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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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中錄!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영조, 그런 아버지에 의하여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 세자, 장수하였지만 한창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들 정조를 앞세우고 친정의 몰락을 지켜본 혜경궁 홍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정조! 한중록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권력의 핵심층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언제라도 굴러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한중록을 恨中錄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한중록은 閑中錄 즉 한가한 날들의 기록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한스러운 날들의 기록이라는 의미의 恨中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을 기록한 혜경궁 홍씨는 물론이거니와 이 책의 일차 독자였던 혜경궁 홍씨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2차 독자인 나도 이 책을 閑中錄이 아니라 恨中錄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이 책에는 혜경궁 홍씨의 슬픔과 한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스캔들이 기록되어 있다. 어우동의 섹스 스캔들, 태종과 세조의 친인척에 대한 스캔들, 연산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많은 스캔들, 노론의 택군 스캔들, 그리고 영조에 의해 저질러진 임오년의 스캔들! 이중 가장 최고는 임오년에 저질러진 스캔들이라고 할 것이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차기 왕이 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건은,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7일간 말려 죽인 사건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들만큼 거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은 한두사람의 죽음으로는 덮어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 사건에 연관된 어느 한쪽이 죽고 나서야, 혹은 모두가 죽고 나서야 끝이 날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조도, 정조도, 그리고 이 사건에 연관된 모든 신료들도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년 모일의 참변 혹은 임오년의 사건이라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뒤주라는 말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목기 혹은 일물이라고 절묘하게 표현한다. 사도세자는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 간에 영조에게도 정조에게도 지워버리고 싶은 비극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복권시키려는 정조조차도 그 첫번째 단계로 이와 관련된 사료들을 세초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덮어버리려고 노력하였던 문제가 그 누구보다도 이 사건의 정치적인 의미와 몰고올 파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혜경궁 홍씨가 폭로하였을까? 무엇이 그렇게도 한스러워서 그것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리지 못하였던 것일까? 비록 한가한 날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자신의 한을 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조카의 요청으로, 순조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는 한을 풀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그리도 풀고자한 한이 누구를 위한 한인가? 비명에 간 사도세자의 한인가? 아니면 그렇게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어머니의 한인가? 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지 못하고 급하게 세상을 떠난 정조의 한인가? 아이면 젊어 과부가 되고 사랑하는 아들 정조를 먼저 떠나보낸 자신의 한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겠지만 혜경궁 홍씨가 풀고 싶었던 것은 자기 친정의 한이다. 1804년이면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복권시켜 주겠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정조가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순조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1804년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1804년은 순조가 성인이 되거 친정을 펴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순조에게 친정을 펴면서 할머니인 자기 집안의 한을 풀어달라는 정치적인 로비인 것이다. 

  혜경궁 홍씨 집안의 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녀는 자기 집안이 성심으로 사도세자를 섬겼지만 그의 병증으로 인하여 부자관계가 악회되었고, 아버지 홍봉한이 충심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작은 아버지 홍인한의 삼불필지라는 것도 영조의 말에 대꾸하다가 실수한 것이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이러한 충심을 몰라주로 색안경을 끼고 자기 집안을 몰락시킨 모리배들을지탄한다. 과연 그럴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덕일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병증이라기보다는 그와 당색을 달리하는 혜경궁 홍씨와 그의 친정이 권력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꽤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분명하다.(이에 관련하여서는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역사는 개인들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기록이다. 일반 대중의 삶의 기록들을 모아 연구하여 민중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물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의 개인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말이 안될 것이다. 이 책은 혜경궁 홍씨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가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는 점, 이 책의 발간의도, 그리고 그녀가 공격하는 사람들 또한 권력의 핵심이라는 점, 그녀가 전한 이야기들이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고 깊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녀의 개인사는 조선 후기 영조에서 정조 그리고 순조에 이르는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역사를 떠나서 그녀의 삶은 정말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듯이 읽어보는 것도 그 자체로 꽤 재미있다. 다만 문제와 글자체가 눈에 잘 안들어온다는 단점때문에 읽기가 쉽지않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산문 문학 중 수작이라는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책이라는 평가를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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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6-0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입니다....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1-06-05 13:3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이젠 완전 무덥습니다. 조선 참모열전은 재미있나요?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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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시민이 우리에게 새로운 하두를 던져 주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직업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걸고 진지하게 탐구해야할 고민이다. 특히 직업 정치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직업은 정치인이지만 그의 인식과 마인드는 전혀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질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외면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현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자극적이고 지극히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며 다른 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나는 국가에 대하여 이만큼 공부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떠한가?"라고 묻는다. 또한 투표권자인 국민들에게  "당신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당신의 정치적인 성향은 무엇인가?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당신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합리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이 마치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내 경선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을 때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유시민의 모습이 내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좋아보인다. 이번 대선은 아마도 경제이야기만 무성했던 지난 대선하고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한다.  

