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글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글을 팔았다. 이것이 가능한 건 이메일 때문이다. 자신의 SNS에 독자를 모집하고 한 달에 20편의 글을 이메일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받는 구독료는 한 달에 만 원. 이슬아 작가 이야기다.

 

처음엔 뭐 이런 작가가 있나 했다조금 심하게 말해서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SNS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글이 넘쳐나고 웬만한 작가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블로거들의 글도 많은데 그들은 돈 같은 거 안 받고 글을 쓴다. 그런 만큼 그런 건 무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 글 읽어주면 감지덕지 아닌가? 그런데 돈을 받겠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게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어서이지 꼭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슬아 작가도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웹툰을 하는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고 알고 있다). 순간 이 작가가 지금까지 와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삶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를 생각해 보게 했다.

 

만원. 이것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없는 사람에겐 큰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돈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하루 껌값 밖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좀 피상적이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1인분에 해당하는 점심과 입가심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쯤이 아닐까? 물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1, 2천원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 작가에게 투자한다는 건 또 어떤 의밀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만약 한 달에 20편의 글을 만원에 구독하라면 그렇게 하겠냐고. 그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했다그 친구는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도 않고, 그런 방식은 듣보잡일 테니. 즉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 만원은 하루 500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요즘 9001000원 하는 커피가 등장했다. 그것 보다 못한 액수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루 최소 1000원은 쓰면서 정신을 위해 500원을 못 쓴다면 그도 그렇지 않나? 종이신문을 안 본지가 꽤 오래됐다. 종이신문의 구독료는 얼마일까? 모르긴 해도 만원 보다 비싼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만큼 지면이 많지만.

 

봉이 김선달 얘기는 차치하고라도 SNS나 블로그 덕분에 글로 소통하는 건 너무 흔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커피야 간편하게 마시면 그만이지만 글은 시간을 내야하고, 읽다보면 눈도 아프고 생각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귀찮은 일임에 사실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다소 감상적인 말이 있기는 한데 나는 (언젠가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이런 자본화된 세상에서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건 그 사람이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고 안 받으면 작가가 될 생각이 없거나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거 얼마나 받는다고 돈타령이냐고 돈 얘기 안 하는 인간 좀 만나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SNS나 블로그는 내가 원하면 쓰고 원치 않으면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원고료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치 않으면 안 쓰는 사람이 아니다. 뭐라도 써야한다. 그들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세에라자드의 후예인지도 모르겠다. 그 천일 중 하루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매일 구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전송했다고 한다. 그것이 단 하루라도 연착이 되거나 조금만 늦어지면 왜 이렇게 늦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난 그 마음 안다.

 

이미 내 책에서도 밝혔던 것으로 아는데(내가 이런다. 정신이 없다), 나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극작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교회에서 대본을 써야 할 일이 생겼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일을 자청하기까지 했다. 작가의 꿈은 있는데 그 꿈에 대한 책임은 없으니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안 쓰면 안 되는 일이니 책임감을 갖는데 이만한 일이 없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연극이라는 게 그렇듯 협업이라 한 번이라도 펑크가 나면 줄줄이 펑크가 난다. 소소하게 했던지라 뭐 못하면 못하는 거지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그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글을 못 써서 펑크를 난다고 했을 때 그 아찔함 막막함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정말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그 시절 내가 맡은 일도 연재 방식이라면 연재 방식이다. 그때그때 짧은 상황극을 만들어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슬아 작가가 모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다 살짝 미칠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나도 당시 쓰고 있던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게 작가의 숙명인 것 같다. 원고료도 원고료지만 나를 낭떠러지에 매달아 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는 작가가 될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게 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작가가 작정하고 쓰는 글은 SNS나 블로그에 아무 때나 올리는 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감하며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녀와 내가 확연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책으로 나왔을 때다. 그녀가 작년에 6개월 간 발송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 냈는데 그게 지금은 7쇄까지 발간됐다고 한다. 한 쇄를 찍는 책의 권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워낙에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니 1000권을 넘지 않는다. 이것을 7쇄까지 찍었다니 장하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나 같은 경우 천 권도 너무 많지 않을까 싶은데 출판사 사장이 배포도 좋지 무려 1300권을 뽑았다. 너무 많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나야 출판 동향을 모르니 나 같은 글도 뭔가 소용이 되는가 보다 했다. 지금은 300권이나 팔렸을라나.

