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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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 했었다.
나 역시도 그가 정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다면 한표 찍어 볼 의향이 있었다. 사실 투표권이 생긴 후로 나는 투표를 그리 많이 해 보지는 않던 것 같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하지가 못하여 딱히 이 사람이다 싶은 건 없어도, 그중 나은 사람에게 한표를 행사하는 것이 우리네 투표 관행이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우리의 투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 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기에 이 사람에게 표를 찍는 견제의 의미가 더 많았던 투표는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안철수라면 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찍었을 것 같다. 그건 또 나에게 투표권이 생긴이래 처음 드는 마음이기도 했다. 이는 정치인에게 너무 많은 실망을 해서 이젠 비정치인 중에 나라의 지도자로 옹립하려는 대중의 심리를 반증하는 것일 게다. 그것은 또 한술 더 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움직임까지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안.철.수 그 이름 석자에 이토록 들끊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런 들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늦게 이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건 알았지만 이 사람이 나의 관심 밖인 것은 내가 기계치라는 것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 전도 유망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컴퓨터 백신 만드는 사람이 됐단 말인가? 그것도 의사의 길이라면 길이랄 수도 있다지만 컴퓨터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TV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그때가 내가 이 사람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 절제된 몸가짐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일에 대한 다소는 곰같은 열정. 확실히 그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식적이지 않은, 오랫동안 묵히고 익혀왔을 깊은 속 진정성과 맞물려 신뢰감이 들기도 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래서 안철수, 안철수 하는가 보다 했다(그 이름 조차도 친근하지 않은가?). 결국 그것이 '이 사람이라면...!' 이란 생각을 했고 한표를 던질 마음도 갖게 만들었으리라.  
물론 그것은 지금은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들끊고나니 그가 지난 날 냈던 책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는 말했을 것이다. 왜 자신이 의사의 길을 버리고 그 길을 갈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책에도 언급되기도 했다. 의사의 길이야 가는 사람이 많지만 컴퓨터 백신은 만드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의사의 길을 접고 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것은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증명해 낸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남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라고. 그것을 그가 또 한 번 증명해낸 셈이다. 그래도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는 사람만 알뿐이지, 나 같은 기계치는 인정은 해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는 책을 읽던 중에 아, 그렇구나 싶은 구절을 발견하고 웃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이러스의 미래'란 글에서 이다. 일부를 소개해 보면, 

유비쿼터스 환경이 도래하여 가전제품들까지도 인터넷에 연결된다면 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서 전기밭솥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밥을 태우는 바이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래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류를 위해서 전기밥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독수리 오형제인 양 말하곤 한다.(176~177쪽)         

우습긴 해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는 전기밥솥의 예를 들었지만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당장 얼마 전 해킹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다운이되어 먹통되어버렸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해킹 바이러스로부터 스마트폰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일도 독수리 오형제가 할 일이다(독수리 오형제는 바빠 좋겠다ㅋ).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을 단 몇마디의 말로 그 중요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는 정말 이 길을 선택하면서 조금의 후회도 없었을까? 이를테면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은 그렇다쳐도 이 길을 선택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시간을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았겠는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책에서 자신만큼 시간을 낭비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은 무수히 많은 직업을 가져야 했고, 또 버려야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사는 것의 의미'라는 한 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그 내용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의과대학 시절의 삶의 태도가 지금도 내 핏속에 흐르고 있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어떠한 태도로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식은 사라지지만 삶의 태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73쪽)   

현대 사회는 스팩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해왔는가가 그 사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낭비가 없어야 하고, 일단 선택했다면 그것이 자신이 무엇이 되기 위한 좋은 배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것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손익계산을 꼭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선으로 갈수있는 길을 돌아서 가면 왠지 바보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져봐야 하는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꼭 새겨 볼 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왜 후회되는 일이 없겠는가? 왜 손해 볼 일이 없겠는가? 특히 금전과 일과 사랑에 있어서는 가급적 손해 보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우린 이것에서 가장 많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을 안고 살고 있다.    

사실 그의 저 말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됐던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 공부했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내가 왜 그 일을 했으며, 왜 그것을 공부했을까 허탈함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때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것마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또 어느 틈엔가 모르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진지함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을 줬던 것 같다. 난 또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거나 배우게 되면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TV를 보면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묘한 선전하나가 있다. 그것은, 군에 입대한 사람 바로 제대한 것이며, 월요일 날 출근했다 바로 주말을 맞는 기분이라는 새로나온 스마트폰 선전이다. 뭐 그만큼 자사의 제품이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찌보면 태만을 조장하는 것 같아 보기가 영 껄끄럽기도 하고, 사람을 지독한 건망증 환자나 치매 환자로 만드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다. 분명 군생활이 내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못지 않게 좋은 것을 경험하게 될수도 있고, 힘든 직장생활에서 얻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왜 이것을 무시하고 놀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인생의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빨리 늙어야 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하건 성과 보단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안철수가 말하는 인간론일 것이다.  