  일단 이 책을 읽어보면 유시민이 많이 똑똑하다는 것을, 그리고 샤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 정도로 쉽게 풀어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공부했고, 얼마나 명철한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던지는 국가에 대한 7가지 질문을 요약하는 것은 웃기는 일일테니 그의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적어보고자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너무 철학적인 질문이기에 파고 들면 머리가 아프니 이해하기 쉽도록 항해를 하는 일에 빗대어 생각을 해보자.  

  국가는 배이다. 탑승한 자들을 바다로부터 보호하고 생존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배의 역할이다. 이 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내리거나 다른 배로 갈아탈 수도 없다. 배에 탑승한 순간부터 드 배에 타고 있는 전원은 생사와 고락을 같이 하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이것이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다. 배에 탑승한 사람들과 운행 요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며,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하여 여러가지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 차이에 따라 국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이해와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무엇인가? 선장과 항해사라고 하겠다. 정부는 국가라는 배가 어디로 갈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실제적인 운행요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 수하에 전문적인 기능인들을 두고 각 부분의 일을 맡아서 전체적으로 배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실행한다. 배가 운행할 방법을 결정하는 방법에 따라서 국가관이 결정된다. 선출 방법이 어찌되었든 선장은 배를 책임지고 운명을 같이 하니 무작정 믿고 따라오라며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은 전체주의적 국가관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 선장이 결정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소한의 조작만 하는 부류라면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가졌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적 국가관은 무엇인가? 선장이 존재하지 않고 운행요원과 탑승자를 전부 포함하여 임시적인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그곳에 운행을 맡기는 것이다. 장래에는 배가 필요없는 시간이 도래할 것이니 배가 해체되고 모든 사람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게 될 것이다. 물론 아나키스트적인 국가관은 지금 당당 배를 해체하고 바다로 뛰어들자는 것이다. 

   진보냐 보수냐는 무엇이냐? 배가 진행하는 진로에 대한 시각차이라고 하겠다. 지금 진행하는 방향이 옳기에 이 방향을 계속 유지하며 배에 탑승한 사람들의 대우가 적절하니 이대로를 유지하자면 그것이 보수요, 진행방향이 처음 목적지와는 다르지 그에 맞추어 변경하자는 것이, 그리고 오랜 항해에 지친 탑승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라고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제한적인 물과 식량이 세금이라고 가정할 때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하는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의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도 대화를 단절한다면 선상반란 득 혁명이 일어날 것이요, 그렇다고 너무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배가 산으로 가고 선장의 체면이 서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선장의 지식과 경험과 권위에 대해 탑승자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요, 선장은 충분한 설득을 통하여 탑승자들의 불안을 덜어주어 목적지를 향해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탑승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익과 처지에 따라 몇 그룹이 형성될 것인데 이것이 정당이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장은 어쩔 수 없이 탑승자들 중에 형성된 몇몇 무리들과 타협을 할수밖에 없게 되는게 이것이 연합정치이다.  