 

작가의 로망은 역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되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극작을 한다). 그것도 내가 원하기 보단 출판사가 먼저 제안해 2년 만에 내놓은 것이니 나는 손 안 대고 코픈 격이라고나 할까? 누구는 작가가 되려면 거절에 익숙해지는 법부터 배우라고 했는데 성격상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이 나왔을 때 그 기쁨은 딱 한 달 갔다. 그 한 달 이후 세상 사람들은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잊었고 나 역시 덤덤해졌다. 하긴 그때 이후로도 좋아라 하면 그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첫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하는데 난 지금껏 두 번째 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첫 책을 냈으니 탄력을 받아 두 번째 책도 낼 수도 있을 텐데 첫 책을 낼 때 얼이라도 빠진 걸까? 오히려 책 내는 게 더 자신이 없어졌다. 안 그래도 2초에 축구장 면적의 숲이 사라진다는데 내 책 내겠다고 그 일에 보탤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내 책을 읽은 알라디너들이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찔러주는 게 고맙기도 하다. 아예 마태우스님은 이런 책 좀 써 달라고 부탁까지 하기도 하셨으니. 이건 정말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못할 일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넙죽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도 못 내고 있다.

 

문득 이슬아 작가의 이 대담한 도전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 글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를 반성하게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은 내 뭐하냐며 누가 주지도 않는 쓸데없는 자책을 하고 지내 온 건 아닐까? 뭔가 해 보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가졌던 것은 아닌지.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아 그렇게 작가와 독자 간의 직거래 방식을 선택했다고 했다. 또 이슬아 작가는 자신을 셀프 연재 노동자라고 했다. 이름도 잘 지었다. 연재 노동이라. 그거 내 주특긴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 셀프 연재 노동은 지명도 있는 기성 작가는 몰라도 (나를 포함한)새내기 작가들에겐 해 봄직한 일이지 않을까 한다. 이름 없는 작가들이 아무 연고도 없이 출판사 문을 노크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연재 방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다면 뭔가 지금과는 다른 출판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 비슷한 시도는 있어왔다. 이를테면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 방식. 나도 그렇게 해서 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문단 내 카르텔을 생각하면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간혹 책을 내놓은 소감에 대해 물으면 작가는 명예직이라며 자조 겸 말문을 흐리곤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작가는 명예직이 아니다. 작가도 노동자다. 매문가. 하지만 우리나라에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먹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도 내 책은 책상 한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책이 나온 후 감히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 그냥 모셔만 두고 있다. 내 책 뒷면에 그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를 썼고 그것을 묶었을

    뿐이다. 작가가 되어서도 독자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내가 이런 말을 쓰다니. 오글거리다 못해 분서하고 싶어진다. 아니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면 이 오글거림이 사라지려나?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반해 이슬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는 두려우면서 기대고 싶은 존재에요.” 이렇게 한마디로 명징하게 말할 수 있는 걸 나는 왜 저딴 식으로 말했을까.ㅠㅠ

 

그러므로 언젠가 제2, 3의 이슬아 작가가 셀프 연재 노동을 자처하며 구독자를 모집할 때 이슬아 코스프레 하냐고 비꼬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구독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십중팔구일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맞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다만 코스프레라고 하지 말고 롤모델 즉 닮고 싶은 사람으로 치환해 당당해지자. 요는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좋은 작가는 독자가 키운다는 생각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알지만 세상에 유명한 명작들도 처음엔 다 쓰레기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는 시에라자드의 후예들이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또 그래서 말씀인데 저도 셀프 연재를 하면 여러분은 구독해 주시겠습니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1-27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28 12: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데도
내 책 내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뭔가 불균형이란 생각도 들어요.
물론 개인 출판도 한다는데 그것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오죽하면 개인 출판인가 싶기도 하고 마케팅도
원활한 것도 아니고. 독자들은 왠만치 알려진 출판사가 아니면
시큰둥하고. 그렇죠?ㅠ

