이제는 식상한 방법이지만 여러가지 영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 책을 읽고 브래스드 오프라는 영화를 다시 봤는데 정말 눈물이 다 나더라. 첨바웜바의 "텁썸핑"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꼈달까? 그냥 책만 읽지 말고 영화를 구해서 같이 읽어본다면 한결 더 재미가 있고, 그 내용이 더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습관일까, 아니면 미국에서 공부해서일까 th를 ㅅ으로 발음해서 한참 헷갈렸다. 대처를 새처로 번역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게다가 메시지를 메씨지로 적는 등 ㅆ의 된 발음을 사용한 곳이 많은데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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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래스드 오프가 광부들 나오는 영화 맞지요?
영화관에서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저릿했던지..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잊어먹고 있었는데, 세인트님의 글 보면서 생각나네요.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제 그릇이 너무 작은가 봅니다.

saint236 2010-10-24 19: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광부들 나오는 영화. 첨바웜바의 텁섬핑의 오프닝 멘트죠. "음악이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sslmo 2010-10-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바뀐 표기 때문에 골탕 먹는 게 몇 개 있어요.
대처랑 쇼팽이랑 또 뭐가 있더라~^^

saint236 2010-10-27 09:52   좋아요 0 | URL
표기가 바뀐건가요? 여하튼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반대한다 -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김정욱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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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은 한반도 대운하의 조감도이다.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는 국민이 반대하면 실행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홍수 조절과 수질 관리 차원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은 해야한다고 말한다. 홍수와 수질 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강을 정비한다는데 왜 사람들이 반대를 하는가? 환경단체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4대강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가? 정부의 표현대로 그들이 전문 데모꾼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딴지를 거는 반대파들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4대강 정비 사업이 실상은 한반도 대운하 공사이기 때문이다.  

  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가? 한반도 대운하 공사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공사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강은 구불구불 흐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만들고 수심도 일정하게 파헤쳐서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것이 한반도 대운하 공사나 4대강 정비 사업 모두가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공사를 거친 강은 과연 어떤 곳으로 변할 것인가? 여전히 그곳에도 생물이 사는 곳이 될 것인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던지는 것도 고역인데, 이런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은 더한 고역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4대강이 한반도 대운하 공사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운하의 경제성이 어떠하냐는 것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운하의 비효율성과 비경제성에 대하여 객관적인 결과물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생태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굳이 몇마디 덧붙이고 싶지 않다. 이 또한 생태학자들이 자세하게 연구해 놓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왜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가?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면 그 사업은 실행하면 안된다. 절반이 무엇이냐 10명 중 2명만 반대해도 그 사업은 실행하기 어렵다. 1명이 반대해도 무작정 밀어 붙이면 안된다.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요 폭력이 된다는 것을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4대강 사업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포기하지 않는가? 왜 안하겠다 딱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려 하는가?  

  간단하다. 포기하기에는 걸려있는 이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정책의 초기부터, 아니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 되던 그 순간부터 땅을 샀던 사람들의 이권이 걸려있고, 메이저급 건설사들의 이권이 걸려 있고, 정치인들의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반대해도 거기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소수가 워낙 강자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포기해야하는 당사자들도 그 소수의 강자 안에 들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사업을 통해서 얻게 될 이익들을 환수해 버리고, 혹은 국가에 무상으로 바치게 한다해도(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단호히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것인가?  

  국책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편익을 위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절대로 그 안에서 소수가 이익을 나누어 가져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국책사업이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렸던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하여 이익을 받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이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판단을 한다면 이 사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둘째, 이 사업을 인한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금까지 정책을 경제 논리로 밀어 붙여 왔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먹고 살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다 감수했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 세대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강요되어서는 안되고, 될 수도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도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군인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 물으면 우리 아버지 세대는 밥 배불리 먹는 것이라 하였고 우리 세대는 초코파이와 초코바였으며, 이제는 콜라와 피자, 햄버거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경제 논리로 모든 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CEO 출신의 대통령께서는 이 사실을 모르시나 보다. 이젠 경제가 아니라 생명이요, 생태며, 지속 가능성이다. 녹색 산업이라니까 마른 잔디에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한국 축구 협회(공교롭게도 여기 장을 하시던 분과 대통령께서는 같은 당이다.)처럼 콘크리트로 강변을 둘러싸고 거기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면 되는 줄로 아시나보다. 이게 녹색산업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좋다. 한발 물러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익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것을 진행했다고 치다. 그래서 우리가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일일까? 그러한 사업의 폐단은 대체로 한두세대가 흐른 다음에 나타난다. 우리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에 우리가 벌인 사업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일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지금 대통령이 지는가?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지는가? 정치인들이 지는가? 우리가 지는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일을 벌이려는 것은 무슨 깡이란 말인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저자의 말을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비대해지기보다는 비옥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강은 강다워야 하고 숲은 숲다워야 하며 바다는 바다다워야 한다. 도시, 산골마을, 농촌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의 불빛들을 깊은 강가로까지 가져와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고 억지로 즐겁게 만들면서 돈을 더 쓰도록 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은 곳을 가면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기지만 금방 지루해지고 불편해진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돈을 들여서 꾸민 것보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깊고 오래가는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이 복잡하고 속도 빠른 시대에 고요하고 깊은 샘터 같은 곳이 더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P.70)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그것은 경제가 아니라 생명 존중의 가치로 접근할 때,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보장할 때, 비대보다는 비옥을 추구할 때 조금이나마 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당히 무책임한 사업을 바라보면서 그저 내 아들과 딸에게 미안하고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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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그쵸~미래의 그들에게 가장 미안할 뿐이죠.
어디 4대강 사업장엔 군인들이 동원됐다는 얘기도 들리구요~ㅠ.ㅠ