  이렇게 국가를 항해에 빗대어 이해하게 된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탑승자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수한 공산주의적 국가관을 내가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한 공산주의적 국가관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국가 해체가 목표이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수밖에 없다. 실제로 순수한 공산주의가 역사상 존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선상반란일 수도 없다. 전진정 공학 혹은 개량이 우리 앞에 남겨진 가장 최선의 선택지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개량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유권자들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9장에서 유시민은 지난 한국의 정치판도와 노무현 정권 시절의 정책과 정치적인 타협과 선택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의 정치에 대한 견해를 끌어 들인다. 정치는 소명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때론 정치적인 소신을 뒤로 하고 정치적인 소신이 다른 사람들과도 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하며 반한나라당을 목적으로 한 진보연합을 주장한다. 비록 그의 연합에 대한 생각이 깊이 고려해봐야할 구석이 있지만 그의 생각이 그저 허무맹랑한 것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반한나라당 연합의 핵심이 민주당의 손학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오세훈과 박근혜와 김문수와 손학규의 차이를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이라는 것은 안티를 위한 안티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유시민의 도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하는 한에서 누구에게 선장이라는 중요한 직위를 맡길 것이냐? 나는 그것이 나라고 생각한다." 왠지 유시민의 이러한 도발이 그저 밉지만은 않다. 오히려 반갑다. 이러한 도발이 다른 대선 후보들에게도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대선후보들이 자서전을 써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정책 자료집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더 좋지 않을까? 동네 동장 선거도 아니고 찌라시 몇 장 뿌리고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공수표 날리는 것보다는 말이다. 

  이래 저래 유시민의 도발이 유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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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5-3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초반부 내용을 읽고 있는 중인데,, 철학적 내용들이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더군요. 이 책을 읽고나니깐 책에 언급된 원전들도
읽고 싶은 마음도 들구요. 차기 대선후보 중에 거론되는 사람들 중에서
스마트해보여서 이 사람의 정치적 행보가 기대되네요 ^^

saint236 2011-05-30 22:5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나서 유시민에 대한 시각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의 행보가 기다려 지네요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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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정!!! 

  글을 읽는 내내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 책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누가 배역을 맡으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이미지가 잡히지 않으나 딱 한사람의 이미지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명하다. 바로 윤여정씨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무엇일까? 엄마다. 주인공 유안의 엄마! 난 이 소설을 보는 내내 윤여정이 이 역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는 아버지와의 이혼, 그리고 연기로 다시 돌아온 그 열정,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대는 치열함, 집에서도 고상하게 보이고 싶고 철없는 행동,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뿌옇게 내뱉는 담배연기...연기를 하다보면 꼭 그 사람에게 맞는 배역이 있다고 윤여정이라는 배우에게 꼭 들어맞는 배역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대사에, 그리고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녀의 자취를 느끼는 것은 이 책을 읽어가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딴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조금만 그 속을 들춰보면 모두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의 사랑을 위해 할아버지를 독수공방으로 만든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조롱하기 위하여 여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친구 한주에 대한 마음과 이혼의 아픔을 애써 숨기고자 딸을 탓하는 엄마, 위장 이혼을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 반발하여 나가는 재영, 만나면 커피마시고 모텔로 직행하는,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 헤어진다는 승원, 그리고 승원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유안!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그들은 상대방에게 배려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배려를 몰라주는 상대방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들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고 있을 따름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나만 생각하고 있어락 말한다면 덜 답답할 것을. 

  작가의 기가 막힌 의도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난 전자에 이 책을 걸 수 있다. 로맨틱한 세계는 소설의 미니어쳐이다. 승원과 유안의 이야기를 담은 스마트한 시대의 커플 이야기,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재영의 이야기를 담은 성적 소수자의 사랑이야기, 유안을 바라보는 오연출을 떠올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소설과 연극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작가의 말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이 책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등장한다. 유안의 삶에서 튕겨져 나가는 남자와 받아들여지는 남자. 전자의 대표는 승원과 아버지이다. 유안이 끊임없이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유안을 떠난다. 유안은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져버리는, 24시간이 지나명 생명이 다하는 블로그의 글과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지만 추억은 없다고 할까? 추억은 있지만 감동은 퇴색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후자의 태표는 오연출과 장실장이다. 어느날 무책임하게 유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져버린 장실장. 그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유안에게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유안은 장실장을 미워하지 않는다. 외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장실장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유안에게 아버지보다 더 듬직한 존재는 장실장이다.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안을 믿고 신뢰하는 장실장. 장실장이 아버지의 대척점에 있다면 승원의 대척점은 단연 오연출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든지 같이 넘어져야 한다면서 종로 한 복판에 누워줄 수 있는 오연출의 찌질함은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서 헤어진다는 승원의 쿨함보다 더 매력적이고 로맨틱하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유안이 결혼을 하고 진지하게 연애를 한다면 상대는 오연출이지 않겠는가?  