서니데이 2019-01-27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북플로 stella.K님의 글을 구독하는 애독자입니다.^^
stella.K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19-01-28 13:02   좋아요 1 | URL
이슬아 작가 얘기를 들었을 때 서니님도
생각나더군요. 서니님이야 말로 얼마나 성실합니까?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실함은 연재 작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죠.
이참에 서니님도 연재 작가가 되어보심이 어떨까요?ㅋ

저 첫 줄은 구독하시겠다는 말로 들립니다.ㅎㅎ

syo 2019-01-2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내서 시장에 내놓는 것도 결국은 글을 파는 일인데, 이렇게 파나 저렇게 파나 똑같이 파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전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단지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라는 물질적 요소가 필요치 않으니까, 그야말로 ‘글‘만 팔 수 있게 된 셈이랄까요. 저는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처음에 있는 사람들,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오늘날 모두에게 주어진 것처럼요.....

stella.K 2019-01-28 13:14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스요님은 저 보다 앞선 생각을 하시는군요.
책을 많이 읽으시니 출판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이 독자와 작가의 벽이 많이 얇아진 것도 사실이죠.
자주 만남과 교류를 갖고 있으니.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은 그나마 2000년 대 들어와서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없진 않겠지만 무슨 심포지엄 어쩌구 해서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만의 모임이 주류지 않았나 싶어요.

암튼 스요님 댓글로 봐선 제가 직거래하면 고객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ㅋㅋ

syo 2019-01-28 18: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직거래 모드 돌입하시면 알라딘 서재에는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건가요..... 하루에 하나 쓰기도 힘들잖아요.

stella.K 2019-01-28 18:39   좋아요 0 | URL
안 써서 그렇지 매일 한 편은 쓰죠.
서재는 딴 글을 쓰겠죠. 리뷰 정도는 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많이 써 놔야죠.
당장 시작할 건 아니구요. 생각 좀 해 보구요.ㅋㅋ

페크pek0501 2019-01-2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종이 신문은 월 만오천원입니다.

연재를 맡는다면 스트레스 만당일 것 같습니다. 미리 어느 정도 써 놓은 글을 확보하고 나서
연재를 맡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중요한 건 연재에 뜻이 있으면 글을 많이 써서 저축해 놓을 것, 입니다. 작가들, 참 대단한 존재들이에요.

stella.K 2019-01-28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14000원쯤 생각했는데 만 5천원이군요.
비싼 건 아니죠. 구독료를 올릴 수도 없을 거예요.
종이 신문 잘 안 보니.

그럼요. 준비없이 시작할 수는 없죠.
작가들. 대단하죠.

cyrus 2019-01-28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독자들)과 함께 있는 작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으려는 작가. 독자들의 쓴 말도 받아들이는 작가. 이런 작가의 글이라면 구독하고 싶습니다. ^^

stella.K 2019-01-28 17: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럼 넌 내가 직거래하면 구독하겠구나.
난 독자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거든.ㅋㅋㅋㅋ
어쨌든 말만으로도 힘이된다. 고맙!
 

                                        

                      

감독: 마츠타니 미츠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라는데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예전만큼 최신 개봉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유명하고 돈될 것 같은 영화만 집중 홍보하는 시스템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아도 어떤 관객이 영화를 골라 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영화를 골라주는 세대에 살고 있다고 개탄하던데 그러고 보면 내 탓만은 아닌 것 같긴하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보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동안 타샤 튜더는 책으로만 소개됐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일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타샤 튜더가 국적이 미국인만큼 자국의 어느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어쩐지 일본 감독이 만들었다니 약간 묘한 감정이 들긴하다.

 

그동안 책으로 너무도 잘 알려져서 설명이 필요없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나 역시도 그녀의 책은 읽지 못했다. 그녀는 동화 작가 겸 삽화가로 유명하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그림을 그렸고, 자연주의자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카메라가 그녀의 주방을 보여주는데 좀 놀랐다. 현대식 주방 기구가 하나도 없다. 얼핏 보면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서양 부엌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집이 자랑하는 건  정원이다. 넓은 정원에 각종 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특별히 정원이라고 해서 꾸민 것도 없다. 그저 꽃 자체만을 가꾸며 산다. 꽃에게 최소한의 것만 해주고 나머지는 저희들끼리 어울리며 있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새를 좋아해 직접 키우기도 한다.

