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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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中錄!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영조, 그런 아버지에 의하여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 세자, 장수하였지만 한창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들 정조를 앞세우고 친정의 몰락을 지켜본 혜경궁 홍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정조! 한중록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권력의 핵심층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언제라도 굴러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한중록을 恨中錄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한중록은 閑中錄 즉 한가한 날들의 기록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한스러운 날들의 기록이라는 의미의 恨中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을 기록한 혜경궁 홍씨는 물론이거니와 이 책의 일차 독자였던 혜경궁 홍씨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2차 독자인 나도 이 책을 閑中錄이 아니라 恨中錄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이 책에는 혜경궁 홍씨의 슬픔과 한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스캔들이 기록되어 있다. 어우동의 섹스 스캔들, 태종과 세조의 친인척에 대한 스캔들, 연산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많은 스캔들, 노론의 택군 스캔들, 그리고 영조에 의해 저질러진 임오년의 스캔들! 이중 가장 최고는 임오년에 저질러진 스캔들이라고 할 것이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차기 왕이 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건은,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7일간 말려 죽인 사건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들만큼 거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은 한두사람의 죽음으로는 덮어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 사건에 연관된 어느 한쪽이 죽고 나서야, 혹은 모두가 죽고 나서야 끝이 날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조도, 정조도, 그리고 이 사건에 연관된 모든 신료들도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년 모일의 참변 혹은 임오년의 사건이라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뒤주라는 말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목기 혹은 일물이라고 절묘하게 표현한다. 사도세자는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 간에 영조에게도 정조에게도 지워버리고 싶은 비극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복권시키려는 정조조차도 그 첫번째 단계로 이와 관련된 사료들을 세초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덮어버리려고 노력하였던 문제가 그 누구보다도 이 사건의 정치적인 의미와 몰고올 파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혜경궁 홍씨가 폭로하였을까? 무엇이 그렇게도 한스러워서 그것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리지 못하였던 것일까? 비록 한가한 날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자신의 한을 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조카의 요청으로, 순조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는 한을 풀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그리도 풀고자한 한이 누구를 위한 한인가? 비명에 간 사도세자의 한인가? 아니면 그렇게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어머니의 한인가? 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지 못하고 급하게 세상을 떠난 정조의 한인가? 아이면 젊어 과부가 되고 사랑하는 아들 정조를 먼저 떠나보낸 자신의 한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겠지만 혜경궁 홍씨가 풀고 싶었던 것은 자기 친정의 한이다. 1804년이면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복권시켜 주겠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정조가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순조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1804년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1804년은 순조가 성인이 되거 친정을 펴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순조에게 친정을 펴면서 할머니인 자기 집안의 한을 풀어달라는 정치적인 로비인 것이다. 

  혜경궁 홍씨 집안의 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녀는 자기 집안이 성심으로 사도세자를 섬겼지만 그의 병증으로 인하여 부자관계가 악회되었고, 아버지 홍봉한이 충심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작은 아버지 홍인한의 삼불필지라는 것도 영조의 말에 대꾸하다가 실수한 것이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이러한 충심을 몰라주로 색안경을 끼고 자기 집안을 몰락시킨 모리배들을지탄한다. 과연 그럴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덕일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병증이라기보다는 그와 당색을 달리하는 혜경궁 홍씨와 그의 친정이 권력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꽤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분명하다.(이에 관련하여서는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역사는 개인들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기록이다. 일반 대중의 삶의 기록들을 모아 연구하여 민중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물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의 개인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말이 안될 것이다. 이 책은 혜경궁 홍씨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가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는 점, 이 책의 발간의도, 그리고 그녀가 공격하는 사람들 또한 권력의 핵심이라는 점, 그녀가 전한 이야기들이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고 깊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녀의 개인사는 조선 후기 영조에서 정조 그리고 순조에 이르는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역사를 떠나서 그녀의 삶은 정말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듯이 읽어보는 것도 그 자체로 꽤 재미있다. 다만 문제와 글자체가 눈에 잘 안들어온다는 단점때문에 읽기가 쉽지않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산문 문학 중 수작이라는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책이라는 평가를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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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6-0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입니다....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1-06-05 13:3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이젠 완전 무덥습니다. 조선 참모열전은 재미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