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 동안 착잡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 보았다.

저렇게 쏟아지는 많은 뉴스 중에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언론을 다 믿지 않는다.) 

 

다소 마음엔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임기만이라도 채워주길 바랐다.

여자는 아무리 잘 해 봐야 남자가 한 가지 잘 하는 것에 따라가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자들 아닌가.

정가 그 안에서도 얼마나 부침이 많을 것인가.

여자인데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의지하고 터놓고 얘기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온통 정적들 뿐이었겠지.

하지만 이런 헤아림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난 그녀가 100% 본인의 의지만으로 대통령이 됐을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주위에서 부추김도 받았겠지.

그래야 누구든 다음 정권의 실세가 그녀를 가볍게 밟고 올라 갈 수 있을테니.

 

그녀가 그 권좌를 지키고 싶었다면 몇 배는 더 강해졌어야 했다.

그런 떨거지 비선실세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리만큼.

그리고 칼끝에 베일만큼 철저하게 원리원칙적이어야 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엔 어머니의 영향이 컸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긴, 살아 오면서 아직까지 육 여사를 두고 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와 한통속으로 싸잡아 욕을 먹지 않는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지금 야당 일각에서는 그녀가 퇴진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난 왠지 그것도 그녀를 퇴진시키기 위한 수순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모를 일이지. 신중한 척 해 놓고 어디 가서 자기네들끼리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을지.)

 

그녀가 욕을 먹던, 억울한 소리를 듣던 변하지 않는 사실은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국정을 농단한 건 이전 대통령들도 여러 모양으로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하필 여자라서 더 욕을 먹는 건 아닌지.

물론 또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볍게 될 것은 아니기에,

하야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누구라도 권좌에 앉는이, 국정을 또 한 번 농단하는 일이 있다면 

그녀를 일벌백계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나는 시국선언도 좋고, 시위집회도 다 좋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를 심판하기 위한 거라면 그것은 반대다.

정치의 투명성은 그냥 오지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온다고 본다.

 

이 경우 난 희생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혹시라도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을 순교자인 양하지

않았으면 한다. 

순교자인 양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따르고, 보좌하고 기생했던 사람들한테나

할 수 있는 거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선 안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 정치의 선진화와 투명성을 위해

그녀의 퇴진이 필요하다면 미련없이 내려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 차기 정권을 노리는 자 그 자리가 얼마나 무겁고, 준엄한 자리인지

알아야 한다.

권좌를 우습게 보는 자 권좌로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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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30 13:23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물론 전 그녀를 찍은 바 없지만 그녀는 대통령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봅니다.
원칙을 지키고 소통만 잘했어도.
정말 국민의 불행입니다.ㅠ

님의 댓글을 보니 괜히 말 한 마디 더 보탰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마음이 심란하여 몇 자 적어보면 나을까 했는데...
 

연예인에 이어 문화계 인사들의 성추문 사건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 토요일 박범신 작가 블로그에 관리자가 글을 하나 올렸다. 참고해서 보길 바란다. .

 http://blog.naver.com/wacho/220842820524

 

사실 꼭 성추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특정인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은 그 사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략난감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주는 것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싫은 사람은 이런 일이 있으면 게거품을 물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은혜가 느껴지는 사람은 죄의 경중을 떠나 안타까움으로 지켜보게 되는 게 되는 게 사람의 인지상정 같다.

 

그러고 보니 내 책이 나오기 전, 나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편집을 맡아 준 박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연락을 받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조경란 작가 부분을 빼자는 것이다. 몇년 전, 그녀의 작품 <혀>가 표절시비에 붙었던 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난 그 문제가 해결이 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명확히 해결이 난 것이 아니고, 그냥 시간속에 묻힌 사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책을 계기로 태클을 걸고 나올 독자가 혹시 있을지 모르니 아예 빼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하긴 태클을 받으려면 별 오만가지 잡군데에서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니 민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 한다면 책을 아예 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고.  하지만 난 조경란 작가의 <혀>를 언급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에 나온 그녀의 에세이 <백화점>을 얘기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혀>에 대한 언급은 빼고 가자고 해서 겨우 살아남은 경우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문제를 걸고 나오는 독자는 없다.