 

그것들을 돌보고 가꾸는데도 꽤 정성과 노력이 필요할텐데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쓴다. 뭔가 모르게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엔 박경리 작가나 이효재 씨가 생각이 난다. 박경리 작가도 살아생전 밭을 가꾸고 글 쓰는 일에만 전념했다고 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는 건 이효재와 닮았다.

 

그런데 역시 삶은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녀는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는 큰 오빠가 사고로 죽은 후에 부모님의 상의 끝에 태어났다고 한다. 어찌보면 어떠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삶은 또 얼마만한 짐을 지는 것일까?

 

명문가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수학에 조예가 깊고 어머니는 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녀는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가 아인슈타인, 에머슨, 소로우 같은 당대 석학들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하니 알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지적인 분위기의 집안이라고 해도 그녀가 9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어머니와는 예술에 대한 관심만 물려받았을 뿐 나머지 정서적인 부분은 별로 닮지를 않았나 보다. 부모가 이혼할 때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나중에 그녀는 어머니의 친구에게 맡겨졌는데 다행히도 집안 분위기가 좋고 그녀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기반이 거기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엔 장수하는 노인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녀는 지난 2008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는데 장수했다. 그녀가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그녀는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은 삶은 살았다.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루고 살았다고 본인의 삶을 그렇게 말한다. 또 그만큼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교계에 진출하지 않으므로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렸는데 그렇다고 그걸 후회해 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 사귀는 것 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중시여기고 사람들 속에 있으므로 활력을 얻는 사람이 있다. 요는 사람은 자기 타고난 심성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타입이 어떠하며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정말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영화다. 한번쯤 아니 몇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통한 소확행을 원한다면 강력 추천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19-01-21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과천에는 ˝타샤의 책방˝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어요. 아날로그적 감성 물씬한 마을 사랑방이지요? 저도 추천해주신 다큐도 보아야겠네요

stella.K 2019-01-21 15:29   좋아요 0 | URL
헉, 정말이어요? 몰랐네요.
저는 서점을 다녀봤자 중고샵만 다니는지라 부럽네요.
저 사는 곳이랑은 좀 거리가 있어 일부러 가기는 그렇고
기회되면 한 번 가 봐야겠네요.
영화 좋더라구요.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거의 영업 멘트로군요.ㅋㅋ

cyrus 2019-01-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살고 싶은 곳, 자신만의 장소나 공간에서 살아가면 외부 요인에 의한 스트레스를 적게 받잖아요. 아주 단순한 삶의 방식이 오래 살 수 있는 비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

stella.K 2019-01-21 19:38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 2008년도에 찍은 필름이더라구.
그후 몇년 있다 돌아갔는데 작고한 나이가 92세던가?
옛날 노인 치고는 장수했지.
요즘 같았으면 거의 백세쯤 살지 않았을까?
암튼 나름 즐겁게 사셨던 것 같아.^^

페크pek0501 2019-01-22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저도 동의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고단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어요. 때로는 사람보다 책이 더 위로가 될 때도 있고요. 남들이 다 추구한다고 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자신 스타일대로 살면 될 것 같아요.

stella.K 2019-01-22 13:56   좋아요 2 | URL
어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기운을 받고 즐거운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혼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저는 사람들고 함께 있어 즐겁고 기운을 받을 때도 있지만
부대낄 때도 많아 결국 혼자있는 게 좋을 때가 더 많더군요.
그 비율이 6:4나 7:3 정도되는 것 같아요.ㅎ

