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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 김춘추에서 노무현까지
이덕일 지음 / 마리서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시절이 하수상하다.
132만이나 되는 숫자가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대통령이 탄핵되었던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나서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지는 이승만 대통령 이래로 처음이다. 흔히 100만이 모였다는 87년 민주항쟁도 대통령이 물러가라는 말이 아니라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물론 "전두환은 물러가라 울라~울라~"라는 노래가 불려졌지만(나는 그때 초딩이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다만 대학생 때의 집회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히 불렀을 것이다.) 이 노래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동의하지 않는다는 측면이 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국민들이 외치는 대통령 하야는 순수하게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문구 "내가 이러려고 ~이 되었는가라는 자괴감이 듭니다."라는 유행어, "#그런데 최순실은"이라는 말은 오늘날 일어난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정치인들이, 검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차와 과정은 다르지만, 야당 모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검찰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통령을 탈탈 털겠다는 의지를 슬쩍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순수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들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국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이야기하니 거기에 붙어서 자기들의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검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가지 우병우 밑에서 숨죽이고 있었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저격을 받았는데 이 기회에 잘 처신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겠다는 계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그리고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다시 역사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오늘날의 국민들의 요구가 성공한 개혁이 될지, 아니면 양은 냄비 끓듯이 끓어 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실패한 개혁이 될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씩 살펴본다. 그러던 차에 이미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작성하지 못한 이 책을 끄집어 내어 다시 읽고 끄적거려 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국사에서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성공한 개혁군주들의 이야기, 성공한 법안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을 신라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의 차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중 내가 동의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젠다 설정이요, 다른 하나는 생활 밀착형 제도이다.
첫째 아젠다 설정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 신라의 통일과 숙종의 왕권 강화책을 통하여 이덕일은 아젠다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장한다. 삼국 중 가장 외진 곳에 있고,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국통일이라는 분명한 아젠다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 아젠다를 따라서 정책을 세우고 실천해 갔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신하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이 일을 왜 해야하는지 분면하게 보여주었기에 그 개혁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숙종의 왕권 강화는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왕권을 강화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고, 아젠다가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권강화라는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개혁이란 사라들에게 이상을 보여주고 그 이상을 향하여 나가자고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이상, 즉 정책의 의제 설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진보 진형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9년의 세월을 돌아본다. 난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과거 10년간 진보 진영에서 집권을 했다. 그런데 10년의 집권 동안 무엇을 했던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주었던가? 그렇지 않다. 결국 그 실패가 전권 교체를 불러왔다. 잘 살게 해주겠다, 경제 민주화라는 지키지는 않을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사람들에게 달콤한 이상을 보여줘었기에 새누리당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오늘날 국민들이 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가? 지난 9년동안 제시했던 아젠다가, 비전과 이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고, 의제를 잘 설정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그 사람을 뽑아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반기문이든, 유승민이든, 김무성이든 말이다. 그런데도 소위 말하는 진보라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제를 설정하지도 못한다. 먼저 치고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뒷북을 친다. 그러니 종북 프레임, 나는 빨갱이가 아니오라는 해명만 하다 끝난다. 진정 재혁을 하고 싶다면 국민들에게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 설득하라. 그저 박근혜 반대 효과만 바라보지 말고 말이다.
둘째 생활 밀착형 정책이 개혁의 성패를 가른다. 선공한 제도 개혁을 살펴보면 그것이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대개 지도층이나 집권층의 이익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반발을 받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생활 밀착형 정책들은 결국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오늘날 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폭발했는가?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문일까?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난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쌓여왔던 것이 이번 게이트를 통하여 밖으로 촉발된 것이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주택 정책 실패 등등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책들이 모두 실패했다. 그 결과 헬 조선이라는 말, 지옥 불반도라는 말, 수저 계급론이라는 말이 이 시대를 사로 잡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우리 나라를 비하하는 그런 말은 사용하지 말라면서 국민들을 훈계했다. 국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면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만 한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북한의 위협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고 치자. 정권이 교체다 되었다고 치자. 국민들이 왜 정권을 교체했을까? 생활을 좀 바궈보라는 것이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국민들에게 외면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진보 진영 측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생활에 밀착한 정책들에 대한 체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살게 해주겠다는 MB의 말에 혹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인은 통일, 북핵, 세계 평화라는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청년 취업, 일자리 창출, 주택 문제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국민들에게는 후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오늘날 현실이 복잡하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다음에는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하듯이 정권 심판론에만 머물러 있다면 정권교체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교체되어 국정 운영에 난맥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성공한 개혁이라는 역사적인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위의 두 가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저자로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독자가 각자 판단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