그런데 과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은 차리고 볼 일이다. 갑자기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 감독의 인터뷰를 옮겨 쓴 장에서이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30년 정도 남았다면 날짜로 따진다면 10,000일 정도인데, 그 중 1/3은 잠을 자면서 보내고, 1/3 정도는 목욕하고 밥을 먹고 차로 이동하고 휴식하는 데 보내는데 그러고 나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나머지 3,000여 일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3,000일.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면서 살아간다면 좀더 가치 있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107쪽)

과연 그런가? 나도 그쯤 남아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일할 수 있는 날도 3,000일쯤 될 것 같다.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저 10,000일 중에 반드시 수시로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지금 우리에게(또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것은 안철수 소장은 이 책에서 나름 일목요연하게 잘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내 일, 우리 부서의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 사고에 길들여진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생각할만한 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때론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종용하는 것 같아(저자 자체가 워낙에 스케일이 큰 사람이니)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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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0-05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사용법은 정말로 닮고 싶어요. 계획을 세운다는 점에서 저와 그는 별로 다르지 않을텐데 왜 저는 이렇고 그는 저럴까요?ㅜㅜ 뒤늦게 책 찾아보실 만큼 마음에 드셨군요, 제 관심은 방송 몇 개 찾아보는 걸로 끝이었는데..

서울은 재밌겠어요! 자꾸 선거도 하고.ㅋㅋㅋ(두 번인지, 세 번인지 시장 바뀌지 않은 부산 사람으로서!)

stella.K 2011-10-06 14:37   좋아요 0 | URL
서울 사는 사람으로써 창피해서 어디 나가 말도 못하겠습니다.
아니 겨우(?) 애들 밥그릇 가지고 싸운다는 게 말이 됍니까?
이거 완전히 자존심 싸움이지.
오세훈이야 한번 했으니 아쉬울 것 없다는 입장일수도 있겠지만
다시 선거를 치뤄야 하는 서울 시민으로선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장이면 끝까지 서울 시민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면모를 보여야지, 자존심 좀 상했다고 저리 손 털면 그건
또 좋은 모습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씁쓸한 생각뿐이 들지 않더군요.
물론 이런 얘기 아이리시스님께 해 봤자겠지만.>.<;;

2011-10-06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6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는 <공주의 남자> 종영 일주일 전이다. 

어제는 경혜공주의 부마인 정종 역의 이민우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드라마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정종을 충실히 잘 살렸다고 한다.  

그러니 어제 본 정종의 능지처참은 사실이었고, 이는 역대 부마들을 봤을 때 상당히 드문 최후였다고 한다.   

사실 처음엔 정종이 찌질이로 나와 미덥지 않았는데, 경혜공주를 아끼는 마음과 친구 김승유와의 우정과 신의를 지키는 모습이 잘 그려져 배우도 배우지만, 작가의 탁월함에 감탄했다. 

어제는 김승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참형을 알리지 않고, 홀로 남을 경혜공주를 뒤로하고 그동안의 필름을 쫙 돌리는데 울컥했다. 이건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사형으로 죽어간 <모래시계>의 그 유명한 장면, "나 떨고 있니?" 보다 훨씬 좋은 장면인 것 같다. 하긴 모래시계가 벌써 몇년된 작품인데...

경혜공주는 순천의 노비가 됐다는 말도 있고, 세조가 평생 먹을 양식과 노비를 붙여줘 간간히 보살펴 줬다는 말이 세조실록에 나와있다고 하는데 글쎄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의 세조의 만행을 보면 말이다.  

어쨌든 처음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 있어서 작가의 노련함과 대본의 힘에 무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김승유의 어린 조카를 너무 건강하게만 그려서 불만이다. 아무리 어리다고는 하나 눈 앞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날 처참하게 죽었는데 그 이후에도 희희낙낙이 가능한가 말이다. 좀 더 신중하게 그리던가 아니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던 날 같이 드라마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 훨 나을 뻔했다.    

그런데 김승유는 역사적 인물인가? 가공된 인물인가? 

이제 남은 것은, 김승유와 심면 대결과 세령과 김승유가 어떤 최후를 맞이할 것이냐겠지? 

몇 주 전부터 이 드라마가 하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처절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 되면 마음이 많이 아프고 우울해질 것 같다. 드라마 중독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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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유 할아버지는 실존인물이에요.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조카가 나온다구요? 아마 팽공이랑 행남공일 거 같은데, 족보상으로는 두 분만 살아남고 일족 멸이에요. -.-;;
예전에 제가 쓴 페이퍼가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koreaisone/4996415

stella.K 2011-09-30 19:52   좋아요 0 | URL
오, 그렇습니까? 냉큼 가서 봐야겠군요.^^

pjy 2011-09-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민우가 왜 주인공이 아닐까 그랬는데, 연기력이 필요한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군요^^;

stella.K 2011-09-30 19:56   좋아요 0 | URL
이민우가 달리 크게 조명을 못 받아서 그렇지
연기력 하나는 탄탄한 것 같아요.
무슨 병이 있다고 하던데 약을 먹어 가면서 투혼을 펼쳤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옛날 회상씬이 나오는데
그때와 지금을 보면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구요.
그만큼 탈렌트가 꽤 체력을 요하는 직업이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어요.

