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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12월
평점 :
안철수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 했었다.
나 역시도 그가 정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다면 한표 찍어 볼 의향이 있었다. 사실 투표권이 생긴 후로 나는 투표를 그리 많이 해 보지는 않던 것 같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하지가 못하여 딱히 이 사람이다 싶은 건 없어도, 그중 나은 사람에게 한표를 행사하는 것이 우리네 투표 관행이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우리의 투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 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기에 이 사람에게 표를 찍는 견제의 의미가 더 많았던 투표는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안철수라면 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찍었을 것 같다. 그건 또 나에게 투표권이 생긴이래 처음 드는 마음이기도 했다. 이는 정치인에게 너무 많은 실망을 해서 이젠 비정치인 중에 나라의 지도자로 옹립하려는 대중의 심리를 반증하는 것일 게다. 그것은 또 한술 더 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움직임까지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안.철.수 그 이름 석자에 이토록 들끊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런 들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늦게 이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건 알았지만 이 사람이 나의 관심 밖인 것은 내가 기계치라는 것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 전도 유망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컴퓨터 백신 만드는 사람이 됐단 말인가? 그것도 의사의 길이라면 길이랄 수도 있다지만 컴퓨터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TV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그때가 내가 이 사람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 절제된 몸가짐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일에 대한 다소는 곰같은 열정. 확실히 그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식적이지 않은, 오랫동안 묵히고 익혀왔을 깊은 속 진정성과 맞물려 신뢰감이 들기도 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래서 안철수, 안철수 하는가 보다 했다(그 이름 조차도 친근하지 않은가?). 결국 그것이 '이 사람이라면...!' 이란 생각을 했고 한표를 던질 마음도 갖게 만들었으리라. 물론 그것은 지금은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들끊고나니 그가 지난 날 냈던 책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는 말했을 것이다. 왜 자신이 의사의 길을 버리고 그 길을 갈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책에도 언급되기도 했다. 의사의 길이야 가는 사람이 많지만 컴퓨터 백신은 만드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의사의 길을 접고 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것은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증명해 낸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남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라고. 그것을 그가 또 한 번 증명해낸 셈이다. 그래도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는 사람만 알뿐이지, 나 같은 기계치는 인정은 해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는 책을 읽던 중에 아, 그렇구나 싶은 구절을 발견하고 웃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이러스의 미래'란 글에서 이다. 일부를 소개해 보면,
유비쿼터스 환경이 도래하여 가전제품들까지도 인터넷에 연결된다면 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서 전기밭솥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밥을 태우는 바이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래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류를 위해서 전기밥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독수리 오형제인 양 말하곤 한다.(176~177쪽)
우습긴 해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는 전기밥솥의 예를 들었지만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당장 얼마 전 해킹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다운이되어 먹통되어버렸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해킹 바이러스로부터 스마트폰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일도 독수리 오형제가 할 일이다(독수리 오형제는 바빠 좋겠다ㅋ).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을 단 몇마디의 말로 그 중요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는 정말 이 길을 선택하면서 조금의 후회도 없었을까? 이를테면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은 그렇다쳐도 이 길을 선택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시간을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았겠는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책에서 자신만큼 시간을 낭비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은 무수히 많은 직업을 가져야 했고, 또 버려야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사는 것의 의미'라는 한 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그 내용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의과대학 시절의 삶의 태도가 지금도 내 핏속에 흐르고 있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어떠한 태도로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식은 사라지지만 삶의 태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73쪽)
현대 사회는 스팩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해왔는가가 그 사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낭비가 없어야 하고, 일단 선택했다면 그것이 자신이 무엇이 되기 위한 좋은 배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것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손익계산을 꼭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선으로 갈수있는 길을 돌아서 가면 왠지 바보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져봐야 하는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꼭 새겨 볼 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왜 후회되는 일이 없겠는가? 왜 손해 볼 일이 없겠는가? 특히 금전과 일과 사랑에 있어서는 가급적 손해 보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우린 이것에서 가장 많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을 안고 살고 있다.
사실 그의 저 말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됐던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 공부했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내가 왜 그 일을 했으며, 왜 그것을 공부했을까 허탈함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때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것마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또 어느 틈엔가 모르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진지함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을 줬던 것 같다. 난 또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거나 배우게 되면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TV를 보면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묘한 선전하나가 있다. 그것은, 군에 입대한 사람 바로 제대한 것이며, 월요일 날 출근했다 바로 주말을 맞는 기분이라는 새로나온 스마트폰 선전이다. 뭐 그만큼 자사의 제품이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찌보면 태만을 조장하는 것 같아 보기가 영 껄끄럽기도 하고, 사람을 지독한 건망증 환자나 치매 환자로 만드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다. 분명 군생활이 내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못지 않게 좋은 것을 경험하게 될수도 있고, 힘든 직장생활에서 얻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왜 이것을 무시하고 놀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인생의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빨리 늙어야 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하건 성과 보단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안철수가 말하는 인간론일 것이다.
그런데 과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은 차리고 볼 일이다. 갑자기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 감독의 인터뷰를 옮겨 쓴 장에서이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30년 정도 남았다면 날짜로 따진다면 10,000일 정도인데, 그 중 1/3은 잠을 자면서 보내고, 1/3 정도는 목욕하고 밥을 먹고 차로 이동하고 휴식하는 데 보내는데 그러고 나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나머지 3,000여 일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3,000일.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면서 살아간다면 좀더 가치 있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107쪽)
과연 그런가? 나도 그쯤 남아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일할 수 있는 날도 3,000일쯤 될 것 같다.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저 10,000일 중에 반드시 수시로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지금 우리에게(또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것은 안철수 소장은 이 책에서 나름 일목요연하게 잘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내 일, 우리 부서의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 사고에 길들여진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생각할만한 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때론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종용하는 것 같아(저자 자체가 워낙에 스케일이 큰 사람이니)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