 

나중에 편집자와는 사석에서 아는 지인과 함께 만났는데, 말끝에 신경숙 작가의 사례를 들어 우리가 죄는 미워해도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그 작가의 작품은 미워해도 그 작가를 미워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대뜸 외국 같은 경우엔 그런 일이 있으면 아예 제명 감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싶어 뜨끔했다. 하긴 어떤 작품이 됐건 그 작품에 작가의 동기와 의지가 투영되고, 명예를 생각한다면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닐 것이다.  

 

앞서 안타깝다고 하는 건,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없던 말도 부풀려져 자신이 잘못한 것엔 사죄한다고 해도 그도 어느새 피해자가 되어 상처를 입게 된다. 박범신 작가의 경우도 보라. 밑에 달린 댓글 보면 살벌하고 가차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현장에 있었는가 없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비난 받을 만한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너무한다. 안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때는 돌이킬 수 없다. 잘한 것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 싶다면 차라리 침묵하고 이 시간을 자성의 시간으로 견디는 것이 나보인다. 

 

스스로에게 높은 도덕성을 갖는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너무 낮아서 문제 아닌가. 연예계를 비롯해 문화계가 보여주는 실망스런 현실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동시에 이 싯점이야 말로 도덕성을 회복할 때라는 것을 다시금 돌아 보아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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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 많은 작가의 작품을 미워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혀진다는 게 문제죠. 사실 저는 이번 주에 `창비 초대전 이벤트` 응모글을 쓸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원래 응모글에 출판사의 문제점도 짤막하게 언급하려고 했어요. 신경숙 사태 때 창비를 비판했고, 그 부끄러운 사실을 잊지 않은 독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신경숙 사태 당시 창비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창비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태도가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고민이예요. 적립금 2000원 때문에 자존심 굽히기 싫어요. ^^

stella.K 2016-10-25 18:57   좋아요 1 | URL
너의 자존심이 설마 2천원만 나간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잘 생각해라.ㅎㅎ

cyrus 2016-10-26 08:52   좋아요 2 | URL
창비 이벤트 응모 안 할거예요. 그래서 저는 창비를 좋아하지 않는 걸로... ㅎㅎㅎ

2016-10-25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26 13:15   좋아요 0 | URL
지당하신 말씀이죠. 한데 왜 이 지당하신 말씀을 굳이 비밀글로 하셨습니까?ㅠ

근데 전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글 따로 인격 따로인 사람도 많더군요.
이것을 일치시키기가 참 쉽지 않는가 봅니다.ㅠ

비공개 2016-10-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박범신 작가의 경우엔 블로그에 언급된 그 방송작가님 말고도 여러건의 트윗이 더 있었어요.. 성추행, 성희롱 당했다는.. 물론 친분관계에 따라 받아들이는건 다를 수 있겠지만, 친하신 분은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느꼈다고 해도 그 방송작가님이 성희롱으로 느꼈다면 성희롱인거지요.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그런 음담패설로 인기를 얻으시는 4-50대의 남성분들이 수두룩하지요. 남친이랑 할때는 꼭 **를 해야 낙태를 안하게 된다거나, 어리고 이쁜 여자가 따른 술이 더 맛있더라거나.. 그런 분들중 몇분이 직장내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고 나니 이제 최소한 여자들 있는데서는 그런 얘기 안하더라구요. 이번 일을 계기로 클린한 문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야 한국문학이 더 발전하고 더 멋져질 것 같아요.
물론 도덕성에 관한 스텔라님의 견해에는 대부분 공감합니다 ^^

stella.K 2016-10-26 13:23   좋아요 0 | URL
분명히 박범신 작가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부풀려진 부분도 많고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 해석이 다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사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인정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없이 그냥 침묵하고 자숙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범신 작가 제가 나름 애정하는 작가였는데
좀 안타깝게 됐어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16-10-26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26 14:1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문제점이 있었군요.
저는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ㅠ

2016-10-2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26 14:48   좋아요 1 | URL
와우, 정말 이시옵니까?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저는 드문드문 있어 온 일이라.
글구 댓글도 없이 친구등록만 하는 분들에 대해선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그냥 조용히 제 글을 보고 가시는 분들이라
오히려 아는 척 신경 쓰면 불편해 하실 것 같아서...

페크pek0501 2016-10-2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혀를 조심하라, 에 관한 명언을 떠올리게 되네요.