아이리시스 2011-10-0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 끝나면 우리 <뿌리깊은 나무> 봐요, 스텔라님.^^

끝나서 서운한 거죠, 스텔라님? 저는 좋아요.ㅋㅋㅋ (딱히 설명할 수 없고 논리적이지 않은 이상한 이유로 싫었어요.ㅜㅜ)

stella.K 2011-10-01 12:00   좋아요 0 | URL
ㅎㅎ 제 서제에 들어오면 댓글 브리핑 보이 잖아요.
거기에 <>안의 글이 안 떠요. 그러면 아이리시스님 쓰신 글이,
"이 드라마 끝나면 우리 봐요" 라고만 나와서 순간 놀랐습니다.
만나자는 뜻인 줄 알고.
나야 좋지만 부산에서 서울을 오시겠습니까? 아님 서울에서 부산으로
날아가겠습니까?ㅋㅋ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별로란 말씀?

cyrus 2011-10-0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제 곧 <뿌리깊은 나무>가 방영된다고 하던데 드라마에 신세경이
나온다니깐 꼭 볼려고 해요. 제가 야간 수업이라 본방사수는 못하지만요 ^^;; 이러다가 공주의 남자처럼 중간에 드라마를 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제가 한 번 본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한게 많거든요 ㅎㅎ

stella.K 2011-10-01 12:06   좋아요 0 | URL
ㅎㅎ 나도 그래. 그 좋다던 차승원과 공 누구지?(요즘 이런다 순간적으로 생각이 안나)나왔던 드라마 있었잖아. 그거 좋다고 해서 쿡tv로 볼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못봤어.
글치 않아도 한석규도 나온다고 해서 잔뜩 기대는 하고 있다만,
문제는 내 방 tv가 6번이 잘 안 나와. 천상 방영 그 다음 주부터
쿡tv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무료로 볼 수 있잖아.
그런데 확실히 tv는 본방사수가 젤 좋더라.
쿡tv로 보는 건 이상하게 감이 떨어져. 그래서 영화 밖엔 안 보는데.ㅋㅋ


yamoo 2011-10-0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공주의 남자군요. 저는 평일에 하는 드라마는 거의 못보고, 오직 주말에 해 주는 광개토태왕만 열심히 봅니다요..ㅎㅎ

계백이나 애정만만세는 재방으로 좀 보는데, 밥먹을 때 가끔씩 봐서 연결이 안된다는...ㅎㅎ

stella.K 2011-10-03 14:26   좋아요 0 | URL
저는 또 광개토태왕은 안 봐요.
k1에서 하는 역사 드라마는 좀 마초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계백은 의외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더군요.
선덕여왕의 이미지가 남아서 그에 비하면 전개 방식이 한참 떨어지는 것
같아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Veronika Decides to Di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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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감독 : 에밀리 영
주연 : 사라 미셸 겔러, 조나단 터커(2009)

베로니카 살아서 사형선고를 받다 

자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삶에 대한 굉장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탈피해 보고자 하는 자살과 또 하나는 실존적 자살. 살아야할 아무런 이유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무료함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자살.  말하자면 베로니카의 자살은 후자쪽이다. 그녀가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웬만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긴하다. 하지만 이 정해진 대로의 삶이 그녀를 점점 무력화 시킨다. 그녀의 자살 방법은 약물 과다 복용. 하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녀가 눈을 뜬 건 어느 정신병원 병실이다. 담당 주치의 겸 병원 원장인 블레이크 박사는 목숨은 구했지만 자살하는 과정에서 건강에 너무 많은 손상을 입어 곧 죽을 것이라며 사형선고를 내린다.  

죽고자 했는데 살아나서 사형선고를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더 비참하지 않을까?  우선  자살을 처음 시도해 본 그녀로선 살아났다는 것에서 약간의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살에 실패해 본 사람은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또 시도를 한다고 한다. 그렇게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이 싫고, 삶이 괴로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기 목숨에 대한 실험 또는 자기 오만함 때문은 아닐까?  

어차피의 삶은, 어차피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수 주일 또는 수 달내에 죽을 것이다.  그러니 애써 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도감을 가질 법도 한데 자살 미수인 베로니카에겐 죽음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서 절망감과 함께 자기 연민이 느껴졌을 것이다. 어차피 때가 되면 죽을 것인데 애써 죽을 것은 무엇인가? 동시에 어차피 죽을 것인데 애써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딜레마는 아닐까? 결국 그때까지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거지만 삶은 내가 원하는대로만 살아지지 않는다. 때가 되면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돈을 벌어야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하고, 아기를 낳아야 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시마다 때마다 느껴야 한다. 그뿐인가, 늙으면 노후와 건강을 염려하며 살아야 한다. 거기에 중간중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배우자의 외도 또는 경제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등등이 삶에 대한 회의를 가져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기에 베로니카는 일찍 삶을 마감하려 했을 것이다. 꼭 베로니카가 아니더라도 이 모든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 정도에만 이르러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바로 그 시기에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 시기에 사람은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애써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사람이 짐승과 다르니까 공부를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 까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내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확실한 동기를 이끌어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일단 경쟁이 싫었으니까. 그래서 허무주의적인 생각을 많이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건 또 어찌보면 살기 위해 모험을 해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누구든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나의 이런 잘못된 생각 이면을 열어보여 주며, 세상은 의외로 살기 따라선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면 나는 좀 더 세상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베로니카도 그러지 않았을까?  