서니데이 2019-01-2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샤 튜더는 일러스트를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저 사진도 동화 속 한 장면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저런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건 힘들겠지요.
stella.K님, 따뜻한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9-01-26 16:52   좋아요 1 | URL
영화 한 번 보세요. 이건 정말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어렸을 때는 부엌이 정말 불편했습니다.
마루를 거쳐 신발을 신고 턱이 높은 부엌을 오르고 내리면서
음식을 만들었거든요. 지금도 시골집 가면 그런데가 있더군요.
그래도 그 시절엔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엔 상상하기도 싫죠. 어떻게 살았나 싶고.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더군요.
이번 추위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봄이 기다려져요.^^

그런데 서니님 스마트폰으로 댓글 다셨나 봅니다.
일러스르...ㅋㅋㅋ

2019-01-2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1-26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꼭 봐야겠어요^^

stella.K 2019-01-27 14:36   좋아요 0 | URL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으네요.
네. 꼭 보세요.^^
 

 

 1. 침묵에 대한 생각

 

 지난 주말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란 프로를 보는데 일본 역사에 잠복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현재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가톨릭이 전파될 때 그 박해를 피하려고 일본의 신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자신의 신분을 숨겨 온 것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 여름에 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화는 알다시피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써 굉장히 인상 깊게 만든 영화고, 과연 배교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지에 대한 진지

한 물음을 갖게 한 작품이었다.

  

 특히 가톨릭은 전파하겠다고 온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는 많은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일본 신앙을 받아 들이고 수인의 삶을 살다 죽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는 엔딩에서 로드리게스 신부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염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관에 묵주와 성경을 몰래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겉으로는 일본 신앙에 동화된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그게 이 잠복 그리스도교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감독은 과연 잠복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박해로 인한 순교는 좀 줄지 않았을까?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죽는 것 보다 이렇게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잠복 신앙인이 더 많지 않을까? 인간적인 생각일지는 모르나 순교만이 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일까? 이 잠복 신앙도 예수님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란 말씀에 부합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자들의 순교가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님.

 

 사실 잠복 그리스도교는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자신이 신앙인임을 감춘채 지하에서 예배 드리는 교인이 있다. 언제고 세계 문화 유산은 이들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2.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

 

작년 한 해는 미투 운동의 원년되는 해였고, 올해 벽두엔 스포츠계가 들썩인다. 특히 빙상계가 둘썩이고 있는데 알고보면 성폭력이라는 건 생각 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에게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성행위를 자행할 수 있을까?

 

물론 그에겐 성행위가 그저 성적 욕구를 풀어버리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애초에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더구나 납짝 업드려도 부족할 판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맞고소를 해야겠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투 운동이 미국 허리우드에서 촉발되었고, 우리나라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아무래도 저자가 이 부분에서 기자 정신이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쓴 '나는 이런 글을 써왔다: 미투와 페미니즘'은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저자가 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강간 장면이 실제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은 여주인공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남자 주인공과 상의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 장면을 마론 브란도와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전에 상의는 했지만 여자 주인공인 로미 슈나이더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 둘이 슈나이더가 여배우가 아닌 소녀로서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마론 브란도의 나이는 48세였고, 슈나이더의 나이는 19세였다. 두 남자는 그 영화 이후 큰 명성을 얻었지만 슈나이더는 강간 장면 이후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지난 2011년 58세의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363p). 

 

채 다 피워보지 못한 어린 여배우를 이렇게 짓밟아 놓고 얻은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키운 선수를 짓밟고 얻은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미투 고백자가 로미 슈나이더 같이 되지 않다고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담담하게 미투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들이 상처 받지 않았다고, 음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까지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짓밟히고 그 운동만 하지 않았어도란 말을 탄식처럼 내뱉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에 상처 받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성철 기자는 책에서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를 소개했는데 좀 곱씹을만 해서 요약해 본다. 

 

첫 번째, 그 어떤 경우에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인식. "술만 안 마시면 되는데"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피해자의 평소 행실도 문제"라는 말로 논점을 흐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는 동안 2차 가해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며 합의가 아닌 '처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과는 피해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이른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SNS든, 소속사든 직접 손편지로 사과문을 쓰든 뭘 하긴 하는데 종종 그 사과의 대상이 자기 마음대로 '국민'이나 '대중'에게 행해있지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향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의 일 혹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그건 미투 가해자도 해당이 될 것이다. 당장 그의 누나나 여동생 심지어 애인이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제발 또 미투냐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미투 없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새해 첫 번째로 완독한 책

 

 새해엔 가급적 새 책은 뒤로하고 읽다 만 책,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중 읽겠다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작년에 1권은 읽었는데 2권을 못 했다. 급한대로 뽑아 들어 읽었는데 결국 올해 첫 완독 책이 됐다. 나란 인간은 참...