  장실장과 오연출을 보며 입에서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너만 생각해!" 나는 나를 생각해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너만 생각해"라는 말로 들린다. 괜시리 오지랖 넓게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장실장이나 오연출 같은 사람이 진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 아픔을 혼자서 삭히기 어려운 시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나를 떠나 버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가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온갖 것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더 상처를 주고, 이것이 반복되고. 그 시절 친구가 나에게 해준 한마디..."너만 생각해!" 그렇다. 괜시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행동이다. 그냥 그럴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도 힘들어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행여라고 사랑의 아픔, 인생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한다. 

  "너만 생각해..." 

 99페이지 5번째 줄. 알기기=>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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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5-2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즐겨읽지 않는데....글을 읽고 나니 흥미가 생기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1-05-26 11:13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1-05-2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다른 책의 한구절이 생각나네요.

선물을 주는데, 필요없는 선물만 주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그 선물을 받으면 도리어 부담스럽고 고민스럽다고.

그런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주는 사랑이라고,

나와 너의 관계란 참 어려워요.... ^^

saint236 2011-05-26 11:14   좋아요 0 | URL
앗....어디선가 본듯한 구절인데...정확하게 생각이 안나네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네요. 특히 연인이나 가족으로 맺어진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이리시스 2011-05-2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인문평가단 같이 할 때 저보다 깊게 보고 저는 따라갈 수도 없는 글을 쓰셔서 자주 읽었는데 즐찾이 안되어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어쩌다 [너만 생각해] 검색했는데 리뷰가 있어서 들어왔다가 얼른 하고 가요. 저는 몰래 와서 종종 읽을게요.^^

saint236 2011-05-29 10: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오랫만에 뵙습니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 베버 편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1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 폴리테이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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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베버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샀더니 쌩뚱맞게 절반이 최장집 교수의 강의이다. 책을 읽다가 포기해버리면 정작 막스베버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은 지루한 면이 있어도 끝까지 참고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갑자기 베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라딘에서 관련된 글을 검색하던 중에 프레시안의 "좋은 정치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먼저 따지자"라는 페이퍼를 정독하게 되었다. 이 페이퍼에 최장집 교수의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의도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되어 있으니 이것이 궁금한 사람은 그 페이퍼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최장집 교수의 의도를 꿰뚫을 지식도 학식도 부족한 내가 프레시안과 같은 의도의 글을 쓸 힘도, 이유도, 그리고 마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최장집 교수가 막스베버의 입을 빌려 말하는 좋은 정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좋은 정치인이란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막스 베버의 생각을 잘 요약해 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 본질이 힘의 정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치의 핵심 문제는 인간이 인간을 통치/지배할 때, 통치자 내지 지도자가 어떻게 피치자 내지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들할 수 있는가에 있다. 베버는 지배의 정당성을 위한 기초를 세 가지 이념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전통이나 관습, 또는 선례에 기초를 둔 전통적 정당성, 둘째는 법의 절차적 원리를 중심으로 한 합리적 정당성, 셋째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자질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카리스마적 정당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앞의 두 가지 정당성이 하나는 전통 사회, 다른 하나는 근대 이후 사회에서 지배적인 방식을 대표하는 데 비해, 카리스마적 정당성은 전통 사회나 근대사회 어디에나 속하는 유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통치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는가? ...... 베버는 민주주의를 카리스마적 지배 형태로 범주화한다. 물론 현실에서 정당성의 기반은 그것이 이념형적 유형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순수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혼합된 것이다. 다만 그것이 중심적이라는 말이다.(p 44~45)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들여왔다. 과거에는 천자와 신수설로, 근대에는 법과 절차의 합리성을 근거로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다.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이 두가지뿐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한 가지 뿐이다. 법과 절차의 합리성을 통해서만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과거처럼 천자와 나랏님을 외쳐봐야 사람들은 코웃음칠 뿐이다. 노무현 개새끼, 쥐박이를 외치는 판에 나랏님 소리를 들으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오직 헌법과 법 집행의 절차적 합리성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카리스마적 정당성이라는 것은 마치 덤과 같은 것이지 베버가 주장하듯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카리스마적인 정당성이 집단 내에서야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도 있지만 외부로 확장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 버린다.(북한을 보라.)  때론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내부적으로도 카리스마적인 정당성이라는 것은 동네 개이름만도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대단한 착각을 한다. 입만 열면 서민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사고구조는 여전히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다. 공공연히 사용하지 않지만 그들의 머릿 속을 꽉 채운 것은 나랏님이다. 이러한 사고가 국가의 정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결정은 자기들이 하고, 국민들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 감히 토를 다는 일은 삼족을 멸해야 하는 반역 행위이다. 그러니 빨갱이로, 좌파로, 용공 세력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 아닌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카리스마적 정당성을 첨가하면 효과는 확실하다. 지난 총선 친박연대라는 아주 황당하면서 훌륭한 작명 실력을 보여주신 분이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도 아니면서 한나라당의 박근혜(좀더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겠지만) 의원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우면 표를 구걸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들을 찍어 준 사람들도 이해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새 대선에서 정책이 사라져 버리고 사람 이름만, 그것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등 죽은 사람들의 이름만 가득하다. 어느 정당인지, 그 사람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그럴 듯한 이름만 등에 업으면 표를 얻는다. 어쩌면 베버는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아주 우아하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질까? 이유는 간단하다. 법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법을 세우는 분들이라 그런지 법을 무시한다. 자기들은 국민들을 법이라는 쇠창살에 가두고 감시하는 교도관이요 자유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국회에서 화려한 액션씬이 난무하는 것이 아닌가? 오죽하면 국K-1이라는 별칭을 얻었겠는가? 그들의 이러한 발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판결문이 있다. "절차는 위법이지만 결과는 합헌이다." 법적인 정당성이 설 자리가 어디있는가? 대한민국에서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오로지 전통적 정당성과 카리스마적 정당성밖에 없다. 전자를 주로하고 거기에 후자를 가미하는 것이 제일 효과가 좋다. 

