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침묵에 대한 생각
지난 주말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란 프로를 보는데 일본 역사에 잠복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현재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가톨릭이 전파될 때 그 박해를 피하려고 일본의 신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자신의 신분을 숨겨 온 것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 여름에 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화는 알다시피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써 굉장히 인상 깊게 만든 영화고, 과연 배교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지에 대한 진지
한 물음을 갖게 한 작품이었다.
특히 가톨릭은 전파하겠다고 온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는 많은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일본 신앙을 받아 들이고 수인의 삶을 살다 죽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는 엔딩에서 로드리게스 신부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염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관에 묵주와 성경을 몰래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겉으로는 일본 신앙에 동화된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그게 이 잠복 그리스도교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감독은 과연 잠복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박해로 인한 순교는 좀 줄지 않았을까?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죽는 것 보다 이렇게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잠복 신앙인이 더 많지 않을까? 인간적인 생각일지는 모르나 순교만이 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일까? 이 잠복 신앙도 예수님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란 말씀에 부합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자들의 순교가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님.
사실 잠복 그리스도교는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자신이 신앙인임을 감춘채 지하에서 예배 드리는 교인이 있다. 언제고 세계 문화 유산은 이들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2.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
작년 한 해는 미투 운동의 원년되는 해였고, 올해 벽두엔 스포츠계가 들썩인다. 특히 빙상계가 둘썩이고 있는데 알고보면 성폭력이라는 건 생각 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에게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성행위를 자행할 수 있을까?
물론 그에겐 성행위가 그저 성적 욕구를 풀어버리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애초에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더구나 납짝 업드려도 부족할 판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맞고소를 해야겠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투 운동이 미국 허리우드에서 촉발되었고, 우리나라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아무래도 저자가 이 부분에서 기자 정신이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쓴 '나는 이런 글을 써왔다: 미투와 페미니즘'은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저자가 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강간 장면이 실제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은 여주인공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남자 주인공과 상의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 장면을 마론 브란도와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전에 상의는 했지만 여자 주인공인 로미 슈나이더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 둘이 슈나이더가 여배우가 아닌 소녀로서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마론 브란도의 나이는 48세였고, 슈나이더의 나이는 19세였다. 두 남자는 그 영화 이후 큰 명성을 얻었지만 슈나이더는 강간 장면 이후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지난 2011년 58세의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363p).
채 다 피워보지 못한 어린 여배우를 이렇게 짓밟아 놓고 얻은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키운 선수를 짓밟고 얻은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미투 고백자가 로미 슈나이더 같이 되지 않다고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담담하게 미투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들이 상처 받지 않았다고, 음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까지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짓밟히고 그 운동만 하지 않았어도란 말을 탄식처럼 내뱉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에 상처 받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성철 기자는 책에서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를 소개했는데 좀 곱씹을만 해서 요약해 본다.
첫 번째, 그 어떤 경우에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인식. "술만 안 마시면 되는데"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피해자의 평소 행실도 문제"라는 말로 논점을 흐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는 동안 2차 가해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며 합의가 아닌 '처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과는 피해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이른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SNS든, 소속사든 직접 손편지로 사과문을 쓰든 뭘 하긴 하는데 종종 그 사과의 대상이 자기 마음대로 '국민'이나 '대중'에게 행해있지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향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의 일 혹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그건 미투 가해자도 해당이 될 것이다. 당장 그의 누나나 여동생 심지어 애인이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제발 또 미투냐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미투 없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새해 첫 번째로 완독한 책
새해엔 가급적 새 책은 뒤로하고 읽다 만 책,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중 읽겠다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작년에 1권은 읽었는데 2권을 못 했다. 급한대로 뽑아 들어 읽었는데 결국 올해 첫 완독 책이 됐다. 나란 인간은 참...
이 책이 인상 깊은 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그것도 정치사에서 웬만해서 나타나지 않을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격랑의 근대사를 작가 특유의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
사실 문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 나는 공산주의를 경멸하도록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좀 낮설기도 했다. 그런만큼 늘 근대사가 궁금했던 나에겐 유의미한 독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감히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사에 길이 남을만한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가에게 이런 좋은 작품을 써 줘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