영화상에서 그렇게 많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베로니카의 부모는 딱히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딸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력을 줬던 부모는 아닌 것 같다. 다 그렇지 뭐. 세상에 자식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이 누구에게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 왔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운명을 지배한다는 것은 확실히 맞는 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한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가깝하고 지루한가? 세상은 의외성이 있기 때문에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사고의 틀을 깨면서 세상은 꼭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이 지루한 삶을 다시 살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을 체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사랑을 하는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선 베로니카가 정신병원에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 영화는 너무 영화적이다                 

그렇게 하고 많은 설정 중 베로니카가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 영화적이고, 동시에 도식적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랑을 구하지 않는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분명 감독은 이 영화를 자살에 대한 영화 보단 그것을 매개로 한 사랑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뭔가 역부족이었던듯도 하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허점이 많은 영화라는 것이다. 베로니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엔 실어증에 걸린 에드워드가 있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그후 그렇게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리고 거기엔 피아너 한 대가 있었는데, 피아노를 곧 잘 치는 베로니카는 한동안 피아노 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게 되고, 서서히 마음도 정화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에 에드워드도 동화가 되어 어느 날 말을 하게 되고 베로니카와 사랑을 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영화적이다 못해 동화적이고, 도식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베로니카와 에드워드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구애가 이루어질 찰나에 에드워드가 두려워 움츠러든다.  그때 베로니카도 움츠러 들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앞에서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민망한 장면이긴 한데 그것은 또 어찌보면 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참고로 이 영화 15 등급인데, 꼭 그 장면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15세가 보기엔 다소 부담스럽지 않나 싶다).       

아무튼 이렇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이자 미션은 베로니카 죽는 것이 아니라 살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랑은 에로스가 아니라 좀 더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에드워드를 사랑해서 살기로 결심하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그리고 그 대상은 있다가 없어질 수도 있고, 살다가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다 다시 죽기로 결심하게 된다면...?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지만,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이루었다는 건 동화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의 이후를 얘기하는 게 소설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설정은 가장 얄팍한 설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매력적이다. 매력적인 사람이 사랑을 이룰 확률은 그렇지 못한 사람 보다 많다는 건 상식이다(실연의 확률도 그에 못지 않게 많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자살은 꼭 매력적인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예쁜 사람은 몇되지 않는다. 평범 하거나 그 이하의 사람이 이 세상엔 더 많다. 만일 그런 사람이 죽기로 결심한다면 이 도식을 적용해 보면 구제 받을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 보다는 희망을 선택하는 것으로 적용점을 바꿔줬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열쇠는 블레이크 박사가 쥐고 있다 

이 영화는 흔한 로맨스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베로니카와 에드워드가 주인공이 아니라 블레이크 박사가 주인공이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화에서는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다. 영화 내내 뭔가 피곤에 찌든 듯한 표정이고, 베로니카가 그 얼굴에 침만 안 뱉았다뿐이지 자신을 살려놨다는 그것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는 인물로 나온다. 사실 이 설정이 어떤 의미에선 맞기는 하다. 왜 그런 말이 있다잖나, 상처 받은 사람이 나을 때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낳게해 준 카운슬러의 존재를 잊고 있거나 오히려 해 준게 없다며 욕을하면 확실히 나은 거라고 한다. 그만큼 카운슬러나 정신 의학자들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직업이다.  영화에서도 보라.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찬 베로니카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사랑하는 에드워드와 함께 무엇도 하고, 무엇도 하고 계획을 밝히며 잠을 자지 않게 해 줄 것과 얼마간 병원을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을 때 블레이크는 거절을 한다. 결국 둘은 병원을 몰래 빠져 나가는데,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블레이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베로니카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거짓이며  스스로 벽을 넘을 수 있도록 블레이크의 지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블레이크는 끝까지 능청스럽다. 이것이 자신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며 자신은 여전히 삶에 찌든 한 사람의 정신 의학자일 뿐이다. 이건 확실히 인상적인 반전이고, 그나마 영화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래서도 이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블래이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어도 좋지 않았냐는 것이다. 

 

 내가 이런 영화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름 좋게 보는 건, 영화가 자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살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서 어떻게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가를 아쉽지만 그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보여줘서 좋았다.  사실 자살, 자살 떠들기만하지 자살의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게 새삼 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살은 이제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자살할 의도가 없어도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 또는 그 아는 사람의 누군가는 자살을 한다.  이렇게 자살의 문제는 가까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영화도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그러기엔 우리나라 영화계가 역부족인가 보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의외로 생각할게 많은 작품인 것 같다.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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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자살하지 맙시다!!

이거 예전에 책 읽었는데 그래도 당시에 나온 코엘료 중에 이게 제일 좋았어요. 한창 읽힐 때 있었는데 시리즈로, 그때요. 사진 청순한 여자가 주인공인가요? 예쁘다.. 난 청순이 좋아요! 이제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1-09-28 11:05   좋아요 0 | URL
저는 코엘료가 별로였어요.
전에 악마와 미스 프랭이었나? 그거 봤는데
카프카의 말대로 뭔가 독자를 콱 무는 그런 맛이 약하더라구요.
이 사람도 호불호가 나뉘는가 본데, 어떤 작가든 첫인상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첫번에 사로잡지 않으면 두번 보기는 힘들지요.
안 그래도 읽을 책도 많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있는데.