˝혀를 확실하게 관리하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핵심이다.˝(그라시안)


stella.K 2016-10-29 16: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만한 명성에 말도 예쁘게 했더라면
오해나 비난도 안 받고 얼마나 좋았겠어요.
저의 책에 박범신 작가를 다룬 게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ㅠ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2disc)
정기훈 감독, 정재영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보면 장르가 보이긴 한다. 하지만 또 달리 느껴지는 건 열정 페이어쩌고 하면서 젊은이들 노예로 부려 먹는 악덕 기업주의 신분세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일견 그런 것도 없지 않다. 기자들 특히 수습기자들의 월급이 얼마쯤 될까? 쉬는 날도 없고, 죽자고 일만해 대면서, 상사들로부터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처먹으면 월급도 짜면 그들의 월급이 열정 페이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런데 그렇고 그런 코미디라고 보기엔 이 영화 어딘가 모르게 진지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감독의 진지한 열정이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이런 이야기 하나 뽑아내기 위해 모신문사 연예 데스크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취재했을 것이다. 감독은 그곳을 취재하면서 우리나라 연예 산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당연 기자의 애환을 다루려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오진 않지만 연예인의 실명이 나오는 것을 보면 꽤 영화가 사실적여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습인 도라희(박보영 분)가 초년생답게 좌충우돌하다가 우연히 얻어 걸린 기사 하나로 수습 딱지를 떼게 되는데, 그게 어느 남자 아이돌의 허위 성폭행 사건과 그의 연애 사건을 다룬 기사다. 이것 역시 모르긴 해도 감독이 연예 데스크를 취재하다가 실제 버려진 기사를 주워 이야기를 재구성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연예인이나 연예인지망생을 볼모로 잡고 연예기획사들의 횡포야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니 그런 이야기는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도 사실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무엇이 허위고 무엇이 진실이냐는 것인데 진실은 이해관계 때문에 가려져 있거나 버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영화의 설정은 신문사 연예부를 다뤘으니 연예 기획사와의 이해관계다. 정치부라면 당연 국회나 여당이나 야당과의 이해관계. 우린 그걸 가끔 유착관계로도 파악하기도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도 보기도 하고. 그래서 기자들도 알고 있다. 대중들이 자기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기레기. 쓰레기 같은 가사를 쓰는 기자. 하지만 대중은 어떠한가? 그들을 그렇게 비난은 하지만 그들이 쏟아 놓는 증권가 찌라시를 너무도 잘 믿는 순진한 시민으로 파악한다. 그러니 기레기라고 손가락질 해 봐야 별로 나을 것도 없다.

 

기자들의 세계에서 추측 보도라는 게 있다는 걸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렇게 연예기획사의 허위 날조에 분개한 도라희가 그 남자 아이돌의 허위 성폭력을 입증하려면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성폭력의 상대자를 법정에 세우거나 그렇게 추측 보도를 하는 것. 그러나 전자는 사람이 사라진 상태니 찾아 세울 방법이 없고, ‘추측 보도는 잘만 되면 성공을 보장하는 거지만 잘못되면 신문사의 명예는 물론이고, 옷을 벗을 각오가 돼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니 웬만치 큰 간을 갖지 않으면 그것도 할 짓은 못된다. 그러나 이제 막 정식 기자가 된 도라희 이름답게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코미디인 만큼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진우 기자를 언급하기도 하던데 우리의 도라희가 이후에도 여자 주진우를 자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주진우가 어느 소속 기자더라? 그를 데리고 있는 신문사는 쟤가 또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늘 조마조마하고 예의주시할 것 아닌가? 그런 사람은 하나로도 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영화는 그렇게 기레기라고 해도 우리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면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긴 한다. 이 암시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내가 볼 때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도라희의 직장 상사 하재관(정재영 분) 역시 실제로 누군가를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열정의 대표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열 받는다고 소리나 벅벅 지르는 것이 열정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신문사 데스크니 그런 설정은 가능하긴 할 것이다. 또 그런 인물이 팀 전체를 살리고 있다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도 소리만 벅벅 지를 줄만 알지 그 나름의 애환은 있다. 좀 판에 박힌 듯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정재영은 내가 나름 애정하는 배우라 이 영화에서도 아낌없는 연기력을 보이고 있으니 더는 뭐라고 하지는 않겠다.

