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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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970년대에 씌여진 책이다. 노사 갈등과 빈부의 격차를 주제로 씌여진 연작 소설인데, 내가 대학교 새내기였던 10여년 전의 어느날 한 선배가 나에게 보라고 빌려줬던 책이다. 지엄하신 선배의 명령인지라 읽기는 했지만 그저 읽는 시늉을 했기 때문에 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냥 그런 책이 있구나, 동화책은 아니구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재작년인가 목사님께서 혹시 이 책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 보시기에 가지고 있다는 말하고는 얼른 가서 책을 사왔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내 딴에는 사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샀던 책인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어떤 분이 TTB 리뷰의 제목으로도 적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민주화 되었는가? 말이 어렵다면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얼마나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지난 몇년 사이에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다. 정치가, 사회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겪었던 분들의 경험담들, 그리고 내가 새내기였던 당시에 겪었던 일들이 다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실제 데모 현장에서 백골단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대가 아닌가 싶다. 1997년 새내기였던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 다녔던 데모의 현장, 장충단 공원에서의 메이데이 행사, 이어서 전경의 페퍼포(아는 사람들은 안다.)와 지랄탄, 백골단의 돌격을 피해 동국대 담을 넘었던 사건이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하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동국대는 불교 학교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곳이었는데 그날 고맙게도 경찰은 나를 동국대에 가게 만들어 줬다. 게다가 하늘에서 형광 페인트를 쏟아부었던 헬기(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도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그 당시의 공포와 분노감 또한 마찬가지다. 한총련 발대식 때 한양대 앞에서의 가투, 프락치 사건으로 인해 윤리적인 타격을 입고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줬던 당시 한총련 집행부들, 도시 빈민들의 힘겨운 투쟁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이젠 그런 시절은 끝난 줄 알았다.  

  아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크게 보도 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생존권을 건 투쟁이 있었고, 그것이 크게 불거진 것이 쌍용 사태이다. 밀어붙이기식 개발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다가 용산 참사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 불쌍하다고 한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 재수없어서 촛불 집회가 나오고, 광우병 사태가 나오고, 쌍용 사태와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노무현이 탓이라고 한다. 전 정부의 실정을 그대로 떠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정말 재수없어서 그런 것일까? 노무현 정부의 실정도 물론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러한 문제가 촉발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고, 아니다.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압하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적극적인 진압이 이런 극단적인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경제 규모는 커져가고, 자랑스러운 세계 기업 삼성을 외치지만 과연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살만해 졌는가? 경제적인 부유가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여전히 난쟁이는 있고, 난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찌부러져 난쟁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에도 그렇게 설득력을 가지고 읽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서러웠다. 슬펐다. 10여년 전에 읽었을 때도 슬펐겠지만 지금 읽으면서는 더 슬프다. 나아진 것이 없다. 더 팍팍해 졌다. 더 치열해 지고, 더 많은 난장이들이 생겼다. 그래도 당시에는 쇠공을 쏘고 칼이라도 휘둘렀지만, 지금은 그러한 힘마저도 없다. 그저 패배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난장이와 연대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난장이를 손가락질하고 빨갱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도 난장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까치발하기에 고달픈 인생들만 가득하다. 

  진지하게 묻는다.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10년 후에는, 앞으로 30년 후에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슬프다. 이 자리를 빌어 쌍용 사태를 통해서 투신한 사람들, 고통을 겪은 사람들,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내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에게도 애도의 말을 건넨다. 이랜드 노조, 기륭금속 노조원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진심으로 30년 후에는 더 이상 이 책이 슬픔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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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0-21 19:58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많이 슬프더라구요. 조금 더 슬펐으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