글쎄요, 보기 나름인 것 같긴한데 주인공이 청순하기 보단 슬림하다고
해야 하려나? 약간 지적인 것도 같고.
암튼 연기를 과히 못하는 건 아니었어요.
기회 되시면 한번 보세요. 저도 쿡tv로 본 거예요.ㅎ

2011-09-2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0-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영화로도 나왔군요. 책으로는 재밌게 봤었는데...이고르 박사가 한 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꼼꼼한 리뷰 잘 봤어요^^

stella.K 2011-10-03 14: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언젠가 영화화된다는 말은 있었는데
나온지가 꽤 돼죠? 고맙습니다.^^
 

 이달의 독서 토론 선정도서

주난 줄말, 모처에서 하는 문학토론회에 나간지도 벌써 3회째가 되었다.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있었고, 주최측으로서는 4회째를 맞았다. 이달의 독서토론 책은 티티아나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읽을 생각이 없었다. 언뜻 봐선 요즘 나오는 미국 문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는 <헬프>를 읽고 적잖이 실망을 했던터라 이책을 읽고 또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선택을 미뤘던 책이다. 참고로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사람 저마다 자기 궁합에 맞는 나라의 문학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 문학이 대체로 맞지 않는 편에 속한다. 그 알량한 독서 실력으로 어느 나라 문학이 맞고 안 맞고를 논한다는 게 낮간지럽긴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미국 문학을 선택해서 완독에 성공한 책이 별로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책은 미국 문학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학이고, 무엇보다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은 아무리 좋아도 동기가 뚜렷하지 않으면 내것으로 취하는 것엔 다소 꿈뜨기 마련이다. 이책도 그 모처에서 토론회를 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읽을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다시피 나는 컨디션의 난조로 벌써 며칠 째 이책을 붙들고 있었고 결국 다 읽지 못하고 토론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책에 대해

그렇다고  이 책이 며칠씩 붙잡고 읽으리만치 어려웠던 책도 아니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모님은 새벽 1시에 이책을 붙들기 시작해서 4시 반쯤에 읽기를 마쳤다고 했다. 그만큼 가독성이 좋아서 독서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만에도 마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 걸 나는 붙든지 4,5일이 지나가는데도 완독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꼭 컨디션의 난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만큼 편견이 심한 대상이 또 있을까? 어떤 책은 완독을 하지 못하고 그런 토론회에 참석한다면 되게 미안했을 것이다. 그런 책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또는 중요시 여기는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독을 못하고 가도 아무런 죄책감(?) 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뭔가 내가 이책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이책에 대해 조금만 소개를 한다면,  이 책은 기자인 줄리아의 현재의 싯점과 과거 히틀러 치하에서사라의 싯점이 교차하는 방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야 하는 사라와 사라의 부모. 사라는 동생을 벽장에 감춰둔채 그 벽장의 열쇠를 가지고 간다. 사라는 금방 집으로 다시 돌아와 동생을 그 벽장에서 꺼내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하고도 떨어지게 되었다. 두려웠지만 더 이상 동생을 벽장에서 꺼내주는 것을 미룰수가 없다고 판단한 사라는 거기서 알게된 친구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말하자면 바로 사라와 줄리아의 시댁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현재와 과거를 교차한다는 점에서 익숙한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의 문제점         

예전에 나는  <나의 아름다운 비밀> 영화를 보고 간단하게 쓴 감상문에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던 것을 기억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고 보고 있기가 불편해서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놓고 나는 적잖이 작품을 많이 봐왔던 것도 사실이다. <쉰들러 리스트>는 물론이고, <인생은 아름다워>, <소피의 선택>, <제이콥의 거짓말>까지 내가 알고 있고, 볼 수 있는 한에서는 다 보았던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홀로코스트의 영원한 고전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보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일까? 정말 홀로코스트는 소재일 뿐 주제는 아니다. 그것을 소재로 했을 때 거기서 빚어내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일련의 작품을 봐 온터라 <사라의 열쇠>는 유감스럽게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모르겠다. <자기 앞의 생>이나 <죽음의 수용소>는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작품이라 다시 읽는다면 처음에 읽었던 그 감동이 살아 있을런지는.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라의 열쇠>를 쓴 작가가 작가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문체의 문제 

요즘 현대의 작가들은 다 그렇게 쓰는 걸까?  현대의 작가들에게서 흔히 보는 문체는 시나리오적 소설쓰기다. 쉽게 말하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독자가 보더라도 '이 책은 훗날 영화화될 것을 예상하고 쓴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도 요즘 작가들 사이에선 흔히 쓰는 문체로 통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실제로 심심찮게 영화화된 작품도 많다.  

실제로 나의 은사 중 한 분은 소설을 쓰다 시나리오로 전향을 하셨는데, 현대 소설을 씀에 있어서 시나리오 작법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소설을 써 볼 요량으로 시나리오를 공부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소설이 영화화된다라고 하면 영화의 메카 허리우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애초에 <사라의 열쇠>를 미국 작품으로 오해한 것도 무리는 아닌 성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가 썼다고는 하나 상당히 미국적이다. 주인공을 아예 미국 사람으로 설정을 하고 나오고 있긴 하지만  자국의 작풍도 있을 텐데 굳이 미국적 색채가 짙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영화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 됐으니 작가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점이 몹시도 불쾌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남없이 현대의 작가들은 왜 그리도 문체에 목을매는 것일까? 나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해 본적은 없는데, 프랑스 문학이 갖고 있는 문체의 독특함, 아기자기함, 우아함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면들이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리만치 작가는 자신이 갖게될 명성이 그리웠을까?  

더구나 45세라는 중년의 나이에 남편에 의에 임신중절을 반강요 받았던 줄리아가 남편의 의사와 상관없이 둘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이름을 '사라'로 했다는 점에서 그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이건 오버고, 너무 도식적이라고 했다. 난 아직 그 부분까지는 안 읽어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부분을 읽은다면 나도 썩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것으로 줄리아의 시댁이 그 옛날 사라에게 지었던 죄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웃기는 일이다. 결국 작가는 진정한 작가라기 보단 하나의 이야기꾼 또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텔러는 아니었을까?  