 

우리나라에 신문사 데스크를 다룬 영화가 있던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90년 대 미국 신문사를 다룬 영화가 있던데 제목이 생각나질 않아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 이 영화 제목을 치고 찾아 봤더니 같은 코미디 장르의 영화만 뜬다. 이 영화 진지한 사회파 영화로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수익을 생각했나 보다.  

 

이 영화 괜찮은 영화긴 하다. 별 반쪽을 더 줘도 될 것 같긴 하지만 감독이 각본까지 써서 일부러 반쪽을 뺐다. 물론 제작하는 입장에서 예산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시원찮은 작가 썼다가 피박 쓰는 것도 면하고.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는 언제까지 경계없는 작업을 할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감독이 각본을 쓰는 것도 재주긴 하겠지만, 난 그거 반대다. 그런 의미에서 별 세 개로 한다. 실제로 전문 작가가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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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이 능력이 많은 건가봐요..시나리오까지 직접 쓰고 영화 연출도 직접하고..영화감독으로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다 빠질 지경일텐데 말이죠..ㄷㄷㄷ

stella.K 2016-10-24 18:51   좋아요 0 | URL
뭐 영화판에서는 신 아니겠습니까?
제가 저렇게 써 놓으니까 좀 강렬하고 선동적이기까지 하죠?
전 시나리오 작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같은 동종업계라
작가라면 무조건 옹호하고 싶어서 말이죠.ㅋㅋ

북프리쿠키 2016-10-2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용두사미˝였네요ㅠ.

stella.K 2016-10-24 18:5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제가 볼 땐 아주 나쁘진 않았는데...^^

페크pek0501 2016-10-2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럭키>를 재밌게 봤습니다. 유해진 출연.

stella.K 2016-10-29 16:22   좋아요 0 | URL
재밌다고 그러긴 하더군요.

언닌 역시 활기차게 사시네요.
저는 극장 가 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혼자는 웬만해서 잘 안 가지고...ㅠ
 
죽은 시인의 사회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990년 작이니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영화에 나왔던 소년 티 팍팍 나던 아이들은 어느새 나이들어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고, 키팅 선생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는 세상을 등졌다. 슬픈 일이다. 나는 로빈 윌리엄스라면 이 영화와 <쥬만지>가 떠오르던데. 그만큼 그는 소년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년의 영혼을 지녔다.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배경이 늦은 가을에서 눈 오는 겨울 사이에 찍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게 처음 봤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까? 포스터의 배경은 키팅 선생이 아이들에게 럭비공을 차면서 뭔가의 구절을 힘껏 외치게 하는 장면이다. 그것이 또 나름 신이 났던지 키팅 선생을 번쩍 들어 헹가레를 친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던 음악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다. 문득 문학수 기자가 말했던 소설과 영화에서의 음악의 용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는 문학에서 음악을 얘기하려면 될 수 있으면 대중이 잘 모르는 음악으로 하라고 했다. 이를테면 하루키는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심포니에타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너무 잘 아는 곡을 쓰면 흥미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비해 영화는 흔히 잘 아는 곡을 써도 상관이 없고. 글쎄, 이 장면에서 베토벤의 곡이 아닌 다른 듣보잡의 음악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

 

아무튼, 그때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선생이 아닌 그야말로 존경해마지 않는 스승을 만나 전혀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으니. 교과서에 밖힌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산 지식을 배우고, 뭔가 자아의 일깨움을 받았으니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그것을 고운 눈으로 바라 봐 줄 리가 없다. 학교는 규율이라는 것이 있어 그 규율에 위배되는 걸 원치 않는다. 많은 학생들을 통솔해야 했으니 그랬을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똑똑한 바보를 양산할 뿐이다.

 

키팅 선생의 교수법은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산지식을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다 지혜로워지고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잠자던 욕망을 깨우는 일이며, 더 많은 부조리에 휘말리도록 만드는 것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저 럭비공을 차는 장면 뒤에 닐 페리가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으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처음으로 찾은 닐 페리. 그것은 연극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그가 의대에 진학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분출되자 그만큼 반대 급부로 의대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연극 무대에 섰다는 건 생의 환희를 맛 보았다는 것이고, 그 이후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설정이 너무 뜬금없는 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설정도 아닌 것도 사실이다. 입시 전후로 해서 자살하는 수험생이 그렇게도 많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아무튼 그랬을 때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자식을 강압적으로 자신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그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는 교과를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르친 킹팅 선생이다. 모르긴 해도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당시는 민주화의 열망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 끝자락이고 보면 영화가 갖는 울림이 더 하지 않았을까? 