  대한민국의 정부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좋은 정부, 좋은 정치인인가 고심해봐야할 문제이다. 

  둘째 좋은 정치인은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베버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한다. 정치는 현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정치인도 공동체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자기 신념에 어긋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너무 타협을 해서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자기의 정치적인, 도덕적인 신념이 분명해야 한다. 상호 모순적인 이것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게 될 때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당이란 무엇인가? 비슷한 정치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모인 단체가 아닌가? 이것은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의 기조라는 것이 신념 윤리에 속하는 것이라면, 여러 가지 정치적인 타협이나 행동, 혹은 정치가의 선택은 책임 윤리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다시 한가지만 확인해 보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엇인가?자유선진당은? 국민참여당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하여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연합한다는 것이 가당키나한 일인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사람의 차이밖에 없다. 막말로 그 놈이 그 놈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민주당이 민주노동당과 연합전선을 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당의 기조를 생각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 야권대 연합이라는 것에 대하여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정권 획득을 위해서 고만고만한 똘마니들이 모여드는 것이고, 민주당이 양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신념까지 무시하고 모였다고 한나라당을 이기기나 하는가? 혹은 이기고 난 다음 정권을 획득하고, 금배지를 단 양반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정책을 펼치기는 했던가?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싸우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의원의 급료를 올린다거나 하는 문제에는 일치단결한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신념도 없고, 책임도 없다. 설령 신념이 있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것을 포기할 줄 아는 상당히 현실 타협적인 부류일 뿐이다. 이들을 좋은 정치인으로 볼 수 있을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요근래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한 관심들이 높아졌다. 성년의 날을 맞이하여 참정권을 소중히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난생 처음 봤다. 지자체 선거에도 이 사람이 어느 당인가 유심히 살펴보는 일도 많아졌다. 젊은 층들의 투표율과 의지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신념도 책임도 없는 정치인, 법적인 합리성은 무시하고 결과만 자기들 입맛에 맞다면 만사OK라는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진다. 특히 대선은 빅이슈이다. 지금부터 누가 대권후보로 나올 것인지는 모두의 관심사이다.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이 빅3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오세훈, 김문수, 정동영은 탈당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면 대선 후보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민노당에서는 아마도 권영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영길 외에는 사람이 없다. 대선후보감이 없어서보다는 안 키워서이다. 진보신당은 노회찬일 것 같고, 그 외에 군소정당이 난립할 것이다. 가만히 이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도대체 찍을 사람이 없다. 베버의 말대로 소명감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한번 더 깊어지는 대선과 총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투표 용지에 기권란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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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5-2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폭력의 세기>에 대한 짧은 댓글을 달러 왔다가...글 잘 읽고 가네요.^^ <폭력의 세기>는 1부가 좀 난삽하지만, 2~3부는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평을 하자면 아렌트 번역물로는 그리 나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더군요. (실은 다른 번역본도 그리 낫지는 않습니다.--;) 글을 명료하게 쓰지 않는 버릇을 가진 독일어권 저자라는 한계 때문인지, 아렌트의 영문 저서도 그리 유려한 글은 아닌 것처럼 보이더군요. 줄입니다.^^