 

이 책이 인상 깊은 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그것도 정치사에서 웬만해서 나타나지 않을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격랑의 근대사를 작가 특유의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 

 

사실 문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 나는 공산주의를 경멸하도록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좀 낮설기도 했다. 그런만큼 늘 근대사가 궁금했던 나에겐 유의미한 독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감히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사에 길이 남을만한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가에게 이런 좋은 작품을 써 줘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9-01-15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일런스>의 원작이 엔도 슈사쿠의 책인 것 같은데, 제가 기억하는 표지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래 영화 포스터가 띠지로 들어있어서 그런 걸까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산다는 건 좋은 것일 때도 있지만, 어느 날에 생각하면 그건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없는 곳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미투에 대한 요약은 읽고 생각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입을 열어 소리를 낸다는 건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는 시작 같아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일어난 일을 침묵시켜서는 안되겠지요.
조금 전에 미세먼지 저감조치 해제 알림이 왔어요.
stella.K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stella.K 2019-01-16 13:13   좋아요 1 | URL
영화 이후 띠지를 둘러서 나온 것 같아요.

미투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코치가 빙상계에서 영구 제명됐다고 하는데
일단 잘된 것 같긴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문제는 소리만 요란했지
근본적인 대처는 아직 미흡해 보입니다.

오늘은 정말 모처럼 하늘이 맑네요.
내일은 또 미세먼지...ㅠ

cyrus 2019-01-1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세 여자> 1권 읽고 있어요. 1권에 나오는 조선여성동우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어요. 저는 소설에 언급되는 주변 인물이나 단체에 더 끌리더군요. 콜론타이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

stella.K 2019-01-16 13:17   좋아요 0 | URL
헉, 콜론타이가 있었나...?ㅋ
조금 더 촘촘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등장인물의 전환이 넘 순식간이야.
그러면 넘 두꺼운 책이 되겠지?
암튼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고 봐.

이번 토요일이지? 작가 만나는 거.
좋은 시간되길.^^

cyrus 2019-01-16 14:45   좋아요 1 | URL
허정숙과 주세죽이 조선여성동우회 독서모임에 참석하면서 읽은 책이 콜론타이의 소설이에요. 제목이 ‘삼대의 사랑’이었을 거예요. 허정숙이 그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남자 여러 명을 첩으로 두면서 살고 싶다고 말해요. 이제 2권만 읽으면 됩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5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영화감독, 영화배우...우리나라도 김기덕, 조재현이가 <나쁜남자>란 영화로 서원이란 배우를 그렇게 만들었네요 영화가 권력이 되어버렸네요 모든 것이 허망한 바벨인 것을...상처입은 영혼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아...

stella.K 2019-01-16 13:30   좋아요 1 | URL
이게 사실은 그전부터도 있어왔던 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여자 배우는 그렇고 그런 존재처럼
된 측면이 있죠.
그건 남성적 시각, 제도안에서 그렇게 말이 나가고
만들어지고 그런 건데 그런 점에서 미투는 정말 좀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투 가해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평판을 얻은 사람도 미투에 거론되면
용서가 안 되더군요.
우리가 이광수를 그 뛰어난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아무리 뛰어난 장점을 가져도 낙인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조재현이 연기를 얼마나 잘 했습니까?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죠. 사람 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요.
누군가 잘 다독이고 보듬어 주면 비록 흉터는 남아도 잘 극복할 텐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9-01-19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티브이에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걸 알고 저도 흥분했죠. 말이 안 되어서요.
그들에게 예술이 왜 있는지 묻고 싶어요.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할 텐데 예술을 위한 인간의 희생이라니... 참 한심하고 슬픈 일입니다.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어요.

stella.K 2019-01-20 17:32   좋아요 0 | URL
예술이 여성도 향유할 수 있는 거란 걸 생각 못한 거겠죠.
그게 TV에도 나와었군요.
이미 두 사람은 고인이 됐으니 따질 수도 없고
너무 안타까운 일이어요.ㅠ
 

난동이다.