 

키팅 선생의 교수법은 겉으로 봤을 땐 실패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실패할 때까지 실패는 아니다. 지금도 어디에서 어느 선생님은 키팅 선생님 같이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 것이다.    

 

나의 경험을 봐도 학교 때 기억 나는 교수님은 교과서 대로 가르치는 교수님이 아니었다. 시작만 교과서 대로 가르치고 그 나머지를 현실 비판으로 꽉꽉 채웠던 교수님이셨다. 내가 볼 때 그 교수님의 학식이란 가히 석학이라 불리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지성을 갖추고 계셨다. 하지만 듣기론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핸가, 그 다음 해에 학교 도서관 관장으로 좌천됐던가 그랬던 것 같다. 안타까운 건 그 분이 조금만 젊으셨더라면 교수법을 달리해서 현직을 유지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때 교수님은 이미 초로의 나이였고, 융통성이 좀 없으셨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한 번 닐 페리를 생각해 본다. 인생의 환희를 맛 보았을 때 돌연 죽음을 택한 소년. 거기에 생의 모순이 있고, 부조리가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다시 봐도 좋다. 영화사에 남을만한 명장면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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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작 영화였죠..
로빈윌리엄스의 자살소식은 좀 충격이었어요..아고야...

stella.K 2016-10-20 18:00   좋아요 1 | URL
글쎄 말입니다.
최근 고 하일성 씨도 그렇고...

근데 그 자살이라는 것도 뇌의 오류로 보는 시각이 있더군요.
이 괴로운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거라는 착각.
그래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영원히 쉬는 쪽을 선택한다는군요.
그것도 못 되거나 자기 할 말 가슴에 담아 놓지 않는 사람 중엔 거의
없는데 적당히 착한 사람이 그런다더군요.
참, 건강하게 산다는 게 쉽지 않아요.ㅠ

hnine 2016-10-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나름 제 인생의 영화 리스트 두번째 순위랍니다 ^^
부모는 왜 자식 인생을 부모가 재단해서 부모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가려고 할까요.
영어 선생님께서 우리말 번역이 잘못된 예로 이 영화 제목도 예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
저도 stella님처럼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stella.K 2016-10-21 07:51   좋아요 0 | URL
헙, 그럼 h님의 일순위 영화는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제 인생의 영화 톱10쯤으로 놓으렵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인지 그 시간 재밌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이 기억나시고...^^

cyrus 2016-10-20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쥬만지, 후크,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한 번씩 본 영화들인데 로빈 윌리엄스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 번 느껴봅니다.

stella.K 2016-10-21 07:54   좋아요 0 | URL
맞아. 굿 윌 헌팅!
근데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봤는지
부분 부분 봤는지 기억이 안 나네.
그러고 보면 로빈은 소년의 아버지가 아니라 교사였네.^^

북프리쿠키 2016-10-2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시인의 사회를 정주행해서 본적이 없고.
찔끔찔끔 봐 왔네요~
스텔라님 리뷰를 계기로
조용할때 차분히 보고 싶네요~

stella.K 2016-10-21 07:56   좋아요 0 | URL
저도 당분간 영화 보기를 자제하려고 했는데
케이블에서 해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ㅎㅎ

책읽는나무 2016-10-2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영화를 봤었는지?중학교때 봤었는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그 감동은 정말이지 짜릿하게 남아 있네요^^
저는 각자 학생들이 자신의 책상위로 올라가서 선생님을 따르는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았는데 자살 소식은 참~~~~ㅜㅜ
헌데 세월따라 다른 일부 내용들이 가물가물 하네요
요즘 옛날 영화들 다시보기 해야될 정도로 새롭게 알게 되는 장면들이 많네요^^

stella.K 2016-10-21 07:59   좋아요 0 | URL
뭐슨 영화든 처음 볼 땐 그냥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쯤 봐야 뜯어 보기가 가능하고.
대신 감동은 첫번에 보는 것 보단 덜 한 것 같고.
하지만 추억은 더 한 것 같고.
영화는 그런 것 같습니다.^^
 