내가 이 작품을 들어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홀로코스트 중에 가장 하급이라고 얘기했던 건, 이야기가  심층을 뚫지 못하고 자꾸 지엽적인 것만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였음에도 이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든 작가가 그 이야기의 전체 분량중 3분의 2를 지나는 지점까지도 독자를 말하려고 하는 심층으로 데려다 놓지 않하면 그건 끝까지 읽어도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작품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소설 창작에 시나리오 작법이 필요한 것인가 

고백하건데, 나 역시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을 좋아한다. 예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같이 공부했던 어느 수강생과 이것을 가지고 싸울 뻔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문학 작품을 영화화했을 때 완성도가 높다고 주장했고, 상대는 그런 작품이 어딨냐며 맞섰다. 거기엔 현상 자체의 문제 보단 사람의 성분(?)의 문제가 더 컸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 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소설을 위해 공부를 했었고, 녀석은 순수하게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를 했으니 나를 얼마나 같지 않게 보았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시나리오 작가는 설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도 될 것이다.  녀석으로는 고까웠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의 편가르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별로 옳은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영화쪽에서 생각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나는 시나리오를 쓸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문학쪽에서 생각해 볼 때 또 달리 생각해 봐야할 문제였다. 과연 나의 은사님 말씀대로 소설 창작에 시나리오 작법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감히 얘기하겠는데 소설의 그런 작법이 소설의 후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자는 문학과 시나리오를 나눌 필요가 있냐? 요즘 통섭도 많이하고, 문학과 영화가 같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과 영화가 동반 상승하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작가의 태만과 문학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날의 문학 토론회에 나왔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이 작품에 대해 그냥 오래 생각 안하고 영화를 보듯 휙휙 잘 넘어가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뭐 꼭 문학이 엄숙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어떤 사람에겐 가볍게 읽는 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고스트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 쉽게 써서 쉽게 읽히길 바란다는 게 좀 미안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라지만, 이것조차도 상업적인 이용 가치의 대상이되진 않았을까 의혹이 남는다. 그렇게 휙휙 넘겨버리고 말 책이고 어차피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편하게 영화를 보지 뭐 때문에 책을 보겠는가? 아무리 한 작품을 소설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이 그맛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됐다. 지금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일군의 영화 감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문자 보다는 영상을 더 선호하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문자로 먹고 사는 작가는 자기 작품이 영화화 됐다고 무조건 조아라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작가는 인간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작가가 영화적 소설 쓰기에 몰두할 때 작가가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왜 작가는 인간을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하면 영화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인간의 오욕칠정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건드려주지 못하는 작품이 부지기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영화적으로 잘 쓴 소설이 정말 영화화될 수 있는 걸까? 당분간은 그럴 수 있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앞으로는 영화적으로 잘 쓴 작품이 영화화 되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 기왕 문학과 영화가 통섭을 할 것 같으면 문학적으로 잘 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걱정되는 건, 이런 현대의 작가들이 뿌려놓은 씨앗 때문에 이제 막 소설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런 소설이 소설의 전부인 양 알게 될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말하지만, 현대의 작가들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영화적 소설 쓰기와 교묘하게 바꾼 것이다. 이것은 문학의 세속화이며, 작가의 직무유기다.  

인간의 오욕칠정을 내게 가르쳐 줬던 사람이 두 분 계신데, 하나는 시나리오를 공부할 당시 (나는 두 분의 은사님을 거쳤는데 앞서 말했던 선생님과 후에 공부했던) 영화 감독인 P 감독님과 또 한 분은 박범신 작가다.  P 감독님은 공부하던 5개월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영화에선 그것이 나타나야 한다고. 

박범신 작가는 작년에 작품 <은교>를 마치고 가졌던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작품에서 오욕칠정을 건드리고 독자로 하여금 거기 빠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걸까? 그는 우리나라의 지난 자본주의 50년을 비판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문학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오욕칠정을 제대로 다뤄주지 못하고 영화적 글쓰기에만 몰두해서 울거먹으려고 하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 화가나는 것이다.  그런 작품에 온갖 마케팅을 위한 미사여구는 또 어떤가? 그것으로 독자에게 책을 사게 만들고, 동시에 눈을 가리게 만든다.  더구나 그런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다니, 오 마이 갓! 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도 좀 아쉽다는 얘기가 들린다.

 소설가에게 성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앞서 나는 미국적인 것 또는 허리우드적인 것을 말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반미주의자인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물론 내가 허리우드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반미주의자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거부해마지 않는 건 그런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상업주의와 승자독식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허리우드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앞서도 이 작품을 두고 말하지 않았는가? 프랑스 문학의 독특함과 우아함을 팔아 먹었다고.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엔 샹송이 있는 것처럼 프랑스다운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프랑스 영화감독들은 자국의 영화적 분위기를 살리려 하지 않는다. 뭔가 허리우드적인 것이 섞여 있다. 그래야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프랑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상업주의 영화엔 허리우드 작법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허리우드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지만 허리우도 같지 않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있으니까. 