아침에 배우 이순재가 K 본부의 <인간극장>에서 흘린 말이다.

따뜻한 겨울.

 

작년 겨울 역대급 추위를 겪으면서 과학계에선 앞으로 이런 추위가

계속있을 거란 전망을 내놨었다.

그런데 이 전망이 빗나가는 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잠깐 산책 삼아 나갔다 들어왔는데

얄팍하게나마 이러다 봄이 오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정도로 낮엔 날씨가 비교적 온화했다.

 

모르긴 해도 다음 주만 이럭저럭 보내고나면

올겨울은 생각보다 별로 춥지 않다고, 그야말로 난동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또 그러면 과학계에선 뭐라고 할까?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둘러치겠지. 

 

물론 과학적 예측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과학 신봉자는 되지 말자.

추운 때가 있으면 더운 때가 있고

이런 시절이 있으면 저런 시절이 있는 법이다.

이것을 너무 예측하려고 하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은가.

 

이순재 같은 어르신이 난동이라고 하니 그것도 나름 뭔가모를

살아 본 분의 말처럼 들린다. 

그분이 이번 겨울이 난동될 거라고 해서 난동이라고 했을까?

살아보니 안 추워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뿐이다.

 

사람은 추우면 추운데로 살아가는 지혜가 있을 것이고,

더우면 더운대로 살아가는 지혜가 있을 것이다.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맡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도 일단 생각 보다 춥지 않다는 게 나에겐 어쩌면 그리도 위로가 되는지...   


댓글(5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syo 2019-01-14 18:27   좋아요 2 | URL
카알님은 어렸을 적에 굉장한 장난꾸러기에 사고뭉치였을 것 같은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시루스 박사를 만나보고 알라딘 이미지랑 실제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요는, 카알님은 도통 알 수 없다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4 18:28   좋아요 0 | URL
전 공부 못하는 범생인척 하는 범생이었슴~ㅎㅎㅎ

stella.K 2019-01-14 18:59   좋아요 0 | URL
오, 두 분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ㅋㅋㅋ
저의 댓글이 1단계를 넘었습니다.
이런 영광은 제 책이 나오고 처음이어요.
이러면 되게 인기 서재 같아서 말이죠.ㅎㅎㅎㅎ

그런데 실제랑 이미지랑 많이 다르긴 하죠.
약간 환상이 깨지면서 새롭게 조합되어야할 것만 같은 순간이...ㅋ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고고 70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신민아 외, 최호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조승우가 점점 더 좋아진다. 나이들수록 그의 연기는 농익어 간다. 그래서 늦게나마 그가 출연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찾다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엔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모르는 영화니 좋을지 안 좋을지를 모르겠는 거다. 게다가 무려 10년 전 영화다. 그의 필모를 찾아 봤더니 2000년 <춘향전>에서 이몽룡으로 나왔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영화를 본 것도 같다. 그땐 저런 신인 배우가 있는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그 후 8년 동안 연기를 쌓고 이 영화에 출연을 했다. 그도 지금 얼추 40 줄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의 그의 연기가 노련미라면 저때는 좀 더 열정적이었구나 싶다.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담보로 한다. 뮤지컬 영화가 그렇고, 비록 같은 계열의 영화는 아니지만 <원스>도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 음악을 소재로 했음에도 별로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70년 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때 어떤 가수와 밴드가 인기가 있었는지 2008년도를 사는 젊은 관객들이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나도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데블스'란 밴드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는 밴드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룹 사운드라고 했다. 영화를 보니 정말 있었던 것도 같다. 적어도 그렇게 믿게 되는 건, 이들을 둘러 싼 배경이다. 그 시절 대연각이나 대왕 코너의 화재 사건이 있었고, 풍기 문란이라고 해서 장발을 단속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은 통행 금지를 이유로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나이트 클럽에서 밤새도록 노는 문화도 단속 대상이었다. 그뿐인가? 대마초 단속하고, 멀쩡한 곡들이 금지곡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나의 그 어린 날 있어왔던 일이었다. 그러니 그 가운데 정말 '데블스'라는 그룹 사운드가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런 그룹 사운드 보단 '봉봉 사중창단'과 '블루벨스'라는 역시 사중창단이 인기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시절이 좀 우습긴 했다. 물론 나도 장발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머리를 강제로 잘릴 사안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나이트 클럽에서 노는 걸 풍기 문란하다고 모는 것도 우습다. 금지곡을 선별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도 어지간히 보수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그건 당시의 최고 지도자의 취향을 반영할 때가 많다. 그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다. 그의 독재도 독재지만 가부장이 팽배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단속이 있었다는 건 왠지 가부장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문화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웬지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영화가 종반에 들어서면 전경들(?)이 해체됐다 다시 뭉친 데블스가 리사이틀 공연을 가질 때 공연장에 최루탄을 투척한다.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그때도 멤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경우에도 우리들의 젊은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계속 공연을 이어가고 보컬의 상규(조승우)는 어디서 호스를 끌어 와 물을 뿌리며 그 역시 계속 노래를 부른다. 그게 참 뭔지 모르게 찡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 같기도 한데 싫지가 않다.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지 않는가. 우리가 그때 놀지 않으면 언제 놀아 보겠는가. 