saint236 2011-05-27 11:34   좋아요 0 | URL
헉...그런가요? 난삽한 문장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 그리 콤마가 많은지...가끔은 친절한 의역씨가 그리워질 때도 있더군요.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바쁜 일도 없기에 책에 빠져보기 위해서이다. 며칠째 붙잡고 있는 막스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도대체 언제 읽고 있던 책인지도 모르게 가물거리는 "사회적 하나님"을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 컴을 켜는 순간 여기저기 검색에 들어가고 알라딘에 들어와 서재질을 하기 때문에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함게 일하는 동료가 인터넷 뉴스에 송지선과 임태훈의 썸씽 스페셜에 대한 기사를 읽고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나야 남자는 큰 공을 가지고 놀아야지 작은 공 가지고 놀면 쪼잔해진다는 신념으로 오로지 축구와 볼링, 농구, 배구와 같은 종목을 좋아하지 야구와 골프, 탁구는 사마외도의 길이라고 경원시 하기 때문에 송지선이 누구인지 임태훈이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케이블을 가끔 보면서 베이스볼 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거기 나오는 아나운서라는 설명을 듣고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정확한 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송지"까지 쳤더니 "선 임태훈"이 완성으로 검색되더라. 이 얼마나 친절한 인터넷인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제일 위에 떠 있는 글을 클릭했더니.... 원... 세상에 어찌 그리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지...송지선과 임태훈의 썸씽 스페셜에 대해서 그렇게 조목조목 요약을 해 놓고, 미니 홈피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서 붙여 놓고, 전 남친의 트윗까지 가져다 놓았다. 게다가 임태훈 선수가 주변에 송지선 아나운서에 대하여 어떻게 언급했는지(먹다 버린 *)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다 언급해 놓았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여자를 엔조이의 도구로 보는 임선수가 잘못이네, 아니면 쿨하지 못하고 찌질하게 자폭하는 송아나운서가 잘못이네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그들의 행동까지 평가해 주고 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을 해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송 아나운서나 임 선수와 일면식도 없을 것이고, 텔레비전이나 팬으로서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냐는 의미로 말하자면 말이다. 만약 그런 친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조언을 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다. 이런 주제넘는 짓으로 기분 나빴던 적이 분명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성적취향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것은(임삿갓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아무리 친하더라고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남자와 여자가 다 잘못했지만 남자가 더 잘못했다, 아니다 여자가 쿨하지 못하다라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말하고 넘어가는 것을 뭐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태를 부풀려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네티즌과 이 사건을 기사로 다루며 계속 증폭시키는 언론도 분명 문제가 있다.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어 사람의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야하지만 사건의 논점을 흐리면서까지 상대방의 인격과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상식 수준으로 보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보면서 교묘히 숨겨진 성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한마디 권하고 싶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차라리 포르노를 보세요." 

  왠지 아침부터 자신은 안전한 뒤에 숨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찌질한 키보드 워리어들 때문에 급짜증이 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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