물론 소설가는 성직자가 아니다. 소설가는 직업인이고 생활인일뿐이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요즘엔 목사의 목회도 비즈니스처럼 하는 목사도 있다. 목회를 비즈니스로 한다는 말은 목사의 직업에 대해 신성과 거룩함으로 보지 않고 세속적으로 본다는 말이 될 것이다. 목사에게서 거룩함을 볼 수 없는데 소설가에게 그런 말이 타당하기나 한 말인가? 우리가 잘 아는대로 발자크나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썼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생활인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나마 그건 나은 것이다. 소설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 투잡을 갖거나 소설 쓰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직업엔 인간의 존엄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저리 장황한 제목과 서툰 글로 도배를 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어디 그것이 목사와 소설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인가, 정치가에게도 의사에게도 세상의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말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뭐 이런 도덕을 얘기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난 단지 인간이 갖는 직업에 이것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상업주의의 가벼움 밖엔 남지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날 사회자는 이 작품을 선택한 여러 많은 이유 중 하나를 해외작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작가였다면 말하기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해외 작가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해도 못 알아 들을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떠들어도 상관없지 않냐고 해서 웃었다.  그래. 나도 그 말에 힘입어 마음껏 떠들어 본다. 작가가 알아나 듣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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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참석해보니 즐거우시죠? 저도 모임날 몇 주전까지는 안 읽다가
모임 전날이나 당일에 읽는 경우가 많았어요. ^^;;
아직 <사라의 열쇠>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독서모임 때 언급된 내용과
누님의 생각이 잘 정리하셨어요. 저도 예전에 독서모임 때 당일 내용들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하다보면 금방 까먹게 되더라고요 ^^;;

stella.K 2011-09-26 15:39   좋아요 0 | URL
사람들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뒷풀이가 있어서 좋긴한데
이제부터는 꼬박꼬박 참석하지 않으려고 해.
솔직히 이 책 첨부터 기대없었거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 책이야.
그런데 묘한 건 이런 책이 나를 자극한다는 거지.
썼지만, 소설에서의 영화적 글쓰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문학은 작가의 안일함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더군.
상업주의 영향도 너무 많이 타고.
내가 문학과 관련있는 사람이었다면 매일 술 마셨을지도 몰라.
문학이 죽었다고 개탄하면서.옛날의 문학이 아니라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런 허섭쓰레기 같은 작품에 너무 좋다고
마케팅하는 거 보면 더 화가난다는 거야.
좋긴 뭐가 좋아? 개뿔.
물론 그런 작품이 아니어도 세상에 읽을 책들은 많아. 특히 고전들.
그거 하나가 위안이야. ㅠㅠ

하늘바람 2011-09-2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고 애 키우니 뒤풀이는 꿈만 같아요
사라의 열쇠라 읽고 다시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stella.K 2011-09-27 14:15   좋아요 0 | URL
이해해요, 하늘바람님.^^

blanca 2011-09-2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제가 영화화를 염두해 둔 소설쓰기에 대해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어 이 페이퍼가 정말 반갑네요. 저도 요즘 소설들이 지나치게 서사위주로 마치 무언가를 염두해 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혹자들은 우리나라 소설들이 서사가 빈곤하다며 더 많은 스토리텔러들이 나와야 한다고 하기도 하던데 저도 스텔라님과 비슷한 의견입니다.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야기한다면 그냥 시나리오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stella.K 2011-09-27 19:58   좋아요 0 | URL
이게 문학의 상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것도 몇몇의 운 좋은 작가나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나 정말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그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얼마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글을 쓸 것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전 정말 작가들의 안일함을 개탄하고 싶어져요.ㅜ
제 생각이 블랑카님 생각과 많이 부합된다고 하니 기뻐요.
짧지않은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2011-09-27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9-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오로지 혼자만의 영역이고, 영화는 공동의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어야 하고, 달라야 하는데, 소설가가 그걸 포기해버리는 건 아쉬워요!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하고 뭐 그러면 좋겠지만 그런 천재는 보지도 못했고,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줄 몰랐을 때 <사라의 열쇠>는 관심작이었는데 알고나니 그보다 좋은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겠다 싶었죠. 조목조목 따질 수 없는 그 마음이 스텔라님 마음과도 같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읽지 않고 실망했다 말하는 건 하면 안되는 짓인데....ㅠㅠ

stella.K 2011-09-28 11:11   좋아요 0 | URL
소설가가 그걸 포기하는 순간 자국의 문학은 후퇴한다는 걸
알아야 해요. 포기는 나 한 사람만의 포기가 아니거든요.
문학은 너무 만만하고 안일하게 보는 요즘 작가들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땅 파 먹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가치있게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땅은 거짓말 안하잖아요.
그것에 순응하고 길들여 살아야 할 쪽은 사람이니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어려울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책을 펼쳐 들긴 했는데, 결론은 역시 '어렵다'다. 

그 어렵다던 미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진중권이고, 이미 그 이름 석자 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된 느낌이지만, 나 자신 미학든 미술이든 지식이 일천해서일까 책을 읽고나니 오히려 더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다. 어디 현대 미술만 그런가? 현대 음악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전의 예술들은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누구든 공감할 수 있었지만, 현대 예술은 도도하다.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작가의 개성만이 도드라질뿐이다. 뭐 그것이 예술이라면 뭐라 반박할 수는 없겠지만, 난 늘 대중과 함께 공감하지 않고 숨쉬지 않는 예술은 나 역시 호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역시 담담할 뿐이다. 솔직히 현대 미술을 보고 감탄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래도 나의 이런 생각을 동조라도 하듯, 제들마이어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현대회화에 대해 "인간 행위의 근본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것은 확실히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개인주의적이기도 하다.  

