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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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솝 우화"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 이솝 우화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간혹 깜짝 놀랄만한 내용을 발견하고는 "헉"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서울 쥐 시골 쥐, 해와 바람, 사자와 생쥐, 학과 여우, 코끼와 거북이" 등 어린 시절 우리가 교화서나 동화책을 통하여 들었던 이야기들의 출처가 이솝우화이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이라는 반증이리라. 그리고 내용도 어렵지 않고, 주인공이 동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도끼 은도끼"도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나라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으니 우리나라 전래동화처럼 고대 그리스도에도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출처를 찾다보니 금도끼 은도끼가 전래동화가 아니라 이솝 우화의 번역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06년, 1907년에 번역되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가 되었는데 번역이 너무 잘 되어서 한국 전래동화로 알고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헤르메스가 노인으로 그리고 산신령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현지화라는 것이구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던 이솝 우화를 다커서 읽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생각하겠지만 어른이 되어서 읽는 이솝 우화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우화라는 말의 의미처럼 이솝 우화는 단편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아주 짧은 글들이 모여 있는 책이다. 그런데 짧은 길이에 담겨 있는 생각은 결코 짧지 않다. 우리가 흔히 촌철살인이라고 말하는데, 이솝 우화는 촌철살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6번 "볼일부터 먼저"라는 글에서는 나랏 일을 소홀히하고 이솝 우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 마저도 풍자의 소재로 만들고 있는 이솝의 대범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자기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풍자이리라.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은 182번 대머리의 사연이다. 


  백발이 되어가는 사람에게 두 사람의 첩이 있었습니다. 젊은 첩과 늙은 첩이었지요. 늙은 첩은 나이 아래 사내를 둔 것을 부끄러이 여기어 그가 올 때마다 검은 머리를 뽑았습니다. 노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 싫은 젊은 여인은 흰 머리를 뽑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그를 온통 대머리로 만들고 말았지요.(이솝 우화 207p)


  읽으면서 얼마나 낄낄대게 만든 글인지 모르겠다. 이솝 우화의 내용들이 이렇게 유쾌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각 글마다 달려 있는 교훈이 쌩뚱맞은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장 위릐 이야기만 해도 "잘 맞지 않는 동반자들은 복을 얻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마나 이것은 봐줄만하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종종 보인다. 굳이 찾은 옥의 티는 이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깊이는 166번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소년이 고기를 사러 함께 상점에 갔습니다. 푸줏간 주인이 등을 돌렸을 때 한 소년이 내장을 슬쩍해서 친구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몸을 돌린 푸줏간 주인은 내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두 소년이 훔쳤다고 나무랐습니다. 슬쩍한 소년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맹세하였고 그것을 가진 소년은 슬쩍하지 않았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를 꿰뚫어 본 푸줏간 주인은 말했습니다.

  "거짓 맹세로 나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 그러나 하느님은 못 속여."(이솝 우화 190p)


  두 소년 모두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진실이라는 것이 합쳐지면 불의가 된다. 참 아이러니한 장면이기도 하고, 자신의 불의를 교묘하게 부정하는 두 소년의 모습은 참으로 교활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몇 가지 재판이 머리를 스쳐간다. 아마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술은 먹었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런 것도 있다. "미등기 이사이고 부회장은 명예직이니 그가 한 일은 취업이 아니다. 기업의 큰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한 것이다." 법, 재판은 양심을 근거로 사실을 따지는 것인데, 사실을 따지면서 양심은 뒤로 미루어 둔다. 그러니 하나하나를 놓고보면 맞는 것 같은데, 그것들의 총합은 거짓이 되는 기묘한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재판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이솝 우화의 "거짓말쟁이가 된 진실"이라는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순간을 모면하려고 진실을 이리 저리 찢어붙인 결과가 거짓된 판결이라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모순과 궤변을 어떤 평론도, 웅변도 이 짧은 글만큼 잘 보여주지 못한다.


  이솝 우화를 읽다 보면 이러한 보석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이라는 가치관을 가르치지 위하여 이솝 우화를 읽히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풍자와 해학의 도구로 이솝 우화를 어른들이 읽는 것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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