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작정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권의 내용은 묘하게도 아르고스 원정대의 모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아니다. 아르고스 원정대의 모험에 대하여 적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했던 과거의 결심을 다시 상기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스토리텔러 이윤기는 아르고스원정대의 일원으로 프릭소스의 금모양피를 찾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쉼플레가데스를 건너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프릭소스의 금모양피를 손에 넣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역시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잃어버렸던 왕위를 되찾는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금모양피를 손에 넣어 돌아오는 순간 이아손의 역할은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내려간다. 아니다. 조연도 과분하다. 엑스트라의 역할로 대폭 축소된다. 이제 스토리의 주인공은 메데이아로 넘어간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 이아손의 역할이 끝났달까? 이윤기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아손에게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버지 아이손이 있고, 되찾아야할 나라가 있다. 숙부 펠리아스에 대한 복수도 이아손이 마침내 해내야 할 숙제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야기는 메데이아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전개된다. 이아손의 역할은 금양모피를 찾는 데서 사실상 끝난다. '이아손이 찾아다닌 것이 실은 금양모피가 아니었다'고 한 오비디우스의 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양모피는, '노모살달로스'였던 이아손이, 모험과 탐색의 여행 끝에 마침내 되찾은 한짝의 가죽신인지도 모른다.(P.224~225) 

  이아손은 헤라클레스의 말마따나 어른이 되기 위하여 아르고스 원정대를 조직했고, 금양모피를 찾아 나선 것이다. 금양모피가 단순한 목표요, 물건이었다면 보레아스의 아들들을 보내거나 도둑질의 명수를 보내어 훔쳐오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헤라클레스가 원정대의 대장을 맡기를 고사하고 스무살의 이아손에게 원정대의 대장을 맡긴 이유가 무엇인가? 금양보피를 찾아 나선 원정은 이아손이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통과해야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여행의 기회를 갖게 된 젊은이들이 한결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고 목표하였던 금양모피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 이아손의 모습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젊음의 활기참도, 모험심도 사라져 버리고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지고가야할 무거운 책임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다. 이아손이 다른 여인에게 한눈을 팔아 복수심에 두 아들을 죽이고 외국으로 가버린 메데이아를 정말 분노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다른 여인에 대한 질투심일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질투심이 아닌 이아손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조국과 아버지를 버리고 그 빛나던 이아손을 따라 왔는데 이아손이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되었을 때 메데이아가 느꼈을 실망과 배신감, 사랑만큼 깊은 분노를 애써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음식을 먹다가 런닝셔츠에 음식을 흘릴 때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뭇 기혼 여성들의 마음처러 말이다.(물로 나도 애는 쓰지만 배불뚝이 아저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T.T) 모험심, 활달함, 호기심 등등 이아손을 빛나게 하는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한 곳에 정착하여 평범하게 변해버린(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아손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이아손은 더이상 메데이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 덩어리가 아니다. 물론 이아손에게 메데이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만약 이아손이 끊임없이 자신을 매력남으로 갈고 닦던지, 메데이아에게도 이아손처럼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던지, 혹은 그것을 참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약간은 넓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되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이 없었다 보다. 

  여하튼 쉼플레가데스를 건너 금양모피를 얻은 후 정착한 이아손의 뒤끝이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인간)'는 나그네길에 머물 때 아름답다. 이올코스에 정착한 이아손의 뒤끝은 이렇듯이 누추하다.(P.239) 

  그의 책을 덮으며 나는 어디쯤에 있는가 생각한다. 나는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고 있는가? 아르고나우타이로서 아르고스호에 탑승해서 살고 있는가? 아르코스호(쾌속이라는 의미)에 탑승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떠밀려 내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젊은 날의 생명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금양모피를 얻은 양 한 곳에 정착하여 그저 그런 사람으로 떠내려 가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나의 뒤끝 또한 저자의 말대로 누추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모 가수가 노래 불렀는데, 그 나그네 인생길에서 혹 아르고스호에 탑승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흐린 주점에서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로 결심하고 아르고나우타이가 되어 길을 떠난 이윤기가 그립다. 진정한 호모 비아토르 이윤기가 떠난 길을 부러워하며 그를 그린다. 아울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새롭게 아르고나우타이가 된 그의 자녀들에게도 용기를 잃지말라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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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저자 이윤기 씨의 삶의 내력을 보면 자신이 글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신화처럼 된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이윤기 씨를 호모 비아토르로 비유한 표현이
참 공감이 갑니다.

saint236 2010-10-27 15:48   좋아요 0 | URL
평생을 신화를 말하다가 신화처럼 삶을 마무리한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의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쉽죠.

양철나무꾼 2010-10-2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이 말년에 공부하신 걸 다 풀어내지 못하신 게 제일 아쉬워요~
이제 시작이었는데 말이죠~ㅠ.ㅠ

saint236 2010-10-27 18: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제 시작이었는데. 재인은 박명인가 봅니다. 다른 분들에 비하여 박명이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