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바쁜 일도 없기에 책에 빠져보기 위해서이다. 며칠째 붙잡고 있는 막스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도대체 언제 읽고 있던 책인지도 모르게 가물거리는 "사회적 하나님"을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 컴을 켜는 순간 여기저기 검색에 들어가고 알라딘에 들어와 서재질을 하기 때문에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함게 일하는 동료가 인터넷 뉴스에 송지선과 임태훈의 썸씽 스페셜에 대한 기사를 읽고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나야 남자는 큰 공을 가지고 놀아야지 작은 공 가지고 놀면 쪼잔해진다는 신념으로 오로지 축구와 볼링, 농구, 배구와 같은 종목을 좋아하지 야구와 골프, 탁구는 사마외도의 길이라고 경원시 하기 때문에 송지선이 누구인지 임태훈이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케이블을 가끔 보면서 베이스볼 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거기 나오는 아나운서라는 설명을 듣고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정확한 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송지"까지 쳤더니 "선 임태훈"이 완성으로 검색되더라. 이 얼마나 친절한 인터넷인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제일 위에 떠 있는 글을 클릭했더니.... 원... 세상에 어찌 그리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지...송지선과 임태훈의 썸씽 스페셜에 대해서 그렇게 조목조목 요약을 해 놓고, 미니 홈피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서 붙여 놓고, 전 남친의 트윗까지 가져다 놓았다. 게다가 임태훈 선수가 주변에 송지선 아나운서에 대하여 어떻게 언급했는지(먹다 버린 *)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다 언급해 놓았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여자를 엔조이의 도구로 보는 임선수가 잘못이네, 아니면 쿨하지 못하고 찌질하게 자폭하는 송아나운서가 잘못이네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그들의 행동까지 평가해 주고 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을 해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송 아나운서나 임 선수와 일면식도 없을 것이고, 텔레비전이나 팬으로서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냐는 의미로 말하자면 말이다. 만약 그런 친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조언을 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다. 이런 주제넘는 짓으로 기분 나빴던 적이 분명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성적취향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것은(임삿갓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아무리 친하더라고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남자와 여자가 다 잘못했지만 남자가 더 잘못했다, 아니다 여자가 쿨하지 못하다라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말하고 넘어가는 것을 뭐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태를 부풀려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네티즌과 이 사건을 기사로 다루며 계속 증폭시키는 언론도 분명 문제가 있다.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어 사람의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야하지만 사건의 논점을 흐리면서까지 상대방의 인격과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상식 수준으로 보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보면서 교묘히 숨겨진 성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한마디 권하고 싶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차라리 포르노를 보세요."
왠지 아침부터 자신은 안전한 뒤에 숨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찌질한 키보드 워리어들 때문에 급짜증이 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