사실 읽으면서 왜 현대 미술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가? 현대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현대 미술의 전망. 뭐 이런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동떨어진 질문이었을까? 현대 예술은 그저 지금을 말해 줄 뿐인가 보다.  

나중에 기회있으면 다시 한 번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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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책 주문하면 진중권도 살까 했는데 저는 예술/대중문화 책 너무 부러웠는데요? 그런데 좀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책선정은 누구에게나 늘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수용하려고 해왔는데, 소설이면 저도 다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저도 간혹 취향 아닌 걸 만나서 난감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리뷰쓰기가 또 어렵겠네요, 이 분야가. 지극히 평범한 대중인 우리에게는 그저 쓸 말이 정해져있으니.^^

그래도 좋았어요. 스텔라님 리뷰. 저 스텔라님 책중 갖고 싶은 거 많았었어요.^-^

stella.K 2011-09-21 21:30   좋아요 0 | URL
현대미술은 진중권도 못당하겠구나 싶어요.
그냥 보고 즐기는 쉬운 미술도 있는데
굳이 현대미술을 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제 책중에 갖고 싶은 책이 있었나요?
제가 꼭 갖고 있을 필요가 없는 책이면 아이리스님께도 덜어 드리면 좋을텐데...뭐가 있을까요?
사실 얼마 전 사이판에 사는 내 친구에게 책을 보내서 드릴만한 책은 그다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더라도 한번 말해봐요. 보내 드릴 수 있으면 보낼게요. 부담 갖지 말구. 진짜루!^^

아이리시스 2011-09-21 23:55   좋아요 0 | URL
지금은 저, 받아도 못 읽고 묵힐 거예요. 이 분야는 더 어려워서 공부하는 기분인데 공부는 저 지금도 충분히 하잖아요?^^; 그래서 사실 정말 읽고싶은 건 예술/인문/사회/인데도 못 읽어요. 수준이 안되는데 그걸 취미로 잡고 있을 수는 없어서^^ 그런데 요즘은 어쩔 때 보면 소설 보다 잘 읽힐 때도 있더라구요. 소화시켜서 글을 쓰는 건 다른 문제지만요.^^ 고마워요, 스텔라님. 저도 좀 편해져서 책정리도 하고 이것저것 정리가 되면 보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책욕심 별로 없어졌어요. 여기저기 책 쌓인 거 보면 덜어내고 싶은데 못 읽은 게 많아서 속상해요. 읽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그걸 어떻게 소화시키냐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말로만으로도 든든해요. 또 책선물 주신다는 분 만나서.^-^

stella.K 2011-09-22 10:51   좋아요 0 | URL
아, 참 이렇게 다정한 서재인이 계셨다니...!ㅎ
저도 그래요. 덜어내고 싶은데 안 읽은 책이 많아서
함부로 덜어낼 수도 없고.
물론 어떤 건 막 안 읽었는데 사이판 친구한테 보낸 책도 많아요.
막상 읽어야지 해 놓고 몇년이가도 안 읽은 책도 있거든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책욕심 많이 줄어든 건데 그래도 아직도 이러네요.ㅜ
그래요. 우리 언제고 책 교환해서 읽기도 하고 그래요.^^

cyrus 2011-09-2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핵심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네요, 어쨌든 리뷰 쓰쎴으니 수고하셨어요.
이제 마지막 달 신간도서 두 권만 남았죠. 마지막 도서는
누님이 읽을만한 쉬운 책이 되어야할텐데 말이죠 ^^;;

stella.K 2011-09-21 21:20   좋아요 0 | URL
ㅎㅎ내가 읽을만한 쉬운 책. 그것이 문제야.
왜 내가 좋아할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는 걸까?ㅠ
아무래도 추천1은 너의 공인 것 같다. 고마워.^^

아이리시스 2011-09-21 23: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추천은 제 공이에요.^-^

stella.K 2011-09-22 1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런 실수를...할 말이 없구료.ㅠ

cyrus 2011-09-23 20:58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 저 때문에(?) 스텔라 누님이랑 아이리시스님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켰네요 ^^;;

stella.K 2011-09-23 21:01   좋아요 0 | URL
너만은 내 편인 줄 철석같이 믿었다는 거 아냐?ㅎㅎ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뭐.^^

yamoo 2011-09-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만, 현대미술편은 아무래도 좀 어렵지요. 다다이즘, 구성주의, 초현실주의, 공간주의 등등 어려운 사조들이 많더라구요~ 진중권이 어려운 걸 쉽게 강의하고 쓰는 편인데...현대미술이 워낙 난해해서 그런가 봅니다.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는 평이하니, 한번 일독해 보시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stella.K 2011-09-22 10: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래도록 미학오디세이 2권을 사놓고 안 읽어서 이번 기회에
겸해서 읽어 볼까 했는데 못 읽었어요.ㅜ
오래전에 1권 읽었는데 저에겐 만만치 않더라구요.
아, 언제쯤 이런 책도 화통하게 읽고 그럴까요?흐흑~

2011-09-22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2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3번째는 접니다. ^^^

어려운 책을 읽으셨군요. 원래 독서란 어려운 걸 읽으며 공부하는 게 참다운 독서라고 하던대요(최재천 교수가). 그런 점에서 뿌듯해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저도 요런 어려운 책 좀 도전해 봐야겠어요.

stella.K 2011-09-25 13:5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무슨 추천까지... 민망하고 옵니다.ㅜ
그런데 그것도 웬간해야죠.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
딱 그것으로 밖엔 안 보이던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