 

그런데 난 그 젊은 날 저렇게까지 놀아보지 못했다. 그저 독서하고 음악 듣는 거나 방해 받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지 않으면 늙어서 못 논다. 노는 것을 탄압 받으면 더 반항적이 된다는 걸 그 시절 데블스도 이 영화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그건 정말 맞는 얘기다. 사람은 놀 때 놀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늙어서 놀고 싶어도 못 논다.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몇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 중, 데블스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보컬을 맡은 상규가 공연하다 절정에 다다르면 꼭 여자 관객 하나를 무대에 세우고 지금은 돌아가고 없는 어머니를 부르며 불쌍한 표정을 한다. 그게 여자들에겐 모성 본능을 자극하며 공연의 열기를 최고조로 몰아가지만 멤버들 사이에선 갈등 요인이 된다. 특히 기타를 치는 만식이 비위를 건드리는 요인이 된다. 여자들에겐 모성 본능을 자극할만한 것이 같은 남자들에게는 갈등 요소가 되는구나 웃음이 나왔다. 사실 데블스는 두 개의 밴드가 합친 팀으로 기타를 치는 만식이 합치기 전에 자신도 나름 리더였다. 그것을 필요에 의해 보컬인 상규에게 양보했으니 어지간히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또 한 장면은, 장발 단속에 유치장 신세를 지게된 멤버들이 내친김에 누가 대마초를 피웠는지 고문 받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멤버들이 풀려나 간 곳은 공중목욕탕. 고문의 흔적으로 등이고 엉덩이고 시뻘건  상처가 보이는데 온탕에서 냉탕을 옮겨가면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으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국 그게 리사이틀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왠지 모르게 꽤 인상적이다. 젊은 날의 희망은 그 무엇으로도 꺾지 못하는가 보다.

어쨌든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다. 좀 늦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1-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발 단속하던 시대에 제일 웃긴 것은 여성들 미니스커트 단속이었죠. 무릎에서 몇 센티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치마가 너무 짧으면 안 된다는 것이니 얼마나 웃긴 일인가요? 단속 경찰이 길이를 재기 위해 자를 갖고 다녔다고(제 기억에 따르면) 어느 신문에서 본 것 같거든요.
어이없음의 시대를 살았어요, 우리가...

stella.K 2019-01-14 13:34   좋아요 0 | URL
이 영화에도 그 얘기가 나와요.
남자는 장발. 여자는 미니스커트.
70년대 고고라는 춤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말하면서 그 시대 문화사가 나오죠.
금지곡 리스트도 좀 웃겼구요.
암튼 이 영화 꽤 오래 전에 개봉된 건데 이제 본게 좀 미안하더군요.
기회되면 언니도 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