'월간 채널 예스'(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만드는 무가지 잡지) 9월호는 요즘 한창 핫한 장강명 작가를 특집으로 다뤘다. 거기에 최근 나온 <5년만의 신혼여행>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은 내용들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암튼 그것을 읽으니 지난번 나의 책을 낼 때 나는 과연 얼마나 솔직했는가를 돌아보게 되고, 이 '솔직해 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매번 글을 쓸 때 솔직하게 쓰려고 했고, 결국 그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나온 것이긴 하지만, 특별히 나는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란 부제가 좀 부담스러웠다(이것은 내가 정한 부제는 아니다).   

나는 아직 작가라 불리기에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꿈만 꾸기엔 어딘가 모르게 나의 정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 책의 글은 그저 나의 고백을 담으려 했을 뿐인데, 부제를 그렇게 부쳐버리니 마치 작가 지망생들을 겨냥한 것이 되어버렸고, 과연 나도 같은 꿈을 꾸면서 그들에게 알려줄 말이라도 있었던 걸까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난 작가라면 작가 일수도 있다. 오래도록 대본을 써 왔고, 그에 대한 합당한 원고료도 받아 왔으며,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책도 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원고료 줄게 글 써 달라는 곳도 없고, 후속작을 계획 중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백기에도 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뭐 우기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10년 전 또는 20년 전에 책을 한 번 내고 작가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에게도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였었었대. 과거형으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그 책이 몇 년 만에 한 권씩이라도 팔린다면 작가의 명망은 유지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독자들조차 그런 책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작가라 불리는 건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알 사람은 안다. 작가는 현업보단 명예에 가깝다는걸.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아니 그전에 한 편의 글(그것이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기타 등등의 글)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뭐 주로 출판 쪽에 관계된 사람들이겠지)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는 건 로또나 벼락 맞을 확률에 비견된다는 걸 지난날 우리가 아는 명작들이 증명해 주지 있지 않는가. 물론 그나마 늦게라도 빛을 봐 대박신화를 썼으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더 자괴감을 느끼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영혼도 있을 것이다그러니 자비 출판을 하기 전에 내가 지금 쓰는 글이 활자화될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은 세월이 많이 좋아져 자비출판도 한다지만, 소소하게 지인들과 나눌 목적이 아니면 그것도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장강명 작가는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디는 지면이 없다고 하고, 어디는 작가가 없다고 한다고 했다. 이럴 때 나올 수 있는 말이 홍수 중 가뭄이란 말이던가? 어쨌거나 불균형이다.

내 책에서도 인용했지만, 천명관 작가는 평론가와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의 작가에 대한 지도편달을 금하고, 먹고 살 수 있는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순간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공감만 할 뿐 판은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선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건 역시 문학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에 변화를 주도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장강명 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책을 낼 때는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평론가와 심사위원의 지도편달이 가능한 체제라는 건, 작가가 그것을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체제이기도 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론가나 심사위원 눈에 들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가운데 장강명의 행보는 평론가를 의식하지 않고 출판사와 직접 협약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고,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내 본다니.

그런데 사실은 난 이런 장강명 작가의 행보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내 책

을 출간한 출판사가 그랬으니까. 출판을 제안받고 2년 만이 이것을 수락했을 때 출판사로부터 가장 먼저 받은 미션은 바로 그 기획서였다. 그러니까 무엇을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영화로 치면 일종의 시놉시스? 아니 일종의 피팅 같은 거였다.

피팅이 뭐냐고? 수년 전 내가 시나리오 학원을 다녔을 때 안 것인데, 말하자면 자신이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하고, 영화 관계자들에게 5분 이내에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실제로 그것을 실습해 보기도 했는데, 그건 미국같이 시스템이 잘 된 나라나 가능한 것이고, 우리나라에선 별로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해서 허탈했었다. 물론 난 그런 건 하지도 않았다. 수강 일수나 채우러 나간 내가 무슨 피팅이겠는가. 더구나 무대 울렁증이 있는데.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접을 것을 그때만큼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감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을 그때 선생님은 왜 시켰던 걸까?