saint236 2010-10-27 09:53   좋아요 0 | URL
님의 서재에서 보고 저도 보게된 책이요. 애꿎은 군인들은 왜 동원했는지 원...

명랑만화 2010-12-3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블로그에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http://ya-n-ds.tistory.com/892

2010년 아름답게 매듭짓고 2011년 맞이하세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970년대에 씌여진 책이다. 노사 갈등과 빈부의 격차를 주제로 씌여진 연작 소설인데, 내가 대학교 새내기였던 10여년 전의 어느날 한 선배가 나에게 보라고 빌려줬던 책이다. 지엄하신 선배의 명령인지라 읽기는 했지만 그저 읽는 시늉을 했기 때문에 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냥 그런 책이 있구나, 동화책은 아니구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재작년인가 목사님께서 혹시 이 책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 보시기에 가지고 있다는 말하고는 얼른 가서 책을 사왔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내 딴에는 사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샀던 책인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어떤 분이 TTB 리뷰의 제목으로도 적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민주화 되었는가? 말이 어렵다면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얼마나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지난 몇년 사이에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다. 정치가, 사회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겪었던 분들의 경험담들, 그리고 내가 새내기였던 당시에 겪었던 일들이 다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실제 데모 현장에서 백골단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대가 아닌가 싶다. 1997년 새내기였던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 다녔던 데모의 현장, 장충단 공원에서의 메이데이 행사, 이어서 전경의 페퍼포(아는 사람들은 안다.)와 지랄탄, 백골단의 돌격을 피해 동국대 담을 넘었던 사건이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하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동국대는 불교 학교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곳이었는데 그날 고맙게도 경찰은 나를 동국대에 가게 만들어 줬다. 게다가 하늘에서 형광 페인트를 쏟아부었던 헬기(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도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그 당시의 공포와 분노감 또한 마찬가지다. 한총련 발대식 때 한양대 앞에서의 가투, 프락치 사건으로 인해 윤리적인 타격을 입고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줬던 당시 한총련 집행부들, 도시 빈민들의 힘겨운 투쟁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이젠 그런 시절은 끝난 줄 알았다.  

  아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크게 보도 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생존권을 건 투쟁이 있었고, 그것이 크게 불거진 것이 쌍용 사태이다. 밀어붙이기식 개발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다가 용산 참사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 불쌍하다고 한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 재수없어서 촛불 집회가 나오고, 광우병 사태가 나오고, 쌍용 사태와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노무현이 탓이라고 한다. 전 정부의 실정을 그대로 떠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정말 재수없어서 그런 것일까? 노무현 정부의 실정도 물론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러한 문제가 촉발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고, 아니다.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압하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적극적인 진압이 이런 극단적인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경제 규모는 커져가고, 자랑스러운 세계 기업 삼성을 외치지만 과연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살만해 졌는가? 경제적인 부유가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여전히 난쟁이는 있고, 난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찌부러져 난쟁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에도 그렇게 설득력을 가지고 읽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서러웠다. 슬펐다. 10여년 전에 읽었을 때도 슬펐겠지만 지금 읽으면서는 더 슬프다. 나아진 것이 없다. 더 팍팍해 졌다. 더 치열해 지고, 더 많은 난장이들이 생겼다. 그래도 당시에는 쇠공을 쏘고 칼이라도 휘둘렀지만, 지금은 그러한 힘마저도 없다. 그저 패배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난장이와 연대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난장이를 손가락질하고 빨갱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도 난장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까치발하기에 고달픈 인생들만 가득하다. 

  진지하게 묻는다.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10년 후에는, 앞으로 30년 후에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슬프다. 이 자리를 빌어 쌍용 사태를 통해서 투신한 사람들, 고통을 겪은 사람들,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내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에게도 애도의 말을 건넨다. 이랜드 노조, 기륭금속 노조원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진심으로 30년 후에는 더 이상 이 책이 슬픔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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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0-21 19:58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많이 슬프더라구요. 조금 더 슬펐으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