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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2003년 개봉작 중에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로는 보지 못하고, 2004년 비디오로 빌려서 보게 된 영화이다. 지금도 심심하면 가끔씩 보는 영화인데, 크리스천 베일의 권총 액션이 환상적이다. 존윅의 권총 액션이 나오기 전에 단연 독보적인 권총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권총을 사용하는 액션 영화는 많이 있지만, 권총 사격술 자체를 액션의 영역에 끌어 올린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다.)
영화관에서 개봉될 당시만 해도 내가 몰랐던 것으로 보아 그다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화같다. 이 무슨 망발이냐 하겠지만, 그 당시 군 입대를 1년 앞둔 시점이라 거의 모든 영화는 챙겨봤었기 때문에 자신할 수 있다. 당시 이 영화가 나왔던 것도 잘 몰랐을 정도이니, 크리스천 베일 영화치고는 그렇게 크게 홍보가 되지 않았던 영화같기도 하다. 최근에 1984를 보면 다시 한번 돌려봤던 영화인데, 아직까지 볼만하다. 통쾌한 액션을 원하는 사람은 한번식 보기를 권한다.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김빠지는 일이요, 유즈얼 서스펙트에서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테러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퀼리브리엄의 세계관은 1984의 세계관과 거의 동일하다. 셋이냐, 하냐라는 차이, 빅브라더와 파더의 차이, 비극과 순응이냐 전복과 통쾌한 액션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감정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은 1984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아마도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이 1984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1984의 배경은 조지 오웰 당시에는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들이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는 현실이다. 텔레비전과 CCTV를 적절히 섞어 놓은 것 같은 텔레스크린, 그리고 이를 통한 감시는 오늘날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어떤 이들은 "베리 칩"과 백신을 거론하면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이미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통하여 동선을 파악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었고, 그래서 작년 집회 때 전모 목사는 현금 쓰고 휴대폰을 꺼놓으라는 지령을 내리지 않았던가? 책의 내용을 읽어가는 중에 눈에 딱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모든 기술은 적정한 수준에 멈추어 있거나, 오히려 퇴보하지만, 경찰의 감시에 대한 기술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매우 위험하고 소름끼치는 일인데, 더 소름이 끼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그것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에 열성적인, 그러나 잠꼬대를 어린 딸이 고발하여 끌려온 사람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전체주의가 왜 무서운지을 알게 된다.
전체주의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들이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판단은 길들이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담론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담론은 대체로 "국가"가 된다. 거대하고, 모호해서 비판할 수 없지만, 너무 쉽게 압도되어 순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 말하는 국익, 국격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반대하더라도 쉽게 자기의 생각을 꺾어버리게 만드는 것을 보라. 국익이라는 말로 아프간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국익이라는 말로 아프간 난민을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데, 그 근거는 국익이다. 상반된 주장이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지면, 그것은 완전무결한 정책이 된다. 그리고 이것의 오류를 드러내는 행동들은 모두 국익에 반대되는 행동이 된다. 끊임없이 과거를 고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익과 국격들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1984에서냐 빅브라더와 당이 존재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누가 그 세력인가? 너무나 큰 권력을 쥐어주지만 이 또한 모호하기에 더 위험하다. 프롤은 절대로 혁명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더 마음에 걸리는 이유이다.
1984는 소설이다. 그러나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씁쓸하고 소름이 끼친다. 차라리 이퀼리브리엄처럼 액션이나 혁명의 통쾌함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오웰은 그렇지 않다. 마음마저도 꺾이고, 결국에는 죽는 순간에도 빅브라더의 은총과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는 윈스턴의 모습은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동물농장, 1984에 이어 이젠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