 

비록 영화가 아닌 문학이고, 실제가 아닌 서면이긴 하지만. 그때 난 처음엔 좀 당황하긴 했다. 작가가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시키는 것이니 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면서 이 일은 꼭 출판사가 먼저 하라고 해서 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작가가 먼저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고, 바로 장강명 작가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작가도 평론가나 심사위원 뒤에 숨어서 그들이 깔아주는 판에서만 놀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계획서를 출판사에 들이미는 일이 흔해져야겠다. 물론 이것을 에이전시가 해 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던가? 그러니 작가가 그렇게 직접 뛰어 보는 것이다. 

장강명은 말한다. 그 원고 청탁 꼭 받아야만 하는 것이냐고. 자신은 어쨌든 열심히 써서 여기저기 보낸다고 한다. 물론 그럴 경우 대부분은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던가 아니면 그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글쎄, 그게 작가가 등단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확실히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어느 출판사에서 감히 장강명 작가의 글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겠는가.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진 원로 작가들을 생각해 봤다. 이를테면 김홍신이나, 박범신 또는 김훈이나 황석영 같은 작가들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대작가의 반열에 들을 것을 알고 첫 작품을 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첫 작품으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었음은 분명하다. 글 써서 밥은 벌어먹겠냐 이런 의문과 푸념 섞인 말은 하지 말자.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 말도 참 잘 지어낸다. 정지돈이 '후장사실주의'를 얘기하더니 장강명은 '월급사실주의'를 말한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할 것 같아 장 작가의 말을 따로 인용하지는 않겠다. 뭐 작가들도 정자세로 앉아 글만 쓰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말을 문자화해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니 그런 말의 유희도 즐길 줄 알아야 할 것도 같다.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면 실제로 하나의 문예사조로 남을지. 하지만 정지돈의 '후장사실주의'는 솔직히 박민규 식 표현을 하자면 '조까라 마이싱'이다. 글 써서 밥 벌어먹겠다는 사람 쪽박을 찰 생각은 없지만, 그런 말장난이나 하면서 소설도 아니고, 서평도 아닌 이상한 글 쓰면서 작가 행세하는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은지 묻고 싶다. 내가 볼 때 정지돈은 소설을 쓸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난 여전히  독자로서 가차없어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난 그런 작가에게 캐롤 오츠가 <작가의 신념>에서 했다던 유명한 말을 해 주고 싶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과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글 쓰는 작가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이것을 다 갖추고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런데 이 둘을 갖추려면 돌아가신 이윤기 님 말씀 말마따나, 거울이 어떠네, 저떠네 잔말하지 말고 쓰라고 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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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17 13:31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근데 기왕이면 도리를 다하는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거죠.ㅎ

hnine 2016-10-17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고민을 하시니 stella님 작가 맞으시네요 ^^
저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단 한권도 안 읽은 사람으로서 잘은 모르겠지만 저런 배짱은 최소한 그는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 생계형 작가는 아니지 않을까?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글써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상황이 작가에게 어떤 때는 독으로도 작용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것만큼 절실한게 없으니 약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stella.K 2016-10-17 13:36   좋아요 0 | URL
생계형 작가가 나중에 크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 같은 사람. 빚 갚으려고.
등 따숩고, 배 부르면 글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만해도 욕심없이 끼니 안 굶고 살만하니까 안 쓰잖아요.
적어도 내 안에 늙지 않은 괴물이 있어 그것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는 박범신 작가의 이유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6-10-17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바로는 글쓰기로 성공하려면 재능 이외에 필요한 게 바로 절실함과 두꺼운 얼굴이 아닐까 해요.
글쓰기가 아니면 다른 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실함. 오로지 글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절심함. 글밖에 할 게 없다는 절실함.
그리고 얼굴이 두꺼워야 해요. 창피함을 감내할 수 있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꺼운 얼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도 뻔뻔할 수 있는 것.

글쓰기가 아니어도 살만 하다면, 창피함을 감내하는 게 싫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 제 생각이에요.

이런 댓글 쓰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stella.K 2016-10-17 14: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전 이게 아직 부족한 것 같더라구요.
글을 쓰고 싶긴한데 절실할 정도는 아닌가 봐요.
이렇게 댓글 놀이가 좋고, 서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게 좋을 걸 보면...ㅠㅠ